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사떡은 어디까지 돌려야 되나?
제주에 입성하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웃에게 떡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사에 짜장면과 이사떡이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과 다름없으니까^^
오메기떡을 잘 한다는 아주 오래된 작은 방앗간을 소개받았다. 하지만 이사떡은 역시 시루떡이다. 그런데 얼마나 맞춰야 할까? 친구가 묻는다. 어디까지 돌릴 거야? 말문이 막혔다. 어디까지 돌려야 하지? 아파트처럼 옆집, 아래 윗집이 분명하지 않으니, 어디까지가 이웃인지 애매했다. 그렇다고 마을의 모든 가구에 떡을 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사실 마을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18년 전 친구들과 ‘문탁네트워크’를 만들고, 거기에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이라는 컨셉을 붙였을 때부터, 첫 해 인문학 축제의 주제를 “가족을 넘어 마을로!”로 삼았을 때부터, 오랫동안 ‘마을’은 나의 화두였다.
당시 나는 ‘마을’을 혈연적 가족이나 영토적 경계에 갇히지 않고, 개개인의 고유한 능력과 신체적 활력이 연결되는 호혜적 표상 공간으로 정의했었다. 시장과 가족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상을 함께 꾸려가는 관계의 망, 서로를 살리는 힘이 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작동하는 삶의 방식으로 그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 폴리스 같은 영토성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공간을 생각하기 힘들다… 또한 크로포트킨이 영감을 얻었던 중세의 촌락공동체 같은 농업생산력에 기초한 ‘마을’ 역시 생각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전 세계를 ‘글로벌’하게 ‘도시화’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마을’을 시장과 화폐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일상을 꾸리는 공간, 그러나 영토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신체에 새겨진 어떤 강도(우정, 웃음, 활력, 능력)를 통해 표현되는 ‘표상 공간’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이제 ‘마을’을 시장화된 도시 공간 아무데서나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 민들레를 꽃 피우는 대지의 힘으로 생각한다.” (“마을, 대지에서 피어나는 민들레”, 2011. 10 문탁인문학축제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발표문)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정의는 도시의 삶에서나 유효한 것이었다. 괸당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는 오래된 생활세계,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는 관계의 문법이 다른것 같았다.
결국 내 이웃이 누구인지 감도 못 잡은 나는 이미 알고 있던 나 같은 외지인*, 즉 볍씨학교 교장선생님, 조한혜정 선생님과 그림 선생, NGO 출신 마을 활동가, ‘레이지 마마’라는 한달살이 집을 운영하는 주인장, 그리고 그곳에 잠시 내려와 있던 <코리아 젠더 워> 저자에게만 떡을 돌렸다.
그리고 문제는 하나 더 남아 있었는데, 바로 수수료였다. 작년 여름 이 집에 대한 정보를 처음 준 사람은 조한샘이고, 나를 데리고 이 집을 구경시켜 준 사람은 NGO 활동가이고, 마지막에 가격을 흥정해준 사람은 볍씨학교 교장샘이었다. 그런데 조한샘이 매물로 나온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바로 우리 집 건너편 밭의 주인의 어머니인 그림할망, 옥순 삼촌이었다. 그렇다면 부동산을 끼지 않은 이 ‘꼬꼬무’ 알음알음 거래에서는 누구에게 수수료를 주어야 하는 것일까?
난 주소를 옮겼지만 아직 마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2. 내가 이렇게 정치적이었어?
결국 나는 다시 한번 떡을 돌렸다. 옥순 삼촌이 매달 10일 부녀회가 마을 노인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행사에 한번 와서 인사를 하고 부조금을 내라는 팁을 줬기 때문이다. 그날 경로당에 점심 드시러 모이는 노인이 약 80명. 이번엔 시루떡이 아니라 콩설기를 맞췄고, 가장 작게 포장했다. “예쁜 마을에 이사 와서 좋습니다”라는 아부 멘트를 쓴 ‘봉투’도 준비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주황색 남방을 입고 갔다.
경로당은 생각보다 컸다. 운동 기구 등이 갖춰진 넓은 홀이 있었고, 할아버지 방과 할머니 방이 따로 있었고, 그 밖에도 주방과 작은 방 두 개가 더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넓은 홀의 한쪽 벽면에 구한말부터 역대의 노인회장(모두 남성임)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 중앙의 태극기 양옆으로, ‘老人綱領’*이라고 쓴 액자와 ‘경로효친증서’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4.3을 겪었던 마을 할망 대부분이 학교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는데, “우리는 社會의 어른으로서 恒常 젊은이들에게 率先垂範하는 姿勢를 지니는 同時에…”로 시작하는, 이 국한문혼용체의 ‘국민교육헌장’급 노인 강령은 도대체 언제 누가 쓴 것일까? 다행히 ‘경로효친증서’에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1999년에 마을 부녀회가 노인들을 공경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글이었다.
아무튼 나는 옥순 삼촌의 중매로 노인회장과도 인사를 나누고, 부녀회장하고도 안면을 텄다. 부녀회원들은 대뜸 내가 몇 살인지, 남편은 뭐 하는지를 물어왔고, 졸지에 나는 신상이 털렸다. 그래도 마이크 잡은 총무님은 나를 최근에 마을로 이사 온 사람인데, 노인들을 위해 떡과 부조금을 가져왔다며 아주 우호적으로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중앙 홀을 홍해 가르듯 나누어 앉아 있는 식탁의 할망들 틈에 끼어 부녀회원들이 나르는 점심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점심 메인 메뉴인 수육이었다. 할망들은 식탁마다 놓인 내가 가져온 떡을 맛있게 드시면서 연신 “고기 먹어”라고 권하신다. 그 와중에 난 “고기 안 먹어요”라는 소리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몇 점 집어 먹었더니 이번에는 옥순 삼촌은 신이 나서 불편한 다리를 끌며 계속 고기를 리필해오는 게 아닌가? 아, 이곳에서 ‘페스코 베지테리안’으로 사는 것은 미임파서블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나는 부녀회에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며칠 후에는 마을 축제에 참여했다. 동백동산이 람사르습지로 선정된 이후 매년 열리는 가장 큰 마을 행사인데, 또 누군가가 그곳에 가서 이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리세(里稅)’도 내고, 소정의 마을발전기금도 내는 게 좋겠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 가서 가요와 난타와 춤이 짬뽕된 이상한 식전 행사를 꼼짝없이 관람했다. 그리고 노인회장, 조천읍장, 이장 협의회의 이웃 마을 이장들, 새마을부녀회장, 농협 조합장, 조천읍 연합회 청년회 회장, 도의원, 제주도 환경정책과 공무원 등의 끝없는 인사와 축사도 들어야 했다. 수십 년 동안 도시에 살면서 동장이 누구인지, 통반장이 누구인지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었는데, 제주에 오자마자 온갖 기관장과 마을 실세들을 한꺼번에 마주친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야무지게 챙겨서 이장님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엊그제 만났는데도 금방 나를 까먹으신 할망들에게 ‘떡’, ‘부조’, ‘주황색 옷’, 딱 이 세 단어를 통해 나를 다시 인지시켜 드렸다. 이 정도면 식전 행사에서 열심히 손뼉 친 보람은 있는 셈이다. 이후 할망들과 함께 마을 부녀회가 장만한 고기국수도 먹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고기를 살살 한쪽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경로당에 떡 돌리기, 마을 축제 참가하기와 더불어 마을 입성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이웃 밭 주인과 안면을 트는 것이었다. 그분은 전 주인이 “친하게 지내야 한다”라며 “육지에서 내려갈 때마다 좋은 것을 넉넉히 선물해라”라는 구체적 방법까지 나한테 전수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집을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부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분들의 밭에 그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어느날, 그분들이 밭에 모습을 보인 날,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냉큼 뛰어나가 인사를 했다. 마을 반장이라는 안주인은 경로당에서 나를 봤다며 이 동네에 이사 온 다른 외지인과 다른 것 같다고 칭찬하고는 밭에서 호박 두 개를 따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농사일을 잘 가르쳐 달라고 했고, 호박의 답례로 전날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 한 통을 안겨 드렸다. 그 후 나는 일삼아 밭에 나오는 그 농부 내외를 보면, 매번 뛰쳐나가서 낮은 담장을 마주하고, 한동안 수다를 떤다.
나도 내가 이렇게 정치적인 줄 처음 알았다.
3. 문을 잠그지 않는 마을에서 대문 없이 살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 중에 제주의 삼다(三多), 삼무(三無)가 있을 것이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서 삼다,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어서 삼무다.
여자가 많은지는 잘 모르겠고 (경로당에서는 거의 반반이었다) 돌과 바람이 많은 것은 확실히 안다. 여기서는 뭘 심기 위해 땅을 고르면 고운 흙이 나오는 게 아니라 끝없는 돌이 나오니까. 그리고 바람, 장난 아니다. 그래서 키가 조금만 크면 거센 바람에 나무가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무를 키 작게 키워야 한다.
그리고 ‘삼무’라는 표현은 온 마을 사람이 친인척이거나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괸당)였기 때문에 도둑질을 해도 숨길 수가 없었고, 서로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알아 굳이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던 공동체적 관계망을 보여준다. 정말 이곳은 대문 없는 집이 지천이다.
우리 집 역시 대문이 없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자주 산책하러 다니는 길목에 있다. 게다가 전 주인이 집을 도로보다 조금 높게 터를 잡아 지어 놓았기 때문에 ‘정낭’*이 없어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훤히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현관 밖 데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라도 마시게 되면, 그 모습은 연극 무대 위 배우처럼 모든 사람에게 고스란히 생중계된다. 지인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참새 방앗간’이 없고, 나에게는 실사판 트루먼 쇼 세트장과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관광을 하다가 마당의 꽃에 홀려 집 안으로 불쑥 들어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차를 몰고 들어와 한참 동안 다음 행선지를 의논하다 나가는 가족 여행객도 있었다. 옥순 삼촌은 묵이며 감자를 노인 전동차에 싣고 와 초인종도 누르지 않은 채 문을 쾅쾅 두드린다. 이웃의 젊은 엄마는 얼마 전 친정에서 담근 김치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별일 없이 그냥 궁금하거나 심심해서 들르는 지인들도 있다.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절실한, 생각보다 ‘I’ 성향이 강한 나에게는 시골 마을의 이런 개방된 라이프 스타일이 꽤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조경업자가 나지막한 대문 하나 달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솔직히 흔들렸다.

그런데 어느 날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담장이 낮고 대문이 없는 우리 마당이 길을 따라 숲까지 이어져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옥순 삼촌 아들이 일구는 앞쪽의 밭도, 옆집 쌍둥이들이 가방을 메고 뛰어다니는 골목도, 짙푸른 나무가 이어진 도로도 모두 우리 집의 연장처럼 보였다. 내 땅이 아닌데도 내 풍경 같았고, 내 것이 아닌데도 내 삶의 일부 같다니… 그러니까 대문이 없다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라는 좁은 틀에 삶을 가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온 세상을 들이고 있었다.
“언제 내려와? 자기네 집 자목련 예쁘게 피었어.”
“톱 사다 놓았어요? 내가 한번 들러서 키위나무 잘라줄게.”
“선생님, 외등 켜져 있어요. 제가 끌까요?”
“집에 있어? 있으면 와서 하귤하고 고사리 삶아놓은 것 좀 가져가”
여기서는 이런 다정한 오지랖이 넘쳐흐른다. 18년 전 머리를 싸매며 이론으로 정의했던 마을을, 나는 여기 제주에서 다시 몸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정말 마을 ‘인싸’가 될지도 모르겠다.
*괸당문화 : ‘괸당’은 권당(眷黨)에서 비롯된 말로서, 제주에서 혈연·혼인·이웃까지 넓게 아우르는 친족·연고 관계를 뜻한다. 괸당문화는 그 관계망을 바탕으로 경조사와 생활을 서로 돕고 챙기는 공동체적 관행이다.
*외지인 :’외지인’은 원래 지역 밖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오늘날 제주에서는 최근 10~20년 사이 이주해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 흔히 쓰인다. 그러나 동시에 제주 토박이들은 ‘외지인’ 말고 ‘육지 것’이라는 표현도 자주 쓴다. 이는 과거 제주 사람들이 한반도 본토(육지)에서 온 사람들을 약간의 경계심이나 거부감을 담아 부르던 폐쇄적인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변방으로서 겪었던 수탈이나 4·3 사건 등 외부 권력에 의해 상처받았던 기억이 투영된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재밌는 것은 제주에서는 서울 가는 것도 육지 간다고 하고, 용인 가는 것도 육지 간다고 하고, 전주 가는 것도 육지 간다고 한다. 제주 토박이에게는 서울과 용인과 전주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노인강령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社會의 어른으로서 恒常 젊은이들에게 率先垂範하는 姿勢를 지니는 同時에 지난날 우리가 體驗한 高貴한 經驗業績 그리고 民族의 얼을 後孫에게 承繼할 傳授者로서의 使命을 自覺하며 아래 事項의 실천을 위하여 다함께 努力한다. 1. 우리는 家政이나 社會에서 尊敬받는 老人이 되도록 노력한다. 2. 우리는 孝親敬老의 倫理觀과 傳統的 家族制度가 維持 發展되도록 힘쓴다. 3. 우리는 靑少年을 先導하고 젊은 世代에 奉仕하며 社會正義具現에 앞장선다”
*정낭 :‘정낭’은 거릿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가로 걸쳐 놓는 길고 굵직한 나무를 말한다. 정낭 3개가 정주목에 다 걸쳐 있으면 주인이 먼 곳에 출타 중이라는 표시이며, 다 내려 있으면 주인이 집 안에 있다는 징표다. 또 정낭이 2개는 걸쳐지고 1개가 내려지면 주인이 조금 먼 곳에, 1개가 걸쳐지고 2개가 내려 있으면 가까운 곳에 볼일 보러 갔다는 표시이다.

문탁샘, 신났다 신났어. ㅎㅎ
좋은 이웃들이 많군요. 좀 넘치는 것도 같긴 하지만 ㅋ
마을에서는 인싸로 살아야죠, 외지인, 육지것 말고요 ㅎㅎ
옥순 삼춘이주게~~
삼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