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ENING
안녕하세요, 나이듦연구소 소장 문탁(이희경)입니다.
이번 호의 세 기사는 모두 노년의 삶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를 묻습니다. 치료해야 할 질병의 목록으로 볼 것인가,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위험집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맺어온 관계와 일상을 이어가려는 저마다의 삶으로 볼 것인가.
서해 님은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노인이 반려동물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을 짚으며, 시설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오래 이어온 관계를 포기하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도레미 님은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든 경험에서 출발해, 병명이나 수치보다 환자가 지키고 싶은 삶을 먼저 묻는 노인의학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기린 님은 1,084만 노인에게 운동을 처방하고 그 성과를 데이터로 측정하자는 주장에 질문을 던지며,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관계와 공동체의 조건을 생각합니다.
병원에 가고, 요양시설에 들어가고,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더라도 삶은 계속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우리를 더 세밀하게 진단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삶을 지키고 싶은지 묻는 의료, 오래 맺어온 관계를 함부로 끊지 않는 돌봄, 아픈 날에는 기다려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운동. 이번 호는 노년을 관리하는 제도가 아니라, 노년의 삶을 지속시키는 조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 KINZ SCENE

By 윤경. 2026.08.29
돌봄사회 구현에 AI 기술과 하이테크놀로지는 필수적일까요?
와상 노인을 자리에서 일으키거나 휠체어로 옮기는 일은 엄청난 물리적 노동이 필요하기에, 이를 도와주는 로봇이 있다면 유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도구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우리가 하이테크놀로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간파했듯이, 참된 돌봄사회에 필요한 기술은 거대 기업이 주도하여 인간을 기술의 종속자로 만드는‘조작적 도구(manipulative tools)’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자율성을 풍요롭게 만드는 ‘공생적 도구(convivial tools)’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쇠약해진 몸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하이테크를 넘어, 서로의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공생의 도구를 고민해 봅니다.
📮 THIS MONTH
요양원에 반려동물을 데려갈 권리

사진: Freepik
안녕하세요, 서해입니다. 여러분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계신가요?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는 29.2%로 10가구 중 3가구에 이른다고 해요. 앞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더욱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노인이 입원하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가 더 이상 반려동물을 돌볼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보호자가 갑자기 사망해 남겨진 동물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실제로 집에 홀로 남을 반려동물 때문에 몸이 아파도 입원을 망설이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건강한 노년생활법’에 따라 요양시설 입소자가 일정한 조건을 갖춘 경우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네요. 물론 실제 적용 과정의 책임과 비용을 둘러싸고 논란은 있지만, 요양원을 삶과 단절된 시설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관계와 일상이 이어지는 ‘주거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가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요? 국내에 반려동물과 함께 입소할 수 있는 요양원은 2024년에 문을 연 인천 부평의 ‘벨라지오재활요양원’이 대표적이고, 소수의 실버타운이 제한적(10㎏ 이하의 소형 반려동물 한 마리)으로 동반 입주를 허락한다고 합니다.
시설에서 적극적으로 반기지 않는 이유 역시 명확합니다. 우선 동물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입소자의 경우 그 책임이 요양보호사나 간호인력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겠지요. 알레르기, 소음, 위생 등 다른 입소자의 안전도 고려 대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동반한다고 해도 수의사 진료비와 사료비 등 돌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그 권리를 누린다면 또 다른 불평등이 생길 여지도 있습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등장하는 의사 빌 토머스가 떠오릅니다. 그는 요양원 입소자들이 겪고 있는 무료함과 외로움, 무력감을 세 가지 역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 역병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과감한 실험을 하는데요, 요양원에 잉꼬 100마리와 고양이 네 마리, 개 두 마리를 들여놓은 것이지요. 결과는 시설의 모두에게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놀라운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무기력했던 노인들이 각자의 방에 들어온 잉꼬를 돌보는데 열심이었고, 앞다투어 개를 산책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자신이 돌봐야 할 생명을 통해 무력감과 무료함 대신 새로운 역할과 책임, 그리고 상호의존의 관계가 탄생한 것이지요.
다행히 우리 정부에서도 최근 노인요양시설이나 보호시설 등에 반려동물 동반 입소를 허용하는 방침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상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노인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부득이하게 홀로 남겨질 동물의 삶 역시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장소가 바뀌더라도 그동안 이어온 소중한 일상과 상호의존의 관계를 끊어내지 않을 권리, 그리고 함께 입소할 수 없다면 남겨진 동물을 사회가 책임지는 방안까지 제도에 반영되기를 기대합니다.
병을 넘어, 삶을 보는 노인의학

자료 : Blasiak J, et al. Nutrients. 2020;12(11):3366, Fig. 2. ChatGPT 재구성.
안녕하세요. 도레미입니다. 유난히 변덕스런 여름 날씨에 구독자님들의 건강은 무탈하신가요? 저는 8월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콜레스테롤(LDL)과 당화혈색소 수치는 여전히 요주의였고, 한 달 넘게 불편했던 허리는 MRI에서 ‘추간판팽윤, 요추퇴행성변화, 요추전만소실’이라는 요란한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지의 권고는 ‘증상 있는 경우 진료 권유’라는 다소 싱거운(?)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검진 결과를 받아들고 어수선한 심정이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결과지에 적힌 유소견 중에는 노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변화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이 있는 항목마다 그에 적합한 병원을 찾아 치료받아야 하는 건지,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로 이해하고 관리해야 하는 건지, 혹은 치료하더라도 무엇을 위해 치료하는 것인지 그 판단 기준이 제겐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노화라는 것을 의학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마침 ‘초고령사회 노인의학의 변신’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과거의 임상 의학은 특정 장기의 질환 치료나 특정 병원체 제거에 집중해왔습니다. 하지만 최신 노인의학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고령 환자는 대개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안고 있어서, 어느 한 질환에만 집중한 과도한 투약이나 침습적 시술이 오히려 신체적·정신적 노쇠를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노인의학이 목표로 삼는 것은 병명 하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삶을 가능한 한 오래 꾸려갈 수 있도록 전신의 기능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변화들은 병원 안의 치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노인 전용 응급실은 입원 초기부터 환자를 다각도로 살펴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고, 퇴원 이후에는 ‘중간돌봄’이라는 제도가 병원과 일상이 끊기지 않도록 이어줍니다. 치료와 돌봄, 병원과 삶이 더는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방향으로 노인의학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한노인병학회 조영중 이사장은 이런 방향을 “노인이 병원으로 몰리지 않고 살던 곳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노인 개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재정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말합니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와 요양, 돌봄을 한곳에서 연계해준다는 목표를 담고 있는 ‘통합돌봄’이 잘 정착되는 것과 노인의학의 방향 전환이 얽혀 있는 의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노인의학회 등에서 강조해온 ‘노인포괄평가(CGA)’도 눈에 띕니다. 이 평가는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수치 하나만 보지 않습니다. 정신 건강, 이동성, 복용 중인 여러 약물, 함께 앓고 있는 여러 질환, 그리고 환자가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기는 삶의 가치까지, 여러 전문 분야가 함께 들여다봅니다. 병 하나를 없애는 게 아니라, 환자가 어떤 삶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를 진료의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의 전환인 셈입니다.
아직 저는 노인의학이 대상으로 삼는 나이는 아니지만, 몸이 노화의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지금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몸의 어떤 증상과 수치들을 없애고 싶은가’에서 ‘무엇을 계속할 수 있는 몸을 원하는가’ 하는 질문으로요. 저는 허리 통증 없이 오래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더 늙어서도 내 짐은 내가 감당하며 자유롭게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 정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장의 수치와 증상을 약으로 낮추는 데만 머물렀던 생각이, 필요한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일상을 어떻게 조정할지 고민하는 쪽으로 옮겨갑니다. 병원 안의 치료가 그 이후의 일상과 끊기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병명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무엇을 지키며 살고 싶어 하는지까지 함께 묻는 의료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계는 운동 처방의 수단이 아니다

사진: 건강신문
안녕하세요, 기린입니다. 여러분은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걷기를 좋아해서 연구소에서도 ‘걷는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매달 한 번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달에 1084만의 노인들에게 ‘운동을 처방하자’는 기사가 눈에 띄었답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운동 처방을 건강보험 체계에 포함하고, 노인스포츠지도사를 양성하며, AI를 활용한 생활체육 체계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 리워드와 AI 측정기술은 정말 기사가 말하는 “집 근처에서, 짧게, 관계가 생기는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같은 노인이라도 나이와 질환, 장애, 경제적 여건과 돌봄 관계에 따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와 일상의 모습은 크게 다릅니다. 별다른 질환이 없는 80대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70대가 보내는 하루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65세부터 100세가 넘는 사람까지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비슷한 운동 목표를 적용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하면,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정책의 혜택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사는 노인의 빈곤과 고립을 말하지만, 빈곤과 고립은 운동 부족만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돌봄과 주거, 소득 같은 구조적 조건을 그대로 둔 채 운동을 가장 저렴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면, 노인의 삶의 질은 건강으로, 건강은 다시 운동 능력으로 축소될 수 있습니다.
운동 목표를 달성하면 보험료를 할인해주자는 제안도 함께 움직이는 과정이나 관계의 형성보다 측정 가능한 성과와 개인별 보상에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경로당에 AI 낙상 예측 카메라와 운동 처방 키오스크를 설치해 노인들의 움직임을 데이터화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움직임이 보행속도와 악력, 균형 능력 같은 수치로 바뀌는 동안 감정의 변화나 관계의 밀도는 측정 대상에서 빠집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보관·활용할지, 당사자의 동의와 거부권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일본에는 60세 이상의 고령자를 중심으로 열리는 ‘넨린픽’이라는 대규모 스포츠·문화·건강·복지 종합 축제가 있습니다. 2026년 제38회 대회에는 골프, 수영, 축구 같은 운동 종목뿐 아니라 태극권, 바둑, 하이쿠, 미술 전시 등이 포함되어 참여의 형식이 다양합니다. 각 지역의 예선을 거쳐 대표로 출전하며, 전년도 출전자는 이듬해 같은 종목의 지역 대표로 연속 출전할 수 없도록 해 더 많은 사람에게 참가 기회를 돌립니다. 물론 넨린픽 역시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는 국가사업이고, 지역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 능력의 향상만을 앞세우지 않고 문화활동과 교류를 함께 배치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운동은 분명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고령자를 질병 위험군으로 분류하고 모두에게 같은 운동 목표를 부여한다고 해서 서로 다른 노년의 삶까지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리워드와 기계로 측정한 수치만으로 건강과 삶의 질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각기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참여하고, 아픈 날에는 기다려주며, 함께할 활동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관계는 운동을 지속시켜 의료비를 줄이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삶의 한 부분이어야 합니다.
📌 EDITOR’s PICK

▶연극 노인박멸 / 2026.08.26 ~09.06 / 김수정 작.연출/미아리고개예술극장
팔순을 앞둔 택시기사 ‘정복’의 교통사고와 이를 수습하는 가족들의 태도를 통해, 정년퇴직과 치매, 돌봄, 죽음으로 이어지는 노년의 문제를 다룬다. 나이 든 인간이 생산성을 잃는 순간, 삶의 주체에서 관리와 부양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는 현실, 늙음을 거부하고 쓸모를 잃은 인간을 배제하려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려낸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유효한 인간’을 연기해야 하는 노인들의 삶에서 이미 늙은 사람과 앞으로 늙어갈 사람 사이는 과연 분명한 경계가 있는가를 질문한다.

▶얽히는 돌봄 / 희음, 김누리, 윤은성, 최예린, 김혜수, 보란 지음 / 오월의봄 / 2026
우리의 대화는 돌봄이 될 수 있을까? 다양한 영역에서 저마다의 창작과 활동을 이어가는 6인의 필자가 또 다른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언뜻 인터뷰처럼 보이지만, 르포-에세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고안하고 집필된 글들이다. 청자인 필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터뷰이와 적극적으로 얽히기를 시도한다. 인간과 비인간, 가족주의와 소유, 혐오와 배제, 능력주의와 속도, 탈가정과 시설, 인종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싸고 저마다의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전개되는 대화들. 지리멸렬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실패하며 얽히는 돌봄을 이야기한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 김희경 / 웨일북 / 2026
병원 예약부터 복지제도 탐색, 식단과 일정 조정까지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노동. 저자는 이를 ‘기획 노동(cognitive labor)’이라 부른다. 맞벌이 부부, 부모 돌봄을 맡은 자녀, 장애아 부모와 장애인 당사자 등 21명의 이야기를 통해 이 노동의 실체를 살펴본다. 이들의 삶은 돌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기획 노동이 존재했지만, 그동안 사랑과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돌봄을 행위가 아닌 ‘삶을 운영하는 일’로 바라보며, 오랫동안 이름 없이 존재했던 노동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 조선희 / 샘터사 / 2026
13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 피할 수 없는 노년을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신문기자와 감귤 농사꾼, 지역 문화재단 활동가로 살아온 저자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집을 짓고 살기로 결심한다. 제주에 지은 ‘미로헌’에는 나이와 직업이 다른 네 가구 다섯 명이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면서도 식사와 취미, 일상의 리듬과 갈등을 나누며 가족과 셰어하우스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노년의 주거와 관계를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방식’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