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경북 울진에 문상을 다녀오면서 나는 차창 밖으로 새까맣게 타버린 산을 근 한 시간이나 보게 됐다. 서 있는 채로 숯이 된 나무들, 하부 목질 수관이 타버려 꼭대기 잎들이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 나무들.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산불 지역의 모습은 처참했다. 피해는 광범위하다. 4500채 정도의 집이 불탔고, 생계 수단이었던 하우스도 사과밭도 양봉장도 양식장도 다 타버렸다. 가축은 20여만마리가 폐사했다. 사람도 많이 상해, 죽거나 다친 사람이 모두 75명이다.
영덕 근처에서 혼자 사시던 지인 어머니는 담대한 성격이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피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오고, 하늘은 벌겋게 물들고, 검은 재가 마당으로 날아오자 어쩔 줄 몰라 하셨다. 후배 부모님은 안동 시내에 거주하시는데 “안동 시내 대피 바람”이라는 문자를 다섯 번이나 연속 받자, 밤에 울면서 딸에게 전화했다. 후배는 지역의 온라인 육아카페나 긴급 신설된 모바일 메신저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지역 시민들이 올린 사진과 정보를 모아 상황을 파악한 후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선거 때면 지역의 모든 노인을 촘촘히 동원하던 그 조직망은 이번에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후배는 장탄식했다.
알다시피 농촌엔 이제 노인만 남았다. 의성군은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65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아 2024년 11월 기준 인구의 47.2%인 2만3000여명이 고령자이다. 그 고령자끼리 농사짓고 동네 이장 하고 재난 시 사람 대피시키고 산불 진화대원으로 일한다. 그래서 취약한 노인들은 이런 화재 통에 자기 집 마당에서, 인근 도로에서, 심지어 차 안에서 그대로 변을 당한다.
그러나 이런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은 피해도 있다. 바로 야생동물이다. 이것과 관련된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2019년 호주 산불과 관련된 세계자연보호기금(WWF) 보고서이다. 그들은 호주 산불로 코알라를 포함해, 죽거나 살 곳을 잃은 척추동물의 수는 약 30억마리라고 발표했다. 이조차 적절한 조사 방법을 찾지 못해 피해를 측정할 수 없었던 무척추동물과 어류 등을 제외한 것이라고 했다. 산불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 활동이 포함된 복합적인 기후재난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으로 누가 가장 큰 고통을 겪는가를 드러내는 그 보고서는 기후정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서이다.
그런데 문외한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난 낙산사를 불태운 2005년 고성 산불에서도, 무려 213시간이나 지속된 2022년 울진 산불에서도 비인간 동물의 피해에 대한 공식적 보고를 접한 바 없다. 이번 경북 산불도 마찬가지이다. 이곳, 10㏊나 되는 피해 지역에서는 누가 살고 있던 것일까? 이번 피해 지역의 하나인 주왕산을 조사했다. 그곳에는 포유류 21종, 조류 65종, 파충류 11종 등이 산다고 한다. 이 중 하늘다람쥐, 대륙목도리담비, 수달, 삵, 검독수리와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도롱뇽 등은 멸종위기종이다.
주왕산이 불타고 있을 때 하늘다람쥐는 활공이라는 그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탈출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목이 모두 불타버려 돌아올 집이 없다. 지표면의 씨앗 등도 남아 있는 게 없으니 돌아와도 먹을 것은 없을 것이다. 고리도롱뇽도 마찬가지이다. 3~4월이 산란기이니 이미 조용한 웅덩이에 알을 낳았거나 그런 웅덩이를 찾아다니고 있었을 텐데 이번 산불로 알을 낳지 못하거나 갓 낳은 알이 모두 죽어버리는 비극을 경험했을 것이다.
며칠 전 소셜미디어에서 화재로 타죽은 멧돼지를 보았다. 마음이 아팠다. 정서적 슬픔만은 아니었다. 그 멧돼지가 모든 취약한 것들을 무시하고 응답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이면서, 아무런 공적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번 산불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사망자 31명이라는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노인들의 죽음을 제대로 드러내고, 집계조차 되지 않는 비인간 동물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조사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