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나이토 이즈미 지음. 마음의 숲
가정 호스피스의 씨앗을 뿌린 의사 나이토 이즈미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나이토 이즈미는 재택 호스피스 의사다. 1956년생인 그녀는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일했다. 초보의사 시절, 나이토 이즈미는 근무하던 병원에서 자신과 또래인 백혈병 환자 유키를 만났다. 유키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시간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어했다. 이제 막 의사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나이토 이즈미는 유키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녀는 주치의를 설득했고, 유키를 돕기 위해 방문 진료를 기꺼이 자원했다. 말기암 환자라 해도 고통스런 치료를 계속하다 병원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때였다. 집에서 생을 정리하는 유키를 지켜본 경험 때문이었을까? 이후 나이토 이즈미는 영국에서 호스피스를 접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돕는 가정 호스피스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나이토 이즈미는 영국의 호스피스 병원에서 연수를 받으며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영국은 1967년 간호사 시슬리 손더스가 호스피스 병원을 건립함으로써 현대적 호스피스 운동이 시작된 나라였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7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완화의학을 정식 진료과목으로 채택했다. 영국에서는 이를 계기로 완화의료가 현대적 의료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공공돌봄체계(NHS)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만큼 오늘날에도 영국의 임종돌봄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호스피스의 선진국인 영국에서 7년간 완화의료의 경험을 쌓은 나이토 이즈미는 일본으로 돌아와 1995년 고향인 야마나시현 고후시에서 작은 내과를 열었다. 그때 이후 나이토 이즈미는 오전에는 일반 환자를 진료하고, 오후에는 말기암 환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루틴을 계속해 오고 있다. 30년전 나이토 이즈미가 병원을 열었던 때는 가정 호스피스의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말기암 환자에게 고용량의 진통제를 투약하는 것도 금기시되던 때라, 완화의료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암환자를 마약중독자로 만들려 한다는 비난을 받는 웃지 못할 일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자 하는 말기 환자들을 돕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본 가정 호스피스의 산증인이자 선구자가 되었다.
나이토 이즈미의 활동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2005년, 제주 MBC에서 방영한 2부작 다큐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통해서였다. 다큐를 제작한 고희영PD는 파킨슨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아 온 돌봄 당사자로, 2019년부터 7년간 나이토 이즈미 선생을 따라다니며 재택의료 현장을 촬영했다. 그렇게 완성된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1부는 나이토 이즈미 선생을 주인공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선 일본의 재택의료의 현장을 보여주고, 2부는 나이토 이즈미 선생의 돌봄 속에서 집에서 임종을 맞는 세 노인과 그들의 가족을 보여준다.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는 올해 번역되었지만, 일본에서는 고희영 PD가 다큐촬영을 시작한 2019년에 출판되어 일본에서도 가정 호스피스와 나다운 죽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전거로 왕진가는 나이토 이즈미 선생
살던 곳에서 나이들고, 살던 곳에서 죽는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
불과 4,5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가장 보통의 죽음의 모습은 병원에서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화의료의 도움을 받으며 살던 곳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1970년대~80년대에 노년과 죽음이 의료화되면서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을 병원과 의사에게 빼앗긴 현실과 병원에서의 고독한 죽음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생애 말기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삶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완화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높아졌다.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프랑스 1975년),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독일 1982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미국 1969년)이 바로 그런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 결과 서구에서는 1980년대 이후 병원 임종은 점차 감소해 왔다. 오늘날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뉴질랜드의 경우 병원 임종은 30% 이하로, 미국, 프랑스, 영국은 50% 이하로 낮아졌다. 이들 나라는 병원 임종 비율이 낮은 대신 집이나 호스피스, 그리고 장기 요양시설(nursing home) 등 노인들이 살던 곳에서 일상을 영위하다가 임종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정책적·제도적 차원에서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완화의료와 임종케어를 받을 수 있는 재택 의료와 돌봄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나이토 이즈미와 같은 선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전히 병원 임종 비율이 80%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5년부터 적극적으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최근에는 병원 임종이 65%로 줄어들고 자택과 요양시설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30%까지 늘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도 병원 임종이 75%, 자택 임종이 15% 선에 머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집에서 가족의 돌봄을 받던 노인도, 요양시설에서 지내던 노인도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판단되면 대부분 응급실로 실려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집도 요양시설도 아닌 요양병원은 노인들에게 요양과 치료의 장소가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된 지도 오래다. 일본과 우리의 차이의 핵심에는 살던 곳에서 나이 들고, 살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의 문제가 놓여 있다.

가족에 둘러싸여 살다 돌아가신 스기야마 겐코 어르신
나답게 죽을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에는 나이토 이즈미가 만난 21명의 나다운 죽음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들 대부분은 암환자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병원을 떠나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생을 마무리했다. 이 같은 사람들 4,000여명의 죽어감과 죽음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이토 이즈미는 말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단지 조금 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길 선택합니다. 죽음을 앞둔 비장함에 사로잡히지 않고, 남은 생명을 쥐어짜듯 애쓰지도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지내다가 그 과정에서 혹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그저 ‘다행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느낌입니다.”
이 책에 실린 자기답게 죽음을 선택한 이들은 모두 죽음과 싸우는 데 힘을 허비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삶의 기쁨을 누리는 데 집중했다. 이들 모두 죽어가는 사람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선택한 자기다운 죽어감의 과정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소중히 여기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옆에서 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돕는 가정 호스피스 의사 나이토 이즈미와 일본의 지역돌봄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다운 죽음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다. 물론 가족만으로도 안 된다. 가족만이 돌봄을 떠맡아야 한다면 그 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나답게 나이들고 나답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도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 그 마을에는 가정 호스피스 의사도 있어야 하고, 기꺼이 돌봄의 짐을 나누어 질 커뮤니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나답게 죽기 위해서는 늙고 병들어도, 돈이 없고 돌보아 줄 가족이 없더라도 누구나 잘 죽을 수 있는 지원체계를 갖춘 마을이 있어야 한다.
나답게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을 돕는데 일생을 헌신한 나이토 이즈미 선생의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다큐멘터리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웠었는데…
살던 집에서 죽을 수 있는 것도 쉽지 않지만 치매에 걸리면 자신의 집이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ㅎ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야 할 집이 낯선 곳이 되어버리는 상황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