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년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2019년 5월 한겨레신문 기획으로 <2019년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첫 기사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기자가 직접 요양원에 취업하여 한 달 간 요양보호사 업무를 수행한 후 쓴 기사였다. 기자는 한 달간 “요양보호사로 일했지만 ‘돌봄’을 제공하진 않았다. 그저 딱 필요한 만큼의 ‘처치’만 이뤄졌다.”고 밝혔다.(한겨레신문 2019.5.13. 기사에서 발췌) 요영보호사 2명이 18명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점심시간, “18명을 일으켜 세워 앉히고 앞치마를 두르고 틀니를 끼워주는 등 식사 준비부터 식사 도움, 투약, 양치질, 양치 컵 씻기, 앞치마 빨래, 오전 중 나온 빨래 널기까지 80분 안에 끝내야 한다.”(같은 기사에서) 그러니 한 숟갈의 정성은 통용되지 않는다. 미션을 수행하듯 식사시간을 치르면서 몸에 새겨진 것은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는 ‘돌봄’ 대신 클레임 없이 ‘처리하는’ 요령이었다.
돌봄 당사자인 노인들은 끔직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정해진 5번의 기저귀교체 시간 이외에는 대소변을 그대로 차고 있어야 했다. 욕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보행기 없이 걷기 힘든 노인도 기저귀를 차야 했다. 화장실까지 가서 대변을 보도록 도와줄 요양보호사가 없다는 이유였다. 요양원 근무 초반에 한 분을 화장실까지 모셔가서 대변을 볼 수 있게 하는데 꼬박 30분이 소요되었고 왜 그렇게 했냐는 지적을 듣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24시간 침대에 누워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다” 로 끝맺고 있다.
2. 빌 토머스가 주도한 두 가지 프로젝트_미국
아툴 가완디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인도의 ‘노인의 집’을 방문했던 경험을 밝히고 있다. 100명 이상의 노인이 수용된 그 곳은 지금껏 봐왔던 것에서 가장 지옥에 가까운 풍경이었다고 토로했다. 미국에서 인도의 경우와 같은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요양원을 두렵고, 끔찍하고, 외로운 곳이라고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가완디는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여러 요양원의 형태를 방문하고 그 곳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을 인터뷰했다.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은 빌 토머스라는 의사가 주도한 ‘에덴 올터너티브’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는 곳이다. 토머스는 이 요양원의 의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을 파악했다.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 이었다. 토머스는 이 ‘역병들’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동물, 어린이, 식물 등을 요양원에 들이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어느 날은 잉꼬 백 마리를 같은 날 요양원으로 배달시켜 일대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 새장을 조립하고 잉꼬를 넣어 노인들의 방에 배달하는 동안,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일에 집중하는 어떤 ‘고양된 환경’이 펼쳐졌다. 토머스의 프로젝트로 요양원의 주민들은 처방 약이 절반으로 줄고 사망률도 감소하는 긍정적 효과를 나타냈다.
조시아 로이스라는 철학자는 우리가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것을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스스로를 넘어서서 대의를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대의는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대의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점”(같은 책, 198쪽)이다. 로이스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 이상을 넘어 무언가에 헌신하려는 경향을 ‘충성심’이라고 했는데,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의 노인들은 동물을 보살피고 식물들을 키우면서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할 대상들을 만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토머스의 다음 프로젝트는 ‘그린하우스’ 건설로 이어졌다. 그린하우스는 적은 규모로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은 요양원 시설이었다. 가완디가 방문한 그린하우스에서 루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부인과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살았는데, 요양원에 들어가 개인의 공간 없이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 그도 그린하우스의 일상에는 만족을 드러냈다.
루 할아버지가 입소한 곳, 플로렌스 센터에는 한 곳에서 대략 열 명 정도의 주민이 함께 생활한다. 그린하우스는 일에 대한 주도권을 경영진이 아닌 일선에서 직접 노인을 돌보는 직원들에게 넘겼다. 그들로 하여금 각각 몇 명의 주민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끔 했고, 여러 분야로 팀을 나누기보다는 한 사람이 전반적인 일을 관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사람이 요리와 청소를 비롯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언제나 돕게 했다. 그 결과 각 직원들은 자기가 맡은 주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치료사라기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같은 책, 223쪽)
현대사회에서는 쇠약해지고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자율성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가완디가 방문했던 요양원이 운영되는 방침은 제각각 다 달랐지만, 생활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율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믿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노인들을 인터뷰 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같은 책,227쪽) 자율성을 발휘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3. 2025년에 가본 요양원
한겨레신문의 기획기사가 나간 후 6년이 지났다. 그사이 코로나시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요양원이 보호자들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오랜 기간을 보냈다. 또 어떤 요양원에서는 콧줄을 빼지 못하도록 침대에 손을 결박한 경우 등이 고발되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나이듦연구소에서 연구 주제를 ‘돌봄’으로 정하면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요양원이 궁금해졌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구성에 있는 ‘함춘너싱홈’을 알게 되었다. 요양원 원장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느린 돌봄’의 철학으로 노인당 보호사 비율을 2.1대 1로 돌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걸어 자원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며칠 후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2월부터 매주 화요일 3시-5시까지 요양원에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의 보조강사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곳은 치매전담 요양원으로 치매 등급을 받은 할머니들이 함께 살고 있다. 내가 봉사를 하는 시간에는 프로그램이 열리는 지하 1층 식당 공간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걸어오시는 분이 다섯, 휠체어로 오시는 분이 일곱에서 여덟 정도 된다. 어르신들의 컨디션에 따라 참가율이 조금씩 다르다. 걸어오시는 어르신들은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노래도 곧잘 부르신다. 강사님이 노래를 틀어놓고 하는 체조도 열심히 따라하신다. 휄체어를 타고 계신 분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가 간혹 겨우 손뼉을 치는 시늉을 할 때가 있다. 그래도 강사님은 열정을 다해 그분들이 반응을 하도록 애쓰신다. 나도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한분의 등 뒤에 서서 양 손을 잡고 이끌어보았는데, 몸이 너무 굳은 상태라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 아프게 할까봐 염려가 되어 요즘은 체조를 따라하면서 다른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려고 애쓴다.
레크레이션 시간에는 강사님과 내가 보조를 하기 때문인지 요양보호사들은 같이 오지 않는다. 프로그램 진행 공간이 식당이라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보호사가 가끔 눈에 띄는 정도다. 강사님과 보조를 맞춘 내가 오롯이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 강사님이 앞에서 아무리 흥을 돋우며 동작을 크게 해도 반응이 거의 없는 분들을 보면서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 분들은 뭘 하고 싶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책에서 본 자율성이 이곳에서는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그런 잡생각이 떠다니는 두 시간을 보낸다. 게임 시간에 어떻게든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윷을 안기고 풍선을 맡겨도 꼼짝을 안하면, 강사님과 내가 슬쩍 튕겨주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정말 미세하게라도 손을 내밀고 팔을 들어 올리며 움직이려고 애쓰는 어르신을 보면 뭐라도 거들고 싶어진다. 그렇게 20분을 씨름하다보면 게임 시간이 끝나고 마무리 체조로 이어진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시간의 만남인데 어르신들 대부분은 강사님과 나를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치매가 가장 최근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양원의 일상에서 외부인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어르신들을 만나면 바깥에 꽃이 피었다 바람이 분다 덥다 등등 계절의 변화를 알려드리기도 한다. 걸어 다니는 어르신들이 함께 생활하는 2층 공간으로 어르신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 드리러 올라갔던 어느 날, 밖에 꽃이 피었다고 했더니 한 어르신이 창밖을 가리키며 저기 피었네 라고 반응하셨다. 이 어르신들과 함께 꽃놀이도 갈 수 있는 요양원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4. 좋은 요양원이 될 수 있는 조건
2019년에 기자가 가 본 요양원과 같은 시설이 지금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더 나은 방식을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가 자원봉사를 다니는 이 곳도 그 중에 한 곳이다. 집단 돌봄이 아니라 돌봄의 적정 인원을 고민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돌봄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곳이다. 한편으로 열악한 임금으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연이어지고 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자료검색을 하다가 용인에 있는 ‘해바라기 요양원’이라는 곳을 소개한 기사를 보았다. 처인구에 있는 이곳은 빌 토머스의 문제의식에 공명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단층에 요양원 주변으로 꽃밭과 텃밭이 있어서 어르신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 사진으로 본 거실에는 어르신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보호사가 주변에 있었다. 이 요양원은 아홉 명을 돌본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보호사와 협력하는 체제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험이 점점 늘어나 ‘현대판 고려장’의 오명을 벗고 노년의 삶에 적절한 요양원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지난 4월 40세 이상 1000명에게 ‘고령·질병을 겪는 나를 돌봐줄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39%가 요양보호사 등의 돌봄 인력을 꼽았다. 배우자(35%), 스스로(21%) 순이었다. 자녀는 4%였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감안하면, 이제 요양원은 신체적인 회복을 목표로 하는데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노년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거주하는 집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집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진 공간에서 음식을 해 먹고 문을 잠글 수 있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며 살아하는 삶을 추구한다. 노년이 되어 달라진 점으로 의존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갈 수 있는 요양원은 집의 이러한 기능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질병, 노화, 죽음으로 이어지는 노년이 되었다고 해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요양원이 되는 일순위가 되어야 한다.
함춘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초반에는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 드리는 일을 했다. 어르신들이 원하는 색을 골라서 손톱에 칠해 드리면 이쁘다고 좋아하셨다. 한 번 두 번 지나니 뭔가 다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굴러다니는 노래가사집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노래 프로그램을 하느라 만들었단다. 일단 걸어서 내려오는 다섯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동요나 민요 가요까지 복사되어 있는 노래 가사를 보며 불안한 음정으로 노래 부르기가 시작되었다. 옛날 노래일수록 동요일수록 어르신들이 노래를 안다는 게 신기했다. 노래 부르기가 반복될수록 리듬을 타고 가사를 음미하는 몸짓이 피어났다. 그리고 어르신들 각각의 개성도 조금씩 눈에 뛴다. 체조를 할 때 들은 임영웅의 노래 가사가 나오면 표정에도 한껏 감정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가사를 복사해 가서 같이 불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도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직접 고르고, 그 노래의 장단에 맞춰 한껏 감정이 고양되는 순간을 즐기는 시간을 따로 가질 수는 없을까. 그런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할 수는 없을까. 그 분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더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