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슴이 두근대다
도시가 아닌 곳에 공간적 거점을 세우는 일, 혹은 시계의 시간표가 아닌 자연의 절기에 따라 삶의 리듬을 바꾸는 일, 이런 구상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문탁네트워크 초창기에 그것은 공동체의 명상 센터나 혹은 집필연수원 같은 것으로 표상되었다. 이웃 프란체스코 수녀회의 작고 고즈넉한 성당, 혹은 조선시대 학인들이 은거하며 공부와 수양을 함께 했던 서원(書院) 같은 것, 말이다.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는, 특히 엄마가 더 이상 자가 보행이 불가능해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병원 갈 때 이외에는 아파트 안에만 계시게 되었을 때, 나는 일 년 중 단 몇 달이라도 엄마가 바람과 햇볕을 바로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때 내가 상상했던 것은 태평양 연안 콰키우틀족의 두 거점 생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름에는 수렵을 위해 작은 가족 단위로 밴드 생활을 하지만 겨울이면 ‘빌리지’에 모여 함께 제의를 지내는 공동생활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그런 식의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요양보호사는 어떻게 오고, 병원에는 또 어떻게 모시고 간다는 말인가? 나의 독박 돌봄 가중치만 높아질 게 뻔했다.
하지만 잠시 잠잠해졌던 이런 바람은 내가 나이듦과 죽음을 고민하면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당시의 화두는 “복지의 대상으로서의 노인도 아니고 자본의 먹잇감으로서의 액티브 시니어도 아닌 말년의 생활양식은 무엇일까?” 혹은 “생물학적 소멸에 맞춘 실존적 후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였다. 심지어 당시 읽었던 로빈 월 키머러의 <향모를 땋으며>에 푹 빠진 나는, 어느 시점에는 공식적으로 문탁네트워크의 업무에서 은퇴하고 식물생태학자로 전업하여 노년을 보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런데 방통대와 사이버대학의 식물 관련 학과를 알아보는 나를 보고 친구와 후배들은 대놓고 박장대소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부터 굴리는, 먹물 근성에 대한 야유였을 것이다. 아, 별수 없이 ‘본때 없는’ 이 난개발 신도시 아파트촌에서 늙고 죽어야 하나.
그러다 작년 여름 나는 제주 한달살이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그림할망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를 하고, 밀렸던 책이나 흠뻑 읽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조한혜정 선생님으로부터 이어진 인연을 따라 하루하루 버라이어티하게 지내다 보니 막상 읽은 책은 우에노 지즈코의 <산기슭에서 나 홀로>라는 책, 딱 한 권이었다.
그 책에서는, 30년 전 여름, 우연히 친구의 산속 집에서 한 철을 보내다가 산중생활에 푹 빠져들어, 그 여름의 끝자락에 근처 부동산으로 달려가 땅을 사버린 이야기, 10년 후엔 그곳에 서고 중심의 원룸을 짓고 이후 20년간 도쿄의 아파트와 산속 집을 오가며 ‘다 거점 생활’을 한 우에노 지즈코의 개인사가, 소소하고 유쾌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정말 운명처럼 나에게도 그곳에서 밭 딸린 집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거 어떻게 관리하려고?”, “아예 내려가서 살지 않으면 단독주택은 다 망가져”, “농사? 아이고 농사짓다가도 그만둬야 할 나이야….” 같은 주변의 잔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일을 저질렀다.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2. 남자가 필요해
4월 말 집수리가 끝났다. 나의 청년 벗인 지원과 어진의 <공간 석운동>에서 리모델링을 맡아, 집을 근사하게 변신시켰다. <혜담재 蕙淡齋>라는 작은 현판도 달았다. ‘혜담’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인데, 이 집이 어머니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난초 蕙’. ‘맑을 淡’ 각각의 단어가 명상과 양생의 집이라는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져서 골랐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을 혼자서 세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용인 집에서 보낸 것, 새로 장만한 것 등 살림 박스 스무개쯤을 풀고, 풀고, 또 풀었다. 새벽부터 잘 때까지 작업용 장갑을 낀 손에서 커트 칼과 가위, 드라이버가 떠나질 않았다. 또한 손님용 이부자리는 세탁하고 건조한 후, 씌우고 끼우고, 이불장에 넣고…. 거의 펜션 사장급 노동을 했다. 양쪽 어깨는 통증으로 욱신거리기 시작했는데, 잠시 쉬려고 앉아 밖을 내다보면 밖은 마당이고 밭이고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노동 끝에 노동, 또 노동 끝에 노동이구나. 두근거림은 이미 사라졌고, 심지어 울고 싶었다. “주제넘은 짓을 벌였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난관은 짐 정리뿐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써보는 인덕션을 못 켜서 두부도 못 부쳐 먹고, 새로 장만한 AI 세탁기는 쓸 때마다 뭐라 뭐라 자꾸 명령을 내려 나를 긴장시키고, 전기차 충전기의 “DC콤보, AC 단상, 차데모 중 충전기 어댑터 타입을 고르세요”라는 메시지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난 열 번도 넘게 이것도 껴보고 저것도 껴보다가 아무것도 맞는 게 없어서 포기, 이후 챗지피티에 여러 번 물어본 후 겨우 충전에 성공했다) 수동 어닝을 풀고 환호작약하다가 이걸 다시 못 감아 결국 ‘코끼리 코 맴맴’처럼 몸을 돌려 겨우 감아놓고 (이걸 감으려면 전완근과 상완근이 빵빵해야 한다 ㅠㅠ ), 네 시간이 넘게 끙끙댔지만 결국 무선 프린터를 연결하지 못했을 때 낙담은 극에 달했다.
또 하루는 우체부 아저씨가 벨을 눌렀다. 우리 집에 우체통이 없다는 것이다. 집 입구든지, 벽이든, 반드시 우체통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잉? 우체통도 내가 설치해야 해? 아파트살이에서는 마치 저절로 주어진 것 같은 우체통. 그런데 단독주택은 우체통을 각자가 설치해야 하는 거구나. 그런데 이 집에 빨간 우체통 있지 않았었어? 내가 너무 키치(Kitsch)하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런데 그거 어디 갔지?
리모델링한 지원에게 물었다. “그 우체통, 너무 못생겨서 너희가 치웠니?” 지원의 대답, “아니에요, 택배 아저씨가 들이받았어요.” 난 속으로 소리쳤다. “얘들아, 그러면 우체통도 해결해 주고 갔어야지….”
우체통은 또 어디에서 구해서 어떻게 다나? 달만한 곳은 모두 시멘트였다. 난 혼자서 앵커를 박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낙담. 그러면서 내 입에서는 평생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문장이 튀어나왔다.
“남자가 필요해”
그러던 어느 날 밤, 심란해서인지 한밤중에 잠이 깼는데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달이 보였다. 홀린 듯이 밖에 나가서 신비한 달무리를 보았다. 황홀했다. 다음 날 새벽에는 커피를 들고 밖에 나갔는데 먼 곳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고 볍씨학교 학생들이 일찍부터 반팔 차림으로 힘차게 뛰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하여, 다시 떠오른 생각.
”혼자 살 수 있겠구나!”
3. 미션, 옥수수 백 개 심기
전 주인 내외는 70대 후반이었다. 은퇴 후 제주에 정착하려고 7년 전 이곳으로 오셨지만, 할아버지가 아프시고 할머니가 다치면서 다시 도시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다정한 할머니, 떠나시면서 옆의 이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작물은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집을 비울 때는 어떤 조처가 필요한지 아주 꼼꼼하게 정보를 주셨다. 그중에서도 ‘미션 임파서블’처럼 여겨진 것은 바로 “옥수수 백 개를 심어라!” 였다.
백 개를 어떻게 심지? 못 심어! 아니 친구들하고 같이 심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하루에 다 심을 수 있을까? 이틀은 걸리겠지? 그런데 이웃 농부 아저씨, 놀라운 이야기를 하신다. “옥수수 백 개? 그거 심는데 반나절도 안 걸려요” 헐~~
게다가 나를 데리고 묘목상에 가서 옥수수 100개, 수박 10개, 참외 10개, 가지 10개, 고추 10개, 오이 10개, 파 30개, 제주 호박 10개, 애호박 10개를 사라고 했고, 밭에 몇 개씩을 시범 삼아 심어주셨다. 갑자기 신이 난 나는 물을 주면서 농부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그 사진을 본 누군가 이렇게 코멘트했다. “농활 갔어?”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본투비 서울녀’, ‘아스팔트 키즈’인 나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봉숭아도 채송화도 본 적이 없고, 어른이 된 후에도 아직 익지 않은 파란색 방울토마토를 보고, “어머 저 포도 좀 봐”라고 말해서 주변 사람들을 기함시킨 전력이 있다. 몇 년 전에도 문탁 회원인 도라지네 양양 밭에 가서 심어진 파를 보고 “저건 무슨 풀이야?”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농활녀’라고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감지덕지다.
드디어 5월11일, 옥수수 백 개를 심기 위해 연구소의 요요와 기린이 내려왔다. 제주의 벗인 은영과 신율에게도 품앗이를 청했다. 그리고 우리는 구역을 나눠 옥수수와 수박, 참외 등을 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이와 호박 모종을 헷갈려 원래 정해진 구역과 상관없이 심었고, 가지를 심은 후에는 고추처럼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는 것도 몰라 그냥 심었다. (다음날 놀다 오니 이웃집 농부님이 지지대를 세워주셨다) 그리고 정말 저 모든 것을 심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몸빼바지, 작업용 긴팔 체크 남방, 농사용 모자로 풀 착장을 했다. 이젠 농활녀처럼 보이진 않겠지? 하지만 그런 복장으로 넓적한 곡괭이와 삽을 들고 밭을 고른다고 설쳤지만, 실제 내 삽은 흙 속에 10cm도 파묻히지 못했다. 이건 전완근이 아니라 코어 근육의 문제일까? 나에게 밭일이란 실제 불가능한 것일까?

왼쪽은 농활녀? 오른쪽은 농부녀? 하지만 둘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거, 실화야?”라는 사건도 있었다. 바로 내가 밭에서 바로 딴 아욱을 빡빡 문대서 된장국을 끓이고. 역시 밭에서 바로 딴 근대를 살짝 데쳐 나물로 무치고, 역시 밭의 상추로 묵 무침을 해내서 친구들을 위한 점심상을 차려낸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뻐기고 싶든지, 나는 내가 차린 상차림을 사진 찍어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받는 사람은 어이가 없었겠지만^^
이제 마지막 미션이 남았다. 바로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 복숭아나무의 열매 솎아주기였다. 우리 모두 상식적으로 열매를 솎아줘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우리에겐 제미나이와 유튜브가 있었다. 나는 제미나이를 따라 “15cm 간격으로 하나만 남기래”를 줄곧 읊어댔고 요요는 유튜브에서 말하는 대로 “주로 위로 솟구쳐 맺힌 열매를 따래”를 전달해 줬다. 아무튼 우리는 제미나이와 유튜브의 지도에 따라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열매를 솎아주었다. 과연 남은 것들은 튼실하게 자랄까? AI와 유튜브는 도시 여자들의 농사 스승으로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까?
4. ‘식’ 혹은 ‘길냥이’와 함께
나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해 떠들어댄 적은 많다. 일본 극작가 핑크 지저인 3호의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를 보고 난 뒤에는 고양이 로드킬 문제를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려묘가 10년 사이 63만 마리에서 254만 마리로 300% 이상 폭등했고, 그만큼 많이 버려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2년부터 통계가 작성된 도심 로드킬의 1위 역시 고양이였다. 그래서 나는 다큐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주변에 널리 소개하며 친구들과 ‘고양이의 주거권’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직접 고양이를 만나본 적도, 키워본 적도, 밥을 줘본 적도 없다. 주변에 고양이 집사들이 많아 줌 세미나 화면 속 고양이들은 자주 만났지만 말이다. 이 고양이들은 책상이나 책 더미를 캣타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제주 동쪽의 깊은 곶자왈, 동백동산에서 아주 늙은 고양이를 만났다. 숲 속의 고양이라는 게 낯설어서 처음에는 다른 야생동물을 내가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마주쳤을 때는 그것이 분명 고양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덩치가 컸고, 내가 다가가자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걷지 않고 호랑이처럼 아주 느리게 어슬렁어슬렁 움직였다.
마을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할망들이 그 고양이는 늙은 고양이이고, ‘식’이라 부른다고 알려줬다. ‘식’? 신(神)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식’은 고양이의 제주 방언일까? 아니면 ‘식’은 숲속의 수호신의 다른 이름일까? 나는 제주 방언 사이트와 고양이 관련 논문들을 뒤져봤지만 끝내 그 유래를 찾지 못했다. 동백숲의 그 늙은 고양이는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고양이도 만났다. 제주에서 마지막 날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집에 들어왔는데 마당에 쌍둥이처럼 생긴 고양이 두 마리가 마치 자기 집인 듯 태평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밥을 줘야 하는지, 아니면 살짝 쫓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옆집의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 집 담을 마치 체조선수 허들 넘듯 넘어 들어와 고양이를 잽싸게 채서 안았다. 다른 한 마리는 재빨리 도망갔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고양이들은 길고양이인데, 옆집 꼬맹이들이 돌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자기 집처럼 앉아 있는 고양이도, 남의 집 돌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홀라당 넘어 들어오는 아이들도 당혹스러워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데리다는 어느 날 욕실에서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 앞에서 당혹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인간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러웨이는 데리다가 정작 자기 앞의 살아 있는 고양이와는 관계를 맺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데리다는 끝내 그 고양이의 이름도, 욕망도, 감각도 묻지 않은 채 철학적 사유의 재료로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러웨이는 중요한 것은 동물을 추상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존재들과 실제로 함께 살아가며 응답하고 책임지는 관계를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제 해러웨이의 제안은 나에게 아주 현실의 문제로 도래했다. 이곳에서 숱하게 마주칠 비인간 존재들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될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옥수수 백 개 심기 미션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귤꽃에서는 향기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이 질문을 품고 용인으로 돌아왔다.
*<쇄골에 천사가 살고 있다> 리뷰는 여기를 클릭 https://naidum.org/post/57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