장곡면 돌봄의 중심,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
이른 아침 용인을 출발해 차들이 꼬리를 무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출근길 정체를 뚫고 2시간을 달리니 홍성군 장곡면의 마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벼가 익어 그림같이 누런 들판을 지나 편집팀이 도착한 곳은 행정복지센터 건너편의 농협 건물이었어요. 마을 유일의 금융센터 농협 옆에는, 역시 마일 유일의 생필품 보급소인 하나로마트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고, 머지 않은 곳에 우체국과 치안센터 간판도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장곡면의 중심가, 옛날로 치면 장곡면 소재지인 셈입니다. 이 한적한 농촌 마을의 풍경 안에 장곡면을 그냥 장곡면이 아닌 ‘돌봄 마을 장곡면’으로 만든 특별한 장소들이 숨어있습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볼까요?
농협 건너편에 ‘상록수다방’이라는 작은 돌출 간판을 달고 있는 이곳은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장곡사협‘)> 사무실입니다. 7~8년 전에 다방이 문을 닫은 후 몇 년간 비어 있던 공간을 <장곡사협>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출입문 오른편에 있는 게시판에는 이곳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포스터가 붙어있는데요.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근처 장곡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운영하는 도토리수리단의 소개서와 수리의뢰요청서입니다. 게시판 아래 기다란 벤치도 이 친구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네요. 장곡면의 어른들이 초등학교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만큼 어린이들이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취약한 주민이나 노인을 잘 돌보기 위해 불편한 점을 찾아내고 필요한 것을 제안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요청사항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고민하고 연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장곡면의 마을 돌봄은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장곡사협>이 마을의 돌봄 허브가 된 데는 이런 일을 도맡아 해준 네 명의 수퍼히어로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신소희 사무국장, 유승희 돌봄마을 팀장, 박성경 돌봄마을 연구원, 신미숙 농촌돌봄서비스 활성화 지원 충남거점 팀장이 바로 그분들인데요. 이분들은 오늘도 장곡면의 경험을 주변 마을에 공유하는 일, 마을의 돌봄반장들과 함께한 돌봄조사 결과를 공유하는 일, 빨래방 활동과 반찬나눔 활동을 챙기는 일로 각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장곡사협의 네 어벤져스, 장곡사협의 게시판과 벤치, 장곡사협내부 모습
돌봄 활동의 거점, <공공장곡>
<장곡사협>의 길 건너에는 <공공장곡>이라는 주민자치회가 만든 생활밀착형 공유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비군중대본부가 썼던 아담한 2층 건물의 1층에 교육이나 회의실로 사용될 수 있는 공유사무실과 공유부엌, 빨래방이 있는데요. 빨래방은 이불 세탁이 어려운 어르신 및 취약계층을 위해 고안된 아이디어였답니다. 매주 수요일 두 대의 대형 세탁기와 두 대의 건조기가 열일을 하는 동안 빨래방의 매니저와 봉사자들은 근황토크를 합니다. 그럼 먹거리가 빠질 수 없겠지요? 자연스레 간단한 조리와 음료 준비를 할 수 있는 공유부엌도 들어섰습니다.
공유부엌이 생겨 어른들이 간식을 나누는 동안 아이들도 들러 컵라면을 함께 먹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다 이참에 제대로 된 간식을 만들어주자는 마음으로 학부모들과 주민자치회가 분식집을 오픈하게 되었답니다. 매월 두 번 문을 여는 장곡분식집에서는 떡볶이, 어묵, 팥빙수, 소금빵 같은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무료이고 어른들만 돈을 내는데 근처의 농협 직원들도 이날을 기다린다고 하네요.
이곳은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반찬배달 봉사활동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취약계층과 독거 노인들을 위해 준비한 일주일 치 반찬을 <공공장곡> 앞마당에 모인 봉사자들이 함께 배달합니다. 봉사자분들은 지난 번 전달한 반찬통을 회수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네고 주변을 살핍니다. “원래는 창문을 열어놓고 외출하시는데 오늘은 왜 닫혀있지?”, “문이 열려있으면 계셔야 하는데 안계시네”라며, 평소와 다른 모습이나 흔적에도 세심히 신경쓰고 확인하시는 걸 보니 아, 이 일은 단순한 반찬 배달이 아니라 ‘찾아가는 돌봄’이구나 싶었습니다.
<공공장곡>에는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 주민은 얼마 전 종료된 노래교실의 만족도를 묻는 설문에 노래교실 횟수를 더 늘렸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어보입니다. 최근에는 ‘공공장곡 수선집’도 오픈했다는군요. 상설시설은 아니지만 손재주와 기술을 가진 주민이 참여해 재능을 나누는 봉사활동인데요. 치마허리를 낙낙하게 고쳐주기도 하고, 바지길이를 적당히 줄여주기도 하고, 혼자사는 분이 해결할 수 없는 전등교체, 의자나 문고리를 고치는 일을 담당합니다. 이곳에 오신 한 주민이 “난 수요일만 기다려”라고 하신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모여서 배움과 교류와 나눔을 함께 하지만, 또한 보이지 않아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는 서로돌봄의 장, 그것이 <공공장곡>의 역할인 것 같았어요.

왼쪽부터 빨래방과 커뮤니티가 있는 공공장곡, 빨래방의 봉사자들에게 달밤쌍화차를 나누고 있는 기린연구원, 차에 실은 반찬통들
사회적 농업으로 시작한 또 하나의 마을공동체, <오누이센터>
다음에 둘러볼 곳은, 장곡면에서 외부와의 접점이 가장 많은 공간인 <오누이센터>입니다. 정식명칭은 오누이친환경마을협동조합으로, 2016년 장곡면의 4개 마을(도산2리, 신동리, 지정리 1·2리)을 대상으로 진행된 ‘오누이권역 단위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오누이센터의 특별한 점은 통상적인 지역개발사업이 그렇듯 건축물과 같은 일회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처의 협동조합과 주민공동체와 연계해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오누이센터>는 올초 문탁 소장님이 『한뼘양생』 북토크를 열었던 오누이다목적강당을 중심으로한 사무동과 예절관이 기본 시설이에요. 강당앞에 설치된 지도에 이곳에 입주해 있는 기관과 단체가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는데요. 장곡마을학교, 젊은협업농장, 행복농장과 같은 협동조합 형식의 마을공동체를 비롯해 농업·교육·여행·연구소·복지재단 등 다양한 분야의 사무실이나 워케이션센터, 그리고 일하러 모인 청년들을 위한 순환형주거시설 등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복합시설이죠? 그러다 보니 이곳은 행사가 끊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희가 방문한 날에도 오전에는 청양읍 주민자치회가 역량강화 워크숍을 진행했고, 오후에는 청년지역주민여행사인 <행여나(행복한여행나눔)>에서 기획한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주말에는 시골살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장곡살이 체험캠프가 열린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이곳에서 킨즈 편집팀의 관심을 끌었던 곳은 바로 사회적농업을 하는 <협동조합 행복농장>입니다. 장곡면 돌봄마을의 시작이 사회적 농업이었다고 들었고, 킨즈 10월호의 ‘피터팬아빠’기사에도 <희망그린마을>이라고하는 사회적농업 공동체가 소개되었기때문이에요. <행복농장>은 만성정신질환자들의 고용, 교육, 돌봄을 목적으로 2014년에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졌다고 합니다. 특히 만성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와 직업 재활이 주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이들과의 관계는 돌봄이 아니라 고용이라고 설명해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길게는 6~8년간 일했던 분들도 있었지만 현재는 건강 악화로 일을 중단한 상태라고 하네요. 예전보다는 활동이 축소된 것으로 보이지만 행복농장의 경험이 빛을 발했던 것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대신, 동네 어른들을 대상으로 경증 치매 어르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집콕하는 어르신들을 불러내 풀뽑기, 화분만들기를 했던 것이 현재 장곡면의 다양한 노인돌봄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된 것이죠. 루꼴라,바질, 애플민트를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이 농장에서는 바질페스토와 바질가루, 허브티 같은 가공상품도 판매하는데요. 저는 공간을 같이 쓰고 있는 문탁의 청년들을 위해 생리통에 좋다는 허브티를 챙겨왔습니다.
공간의 생명력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누이센터>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 각별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농장에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활동이 시작되면서 사무실이 생겼습니다. 청년들이 농사를 지으며 정주하게 되니 살아갈 집이 필요해졌고, 함께 밥을 먹을 공간도 마련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업장이었던 곳이 카페가 되기도 하고, 식당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잠시 머물 생각으로 왔다가 결혼을 계기로 이곳에 정착해 일터를 일구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누군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실험과 활동,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만남과 관계가 새로운 공간과 활동을 만들어내고, 그 활동들이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확장되는 마을 네트워크, 그것이 바로 <오누이센터>의 진면목이 아닐까요?
<오누이센터>는 오늘도 그렇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누센터 마을지도
*장곡면 농촌 돌봄 취재는 원래 편집팀 전체가 참여하는 것으로 기획되었지만 회사원으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각자의 일상이 있는 객원 에디터들에게 평일 하루를 온전히 비워 취재여행에 나선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아쉽지만 문탁 연구소장님과 기린, 서해가 편집팀을 대표해 다녀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