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배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40여년 전, 대학 4학년 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건에 대해 당시의 체포와 수사, 구속은 모두 위법했으니 재심을 청구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대개 그러했듯, 나 역시 “학우여”를 외치자마자 교내에 진을 치고 있던 사복경찰 수십명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갔다. 미란다 원칙이나 진술거부권 고지 같은 것은 물론 없었다. 구속영장 발부 시한을 넘긴 불법 구금, 경찰서에서의 물고문과 구타도 이어졌다. 게다가 처벌의 근거가 된 “현저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라는 모호한 법 조항은 1989년 법 개정 때 삭제됐다.
그뿐만 아니라 20대 이후 지금까지 돈을 버는 생활인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읽고 쓰는 지식인으로 살아오면서 한 사람의 삶은 ‘대의와 명분’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것으로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옳다고 믿는 것과 그렇게 사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스무 살 언저리의 선택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때 알게 된 진실을 매번 다시 살아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2024년 12월3일 밤의 비상계엄 선포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밤새 생중계되는 광경을 보면서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수십년 전 고문의 공포가 가장 먼저 되살아났다. 과거가 유령처럼 되돌아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사건조차 손쉽게 부정되는 탈진실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지나간 일을 곡진하게 증언하고 다시 기록하는 데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공생공락을 위한 공통의 부’, 줄여서 ‘공공공(共共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는 좋은 공동체란 언제나 돈에 대한 다른 상상력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며 마을작업장과 지역화폐, 공통지갑, 청년기금 등을 실험해왔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 누군가는 써도 써도 돈이 줄지 않고 다른 누군가는 아껴도 아껴도 삶이 펴지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는 돈을 순환하고 재분배하는 방식도 좀 더 대담하게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공부 중인데, 나는 ‘사회적 상속’이라는 개념에 꽂혔다. 사회학자 이철승의 표현을 빌리면, 2000년대의 부동산 폭등은 민주화 세대를 “자산계급의 일원으로 초대”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세대가 운 좋게 축적한 자산은 다시 가족 안에서 상속되고 증여되면서 청년세대 내부의 불평등을 키운다. 나 역시 그 바깥에 있지 않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후퇴를 정치의 실패로만 돌릴 수 있을까. 권력과 부를 다음 세대와 충분히 나누지 못한 우리 세대의 무능과 무책임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상속은 부모의 자산이 자식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도록, 사회가 다음 세대의 몫을 보장하자는 제안이다. 그렇다면 보상금의 용처는 이미 정해졌다. 나는 앞으로 받게 될 그 돈을 ‘공공공 프로젝트’의 마중물로 삼으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