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엄마는 자신의 상태를 ‘아찌고찌 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찌고찌’는 ‘저쪽과 이쪽’이라는 뜻의 일본어지만 엄마는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기억나지 않는 상태를 하소연할 때마다 쓴다. ‘노망’, ‘치매’를 일컫는 용어를 자기식대로 만들어 낸 것이다. ‘노망’, ‘치매’라는 단어와 병증에 대한 인지가 있는 상태여서 거부감과 두려움이 꽤 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깜빡깜빡 잘해.”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하며 상황에 맞춰 말하곤 한다. “엄마, 이제 아찌고찌 약 먹어야 해.”
엄마는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골다공증 약 복용과 정기적으로 골다공증, 연골 주사를 맞은 지 오래되었고 뇌 CT를 두 번 찍은 이후부턴 약의 개수가 부쩍 늘어나 약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노년의 삶을 처연하게 마주해야 했다. 그러다가 재작년 여름 무렵, 처음 넘어져 ‘고관절 염좌’ 상태로 한바탕 고생하고 작년 여름엔 ‘12번 척추 압박골절’ 진단을 받고 이십여 일을 병원에서 와상환자로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자신이 어떻게 넘어졌는지, 병원에 얼마 동안 있었는지, 나와 간병인과 형제들이 어떻게 옆을 지켰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두 번의 낙상 이후의 엄마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낯섬으로 다가온다. 잠시 스치는 눈빛에서 ‘이 사람 누구지?’ ‘여기 어디지?’ 생각하는 듯한 복잡한 심경을 종종 포착한다. 작년 칠월과 팔월, 두 달 동안 인지와 지남력이 떨어지고 망상과 섬망 증세가 심해지고 같은 말의 반복과 고집이 엄청났다. 허리 보호대를 하지 않겠다, 씻지 않겠다, 먹지 않겠다는 건 약과다. 방 안에 이동식 변기를 놓아두어도 밤마다 굳이 바깥 화장실을 가려고 해서 허리 보호대를 채우려고 실랑이하느라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짜증과 화도 울뚝불뚝. 게다가 자꾸만 돈이 없다, 쌀이 없다. 밥솥에 밥이 없다고 전전긍긍. 매일 현금과 쌀자루를 보여주어도 소용없이 고역이었다. 어느 날은 말짱한 정신으로 젊은 날에 아이 여섯을 키우며 쌀독에 쌀이 떨어질 때면 걱정하던 습관이라 그렇다고 말할 적엔 돈과 쌀, 밥에 집착하는 그 마음자리를 연민하며 씁쓸해지곤 했다. 지독한 폭염의 시절을 허깨비와 드잡이하다 얻어터지고 무작정, 멀리, 더 멀리 도망치고만 싶던 시간이 차곡차곡하다. 난 언제나 나에게 졌다.

엄마는 평상시 ‘실프다(싫다, 귀찮다)’, ‘내불라(놔둬라, 신경쓰지마라)’ 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밥 먹기 실프다, 일어나기 실프다, 머리 감기 실프다. 몸을 닦을 때나 변기를 씻어놓을 때, 청소를 하거나 옷장이나 잠자리를 정리할 때 음식을 접시에 옮길 때마저도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아이고, 그냥 내불라.”
만사 귀찮아하는 말과 말투도 그렇고 이젠 스스로 처리하기에는 힘겨운 일들이 되었음에도 극구 제지하고 신경 쓰지 말라는 완고한 고집과 집요한 반복도 여전하다. 그러게! 엄마와 함께 산 지 11년씩이나 되었으면 이 정도는 그런가보다 이해하고 넘기면 될 일 아닌가! 엄마를 바꿀 수 없으니 잘 달래면서 차라리 내가 바뀌면 될 일 아닌가! 이렇게나 명확한 답이 있는데도 왜 나는 자꾸만 자빠지는 것인가.
말해놓고 금방 잊어버리고는 다시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이 치매 증상이라는 걸 알아서 네다섯 번까지는 순순하게 잘 듣다가도 마음의 압력추가 쉭쉭거리는 순간까지 다다르면 도리없다. “엄마, 그만 말하면 안 될까. 귀가 너무 아프다.” ‘일상이 수행’이라고 명상과 108배로 다잡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기운이 쏘옥 빠진다. 인상은 구겨지고 인성은 거칠어진다.
그나마 이제는 실프다 해도, 내불라 해도 어떤 것은 무시하고 또 어떤 것은 못 들은 척 어떤 것은 무심하게 대처한다. 동어 반복에는 동어 반복으로 대답한다. 간병인의 내공이 쌓여가는 것일까.
함께 사는 11년 동안 엄마는 서서히 늙어가며 중등도 치매 환자가 되었고 나 역시 늙어가며 보호자이자 간병인, 어쩌면 목격자, 어쩌면 동지, 어쩌면 증인이 되어간다. 그러면서 엄마와 나는 더는 손톱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두께로 바짝 포개졌다. 아니, 포개져 버렸다. 지금 이 시간, 이런 경험, 이 씁쓸하게 뒤엉킨 감정 다발이 나에게 알려주려는 게 무엇인지 자꾸만 묻게 된다.
포털 사이트에 ‘치매 노인을 사랑하는 모임’ 카페에 가입하고 수시로 들락거린다. ‘엄마에게 화나거나 짜증 날 때 어떻게 하시나요?’ 하는 제목의 글과 댓글들을 읽으며 위로받는다.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싶어서 잠시 가벼워진다. ‘화내면서 옆에 있는 게 정답’이라거나 ‘오늘이 가장 건강한 날, 죽어야 끝나는 병’이라는 글이 건네는 경험을 수긍하며 자책을 털어낸다.


아, 선생님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옛날 저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어떡해…. 아…. 어쩌지………………………………..
왜 우리는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잊었던 그 질문이 다시 마음을 후벼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