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다가온다. 내게 6월은 불길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달. 엄마는 지난 두 해 동안 6월에만 두 번 넘어졌고 그때마다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본 터라 지레 두려워진다. 근거 없는 불안이야. 주눅 들지 말자, 하면서도 쉽사리 털어내질 못하고. 책방 8주년, 9주년을 앞둔 즈음이었는데 간병하느라 지쳐서 기념하고 축하할 여력이라곤 일도 없었다. 어느새 책방은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엄마도, 책방도 그저 무사 무탈하게 이 계절을 잘 건너가기만 바라고 있다.
마당 잔디가 초록색을 띠고 꽃나무와 과실수, 화분 식물들까지 쑥쑥 자라고 피어나는 봄, 인가 싶더니 이제는 초여름. 계절 따라 신경 써야 하는 집 안팎 관리가 끝없이 분주하다. “아이고… 검질(잡초) 매야 할 건디(하는데)…콩 심어사(심어야) 될 건디(되는데)…” 엄마 한숨과 걱정을 귀 아프게 듣느니, 에잇, 서둘러 해버리는 게 속 편하다. 생각해보면 엄마와는 늘 이런 식이다. 당신이 철마다 해오던 일들을 몸이 말을 안 듣는 사정임에도 해보려고 애쓴다. 뭔가를 하려는 애씀이 삶의 의지라고 이해하면 애틋해지고…그렇게 나에게로 와르르, 간병 스트레스와 가사 노동의 무게가 동시에 쏟아진다. 도대체가 모른 척하는 방법은 무얼까.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린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한참 재밌는 페이지다. 그때, 마당에서 일하는 엄마가 재촉하듯 나를 부른다. 어떤 물건을 가져와 달란다. 재빠르게 가져다주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책을 펼친다. 몰입하는데 또 다급하게 부른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왜 자꾸 부르냐고! 목청을 높인다. 일하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엄마가 말한다. 엄마가 일하는데 놀지만 말고, 도와주면 안 되냐고!. 그 정도 심부름도 못 해 주냐고. 책 보면 돈이 나와! 쌀이 나와! 날카롭게 성을 낸다. 졸지에 엄마는 고생하는데 놀기만 하는, 싸가지 없는 딸이 된 것이 억울하고 서럽고. ‘나, 노는 거 아닌데…’ 말은 삼켜지고 눈가에 눈물이 출렁인다. 그리곤 책상 앞에 앉아서도 안절부절,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밖을 살피고 엄마 표정을 살핀다.
기억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엄마와 딸로 연결된 질긴 숙명에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고투하는 우리가 있다. 사랑과 상처가 구분할 수 없는 무늬로 진하게 새겨져서 비비언 고닉의 책 제목 그대로 ‘사나운 애착’에 다름 아니다. 엄마 옆에서 늘 안절부절 동동거리는 내가 보인다.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은 콩알처럼 또르르 굴러가 어디론가 자꾸만 숨어버린다. 다른 한편으론 고되고 억척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다정한 낯빛과 부드러운 말투를 갖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매번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어진다.

꽃밭과 우영팟(텃밭)의 시든 꽃나무와 잡초를 뽑고 봄 국화꽃을 전정하고 마당 잔디도 다듬어놓는다. 오일장에서 물외, 가지, 고추, 상추 모종을 사다 심고 며칠 저녁마다 물을 주고 고추지지대도 세워 놓았다. 엄마는 집 뒤쪽 우영팟에 검은콩을 심고 싶어 했지만, 손 델 엄두가 안 나 제초제를 뿌려버렸다. 일거리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이미 창문을 넘어가 검질(잡초)을 매고 있었다. 제초제 뿌렸다고, 그만하라고 해도 막무가내.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란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어김없이 나를 어둑한 구덩이로 밀어 넣는 말. 부아가 치밀어오르고 입을 꾹 닫고 서둘러 집을 벗어난다. 엄마 옆에 가기도 싫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모질고 독한 마음이 바다 앞에 가서 한참을 징징거리고. 그러고 나서는 또 슬그머니 올라오는 엄마 걱정. 아, 미치겠네! 이놈의 고질병!
마당은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들로 심심할 새가 없다. 겨울 내내 주황색 금잔화가 피더니 3월에는 개복숭아 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고, 4월엔 철쭉꽃이 활짝 피어나 엄마 눈이 호강하고 있다. “아이고, 곱다, 저 철쭉꽃은 나랑 같이 늙어가는 꽃이여.” 한다. 젊은 날에 골프장 알바를 다니며 구해온 꽃나무란다. 5월은 우영팟 담벼락을 에워싸고 장미꽃이 만발하다. 갑자기 “니 카메라 이시냐?” 묻는다. 주름진 얼굴이라고 사진 찍는 걸 질색하는 엄만데… 깜짝 반가운 말이다. “아이고, 영도 고우카!(이렇게 고울까!)” “엄마도 고와” 엄마가 살짜기 웃는 걸 본다. 오월이 쨍하다.

달리님과 어머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는데.. 이제는 제 곁에 어머니가 없다는게 새삼 사무치네요, 모녀가 책을 보면 쌀이 나오냐.. 하는 부분에서도요. 다섯 달 동안 마감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글 보내주신 달리님 고맙습니다^^ 달리님의 돌봄이야기가 다른 돌봄과 함께 보내고 있는 이들이게도 가 닿았을 거예요, 달리책방 10주년도 축하드려요~ 다음에 뵐때 까지 건강하시고 두루두루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기린님. 한 달 한 번, 톡 주고 받는 사이로 지냈네요. 많이 애쓰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원고만 보내고 답글에 댓글을 달지 못했어요. 회원분들께 죄송한 마음 큽니다. 비밀번호가 틀려서 변경 할라 치면 때마침 전화가 오거나 다른 일이 급하고, 그러다 다음으로 미루고, 그러면서 까먹게 되더군요. 여유가 없으니 여러가지 송구한 일이 많아지네요. 너그럽게 이해 바랍니다.
그리고 축하 인사도 고맙습니다. 골목에서 다시 또 10년, 잘 견뎌보겠습니다. ^^
아… 달리님… 정말 샘의 글에는 눈물, 콧물, 매운맛, 새콤한 맛, 달콤한 맛, 짠 맛이 모두 들어있었어요.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어진다구요?
아, 어떻게 요런 표현을…
맞아요. 돌봄을 하는 몸은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지지요.
그래도 이 아름다운 계절에 어머니 모습이 “영도 고우카” 네요.
그동안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이거 다섯편…한 열다섯편 쯤으로 늘려봐요. ^^
문탁샘. 몇 번을 버벅거리다 비밀번호를 변경했네요. 마무리하는 즈음에야 댓글 써봅니다. 많이 송구합니다. ^^;;
제안해주신 덕분에 글을 쓰며 잠시 숨 고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글 읽으면서 공감이 컸는데 또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더없이 기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