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기후행동

나는 용인 수지 아파트촌에서 산다. 올해 초 동네에 ‘용인 반도체 산단 이전 반대’ 현수막이 내걸리고 엘리베이터에도 반대 서명지가 붙었다. 여기서 한참 먼 산단이 아파트값과 무슨 상관이라고? 좀 의아했지만 가볍게 넘겼다. 문제를 본격적으로 느낀 것은 올여름이었다. 반도체만이 나라를 구할 것처럼 떠들썩한 와중에,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반대 전국행동’이 7월30일부터 22일 동안 해남에서 용인을 거쳐…

40년 만의 무죄를 가치있게 만드는 법

어느 날 후배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40여년 전, 대학 4학년 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건에 대해 당시의 체포와 수사, 구속은 모두 위법했으니 재심을 청구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대개 그러했듯, 나 역시 “학우여”를 외치자마자 교내에 진을 치고 있던 사복경찰 수십명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갔다. 미란다…

가당치 않게, ‘가능주의자’

짜증과 답답함이 최고기온만큼이나 매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에어컨 없이는 못 살겠고, 서울에 와 집값을 보면 아득해진다는 지방 청년의 하소연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다. 노력하면 된다는 능력주의의 주문은 강력하지만, 출발선부터 기울어진 경쟁에서 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기대도 접은 지 오래고, 다른 전망도 안 보인다. 자책과 원한, 혐오와 냉소,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

어느 날, ‘뭐라구’가 왔다

어머니 살아생전 식구들과 둘러앉은 식탁에서 가장 많이 하셨던 말은 “뭐라구?”였다.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맥락 파악이 잘 안 되는 건지 누군가 한마디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되물으셨다. 당연히 이야기는 툭툭 끊겼다. 그래도 우리는 “궁금해서 그러실 거야” “답답하시겠지”라며 다시 말하거나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사려 깊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왜…

마을공유지는 장례식장이 될 수 있을까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조회와 병원 장례식장 이외의 대안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경황도 없었지만, 장지(葬地)에 대해서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왔던 것에 비하면 장례 절차에 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40여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달랐다. ‘객사’는 안 된다며 시신을 집으로 모셔 왔고, 동네 장의사가 염을 맡았으며, 아버지 친구분들이 절차를 주관했고, 내…

대학 도서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올해 박완서 전작을 다시 읽고 있다. 그의 거침없는 문장들과 어떤 도식적 비평으로도 가둘 수 없는 세계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구체적인데도, 인간의 허위와 욕망을 이토록 날카롭게 드러내는 작가는 흔치 않다. 마침, 박완서 아카이브 전시가 열린다고 해서 친구와 함께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문턱은 높았다. 어렵게 찾은 출입 회전문 앞에서 박완서 전시…

명숙 언니

부고를 처음 접했을 때 오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안부를 주고받았던 때가 불과 한 달 반 전이었고, 그때만 해도 아무 낌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돼 여기저기서 올레 이사장 서명숙의 부고가 떴다. 3월 말에 옆구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었는데 4월7일 호스피스 병동에서 숨진 것이다. 황망했다. 서둘러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러나 주말을 낀 제주 1박2일 왕복표를 구하는 것은…

살기 위해 숨는 용기

내가 속한 공동체 출신 김고은 작가가 은둔 고립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너무 희미한 존재들>을 출간했다. 그는 ‘은둔 고립’을 통계에 갇힌 사회현상으로 박제하는 대신, 에두아르 콘의 ‘혼맹’ 개념을 빌려와 존재론적 층위에서 재해석한다. 스스로를 ‘자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와의 연결이 끊겨버린,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정의한 것이다. 관점을 이렇게 이동시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새해에 하는 ‘뻔한’ 말

한국의 새해는 두 번이다. 이를 ‘이중과세(二重過歲)’라 비판하며 하나로 줄이자는 말이 나오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새해가 두 번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양력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어도, 음력 새해라는 ‘패자부활전’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에도 1월 초에 써놓았던 문구를 다시 읽었다. “단정히 살고, 치밀하게 생각하고, 진득하게 공부하기.” 재밌는 사실은 몇년째 이 문장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마르잔, 마흐사, 나르게스를 기억하며

이란을 잘 몰랐다. 축구, 팔레비, 호메이니 등 몇개의 단편적 사실들과 ‘핵’ ‘하마스’ ‘악의 축’ 같은 미국적 프레임이 인상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2008년 흑백의 강렬함과 소박함이 돋보이는 2D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를 만났다. 케첩 바른 감자칩과 아디다스 운동화를 좋아하고 이소룡을 동경하며, “왕에게 죽음을!”을 외치던 꼬마 ‘마르잔’. 그 천방지축 소녀의 성장기를 따라가면서 이란은 내게 ‘사람이 사는 땅’으로 실감되었다. 1979년의 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