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을지로의 페럼타워에서 열린 사회적고립연결포럼에 다녀왔다. 이번 행사에서는 중장년 고립의 문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한 민간, 공공, 협동조합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김영옥선생은 여는 말에서 우리에게는 ‘돌봄에 관한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 현장에서 돌봄의 상상력은 어떤 연결과 매듭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1.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먼저 어떤 삶을 꿈꾸는지 물었다
첫 발표는 민간부분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김희경 부장의 <중고령 1인가구, 서로돌봄과 보건복지 자원으로 잇다>였다.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은 사단법인 일촌공동체의 산하기관으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하고 있다. 일촌공동체란 혈연 가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 돌봄, 노년의 문제를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마을 공동체 모임 운영, 지역 주민 네트워크 만들기, 돌봄·나눔 활동 등 고립된 사람들을 관계망 안으로 연결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김희경 부장은 공공의 돌봄정책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관계망 속에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방학서클’의 예시로 설명했다. 방학서클은 서울시 도봉구 방학1동을 중심으로 50대 이상 주민들이 모여 서로를 돌보고 소통하는 서로돌봄공동체이다. 그는 ‘1인가구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집단이나 취약계층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들이다’라는 선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1인가구는 일상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을 앓거나 사회적 관계망의 상실에서 비롯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때 생존에 관한 위기가 시작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시도한 것은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접근법이었다. 사후적 문제해결이 아니라, 지역의 1인가구들이 각자 어떤 삶을 꿈꾸는지를 먼저 질문한 것이다. 중고령 1인가구를 위한 호혜적 관계망 방학서클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관심사와 특기를 기반으로 공예, 요리, 캘리그라피, 휴대폰배우기, 숲산책 등의 소모임을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방학서클협동조합을 만들어 돌봄을 위한 주민활동가를 양성하며 돌봄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들의 활동에 서울마음편의점, 방학마음건강살림, 사회적 처방 등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어려움 극복을 위한 공공의 지원정책들이 병행하여 작동되었기에 사회적고립을 해소하는 성공사례가 되었다.
방학서클은 주민 스스로 관계를 만들고, 활동을 기획하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누스바움이 말한 역량(Capabilities)을 실천했다. 그리고 주민들이 만든 이런 단단한 관계망 위에 공공의 서비스가 더해질 때, 돌봄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모습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었다.
2.어떤 마을의 역사를 만든 돌봄
제주사회서비스원 강혜자 부장은 <마을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과 통합돌봄 서비스>를 주제로 공공분야의 제주형 통합돌봄 모델을 소개했다. 그가 들려준 사례는 제주의 중산간마을 저지리의 ‘우리마을돌봄센터’이다. 이 서비스는 도심에서 먼 외곽 지역일수록 돌봄 필요는 높지만 서비스 이용률은 낮고, 물리적 거리와 정보 격차가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사업을 위해 많은 마을과 접촉했는데 대부분이 마을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돌봄시설을 위한 공간 제공을 거부했지만, 저지리에서는 함께 해보자며 유휴 공간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마을회 소유 건물 1층을 빌려 먼저 돌봄센터를 열었다. 마을 사랑방으로 시작한 것이 호응을 얻어 마을회, 청년회, 부녀회와 함께 ‘우리마을돌봄추진단’이라는 협력 회의체까지 확대되었다.
돌봄센터에서 마을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5개 동 5명의 동장이 그 지역의 모든 마을 사람들을 만나 인적사항부터 건강 데이터까지 돌봄에 필요한 자료를 DB화했다. 이렇듯 촘촘하게 구축된 366명의 돌봄 기초데이터는 공공이 마을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찾아오지 않아도 먼저 발굴해낼 수 있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작은 마을의 DB화라는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이다. 마을돌봄센터를 열고 주민들과 친해지다보니 그들이 요구사항을 내기도 했다.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면서 마을은 점차 변화했고 연로한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전통이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제주서사원은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정보와 자료를 채집해 후대의 사람들에게 남기기 위해 DB에 생애기록물 작업을 더했다.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면서 옛날 이야기를 구술사로 듣고, 전래되는 노래도 채록했다.
돌봄을 위해 시작한 기록이 개인의 역사를 넘어 마을의 역사를 쓰는 일이 되었다. 저지리의 마을돌봄센터는 돌봄활동이 사람과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원동력은 돌봄시설을 기피했던 다른 마을과 달리 사랑방에 마음을 열고, 주민과 돌봄센터가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를 먼저 구축한 것에 있지 않을까.

3.연결될수록 건강해져요: 사회적 처방
세 번째 사례는 마포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 조영실 사무국장이 발표한 <의료와 복지가 함께 만드는 중장년 고립 예방 모델>이었다. 무지개의원으로 알려진 마포사협은 2012년 6월에 진료를 시작해 가정의학과와 내과를 운영하면서 트렌스젠더들의 호르몬치료를 담당했다. 일반 의료에서 소외되기 쉬운 외국인,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진료를 지원하면서 빈곤과 차별을 해소하는 주민복지와 지역나눔과 안심하고 나이드는 지역사회 건강돌봄체계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온 단체이기도 하다.
중장년1인가구를 위한 돌봄프로그램, ‘더-이음’역시 그런 활동의 일환이다. 시작은 마포구에 거주하는 40~64세 1인가구의 고독사 방지가 목적이었다. 병원에는 꾸준히 오지만 약을 제때 먹지 못하고, 진료는 받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건강검진 결과는 악화되고 있는데도 정작 자신의 일상을 돌볼 사람이 없는 경우가 그 대상이다. 이런 사람은 질병의 원인에 신체적 문제 외에도 경제적 어려움, 관계 단절로 인한 외로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이렇듯 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이다. 증상이 아니라 건강문제의 사회적 원인을 다루는 탈의료화된 건강돌봄으로
의사가 약을 처방하듯 지역의 모임, 운동 프로그램, 식사 공동체, 상담, 주민 활동 등을 ‘사회적 처방’으로 연결한다.
하지만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집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영실 사무국장은 켄로치 감독의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장면을 떠올리며 대상자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엔 “밥 한끼만 같이 먹자”는 말로 꼬시고, 밥을 함께 먹은 후에는 “지원사업이니 밥만 먹으면 안되고 재미있는 거 좀 같이 해보자”며 꼬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들이 요리, 요가, 러닝, 노래, 우드카빙, 고고당(고혈압,고지혈,당뇨병 환자의 러닝프로그램) 등등 다양하다.
결과적으로 이런 구체적 관계가 지속되면서 이들은 서로 서비스의 ‘대상자’가 아닌 ‘주민’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돌봄과 치료의 경계도 지워졌고 대신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정주성이 더해졌다.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마포에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이다. 사회적 처방이란, 결국 사는 곳에서 함께 나이들기(Aging In Place)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사회적 촉각을 살려 윤리적 책무에 응답하기
세 가지의 사례를 통해 들어본 연결과 매듭의 방식은 다르지만 토대는 같다. 바로 관계라는 점이다. 모든 연결은 관계를 통해 이어진다.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던 김영옥 공동대표(인권연구소 창)는 먼저 “우리는 과연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우리가 SNS와 디지털 기술의 영향으로 우리가 무수히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대를 상실한 채 외로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자유주의시대에서 경쟁과 자기관리에만 매몰되다보니 관계마저 가성비를 따지게 되고 서로를 지지하고 지지받는다는 느낌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촉각’을 되찾고 ‘윤리적 책무’를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촉각이란 우리가 누군가와 닿아 있다는 감각이며, 응답해야할 윤리적 책무란 돌봄을 순환하는 생태계로 이해하는 것이라 했다.
‘사회적 촉각’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돌봄의 생태계 안에서 응답하는 일에는 “돌봄을 청할 용기와 제공할 용기”(김영옥)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누가 누군가에 일방향의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키는 상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질문을 되뇌본다. 우리는 돌봄의 생태계에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