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두는 남자
일흔네 살의 남자가 있다. 오랫동안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었고, 7년 전에는 관상동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다. 젊어서는 공무원으로 일했고, 퇴직 후에는 아파트 단지의 전기책임자로 근무했다. 말수가 적고 성품이 온순한 분이다. 5년 전에는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남다른 재주가 하나 있다. ‘바둑’이다. 젊어서부터 바둑을 좋아했고, 사회인 바둑대회에도 여러 차례 출전했다. 상도 받고 메달도 땄다고 한다. 지금도 바둑 실력이 3급이라고 한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3급이 결코 만만한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분은 밥만 먹으면 기원에 간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누가 기다리지 않아도 기원에 간다. 바둑판 앞에 앉아 상대와 수를 겨루는 것이 그동안 이어온 일상이다. 치매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분의 하루에는 여전히 바둑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발목에 반깁스하고 딸과 함께 진료실에 내원했다. 기원에 가는 길에 기울어진 보도블록을 잘못 밟아 발목을 접질렸다고 했다. 실금이 가서 한동안 부목을 대고 지내야 했다. 문제는 발목만이 아니었다. 기원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분의 일상이 달라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기운도 없어 보였고 우울한 기색도 짙어졌다. 매일 같이 찾아가던 기원, 익숙한 사람들, 바둑돌을 놓으며 보내던 시간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함께 온 딸이 물었다. “선생님, 아버지가 이렇게 바둑을 잘 두시는데도 치매가 있을 수 있나요?” 충분히 궁금한 질문이다.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몇 수 앞을 내다보며 바둑을 둘 수 있을까. 기억은 흐려지는데 오랫동안 익힌 능력은 어떻게 남아 있는 것일까. 딸은 또 하나의 질문을 한다. “그런데 이제 기원에 계속 다니셔도 될까요? 또 넘어지실까 봐서 걱정이에요. 그냥 집에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시 넘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고, 길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가족으로서는 무엇보다 아버지의 안전이 중요할 것이다.

기억력은 떨어지는데도 바둑은 남을까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기억력이 저하되는데, 어떻게 바둑은 여전히 잘 둘 수 있을까. 그것도 상대의 수를 읽고, 형세를 판단하는 바둑을 말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력을 하나의 능력으로 생각하지만, 사람의 기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각각의 기억 기능과 이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과 작동 방식도 서로 다르다. 어제 점심때 무엇을 먹었는지, 지난주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하는 것은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이다. 알츠하이머병에서 비교적 일찍 손상되는 기억이다. 반면 바둑의 규칙과 정석처럼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은 ‘의미기억(semantic memory)’에 속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를 연주하듯 반복해서 익힌 기술은 ‘절차기억(procedural memory)’과 관련이 있다.
바둑을 둘 때는 이러한 기억들이 함께 작용한다. 바둑판 위의 돌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한 형태를 알아보고 대응하는 데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된 ‘패턴 인식과 자동화된 기술’이 관여한다. 여기에 상대가 방금 놓은 수를 기억하고, 앞으로 전개될 여러 수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작업기억과 판단력도 필요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이 모든 능력을 한꺼번에 무너뜨리지 않는다. 최근의 일을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져도,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익숙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다. 특히 숙련된 바둑인은 모든 수를 처음부터 계산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대국을 치르며 익힌 돌의 모양과 흐름,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이 머릿속에 축적되어 있다. 초보자가 한참을 고민해야 할 장면에서도 숙련자는 익숙한 형태를 알아보고 다음 수를 떠올릴 수 있다. 오랜 경험이 복잡한 판단의 일부를 대신해 주는 것이다. 물론 치매가 진행되면 바둑 실력 역시 영향을 받지만, 그 변화의 속도와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분에게도 오랫동안 쌓아온 바둑의 경험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바둑은 아직 그분의 일상에 남아 있었다. 나는 가끔 인간의 기억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어제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면서 수십 년 전에 배운 노래는 기억한다. 방금 들은 이름은 잊어도 젊은 시절 익힌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 기억은 하나의 서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병이 생기면 순서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억은 일찍 흐려지고, 어떤 기억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스며 있다.
오랫동안 반복해 온 일들은 하루의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이룬다.
그분에게 기원은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치매 환자가 아니라, 상대와 마주 앉아 자신의 수를 결정하는 바둑인이 된다. 그분에게 기원은 아직 그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였다.
안전하게 늙는 것과 자기답게 늙는 것
발목을 다쳐 기원에 가지 못하게 된 뒤 그분이 우울해졌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위험이 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할까. 노인에게 낙상은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는다. 고관절 골절로 이어지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야 하고, 그 사이 근력이 떨어지고 인지기능까지 악화될 수 있다. 한 번의 낙상이 남은 삶을 크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원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집에 머물면 기원으로 가는 길에서 넘어질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무엇을 잃게 될까. 바둑을 두는 즐거움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하루를 꾸려가는 기쁨까지 잃을 수 있다. 가족들은 그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넘어질까 봐 외출을 막고, 실수할까 염려하여서 하던 일까지 대신해 주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마저 줄어든다. 걱정과 사랑에서 시작된 보호가 오히려 삶의 자유를 좁히는 것이다. 안전해졌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삶. 그것이 과연 좋은 노년의 모습일까.
1972년 미국의 장애인 권익 옹호 활동가 로버트 퍼스키(Robert Perske)는 ‘위험을 감수할 존엄(Dignity of Risk)’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장애인을 위험으로부터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갈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이후 노인 돌봄에도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졌다. 젊은 사람이 등산하다 다치거나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고 해서 다시는 산에 가지 말고 자전거도 타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위험을 줄일 방법을 찾고 다시 즐기도록 격려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치매라는 진단을 받으면 그 사람의 선택보다 안전을 앞세우기 쉽다. 보호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대신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치매 환자는 판단능력이 저하되어 위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치매라는 진단만으로 모든 선택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무조건 감수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노인의학에서는 질병의 치료만큼이나 ‘일상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스로 걷고, 먹고, 씻고, 사람을 만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돌봄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일이 아니라,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돕고 어려운 부분에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보태는 일이다.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무엇이 중요할까. 가족으로서 기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남자에게 가장 좋은 처방일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집에 머물게 할 이유가 아니라, 다시 기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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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ke R. The Dignity of Risk and the Mentally Retarded. Mental Retardation, 10(1), 24–27. 1972
Tarsney PS. Dignity of Risk in Rehabilitation: Theory and Practice. Perspectives in Biology and Medicine, 65(2), 199–206.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