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는 산소 공급을 위한 튜브, 코에는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관, 요도에는 소변을 배출하기 위한 폴리카테터, 손등에는 정맥주사 바늘, 가슴에는 심전도 모니터가 연결된 전극을 달고 병원 침상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도, 나도 그랬다. 그래서 몇년 전 우리는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가 큰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자 그 서류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의사는 산소포화도가 가장 먼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때 기도삽관을 할 건지 말 건지 가족들이 미리 결정해 두라고 했다. 나는 산소포화도, 기도삽관 같은 단어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기도삽관이 연명치료인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게다가 이것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두려웠다. 결국 자식들은 기도삽관에 동의했다. 하지만 몇시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혈압이 떨어진다며 승압제를 쓸 건지 말 건지를 또 결정하라고 했다. 우리는 울면서 더 이상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주일 후 돌아가셨다.
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장기 요양 등급을 받은 고령자 사망자의 59.7%가 사망 전 한 달 동안 연명의료, 즉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승압제 투여 등 치료를 받았다. 이 중 승압제 투여가 1위였다. 또한 사망자 중 연명의료 중단 결정 계획을 세운 사람은 13.1%였고, 실제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이행한 사람은 12.7%에 불과했다고 한다.(경향신문 2월18일 11면 보도) 고령자의 80%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270만명(60세 이상이 87%)에 이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연명치료가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임종기 연명치료만이 문제는 아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2.7세인데 건강수명은 65.8세로 16.9년의 격차를 보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큰 수치다. 즉 우리나라 노인 대부분은 17년 정도를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마지막엔 요양병원이나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가 역설적으로 ‘의료화된 노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 주말 나와 친구들은 ‘엔딩노트 워크숍’을 열었다. 노화와 죽음의 경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의료화된 노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암에 걸린다면? 심장질환이 악화한다면? 파킨슨이나 치매가 진행된다면? 낙상이나 사고로 장기 입원 상태가 계속된다면? 하지만 전문적 의료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질문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답은 더 쉽지 않았다. 완치 가능성이 30%인 암에 항암치료를 받을 것인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드는 항암 신약을 사용할 것인가? 임종이 다가오고 있을 때 안락사를 선택할 것인가? 노환으로 갑자기 고열과 호흡곤란을 겪을 때 응급실로 갈 것인가? 나는 이런 질문 앞에서 계속 머뭇거렸다.
그럼에도 12명이 모여 함께 자료를 읽고 각자가 생각하는 나이 듦과 죽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나눈 대화의 시간은 소중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의료화된 노년을 피하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사회에 ‘완화의료’의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증 등의 증상을 줄이며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완화치료가 널리 시행된다면, 우리는 각자 자기 방식대로 늙고 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이런 워크숍에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제로는 가족의 동의나 협조 없이는 당사자 주권이 지켜지기 어렵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이 나이 듦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같이 공부하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다음번 ‘엔딩노트 워크숍’부터는 가족에게도 초대장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