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31]손상된 몸 애도하기-<와해된 몸>

1.사고   크리스티나는 2003년 10월, 자전거 앞바퀴 살에 나뭇가지가 걸려 노면에 처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얼굴의 뼈가 박살나고 척추뼈까지 부서졌다. 부러진 뼈에 척수가 긁혀서 사지마비가 되기에 이르렀다. 5개월간의 치료와 재활을 한 후 집으로 퇴원했지만, 이제 그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서는 그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물리적 접근성을 높여주었고, 기존에 비해…

[리뷰21] 애도의 공동체-<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애도가치의 불평등 2015년 1월 20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동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거기에는 일본인 기업가 유카와 하루나(당시 42세)와 프리랜서 전쟁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당시 47세)가 오렌지색 옷을 입고 손목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IS는 일본이 서방 군에 1억 달러를 지원했다는 것을 명분 삼아 이들을 체포했고, 몸값으로…

[리뷰16] 상실, 기억 그리고 애도 –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1. 엄마, 이 다큐 좀 봐봐 세상 쿨한 내 딸, 절대로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 딸이 어느 날 나에게 다큐멘터리 하나를 추천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였다. 추천의 이유는 “재밌어” 였다. 영화의 첫 장면. 어느 주택의 창고에서 꼬마들이 외밧줄 그네를 타면서 놀고 있다. 그 옆에 그들의 할아버지,…

어머니와 딸, 애도의 글쓰기 – 유르스나르, 보부아르, 에르노

여자인 ‘나’는 어머니의 “분신이면서도 별개의 존재”이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나의 정체성을 뒤흔든다. 나의 일부이자 존재의 뿌리, 어머니가 없는 세상을 어머니가 있던 세상과 똑같이 살 수는 없다. 잘려 나간 그 존재의 무게만큼 내면의 무게도 달라지고 세상의 무게도 달라진다. 영혼이 흔들리는 ‘상실’ 앞에서, 남겨진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애도’를 거쳐야 한다. 애도는 단순히 슬픔을 마무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어머니)”가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