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0일. 늦잠이 허락되는 토요일이었지만,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전주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전날밤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놀러가는 것도,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닌 조금 색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날씨는 궂었지만 소풍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전주에 있는 비비사회적협동조합(비비사협)이 여는 ‘향연’에 나이듦연구소를 초대했고,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나도 함께 가게 된 것이다. 이보다 색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비비사협은 중장년 여성 1인 가구의 공동주거와 상호돌봄을 실험하고 있는 조직이다. 전주에서 20여 년 동안 활동을 이어온 비비(비혼여성들의 비행) 공동체 회원과 새로 합류한 회원으로 구성, 2022년에 설립되었다. ‘향연’은 비비사협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을 열기 위해 기획한 행사이다.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분야의 여성들과 함께 묻고 답하며 먹고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런 행사의 이름이 파티, 잔치, 혹은 포럼이 아닌 ‘향연’이라니! 풍류와 품격에 더해 약간의 비비드(vivid)함까지 느껴졌다. 아무튼, 향연의 첫번째 주제는 ‘나이듦과 공동체주택’. 나이듦연구소가 초대된 배경이다.
말하고 먹고 감탄하라
낮 12시 비비사협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비비에서 마련한 점심을 함께 했다. 조합원 중 사찰음식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도맡아 준비해주셨다고 한다. 뷔페식으로 세팅된 테이블을 가득 채운 메뉴들. 그야말로 성찬(盛饌)이었다. 그 외에도 향연 내내 커피와 음료, 수박, 수제쿠키 등등 각종 간식으로 입이 쉴 틈이 없었다. 말하거나 오물거리거나 감탄하거나!
식사 이후 본격 대화는 1부 ‘나이듦연구소가 묻고 비비가 답하다’, 2부 ‘비비가 묻고 나이듦연구소가 답하다’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 나이듦연구소의 질문 주제는 공동체 주거, 비혼 모임의 지속성 비결, 돌봄, 지역성 등이었다. 2부에서 나온 비비의 질문은 주로 연구소의 운영과 역사, 부모 돌봄 경험, 시니어 코하우징, AI와 돌봄 등이었다. 이날의 대화는 나에게 세 가지 키워드로 남았다. 돌봄력, 내가 있는 곳이 중심, 시절인연이 그것인데, 이걸 중심으로 ‘향연’의 후기를 대신하려고 한다.
# 돌봄력
돌봄은 중장년 여성에게 빠질 수 없는 주제다. 향연에서도 돌봄 경험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쏟아져나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돌봄받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비 안에서 ‘돌봄받는 능력을’ 배우고 실천할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돌봄 받는 능력의 핵심은 ‘요청하는 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대방의 상황을 지나치게 고려하다 보면 요청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편하게 요청하고 편하게 받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을 먼저 살피게 되는 선순환도 만들어진다고 했다.
한편 오랫동안 어머니를 돌본 분은 돌봄을 통해 ‘나이 들수록 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어야 타인의 도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 완벽한 돌봄에 대한 강박 대신 지속 가능한 돌봄을 추구하는 ‘미니멈케어’ 이야기도 나왔다. 돌보는 사람 역시 살아야 하기에,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돌봄이 중요하다는 경험에서 나온 지혜였다.
이날 대화를 통해 돌봄은 주는 것만도, 받는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결국 돌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주고받는 기술, 그리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기술, 나는 그것을 ‘돌봄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 내가 있는 곳이 중심
지역성에 관한 이야기는, 서울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살다가 용인으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서울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한다는 문탁샘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비수도권 지역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서 마이너로서의 지역성을 자각하게 되었다며, 전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이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물었다.
답변은 각양각색이었는데, 그들의 전주살이가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조합원은 “전주를 마이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오히려 전주가 자신에게는 가능성의 공간이었다고. 서울에 있었다면 위축되었을 것들이, 전주에서는 가능했다고 말했다. 익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20~30대를 보내다 전주로 이주한 조합원은 “나한테 전주는 마이너가 아니라 메이저”라고 했다. 서울에 살 때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느꼈던 편견이 오히려 더 선명한 마이너 경험이었다고. 인천에 살면서 완도와 전주를 오가는 조합원은 어디 한 군데에 무리하게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동심원을 그리면서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비비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는, 그들이 ‘소외’가 아닌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라는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마이너’ 감각은 서울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을 위계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만들어진 감각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 시절인연
몇 해 전 비혼 모임을 만들어 느슨한 만남을 이어온 연구소의 기린샘은 “의무감만 남은 것 같다”라는 고민을 꺼내며 지속적으로 모임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다. 이에 대해 돌아온 답변은, “모임은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시절인연’ 같은 것이어서 어느 시기가 지나면 이합집산하게도 되는데, 억지로 붙들기보다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인연을 열어두라는 조언이었다.
맞는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비비사회적협동조합과 나이듦연구소의 걸어온 길만 보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성원들의 고민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갈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하기도 하면서 변화해왔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탁네트워크를 전혀 모르다가 2022년 인문약방 세미나에 합류해 어느덧 나이듦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전주의 ‘향연’까지 참석했으니…이런 것이 시절인연이 아닐까.
기대_얽힘 이후 그려질 선들
후기를 쓰려고, 향연을 복기하면서 작년 나이듦연구소 세미나에서 읽었던 팀 잉골드의 『라인스』가 떠올랐다. (작년에는 그렇게 이해가 안 되더니만 ㅎㅎ)
잉골드에 따르면 인간은 걷고, 말하고, 손짓하는 생명체로서 어디에 가나 선(line)을 만들어낸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 자기 삶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그 선들이 서로 얽히고 교차하면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는 네트워크와 매쉬워크를 구분한다. 네트워크는 고정된 점(노드)들이 선으로 연결된 구조다. 점이 먼저 있고, 선은 그것들을 잇는 수단이다. 매쉬워크에서는 반대다. 선이 먼저다. 각자 자신의 삶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그 선들이 서로 얽히면서 세계가 만들어진다. 거주(dwelling)란 어딘가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세계와 엮이며 사는 것이다.
전주에서 자란 선, 서울에서 내려온 선, 완도와 전주와 인천을 오가는 선. 저마다의 선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 그날 향연에서 만났다. 문탁샘은 마지막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연루됐다는 걸 잊지 않고 서로 지내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연루는 책임이기도 하지만 얽힘이기도 하다. 선을 그리며 각자 삶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던 사람들이 ‘향연’에서 서로 얽히면서 세계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5시간 동안 전주 비비사협 사무실에서 열린 향연에 거주했다. 그리고 각자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얽혔던 기억으로 우리는 이전과는 약간 다른 선을 그리며 살지 않을까.
스무명이 그려온 선들이 얽힐 수 있도록 귀한 자리를 열고 극진하게 맞아주신 비비사협 김난이 대표님을 비롯한 조합원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