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이 다큐 좀 봐봐
세상 쿨한 내 딸, 절대로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 딸이 어느 날 나에게 다큐멘터리 하나를 추천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였다. 추천의 이유는 “재밌어” 였다.
영화의 첫 장면. 어느 주택의 창고에서 꼬마들이 외밧줄 그네를 타면서 놀고 있다. 그 옆에 그들의 할아버지, 주인공 딕 존슨이 앉아 있다. 높이 올랐다 내려오면서 신이 난 꼬마 하나가 말한다. “너무 높아서 죽을 뻔했어요” 할아버지가 묻는다. “죽을 뻔했다고? 무서운 말이구나. 왜 죽는다고 생각했니?” 손주의 대답은 “높이 올라갔잖아요. 근데 좋아요” 였다.
이어지는 장면, 손주들의 그네를 밀어주려고 일어난 할아버지. 그러자 이 모든 것을 찍고 있던 딕 존슨의 딸이 조바심 나는 목소리로, “아버지 조심하세요, 바닥이 미끄러워요”라고 주의를 준다. 아버지는 알겠다고, 조심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이내 미끄러져 바닥에 널브러진다. 하지만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딸을 향해 그 장면을 찍었냐고, 자기는 늘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다고 유머를 날린다. 딸도 호응한다. “잘 넘어지셨어요” 그런데 현실은, “어떻게 일어나지?” “꼼짝 못 하겠다. 도와주렴. 얘들아”
사실 이 첫 장면에 영화의 모든 주제가 응축되어 있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고, 가장 좋은 것은 동시에 가장 두려운 것이며,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고, 넘어졌다가 일어서려면 누군가 손을 잡아줘야 한다.
“이 사람을 떠나보내는 생각만 해도 견디기가 힘들다. 이분은 우리 아빠다. 아주 개방적인 분이다. 누구나 원하는 그런 아빠. 그게 우리 아빠고 내 평생을 함께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빠가 떠난다는 걸 우린 외면하고 있다. 아빠는 정신과 의사이고 난 촬영감독이다. 난 아빠의 죽음을 다루는 영화를 찍자고 제안했다. 아빠는 승낙하셨다.”
이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영화감독 딸이 만든, 아버지가 출연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2.”얘가 몇 번이나 날 죽여”
이 영화는 옵니버스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우선 저자는 아버지를 여러 번 여러 방식으로 죽인다. 딕 존슨은 계단에서 굴러서 죽기도 하고, 길 가다 건물에서 떨어진 무엇인가에 맞아서 죽기도 하고, 쇠로 만든 건축 구조물과 충돌해서 죽기도 하고, 심정지로 갑자기 쓰러져 죽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장면과 함께 아버지에게 촬영 과정을 설명하거나 스턴트맨을 인터뷰하는 메이킹 필름이 삽입되어 있다. 아버지는 말한다. “쟤가 날 몇 번이나 죽여요. 나는 계속 되살아나고요. <사랑의 블랙홀>처럼.”
그리고 이런 픽션 사이에,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는 아버지가 시애틀의 집을 떠나 딸과 살기 위해 뉴욕으로 오는 장면, 정신과 의사로 평생 진료해 오던 오피스를 정리하는 과정, 이제 무료하게 뉴욕의 방에서 낮잠 자는 장면, 리스본 해변에서 손주들과 모래찜질하면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 86세 생일파티, 핼러윈 축제 등이 논픽션으로 담긴다. 그리고 딕 존슨의 알츠하이머 증세는 점점 깊어진다. 처음에는 딸과 사는 집을 못 찾고, 다음에는 새벽에 정장을 입고 나와 환자들을 기다리고, 전철역에서 망연자실하고,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제 아빠의 온전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인 상태로도 우리는 실존할 수 있다. 감독인 딸은 현실 위에 상상 혹은 환상을 포갠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아버지의 죽음. 계단에서의 실족사 바로 다음은 천국 장면이다. 이 가족은 안식교도이고, 알다시피 안식교는 술과 음악, 영화를 금지하는 엄격한 계율이 존재한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는 언제 올지 모르는 최후의 심판 날, 신과 함께 천국에 올라갈 때까지 관에 누워 얌전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딸이 만든 천국은 다르다. 딕 존슨이 좋아하는 초코렛, 팝콘이 가득하고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온갖 영화배우들과의 만찬을 한다. 압권은 춤추는 이소룡^^ 딕 존슨은 안식교임에도 불구하고 10살 때 딸을 데리고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을 보러 갔고, 저승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행복한 삶이 천국이라고 말한 유쾌한 사람이었다.
알츠하이머로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도, 평생 콤플렉스였던 짧고 뭉툭한 기형적 발가락도 딸이 만든 판타지 필름에서는 달라진다. 픽션과 넌픽션, 판타지를 옵니버스로 짜 넣으면서 감독은 아버지의 상실과 상처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3. “영원하라 딕 존슨”
“우리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엄마를 떠나보냈지만 아빠의 상태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빠 친구분께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아빠 비서한테도 연락이 왔다. 환자 예약이 중복되고 처방 실수도 하셨다. 공사 현장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바람에 펑크 난 바퀴로 집까지 운전하기도 하셨다. 모든 전화가 경종으로 느껴졌다. 우린 완벽하게 상황을 이해해야 했지만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딸이 찍은 아버지의 다양한 죽음의 정점은 아버지의 사전장례식이다. 요란한 앰블러스 소리, 그 안에서 86세 심정지 남자의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다는 다급한 무전 소리가 들린다. 그다음은 장례식. 그 가족이 평생 다녔던 교회에서, 그 가족이 평생 알고 살았던 지인들, 그리고 주인공의 환자와 친구들이 참석했다. 딕 존슨은 밖에서 문틈으로 자기의 장례식을 보는 중이다.
그의 환자였던 여성 한 명이 추도사를 한다. 출근길에 자기 눈앞에서 자살한 사람을 보고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때, 딕이 얼마나 사려 깊고 따뜻하고 유능하게 자신을 돌봐주었는지를 말한다. 자기 남편이 죽었을 때도 딕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 며칠 후 그녀는 딕을 만났고, 딕은 따뜻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런데 5분 후 딕은 그녀에게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깨닫는다. 평생 다른 사람의 상처와 상실을 치료했던 딕이 이제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하지만 딕이 잃어버린 것은 그녀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에게 보존되어 있다.
딕의 가장 친한 친구는 처음부터 눈물 바람이다. 울먹이며 추도사를 마친 후 그는 평상시 딕이 부탁했다는 ‘고잉 어웨이’를 헌팅 호른으로 연주한다. 그런데 그것은 연주라기보다는 소음. 그때까지 미만한 슬픔으로 가득 찼던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술렁인다. 문 밖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딕과 딸은 박장대소를 하지만 장례식장 안의 추도객은 표정 관리가 힘들다. 슬픔도 삑사리가 난다!
하지만 장례식은 끝났다. 문이 열리고 살아있는 딕 존슨이 마치 신랑 입장처럼 뒤에서부터 걸어오면서 모든 추모객과 악수하거나 포옹한다. 처음엔 살짝 긴장했지만 딕의 눈은 점점 벌개지고, 눈물이 가득 고였다. 호른 연주를 했던 친구는 이젠 문 옆에서 대놓고 꺼이꺼이 울고 있다.
마지막 장면, 이 영화의 감독이자 딕 존슨의 딸인 커스틴 존슨은 좁은 옷장 안에서 스마트 폰을 들고 나레이션을 한다. “내가 아는 건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 내가 아는 건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 내가 할 말은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원하라 딕 존슨’”
이제 정말 딕 존슨이 죽은 것일까? 하지만 마지막 장면, 감독이 옷장 문을 열고 나오자 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었고, 둘은 서로 포옹한다. 아버지는 또다시 부활했다. 아마 그는 천국이 아니라 딸의 영화 속에서,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매번 이렇게 부활할지도 모르겠다.
4. 나도 찍어줄래, 나중에?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좀 울었다. 그리고 이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보면서도 울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내 차를 팔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잖아?” 딕 존슨은 조금 노엽다. 자기가 운전도 못 할 만큼 그렇게까지 상태가 안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딸이 찬찬히 설명한다. 뉴욕으로 이사를 해야 하고, 뉴욕에서는 차를 유지할 수는 없다고. 납득한 딕 존슨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린다. 하지만 마지막 하소연. 그래도 뉴욕으로 이사할 때까지 차가 필요할 수도 있잖아? 딸은 단호하다. 불과 며칠인데요. 이제 아버지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오케이’라고 답하지만 눈은 붉어진다. ‘쏘리’라고 대답하는 딸. 아버지는 아내가 요양원으로 쫓겨 갈 때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두 부녀는 부둥켜안고 운다.
나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딕 존슨처럼 유머가 없어서 속상하고 화가 날 때마다 딸인 나에게 쌍욕을 퍼부어 대는, 나랑 살고 있는 내 엄마가 불쌍해서 운다. 핼러윈 축제 날 혼자 남겨진 줄 알고 극심한 공포 속에서 있다가 딸을 만난 후, “날 구해줘서 고맙다…어떡하니 우리 딸, 아빠가 만신창이가 되었구나”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딕 존슨이 애잔해서 운다. 그리고 나에게 퍼부어 댄 후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어쩔 줄 모르며 내 눈치를 보는 엄마가 애처러워서 또 운다. 늙는다는 것은, 참 거시기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몸이 있는 한 노병사를 피할 방법은 없다. 딕 존슨이 담담하게 말하는 대로 그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고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커스틴 존슨은 아버지를 영화에 참여시키고 아버지와 함께 죽음을 연습하면서 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감당하고 있다. 딕 존슨은 유머와 위엄이 있었고, 커스틴 존슨은 지혜롭고 세심했다. 애도에 대한 좋은 레퍼런스가 우리에게 당도했다.
영화를 본 후 딸에게 문자를 남겼다. “잘 봤어, 좋은 영화 추천해 줘서 고마워. 근데 나중에 너도 나 찍어줄 거지?” 내가 보낸 문자는 딸보다는 훨씬 길었다.
딕 존슨이 평생 살던 집을 떠나면서 나누는 딸과의 대화
”멋진 집이야“
”떠나려니 서운하네요. “
”근데 문제는 너랑 지내려면 여길 떠나야 한 단 거지. 너랑 하루라도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집과 바꾸겠어.“
알츠하이머가 점점 깊어지면서 역시 딸과의 대화
”내 기억에 큰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잘 느끼나 봐“
”아빠는 짐이 될까봐 걱정하고 계시잖아요.“
”맞아“
”그게 어떤 의미예요. “
…
”말 그대로지. 혹시 내가 지금은 너랑 사는 데 내 상태가 더 나빠지면 네가 신경을 더 써야 하잖아.“ ”근데 너랑 사는 게 좋아서 지나치게 걱정은 안 해“
-부모님이 알츠하이머인 사람
-곧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할 사는 사람
-애도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
-좋은 다큐(형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