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라는 남자(A Man Called Otto), 마크 포스터 감독, 미국, 2022년
위태로운 남자 노인들
현재 한국의 노인 남성이 직면한 두 가지 어려움은 빈곤과 외로움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한국인의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다. OECD 국가들 간의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OECD 국가 연령표준화 사망률로 계산해도 평균이 10.7 명인 데 비해 한국은 24.8명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 연령대별 자살자수 통계에 의하면 40~70대 구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남성 인구(115.8)가 여성 인구(29.6)보다 월등히 많다. 고독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3 성별 연령별 고독사 현황에서 50, 60대 남성의 고독사 비율이 53.9%로 절반을 넘는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은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재취업이나 창업 실패 후 겪게 되는 사회적 고립감이다. 더구나 이혼이나 사별 후에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건강관리까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 죽고 싶어 하는 노인 남성이 또 한 명 있다. 매사에 깐깐한 꼰대 할아버지 오토. 재활용센터에서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버려서 섞여버린 물건들을 참지 못하고, 집 앞의 불법주차는 물론, 잔디를 밟거나 광고 전단지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출근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현장에서 일을 주지 않고, 후배가 자신의 상사로 승진하는 노골적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퇴직을 결정했다. 남은 직원들이 여생을 즐기라(Have fun!)는 글자가 새겨진 케익을 선물하며 가벼운 파티를 열어주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집에 돌아왔을 때 울리는 전화를 받아보니 텔레마케팅. 진저리를 치며 전화를 끊고 그 참에 전화를 해지해 버린다. 연달아 전기와 가스까지 해지한다. 왜냐? 곧 죽을 거니까.
오토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아내가 6개월 전 세상을 떠난 후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있다.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두고 나니 외로움에 무력감까지 더해진다. 그게 자살을 택한 이유이다. 그런데 오토의 집 맞은편에 이사 온 마리솔 가족은 끊임없이 오토의 삶에 개입하며 자살을 방해한다.
남자 노인이 사는 법, 하나 – 새로운 관계 맺기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마트에서 사 온 줄을 천장에 매달아 죽을 준비를 할 무렵,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건너편 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온 것이다. 트레일러를 제대로 운전하지 못해 차를 들이받는 것을 보고 또 참지 못하고 한바탕 잔소리와 푸닥거리를 하고는 대신 주차를 해준다.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마리솔 부부가 인사를 온다. 멕시코계 사람들이다. 알렌 렌치를 빌리는 대신 두고 간 멕시칸 음식을 두고 갔다.
냄새에 끌려 마리솔이 가져온 음식을 먹는다. 맛있다. 그리고 재시도. 하지만 죽은 아내의 환영이 지나가는 사이 천정에서 고리가 빠지며 자살에 실패한다. 두 번째 계획으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는 방법을 시도해 본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리솔의 남편 토미가 빌려간 사다리에서 떨어져 도움을 요청하면서 계획이 틀어져 버린다. 오토는 이들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남은 아이들을 돌본다. 오토는 세 번째 계획을 감행한다. 역사에서 열차가 들어오는 순간 뛰어내리기. 이때에도 방해꾼이 등장하는데, 오토보다 한발 앞서 옆에 있던 노인이 레일 쪽으로 쓰러져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오토는 뛰어내려 이 노인을 구하고 자신은 그 자리에 남아있지만 곧이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구조된다. 집으로 돌아온 오토에게 마리솔이 문을 두드린다. 자신에게 운전을 가르쳐달라고. 고집불통 할아버지 오토에게 멕시코계 이민자인 마리솔은 “원래 그렇게 쌀쌀맞으세요”라며 팩폭을 날리기도 하지만 편견 없는 마음으로 그와 교류하고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연결된다.
남자 노인이 사는 법, 둘 – 돌봄의 미학
빌 토마스는 미국 요양원을 혁신시킨 인물로 꼽힌다. 그는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으로 규정하고 요양원에 식물과 동물과 어린이를 들여 요양원 주민들의 삶을 바꾸었다. 그가 부임했던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에 살아있는 식물들과 개 두 마리, 고양이 네 마리, 잉꼬 100마리를 들여놓자 효과는 놀라웠다. 다른 요양원과 비교했을 때 처방약이 절반으로 줄었고 사망률도 15%나 감소했다.(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p183~193)
무료함과 외로움과 무력감에 시달리던 오토에게 변화를 준 것도 돌봄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늘 오토의 집 근처를 맴돌던 길고양이가 폭설에 얼어 죽을 뻔한 것을 구했는데, 이웃집 지미는 알러지 때문에, 마리솔은 임신중 기생충 감염 우려로 인해 결국 오토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게다가 네 번째 자살 시도를 막은 사람은 맬컴이라는 트렌스젠더 소년이다. 이 소년은 아내 소니아의 제자로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 오토의 집에 머물게 된다. 맬컴은 오토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오토는 맬컴을 아내가 낳지 못하고 떠나보낸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가족으로 여기게 된다. 돌보는 대상이 생김으로써 무력감은 사라질 수 있으며, 예측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일상에 다양성과 활기가 생겨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 노인이 사는 법, 셋 – 현재의 삶에 의미 부여하기
마리솔은 죽은 아내의 옷과 물건을 처분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오토에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아내의 흔적을 없애고 새 출발 할 것을 제안한다. 오토는 아내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며 저항하지만 마리솔은 “내가 있잖아요”라며 과거에 매몰된 오토를 현재의 삶으로 끌어낸다. 보부아르는 그의 저서 <노년>에서 말한 노년의 삶은 과거의 반복이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토는 아내가 떠남으로써 자신을 지탱해주던 삶의 목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마리솔은 자신과 고양이와 맬컴이 오토의 현재 삶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오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친구 루벤이 치매에 걸려,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루벤을 돕는다. 마리솔 가족은 오토가 살고 있던 주택단지를 하나의 공동체마을로 다시 엮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눈이 내린 어느 날 아침, 마리솔의 남편 토미가 맞은 편 오토의 집 앞 눈이 치워져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오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다. 달려가 보니 침대위에서 숨져있는 오토. 오토는 마리솔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한다는 유서를 남긴다.
남성 돌봄의 기술
남자 노인의 자살이나 고독사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의 ‘한국남자는 왜 자살을 더 많이 할까’(2025년 4월 28일)를 듣게 되었다. 김현철 연세대 교수(예방의학교실)가 나와 관련 연구자료를 설명해 주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우리나라의 우울증 요양급여비용 총액은 60%가 증가했는데 이중 자살률이 높은 남성 노령인구의 경우 우울증으로 인한 내원일수가 여성에 비해서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다고 한다. 즉 우울증은 많지만, 치료받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60대 이상 남성들이 여성이나 젊은 세대에 비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런 현실에서 남성 노인들의 극단적인 선택과 고독사를 줄이기 위해서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물론 노인 복지 차원에서의 적극적 지원과 돌봄 정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남성들에게 스스로 돌보는 기술을 습득시켜야 하는게 먼저 아닌가 싶다.
사진출처 : https://menssheds.org.uk
남성들의 노력과 변화도 필요하다. 무력감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남자들의 커뮤니티 프로젝트로 알려진 Men’s Shed가 좋은 예이다. 나이, 배경, 능력에 관계없이 기술과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기술을 재개발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1990년 호주에서 시작되어 영국, 미국, 스웨덴, 덴마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