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말한다의 아주 사적인 후기입니다.^^
선흘포럼 첫 번째 시간,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과 조한혜정 선생님, 두 사람에게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고 그들의 육성을 듣는 빡센 일정의 1박 2일이 시작되었다.
우에노 선생님과 조한선생님이 이렇게 만나게 된 출발은 2004년 출간된 <경계에서 말한다>였다. (일본에서 나온 책 제목은 <말은 가 닿을까ことばはとどくか>) 이 책은 1948년 생인 두 사람이 50대 중반에 주고 받은 6번의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편지는 <당대비평>과 <세카이>에 6개월간 연재되었다. 책이 절판되어 중고서점에서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 글을 통해 두 여성 학자가 학문적 이력을 시작하게 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을 알 수 있었고, 끊임없이 현실에 개입하는 두 페미니스트의 글쓰기와 실천의 동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편지교환을 했던 때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의 편지를 읽었지만 편지글을 뚫고 나오는 두 사람의 빛나는 지성을 읽는 것이 즐겁고 기뻤다.
나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를 통해 우에노 지즈코를 만났다. 몇 년전, 몸과 마음이 죽음을 향해 쇠락해 가는 어머니를 돌보고 아버지의 치매 돌봄을 시작하던 때였다. 코로나를 겪고,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장애인들의 탈시설운동에 공감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그 책에서 우에노 지즈코는 ‘누구나 혼자 죽는다’고 말하며 ‘시설에서 죽지 않고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나이듦연구소 세미나에서 벽돌책 <돌봄의 사회학>을 읽었다. <돌봄의 사회학>을 통해 일본의 개호보험이 일본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우에노지즈코가 혼자 죽기를 권하는 것이 개호보험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간혹 신문 칼럼에서 조한 선생님의 글을 접하기는 했지만 조한혜정 선생님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는 것에 좀 놀랐다. 왜 그랬을까? 조한 선생님은 유학에서 돌아와 1980년대 초에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부터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동인지를 펴내고 페미니즘 운동을 했다. 내가 페미니즘을 만난 것은 1979년 겨울이었다. 그 때 나는 이효재 선생님의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을 읽기 시작한 그 순간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한동안 나는 스스로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
1980년 서울의 봄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여성문제연구회’라는 서클이 만들어졌고, 나도 참여했다. 친했던 남자 선배와 친구들은 나를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을 ‘문제여성’이라고 딱지를 붙였고, 여성문제연구회의 여자선배들과는 여성운동이 우선이냐, 노동운동이 우선이냐를 놓고 서로를 비난하는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여자 후배들에게 나는 남자처럼 쎄게 말하고 쎄게 행동하는 다소 무서운 선배로 통했다. 알고 보니 조한 선생님은 그 당시부터 나처럼 사회변혁을 꿈꾸면서 학생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후배들에 대해 꽤나 비판적이었다. 물론 80년대 후반의 ‘또 하나의 문화’는 나와는 무척 거리가 먼 곳에 있었다. 그러니 조한 선생님의 말과 글 역시 나로부터 멀리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고 나도 변했다. 소 닭 보듯 하던 관계가 달라진 현장이 있었으니 바로 공동육아와 대안교육 운동이었다. 이번에 인디언샘에게 들으니 1호 공동육아였던 신촌의 ‘우리 어린이집’을 준비할 때 ‘또문’ 사무실에서 자주 회의를 했다는 거다. 공동육아에 참여하며 부모교육을 받을 때 만난 정병호선생님이 초창기 또문의 멤버였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이후 내 삶의 방식과 생각도 크게 변했다. 공동육아 조합원으로 열심을 내고 대안학교설립에 참여하던 시절도 지나, 나는 17년 가까이 문탁에서 친구를 만들고, 책읽고, 밥먹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공부의 화두도 조금씩 변하여 지금은 불교와 수행, 영성, 나이듦과 죽음, 돌봄이 되었다. 이렇게 시대와 사회, 개인의 변화 속에 흘러오다 보니 조한 선생도 만나고 우에노지즈코 선생님도 만나고, 전혀 알지 못하던 존재들과 한자리에 앉아 있는 선흘포럼에 오게 되었다. 새삼 느끼지만 이전과 달라진다는 것,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선물이다!
선흘 포럼에 참여하기 전 몇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발견한 조한과 우에노지즈코의 공동점은 ‘돌봄사회’를 지향하는 비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숨길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조한은 이미 망한 세상, 혹은 망해가는 세상에서 희망은 국가와 제도가 아닌 ‘마을’이라고 말한다. 지금 제주의 선흘에서 조한이 선흘의 그림 그리는 할망들에 연루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한의 관심은 오랫동안 청년, 젊은이, 교육이었다. 조한은 이와 관련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실험자이기도 했다. 지금도 조한은 할망들과 그리고 레이지마마의 젊은 엄마들과 뭔가를 만들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에노지즈코는 이미 50대 초반부터 개호보험에 주목하고 25년간 개호보험의 현장을 탐구해 왔다. 우에노지즈코는 나이듦과 죽음의 현실을 연구하고, ‘마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운동을 조직하고, ‘혼자’서도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였을까? 첫날 첫 시간의 대화에서 내가 발견한 차이는 이런 것이다. 조한은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 의식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며 피해의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고, 우에노지즈코는 피해자가 어떻게 피해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조한은 자율과 자치와 제도 바깥에서의 ‘즐거운 삶’을 말했고 우에노지즈코는 자신을 계속 글쓰고 말하고 저항하게 만드는 힘인 ‘분노’를 말했다. 조한은 자기결정권이 젊은 세대의 여성에게 신자유주의적으로 전유되는 현실을 비판했고 우에노지즈코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의 자신감이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흘포럼의 이야기가 확대되어가면서 나는 이 차이를 점점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 둘 사이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두사람의 차이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생각이 더 다양하게 펼쳐지도록 돕는 차이이기도 했다.^^ 하루가 더 지나 명확해진 것은 두 사람의 차이에는 단지 개인적 경험이나 기질의 차이만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두 나라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등 수많은 요소와 맥락들이 얽혀 있다는 것이었다.(제주에 있는 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지만, 후기에서는 패쓰~)
그러나 30년 넘게 서로 교류하고 우정을 쌓아 온 두 사람, ‘혜정’과 ‘치즈코’가 서로에게 지지않고 각자의 개성과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유쾌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조한은 두 사람의 차이를 아르테미스와 아테네 두 여신으로 명쾌하게 정의했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 누가 아르테미스이고, 누가 아테네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ㅋ
77세인 두분 선생님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글쓰고 말하면서 허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지만 그 뿐만이 아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앞서가는 선배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과 현재의 모습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고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이후의 두 분의 나이듦 또한 우리에게 유용한 공부거리가 되리라.
내가 픽한 우에노치즈코의 한마디: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역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한혜정의 한마디: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는 영화를 보면서 진짜 남자들은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잠재력은 여자들에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