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저녁 두 분 선생님의 희수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할망들도 모두 오시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오셔서 저녁식사와 와인을 나누고 케잌을 자르고 선물들도 드렸습니다.
이제 <난감모임 1> 세션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노래가 시작되고 멋들어진 춤사위가 어우러지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감하네~!”를 외치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었지만 다행히 조금 늦게나마 장내를 정리하고 <난감모임 1. 여성주의자로 늙고 죽는다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좀 가벼운 사적인 이야기장이 재미나게 펼쳐졌습니다.

요요샘의 후기에도 나오지만 두 분은 정말 많이 다르십니다. 서로 자신이 덜 건강하다고 하지만 두 분은 아직 짱짱하셨습니다. 여성주의자로 나이 들면서 한 분은 유방을, 한 분은 자궁을 들어내는 아픔도 있으셨다 하지만 나름의 생활양식이 확실하게 있었습니다.
조한 선생님의 건강 비결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였고, 우에노 선생님은 분노와 호기심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는 우에노 선생님은 “저는 변했다. 저를 보고 변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물을 더 깊이 이해하고 관용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변화, 성숙을 나이듦의 효과라고 말해서 잠시 지난 세미나에서 읽었던 키케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한 우에노 선생님에게 조한선생님은 ADHD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살기 좋은데 자신은 아니라며 웃기도 했죠. 매일 15분 동안 전력으로 수영을 하고 요가와 필라테스 등 운동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선흘마을을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는 조한 선생님^^
페미니스트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 ‘또 하나의 문화’ 초기에 “목소리 깔고 말해”라고 훈련하기도 했다는 조한선생님 말씀에 잠시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는데(당시 저는 대학원생으로 또문에 잠깐 함께 했었습니다.) 요즘은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학생들이 데이트하고 와서 “여자 떨고 왔다”고 말한다는 김은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좀 씁쓸했습니다. 우에노 선생님은 이걸 “여장을 한다”고 표현하죠.
일본에는 ‘여자의 언어’가 있고, 우에노 선생님의 책 <안티 안티에이징>은 편집자가 ‘여자의 언어’로 표현해주었다고 하면서 공적인 언어를 여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새로웠습니다.
조한 선생님은 제주로 내려가서 새로운 마을살이를 하고 계시고 우에노 선생님은 <산기슭에서 나홀로>에 쓴 것처럼 두 거점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다른 점 중 하나죠. 지난 여름도 도쿄가 너무 더워서 한달 간 숲속 집에서 생활했다는 선생님의 가장 큰 걱정은 운전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숲속 집은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그래도 우에노 선생님은 일본의 개호보험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개호보험 3종세트)가 방문하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다는 거죠.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플랜이 개발되어 지금 쓰러져도 구하러 온다며 죽으면 3일 이내에 발견된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조한에게 “혜정은 운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우에노. 조한은 마을 사람들과 재밌게 만나는 게 좋고 지금으로는 죽는 것에 관해서는 현실감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대중목욕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공유가 불가능한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을 또 한번 하십니다!
우에노 선생님이 25년간 개호보험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본인의 나이듦과 죽음을 구체화하고 스스로 “내 연구의 최대 성과는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나이 들고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조한 선생님은 ‘죽을 나이가 되면 잘 죽으면 된다’며 죽음에 대해 너무 집착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현재를 즐기고 있다고 할까요.
우에노 선생님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의사조력사(안락사, 존엄사)에 반대합니다. 조한 선생님이 ‘곡기를 끊는’ 죽음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며 나이 들어 죽는 것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고 통증클리닉도 많이 좋아졌으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 또한 개호보험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지요.
일본이 죽음에 대해 급진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개호보험도 있지만 ‘고독사’를 다른 의미로 바꾸어 ‘홀로사’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다고 합니다.(김현미 선생님) 우리는 죽는 순간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이상적인 죽음으로 생각하지만 일본은 아니라네요. ‘죽을 때 누군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길 바랍니까?’ 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이야기에 한국과 일본은 많이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조한 선생님은 “일본은 제국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 한국은 국민이 나라를 보호한다”고 서로 다른 점을 지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폐를 끼쳐야 사회가 돌아간다는 게 조한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친한 이웃이나 신경 쓰이는 사람을 평소에 계속 돕고 서로 폐를 끼치면서 살면 보이지 않는 관계망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에노 선생님은 “친구가 중요하긴 하지만 기저귀를 갈아주지는 않는다”며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죽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고, 조한 선생님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응수하는 두 분의 티키타카가 즐거웠습니다.
77세 여성주의자 조한에게 여성주의자로 늙는다는 것은 많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고, 우에노에게는 프로 돌봄러가 있다는 것일까요? 돌보는 사람, 돌봄을 받는 사람이 모두 여성인데 돌보는 여성들의 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게 페미니즘이 지금 싸우고 있는 지점이라는 우에노 선생님의 말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당대성, 현장성을 가지고 빛나는 지성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77세 두 분 선배를 직접 보면서 우리도 친구들과 잘 늙어가고 싶고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좋았습니다. 대학 은사이신 조한 선생님과 함께여서 좋았고, 열심히 세미나 했던 <돌봄의 사회학> 저자와 번역자를 모두 만나서 또 좋았습니다.
우리도 희수연을 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