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2월 27일 한겨레 신문 ‘책과 세상’ 섹션의 메인 기사는 ‘서점에 부는 어른 열풍’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최근 어른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이 2040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새삼스럽게 ‘어른’이 소환되고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2030세대에게 나이든 사람들은 여전히 꼰대, 개저씨, 틀딱, 라떼 등과 같은 조롱섞인 멸칭으로 불리는데 왜 ‘어른’을 키워드로 한 책들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듦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각자 이 책들을 한 두 권씩 읽고, 어른열풍과 어른담론에 관해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2026년 6월 3일, 나이듦연구소에서 열린 어른열풍 좌담회의 내용입니다.

1. 어른은 누구인가, 꼰대와 어른 사이
사회자(요요) ‘어른’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국어사전에는 어른이란 1) 다 자란 사람, 2)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3) 나이,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어른은 국어 사전의 정의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어요. 각자 어른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윤경 사실 저는 서른이 넘으면 저절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대 중반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28살 때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 화장실 한 칸 있는 전세집을 구해 독립했을 때 처음으로 ‘어른이 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른이란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고 자기 생활을 자기가 책임지는 사람 아닌가 싶네요.
인디언 우리 아들이 5살 때 “어른이 되기 싫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어른이 되면 직장에도 가야 하고 운전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보살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내 모습이 그렇게 힘들어 보였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실 저는 어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에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사회에 그런 ‘어른’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저는 존경할 만한 분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문탁 어른에 대비되는 것이 어린이예요. 어린이날이나 『아동의 탄생』을 통해 우리는 어린이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어른에 대한 담론은 없었어요. 어른의 날도 없고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어른이 되어야지”, “어른은 이래야 해”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너무나 당연한 거에요. 저는 어른 열풍을 보면서 어린이에 대응하는 담론의 지형 안으로 어른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 어른이라는 언표가 각인된 건 <어른 김장하>로 시작해요. <어른 김장하>는 2022년 연말에 MBC 경남에서 다큐로 나왔어요. 이것을 압축해서 2023년 11월에 극장판으로 재편집해서 나와요. 그런데 이게 2025년 4월에 재개봉이 된단 말이에요. 윤석열 내란 이후에 문형배 대법관이 김장하 선생을 언급하면서 다시 재개봉까지 간 거예요. 그때 어른이라는 언표가 핫한 이슈로 떠올랐죠.
그 다음에 어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드라마 <나의 아저씨>예요. 이 드라마는 2018년에 방영되었어요. 저는 나중에 봤는데, 2018년에 나왔을 때는 중년 남성들이 주 시청자였대요. 그런데 2020년 이후에 OTT에서 MZ들의 다시 보기가 굉장히 늘었대요. 2023년 이선균 사건 이후에도 MZ들의 <나의 아저씨> 다시 보기 열풍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하고요. <나의 아저씨> OST 제목이 ‘어른’인데 이 OST가 공전의 히트를 했잖아요. 이 드라마 4회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이선균(박부장)이 지안이에게 물어보죠. “아버지는 뭐 하시냐”고. 지안이 “왜 그런 게 궁금하냐, 난 아저씨 아버지 뭐 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애들을 보면 그냥 물어봐”, 이렇게 이선균이 대답을 해요. 또 직원 회식 자리에서 부하직원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이런 대사가 나오고. 15회는 “너 같은 어린애가 어떻게 나 같은 어른이 불쌍해서… 나 그거 마음이 아파서 못 살겠다”는 대사도 있고요. 이렇게 아이와 어른을 대비시키면서 좋은 어른의 규범이 박혜영의 맛깔난 대사에 얹혀서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거죠. 나의 아저씨가 지안이로 대변되는 불안정 노동에 처한 MZ세대들의 곤고함도 잘 표현을 해주었고요. 드라마에서 이선균은 기껏해야 40대였을 텐데 자기를 어른이라고 했어요.
예전에 문탁에서 김종철 윤구병 박성준 선생님을 모셔다가 강좌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우리가 어른이라는 말을 썼나 안 썼나 찾아봤어요. 강좌 제목이 <세월호와 메르스 이후의 삶의 길을 묻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온 우리 시대의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청하려 한다’였어요. 우리는 그분들을 스승이라고 불렀지 어른이라는 단어는 안 썼더라고요. 근데 제가 작년에 신문에 악어떼 광호 결혼식과 관련한 칼럼을 쓰면서 저를 ‘아는 어른’이라고 썼잖아요. 아주 가깝게 지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부를 묻고 챙기는 이웃, 그래도 언제라도 필요하면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아는 어른’이라고 썼더라고요. 그때는 그렇게 쓴 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른 김장하라거나 나의 아저씨와 같은 맥락 속에서 저도 ‘아는 어른’이라는 단어를 쓴 건 아닐까 반문하게 되네요. ‘아는 아줌마’라고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도레미 저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나요. 하나는 서른 즈음인 것 같은데 어느 날 빨래를 하다가 ‘나도 어른인데, 어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또 하나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하고 나서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하라는 요구가 많았던 시절, 그때 제가 갈등 현장에 계신 분들을 만나는 일을 했어요. 그때 제 상사였던 분이 “예전에는 이런 사회적 갈등이 생기면 중재를 해주는 어른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분이 없다”는 말을 했어요. 그게 제가 ‘어른’ 하면 생각나는 두 번째 장면이에요. 그때 언급되는 어른들은 모두 남자였어요. 그런데 제가 빨래하며 생각한 어른은 그런 상징적인 원로라기보다는 한명의 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어른이었어요.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인데 뉴스에서 학대당하는 애들이 많다든가 밥 굶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어른으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여전히 부끄럽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어떤 선을 잡아주는 게 어른이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기린 저는 고향 친구들이 제게 “너는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아직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 게 생각나요. 결혼하고 애도 낳아 키우면서 산전수전 겪은 사람이 진짜 어른이라는 그런 의미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다못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빨래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친구 말에 동의한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남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서해 제게 어른은 두 가지 층위가 있는 것 같아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내 삶의 어떤 준거가 되기도 하는 모델로서의 어른이 있고요, 또 하나는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어른입니다. 첫 번째는 스승과 같은 의미고, 두 번째는 제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예요. 저는 계속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제가 어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2015년 녹색평론 여름호에 실린 『풍운아 채현국』 서평에서 ‘진짜 어른’이라는 말을 접하고나서 부터에요. 그 글은 ‘우리 사회에 어른이 있는가’라고 물어요. 2015년 전후해서 나이든 사람에 대한 멸칭으로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꼰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진짜 어른이라는 말을 만난 거지요.
문탁 재미있는 게 앞에 말씀드렸던 문탁의 강좌도 2015년 강좌거든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바로 2014년 세월호와 2015년 메르스 사태에요. 우리는 전대미문의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소위 기득권 세력이라거나 정권을 잡은 사람만이 아닌 일반 어른들도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죠. 2015년의 문탁 강좌도 어른이라는 단어만 안 썼을 뿐이지, 그런 맥락에서 시대의 스승인 어른들을 모신 거였어요. 녹평의 서평에 등장한 ‘어른’이라는 개념 역시 시대적 맥락이 있었던 거죠.
사회자 맞아요. 꼰대는 예전부터 늙은이나 선생님을 대신하는 말이었는데, 이즈음 말이 안 통하는 중년이나 노년에 대한 멸칭으로 바뀌었어요. 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찍으면서 청년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청년 담론도 폭발했지요. 꼰대와 함께 ‘라떼’라는 말도 유행했고요. 청년 담론의 폭발, 꼰대의 멸칭화, 어른 담론의 등장은 연결되어 있어요. 꼰대는 싫은 감정을, 어른은 어떤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말이 된 거에요. 근데 그 진짜 어른들의 모델이 대부분 남자라는 거에요. 그런 점에서 어른은 나이뿐만 아니라 젠더와도 연결되어 있는 거죠.

“청년 담론의 폭발, 꼰대의 멸칭화, 어른 담론의 등장은 연결되어 있어요. 꼰대는 싫은 감정을, 어른은 어떤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말이 된 거예요.”
2. 서점가에 등장한 현명한 어른, 조용한 어른, 괜찮은 어른, 즐거운 어른
사회자 어른 담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함께 몇년전부터 서점가에도 어른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요. 2040세대가 제목에 어른이 들어간 책을 찾아서 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른열풍을 이끌고 있는 책들을 직접 읽어보고 어른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탐구해 보기로 했는데요. 먼저 각자 읽은 책의 내용과 감상을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윤경 저는 최서영(여성, 1987년생)의 『어른의 품위』와 태수(남성, 1991년생)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었어요. 『어른의 품위』는 자신이 어렸을 때 좌충우돌 했던 경험들과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한테는 “괜찮아, 뭐 그래도 괜찮아” 약간 이런 느낌의 조언, 그리고 괜찮은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글이에요.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단단함’이더라고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같은 단단함이요.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는 좀 오글거리는 내용이긴 한데 가벼운 에피소드 모음이예요. 근데 이것도 “아니야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뭐 또 도전하면 되는 거지, 아니면 다른 길이 있지”와 같은 내용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이런 위로가 필요한 2030들이 정말 불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책 모두 다정하고 좋은 사람을 지향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해요.
사회자 저는 박지현(여성, 1979년생)의 『참 괜찮은 말들』을 읽었어요. 18년간 <다큐 3일>,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만들어 온 PD에요. 이 책의 부제는 ‘길 위에서 만난 현명한 어른들에게 배우다’인데,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이 지긋한 어른인 건 아니에요.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에요. 저는 좀 심심했는데, 독자 후기를 찾아 보니, 한 편 한 편이 다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이다라는 평이 많아요. 저는 2040세대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책을 읽으며 그게 참 궁금해졌어요.
문탁 이옥선(여성, 76세)의 노년 에세이 『즐거운 어른』을 읽었어요. 2024년에 출간되었네요. 앞에 소개된 책들과 가장 다른 점은 노년 당사자가 썼다는 거예요. 76세에 이런 에세이를 쓴다는 사실 자체가 보편적인 건 아니지요. 게다가 내용에 도발적인 면모가 있어요. 예를 들면 ‘난 남편 제사를 안 지내기로 했다’. ‘난 아끼지 않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이 늙으면 건강을 생각해서 쓸데없는 군것질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난 배가 고프면 밤에 계속 먹는다’, ‘콜라도 벌컥벌컥 마신다’. ‘고독사를 해야 마땅하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노년의 통념에 도전하는 그런 내용과 문장들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이옥선님은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는 할머니예요.
사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예요. 평생 전업 주부로 살았는데 늙어 보니 오히려 편하다 이거예요. 얽매일 게 하나도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난 이 책의 제목이 즐거운 어른인 게 이상해요. 어른 열풍이라는 트렌드에 맞춘 마케팅 같아 보여요.
서해 저는 강원국(남성, 62년생)의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를 읽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 비서관으로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어른의 품위를 지키면서 말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문탁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품위 없게 말한다고 언론에서 지적하지 않았나요?(웃음)
서해 맞아요. 그래서 이 책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안 좋았던 사례로 계속 나와요. 여론을 안 좋게 만든 섣부른 말의 사례로요. 서문에 ‘어른의 말이란 오락가락하지 않고 진심이 담긴 말이고 상대에게 배울 점을 주는 말이고 감정을 절제할 수 있어야 된다’고 쓰고 있어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와 같은 내용들이 자기계발서처럼 읽혔습니다.
남인숙(여성, 74년생)의 『어른 수업』도 읽었어요. 이 책의 ‘요지가 밉지 않은 이기주의자가 되자’인데 20대와 30대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유명인사 같은 사람과 친해져서 인맥을 자랑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가 류의 인간관계 관리법이라고 할까,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좀 충격이었어요.
인디언 제가 읽은 책은 김경집(남성, 59년생)의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학교수고 이분은 어른 연구소를 차리기까지 했어요. 좋은 어른은 버겁고, 시시한 어른은 부끄럽고, 그래서 괜찮은 어른이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제목으로 선택했다고 해요. 이분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어른된 자로서의 주체성이에요.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요. 저는 이분의 이야기를 매우 규범적이라고 느꼈어요. 배우려는 마음. 개방성. 유연한 사고도 강조하는데, 좀 지루했어요. 품위 있게 늙어가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도레미 제가 읽은 『어른 김장하』는 어른 열풍의 트리거가 된 다큐 <어른 김장하>의 각본집입니다, 책 표지에 ‘당신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다큐를 만든 감독은 “한때 불타오르는 영웅은 많다. 하지만 평생토록 조용히 남몰래 아름다운 태도를 지켜가는 영혼은 흔치 않다”고 말해요. 사람들이 김장하 선생 다큐를 보고 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라고 한대요. 이게 바로 어른의 효능감이 아닌가 싶어요.
기린 저는 김소영(여성, 78년생)의 『어떤 어른』을 읽었어요.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라는 세계』로 알려진 작가예요. 3부 소제목이 ‘어른의 어른’인데 여기에서 작가의 문제의식이 드러나요. “혹시 나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 뒤로 숨었던 건 아닐까”, “나 자신도 어른이면서 아닌 척하느라고 겸손한 외양을 하고 존경하는 어른의 이름을 읊어 온 것은 아닐까”라는 자기성찰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앞의 책들과 다른 점은 어른의 규범을 제시하기 보다 어린이와의 관계라는 현실적 장면에서 어른을 바라본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는 방식이 아니라 계속 규범 안에 속하고 싶은 방식으로 사유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요. 난 이런 어른을 원해 하고 말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 새로운 규범이 되는 방식으로요.”

“이 세대에게는 나다움이 좀 더 먹히는 것 같아요. 그게 정상성이나 규범성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그냥 나 좋은 것 하겠다, 내 쪼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느껴져요. 그 다음에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남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죠.”
3. 2040세대는 왜 어른열풍을 좇는가: 청년의 불안과 무해한 어른
사회자 어른 열풍을 이끄는 주된 독자층이 2040세대라고 합니다. 2040세대가 현명한 어른, 괜찮은 어른, 꼰대처럼 말하지 않는 어른, 즐거운 어른에 대해 호감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소 뻔한 이야기라고 느낀 우리들의 총평과 MZ들의 반응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이 책들이 젊은 세대에게 통하는 이유을 분석해봅시다.
윤경 저는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괜찮은 어른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이런 책을 찾아 읽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저도 동네에서 활동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2030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도 40대까지는 만날 수 있는데 30대 이하는 뭔가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도 회사에서 만나는 어른들 외에는 밖에서 접하는 어른이 없을 거 아녜요. 그리고 요즘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금기라고 해요. 제가 동네에서 ‘청년 식탁 프로젝트’를 할 때 참여한 청년들 중에는 가족 안에서 트러블이 없는 친구가 드물었어요. 부모와도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드니 또래 외는 아는 어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서해 저는 2030들은 정보력이 강하고 어떤 것이든 검색하고 학습해서 배우는 사람들이라고 봐요. 이들이 꼰대는 되기 싫고,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학습을 통해 배우려는 생각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진정한 어른이 된다기보다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자기계발의 차원에서 배우는 거죠.
그 중에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인숙의 『어른 수업』에서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중 하나가 “회사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어요. 저자는, “회사에서는 친구 사귀면 안 된다”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돈 안 주고 일 시키는 거랑 똑같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친구가 되려고 접근하면 안 된다. 회사는 그저 돈 버는 곳”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회사에서 일로써만 사람을 대한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관계맺으며 선후배가 되는 것이 진짜 너무 힘든 거잖아요. 입사 전부터도 굉장한 경쟁에서 살아온 이 친구들에게는 교회와 같은 커뮤니티가 아닌 이상 주위에 어른이 없는 거예요, 요즘은 함께 매일 달리는 러닝 크루 같은 동호회에서도 뛰는 것 외에는 이야기 안 하는 게 불문율이잖아요. 결론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습득되었을 삶의 지혜가 지금은 책을 읽고 노력해 배워야 하는 일들이 되어가는 것이죠. 어른다움도 마찬가지고요.
문탁 그 이야기를 좀 다른 차원에서 해보면 세 가지 정도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이 책들 대부분이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문제를 개인으로 돌려서 개인의 성숙이라거나 개인의 해탈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의 파편화된 개인들의 선택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을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컨텐츠가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싶네요. 액티브 시니어 담론은 노년층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어요. 그런데 어른 열풍이 겨냥하는 소비주체는 노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제도화된 사회에서 자라난 세대죠. 노년층을 신뢰하지 않고 혐오하지만, 그래서 자신들이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MZ들의 불안을 마케팅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노인혐오와 어른열풍은 모순이라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 되고 있다고 봐야겠죠.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원하는 어른이 ‘단단한’, ‘품위 있는’, ‘괜찮은’, ‘친절한’ 같은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예요. 한 마디로 ‘무해한 어른’이지요.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징징대지 않고, 자기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어른 말이에요.
사회자 꼰대에 대한 혐오와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하는 게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이야기군요. 그런데 어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모두 MZ 당사자들이 쓴 책은 아니지 않나요?
문탁 최서영, 태수, 박지현과 같은 40대 작가들도 실제 MZ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죠. 그리고 최근에는 무해함에서 다정함으로 키워드가 또 바뀌고 있다네요. 다정해야 돼. 기본적으로 버거운 어른들은 싫어해요. 간섭받는 것은 싫은데 다정한 것은 좋은 건가요? 아무튼 대부분 구조를 문제 삼지도 않거니와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오히려 개체들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어른 열풍의 어른도 단독자 어른이에요. 만약 지속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면 책임은 쌍방향적입니다.
사회자 그럼 70대 당사자의 이야기인 『즐거운 어른』의 독자는 누구일까요?
기린 아마 젊은 세대가 훨씬 많을 거예요. 최근 2030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할머니 열풍하고도 통하죠. 여성들이 즐겨듣는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 이옥선님이 나와서 상담해 주는 걸 꾸준히 해요. 이옥선님은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거든요. 팟캐스트 주청취자도,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도 3040 여성이 주축이에요. 이옥선님이 멘토 역할을 하는 거죠.
문탁 어떻게 보면 유튜브로 뜬 박막례 할머니랑 비슷하네요. 박막례 할머니가 야성이라면 이옥선 할머니는 지성 쪽인 거죠. 박막례 할머니도 손자 때문에 떴고, 이옥선님은 딸 때문에 떴지만, 두 사람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 내용은 주로 삶에서 터득한 지혜를 너무 진지하지 않게 던지는 거지요. 사람들이 열광하는 부분은 아주 생생한 생활 언어와 촌철살인의 유머와 지혜거든요. 박막례 할머니나 이옥선님은 지금까지 없었던, 다른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어요.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며 툭툭 던지는 말을 들으며 젊은 여성들이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자유롭게 살면 되겠구나 이런 거죠.
도레미 바로 그것이 젊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예요.
사회자 60대 남성작가들이 쓴 책의 독자는 누구일까요? 이분들을 노년에 가까워져 가는 당사자라고 한다면 이들은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 걸까요?
인디언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젊은이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예요. 작가가 동년배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괜찮은 어른으로 늙어갈 것인가라고 물어요. 해답으로 현명하게 늙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젊은 세대랑 소통도 해야 되고, AI도 받아들여야 되고, 태도를 바꿔야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보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엄청 우아하기도 하고, 규범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반발심이 일더라고요. 그렇게 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사람은 어쩌라고? 하는.
또 이 책은 젊은 세대와의 관계에서 디딤돌이 될지언정 걸림돌은 되지 말자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청년들과 뭔가를 같이 하라고 권해요. 젊은 세대들의 노인혐오에 대해서도 고까워할 게 아니라 가진 것이 더 많은 기성세대가 포용력을 가지고 대처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 해법 역시 그렇게 할 수 없는 조건의 사람들한테는 참 힘든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자 강원국 작가의 책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한겨레 신문에서 분석한 어른 열풍 기사는 앞에서 논한 책들은 ‘어른의 태도’로, 강원국의 책은 ‘어른의 말’로 분류하고 있더군요.
서해 강원국은 남자 지식인 당사자로서 정말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말을 해야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요. 글쓰기에 관심있는 젊은 사람들도 이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인디언 아마 이 책도 은퇴전후의 남자들이 읽으면 괜찮다고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이렇게 해야지! 하고요. 김경집의 책도 그렇지만 어쩌면 모르던 것을 알게 해준다기보다는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환기해 주는, 그런 종류가 아닐까요?
문탁 전근대사회에서 어른은 그 자체로 공경의 대상이었어요. 맹자는 조정에서는 벼슬이, 향당에서는 나이가 공경받는 척도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근대사회에서는 결혼해서 애 낳지 않으면 어른이 안 된다로 이야기가 바뀌어요. 이성애와 이성애 핵가족을 통해 아이를 생산해서 노동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어른의 규범이 된 거죠.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안 낳거나, 성소수자는 비정상인이 되는 거고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의 어른 열풍은 무해한 어른으로 집중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것 역시 계급적이고 젠더적이구요. 영화 <사람과 고기>에 나오는 무전취식하는 노인은 어른이 아닌 거지요. 시끄러운 노인, 틀니를 해서 말을 할 때마다 침이 튀기는 노인은 진정한 어른이 아니야, 이런 식의 차별과 배제가 작동하면서 정상적 어른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자기계발을 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진짜 어른이 뭐냐”가 아니라 어른 열풍, 진짜 어른을 찾게 하는 담론의 효과가 무엇인가 이죠.
인디언 어른의 품위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나이 들어 신체가 노쇠해지면 어쩔 수 없이 기저귀 차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어떻게 품위를 유지하라는 거지,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문탁 내적 성숙이 개인적 미덕이 될 수는 있어요. 어떤 사람은 유쾌할 수 있고, 유머가 넘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좋기만 한 게 어디 있냐고요? 사람은 제각각이고 한 사람에게도 여러 면이 있는데 이건 뭐 전부 착해야 하고, 품위 있어야 하고, 조용해야 하고, 단단해야 한다니. 어떤 사람은 귀에 피날 정도로 좀 떠들면 안 되나요?(웃음)

“MZ들이 원하는 어른은 ‘단단한’, ‘품위있는’, ‘괜찮은’, ‘친절한’ 같은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한마디로 ‘무해한’ 어른이지요.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징징대지 않고, 자기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어른 말이예요.”
4. 진짜 어른이라는 환상이 낳는 효과
사회자 마지막으로 어른 담론을 불러 일으킨 『어른 김장하』가 있습니다. ‘어른 김장하’는 요즘 유행하는 젊은 노년, 소비 주체로서의 노년의 호칭인 액티브 시니어와는 완전히 방향이 달라요. 김장하 열풍과 함께 사회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어른다움이라든가, 진정한 어른이라든가 하는 말이 많이 쓰이게 된 것 같습니다.
문탁 <어른 김장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른 열풍을 촉발시켰어요. 김장하는 도대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던져졌을 때 좋은 어른으로 소환할 수 있었던 어떤 인물이었던 거죠. 위인전하고 비슷해요. 어른의 롤모델이자 규범인 거에요.
사회자 우리가 ‘진정한 어른’이나 ‘어른다움’ 같은 말을 쓸 때 자신도 모르게 정상성 규범이나 모델을 전제하게 됩니다. 그 모델은 규범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뭔가 잘못하고 있고 규범에 미치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해라고 명령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죠. 어쩌면 어른 열풍을 이끄는 다른 책들도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겠지요. 또 다른 측면은 어른의 품위를 말할 때 실제로 우리가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할 수도 있는데 계속 품위 있어야 한다고 요구함으로써 나이듦에 따라오는 신체 노화 같은 것을 부끄러운 일로 만든다거나 품위 없는 일로 만든다거나 하는 거죠.
윤경 제가 읽은 두 권의 책을 통해 저는 MZ세대는 그런 정상성을 벗어나자고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틀에 맞춰서 사느라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 어쨌든 자신만의 인생을 살겠다, 그냥 날 내버려 둬, 약간 그런 느낌으로 읽혔어요.
사회자 혹시 그런 것이 MZ들에게 새로운 정상성 규범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에 맞춰 살지 않아도 돼’라고 하는 게 내가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남한테도 그걸 요구하는 거잖아요. 그게 새로운 관계의 룰로 제시되는 거 아닐까요.
윤경 이 세대에게는 나다움이 좀 더 먹히는 것 같아요. 그게 정상성이나 규범성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나 좋은 것 하겠다, 내 쪼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느껴져요. 그렇게 살면서도 남한테 약간은 다정해지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 같아요. 일단 나를 지켜서 상처받지 않겠다, 그 다음에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남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죠.
문탁 저는 개인으로서는 내가 상처를 덜 받고 싶고 더 다정해지고 싶다는 그런 지향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예요. 다만 이게 굉장히 탈정치적이라는 거죠.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게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다 파편화되어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 이렇게 상처도 안 주고 상처도 안 받으면서 또 누군가에게 다정할 수 있다니…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상처가 없으면 관계도 어렵고 나 혼자 단단해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나요? 서로 상처를 받으면서 다정해지고 이런 거지.
사회자 그건 개인을 철저하게 원자론적으로 보는 사고 방식이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원자론적으로 보는 게 좋다라는 게 전제되어 있다는 거지요.
기린 저는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는 방식이 아니라 계속 규범 안에 속하고 싶은 방식으로 사유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요. 나는 이걸 원해, 난 이런 어른을 원해 라고 말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 새로운 규범이 되는 방식으로요. 그러니까 그게 주체성일 수 있겠지만, 내 욕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자신만의 독자성을 추구하면 진짜 살기 고달플 것 같아요. 제가 친구들이 “너는 어른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내가 그런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모자란다거나 노력해서 그걸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어른 열풍 자체가 좀 병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문탁 어쩌면 기린님은 그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또래 집단이나 친구 관계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 점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른 열풍이 아니라 친구 열풍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말하는 친구는 반드시 나이가 같거나 동창 관계에 국한되는 건 아니에요. 거기에는 어른과 어른 아닌 사람의 구분을 넘어서는, 굉장히 많은 게 포함이 되어 있는 거죠. 위로와 격려와 충고와 따끔함과…
기린 병리적 현상이라는 제 느낌도 바로 어른의 이미지가 소비된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어떻게 말하든 간에 정상성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존재들이 좋은 어른, 괜찮은 어른을 호명하면서 정상성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거예요. 그런 게 바로 상처받는 거겠죠. 계속 정상성을 요구하는 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걸 확인하고 상처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만드는 환경이나 구조를 바꾸는 상상을 하지 않고 어른다움을 소환하고 소비하는 것 자체가 안타깝게 느껴져요.
윤경 우리의 어른 열풍 분석이 너무 비관적인 것 같아요. 현실의 2030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 잖아요. 내가 볼 때에는 2030들은 엄청 잘 어울리고 잘 놀기도 하거든요. 어른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절실하게 질문하고 자신의 삶을 그래도 단단하게 하려고 하는 20대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저는 처음에는 어른열풍이 낯설다고 생각했지만, 책들을 읽으며 제 20대를 돌아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저도 20대는 좌충우돌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이런 책이라도 있으니 좀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는 노무현 대통령 비하하는 놀이하고, 518 일베놀이하는 20대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런 젊은이들에 비하면 무해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는 젊은이들이라면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인디언 저는 어른 열풍도 분위기를 타는 정동적인 현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식 열풍도 그렇고, 어른 열풍도 그렇고, 어떤 트렌드를 좇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배경에는 불안이 있겠죠. 굉장히 불안하고 파편화 돼 있으니까 뭘 믿고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거지. 저는 빠르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열풍들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문탁 한편으로는 불안이 있어요. 이 불안을 마주했을 때 개인적으로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불가피하다고 봐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거를 교묘하게 콘텐츠와 상품으로 엮어서 마케팅으로 순환시키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어른 열풍이 퇴행적이라는 거예요. 어쨌건 어른은 나이와 무관할 수가 없잖아요? 존경할 만한 모델을 또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특히 성공한 남성들로부터 찾고 있잖아요?
사회자 어른열풍을 출판업계의 마케팅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출판업계의 마케팅 자체도 결과지 원인은 아니라는 거죠. 어른이라는 키워드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세월호 사건으로 믿을 만한 제도와 시스템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인간관계의 파편화와 경쟁, 그리고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는 불안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팬데믹은 이런 상황을 가속화시켰고요.
서해 『어른 김장하』의 책 표지에는 ‘당신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카피가 있어요. 그 문구를 읽을 때 공감했는데, 오늘 토론을 통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세대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저의 경우는 좋은 사람을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MZ들에게 좋은 사람은 밉지 않은 이기주의자로 사는 것일 수도 있다는 그 다름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도레미 네. 그들이 자라온 사회적 조건이 다르니까요. 회사에서 후배들을 보면 저희 세대보다 훨씬 불안이 큰 것 같아요. 쉬는 것조차 계획을 세우고, 그 시간도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는 시간조차 무엇을 배우고 경험할지 고민하는 걸 보면 제 세대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런 친구들이 ‘꼰대’라고 하면서 담을 쌓아왔던 사람들과는 좀 다른 모습의 사람을 발견했을 때,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싶어요.
또 하나는 우리가 과거에 비해 너무 오래 살잖아요. 회사에서도 AI 때문에 신입을 뽑지 않아요, 저는 ‘내가 회사에 죽치고 있어서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못 얻는다’는 생각도 하는데 지금은 제가 그만두어도 신입을 뽑지 않아요. 그런데 자녀 세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니 50대, 60대가 계속 일해야 하는 악순환이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을 부추기기도 하고요. 출판계의 어른 열풍은 이런 현상의 결과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많이 알려진다면, 어떤 한 사람이 주목받더라도 그를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존재로만 소비하지는 않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른 김장하’의 특별함도 지금과는 다른 결로 읽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토론을 통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세대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MZ들에게 좋은 사람은 밉지 않은 이기주의자로 사는 것일 수도 있다는 그 다름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5. 어른열풍에서 N개의 나이듦으로
사회자 어른 열풍이 모든 세대를 자기계발로 몰아붙이는 효과를 낳는 지금, 어른열풍에 휩쓸리지 않는 대안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나이듦연구소에서 말해온 N개의 나이듦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문탁 저는 강의할 때마다 ‘규범이 아니라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왜냐하면 이런 초고령 사회에서는 소위 ‘노년’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60대 70대 80대 90대가 같은 노년일 수 없게 되었어요. 요즘 글을 쓸 때 내가 나를 뭐라고 써야 하는지, “늙지도 젊지도 않다”고 해야 하는지, “늙어서” 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 건지, “노인이 되고 나니” 이렇게 써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노인이 그렇듯이 어른도 마찬가지에요. 나이만이 아니라 젠더, 계급 등 수많은 것들이 교차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어른은 이래야 한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노년에 대해서도 어른에 대해서도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를 지워버리고 말하는 게 문제라는 거에요. 그래서 더 많은 레퍼런스가 있어야 하고 그동안 없었던 노년의 삶의 양식이 발명되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김장하만이 아니라 유투버 박막례, 70대 작가 이옥선, 지식인 조한혜정, 할머니 셋이 함께 사는 노루목 향기와 같은 레퍼런스들을 만들고 찾는 게 우리의 미션 같아요. 그런데 어른으로 소환되는 규범적인 남성들 말고 현실의 남성들 중에서는 이런 레퍼런스를 찾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웃음)
인디언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 말고는 그런 남자들이 없어요.(웃음)
문탁 그래서 우리 나이듦연구소에서는 어른이라고 하는 단일한 표상이 아니라 수많은 나이듦의 모습을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지방과 수도권의 삶도 정말 다를 테니. <킨즈>에서도 농촌의 나이듦과 관련된 취재를 해야 할 것 같구요, 그 과정에서 친구들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전국 곳곳에 서로를 인정하고 인증해주고 영감을 주는 친구이면서 스승인 관계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닐까요.
도레미 저는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코로나 이전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떠올랐어요. 당시에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했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죠. 노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많이 알려진다면, 어떤 한 사람이 주목받더라도 그를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존재로만 소비하지는 않게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여러 삶의 스펙트럼 속에서 그 사람만의 고유함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 김장하’의 특별함도 지금과는 다른 결로 읽히지 않을까 싶어요.
기린 초두에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라고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 토론을 하면서 내가 처한 조건과 그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재해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았다고 자족적으로만 생각했지 내 삶이 정상성 규범 밖에 있었다 이런 워딩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니이듦 연구소에서의 활동을 통해 최근에 나의 사회적 위치성을 더 잘 자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최근 나이듦 아카이빙을 하면서 노년빈곤 기사들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비혼 1인가구로 초고령화사회를 살아가려면 어떤 삶의 기술이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나 개인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던지게 되네요. 나는 혼자서 살아서 돌봄능력이 없다고 말해온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인디언 저는 오늘 어른 열풍이 노년 혐오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저는 2040이 어른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고 좀 혼란스러웠거든요. 특히 제가 읽은 책이 다소 꼰대스러운 면이 있어서 이런 책을 2040이 왜 읽는지 의문스러웠어요. 어른의 태도나 말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도 와 닿지가 않았고요. 이제 2040세대가 어른에 대한 책을 읽는게 좀 이해가 되네요.
결국은 현실의 꼰대들을 혐오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이야기였구나, 그런 걸 알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젊은 세대들이 저 같은 사람에게 ‘의미충’이니 뭐니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거든요. 슬프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감정적인 충격이 컸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놓인 사회구조가 청년들의 불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는 이해가 깊어졌어요. 제가 속한 세대가 선배로서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끝없이 자기계발하라는 명령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나이들고 아프면 침 흘리고, 오줌도 지리고, 똑바로 걷지도 못할 텐데 제발 그 놈의 품위 이야기 그만하자. 기저귀 차고 똥오줌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존엄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그만 하자.
문탁 노화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요. 그런데 이게 되게 어려운 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몸에 노쇠가 올지를 짐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너무 오래 사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노쇠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게 불가능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른바 어른다움, 진짜 어른을 이야기하는 책들에는 신체의 노쇠에 대한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현실의 노인에 대한 구체성이 없는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쩔 수 없는 노화와 노쇠, 그것에 따른 낙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죽어지지 않는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내가 나를 망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라고 하는 것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삶의 내공은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낙담과 좌절, 불안과 위로, 실질적인 상호돌봄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속에서 형성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끝없이 자기계발하라는 명령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나이들고 아프면 침 흘리고, 오줌도 지리고, 똑바로 걷지도 못할 텐데 제발 그 놈의 품위 이야기 그만하자. 기저귀 차고 똥오줌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존엄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그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