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 나세요?”라는 질문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더욱 힘든 여름이었다. 젊을 때와 달리 더위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고 갈증도 잘 느끼지 못하다 보니, 탈수와 탈진으로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았다. 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여든다섯 살 할머니가 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기운이 없고 입맛도 떨어졌다고 했다. 진찰해 보니, 더위에 지친 데다 탈수 증세도 있었다. 딸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어제도 말했잖아. 물 자주 마시라고. 기억 안 나?”
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자식들의 생일을 기억하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제 들은 말을 잊고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자식은 당황스럽다. 혹시 기억력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닐까 싶어 자꾸 확인하게 된다. “엄마, 이것도 기억 안 나?” 그런데 이 질문은 과연 누구를 위한 질문일까.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어머니의 기억이 괜찮기를 바라는 자식의 마음에서 나온 질문일까.
우리는 인지기능이 떨어진 어르신에게 무심코 묻는다. 아침에 뭐 드셨는지, 어제 누가 왔었는지. 어제 무엇을 말했는지. 걱정되어 묻는 말이다. 그러나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일상 대화가 어느 순간 기억력 시험이 되어버릴 수 있다. 대답하지 못할 때마다 자신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해서 감정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잊어도, 그 말을 건넨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꼈던 감정은 남을 수 있다. 딸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어도 딸의 한숨 앞에서 느꼈던 서운함과 미안함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가정과 이웃,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인지기능이 떨어진 어르신을 더욱 자주 만나게 된다. 이제는 치매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치매 어르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일도 중요한 것 같다. 그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는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여전히 존중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치매 어르신과의 대화에서는 질문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 “어제 뭐 드셨어요?”보다 “지금 배고프세요?”, “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보다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기억을 묻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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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서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치매라고 하면 흔히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기억력 저하는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러나 치매에서 변화하는 것은 기억만이 아니다. 말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언어기능,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주의력,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하는 판단력, 어떤 일을 계획하고 순서에 맞게 수행하는 실행 기능도 함께 떨어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누는 짧은 대화도 사실 뇌에서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어제 점심에 무엇을 드셨는지’에 관한 간단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알아들어야 하고, ‘어제’라는 시간을 이해해야 하며, 기억 속에서 점심 식사 장면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의 이름을 떠올려 적절한 말로 대답해야 한다. 인지기능이 떨어진 어르신에게는 이 각각의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해서 감정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르신은 어제 딸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딸과 함께 있을 때 느꼈던 편안함과 따뜻함은 남아 있다. 반대로 누군가 자신을 다그치거나 무시했을 때 정확히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불쾌함과 불안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
또한, 어르신들이 틀린 말을 할 때, 바로잡아야 할까. 예를 들어 어르신이 저녁 식사 중에 “이제 집에 가야지”라고 말한다고 해보자. 자녀는 답답해서 “여기가 집이잖아요”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르신이 말하는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아닐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일 수도 있고, 남편과 자녀를 키우던 젊은 날의 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낯설고 불안하다.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 있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가 집이에요”라고 사실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보다 “집에 가고 싶으시군요. 많이 답답하시죠?”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은 대화가 될 수 있다.
치매 어르신의 말은 때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말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말의 사실성은 흐려져도 그 안에 담긴 그리움, 두려움, 외로움, 서운함은 여전히 있다. 치매 어르신과 대화할 때는 이 말이 사실인가에 머물지 말고, 이분은 왜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치매 어르신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할 수 있는 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치매 어르신과 대화할 때 가장 먼저 피해야 할 말은 “그것도 기억 안 나세요?”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치매의 증상이지 노력의 부족이 아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괜찮아요.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라고 하면 된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더라도 “아까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면박을 주기보다, 처음 듣는 질문처럼 다시 대답해 주는 것이 좋다.
사실과 다른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틀린 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건 아니에요.”“그런 일은 없었어요.”“어머니가 잘못 기억하시는 거예요.”라고. 그러나 안전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굳이 사실을 바로잡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그때 많이 속상하셨겠어요”라고 말하면서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살펴볼 수 있다.
질문의 방식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가령, “어제 딸이 왔던 것 기억하세요?”라고 물으면 어르신은 기억 속에서 어제의 일을 찾아내야 한다. 기억나지 않으면 대화는 막힌다. 그러나 “어제 따님이 다녀가셨죠. 만나서 좋으셨어요?”라고 하면 이야기는 이어질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억을 요구하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대화를 이어가는 질문이다.
선택을 물을 때도 “뭐 드시고 싶으세요?”처럼 너무 넓게 묻기보다 “죽 드실까요, 밥 드실까요?”처럼 두 가지 정도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인지기능이 떨어져도 스스로 선택할 기회는 가능한 한 남겨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해 버리는 순간, 어르신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한 사람이라는 지위를 잃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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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맞장구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치매 어르신이 하는 모든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맞장구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치매 어르신과의 대화에서도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존중이다.
예를 들어 약을 이미 복용했는데 “아직 약을 안 먹었다”며 다시 먹으려 한다면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운전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는데 혼자 운전하겠다고 하거나, 가스불을 켜놓은 채 잊어버리거나, 한밤중에 혼자 밖으로 나가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고를 막는 것이 우선이다.
이때 말하는 방식은 중요하다. “아까 약 먹었잖아요. 왜 또 기억을 못 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오늘 약은 이미 드셨어요. 제가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하면 된다. 밖으로 나가려는 어르신에게도 “안 돼요. 지금 몇 시인지도 모르세요?”라고 다그치기보다 “지금은 밤이라 위험해요. 날이 밝으면 같이 나가요”라고 설명하는 편이 낫다.
대화의 목적은 ‘정답’이 아니라 ‘안심’이다
치매가 진행되면 어느 날 자녀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더 진행되면 자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가족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확인하고 싶어진다. “엄마, 내가 누군지 알아?” 어르신이 대답하지 못하면 질문한 사람도 상처받고, 대답하지 못한 사람도 또 한 번 자신의 상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질문을 꼭 해야 할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는 대신 손을 잡으며 “엄마, 나 왔어요”라고 말하면 된다. “기억나세요?”라고 묻는 대신 “오늘은 제가 같이 있을게요”라고 말할 수 있다.
치매가 기억을 가져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익숙한 목소리에 표정이 편안해질 수 있고, 누가 찾아왔는지 설명하지 못해도 손을 잡아주는 사람에게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말은 잊어도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목소리, 자신을 존중해 주는 사람 곁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남아 있을 수 있다.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같은 질문에 몇 번이고 대답해야 하고, 이미 설명한 것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때로는 사실과 다른 말을 듣고도 굳이 바로잡지 않아야 한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일, 답답해도 화내지 않는 일, 옳은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일에는 돌보는 사람의 커다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돌보는 사람에게도 하나의 수련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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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가장 더울 때에 열흘간 돌봄 당번을 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같은 말을 몇번씩 하는 아버지에게 어떤 때는 너그럽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를 못했어요.
내가 안심되고, 내가 편안해야 아버지를 편하게 하는구나, 그걸 깊이 깨닫는 열흘이었답니다.^^
기억 안 나냐며, 똑같은 말을 몇 번 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를 다그치던 저를 몰래 지켜본줄. ㅎㅎ. 감정이 남는다는 말을 꼭 기억하고 싶네요. 동생에게도 공유했어요. 당장 대화법을 바꿔볼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