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에노 지즈코를 만나다
제주 선흘리에서 열린 <선흘포럼> 2일차, 『돌봄의 사회학』의 저자인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포럼의 제목은 ‘돌봄 사회를 향한 페미니스트 이론과 실천’ 이었다. 작년에 나이듦 대중지성에서 세미나를 했던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는 시간이라 더 기대되었다. 전날 1일차 포럼 조한혜정 선생님과의 대담에서 25년 동안 현장을 돌아다니며 개호보험의 실제 성과를 몸으로 느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터라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가족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가족주의 하에서 비혼으로 나이 드는 자신에게 돌봄의 문제는 실존의 문제이기도 했다. 2000년에 도입된 개호보험으로 가족이 없는 비혼의 경우 혼자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이후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2016)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2022)등을 펴내면서 자신이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렀다고 했다. 빨간 색으로 물들인 커트머리, 첫 날은 빨간 스웨터, 둘째 날은 빨간 머플러로 단장한 선생님의 스타일을 보면서 색깔 못지않은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문제화하는 포스가 느껴졌다.

2. 일본 개호보험의 제정과 현재 상황
일본의 개호보험이 제정된 해는 2000년 이다. 지즈코 선생은 1990년대 후반에 이 제도가 국민의 합의를 거쳐 제정될 수 있었던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했다. 90년대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사회적 공적보험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또 당시 4-50대가 부모 돌봄에서 가족의 부담을 경감시키자는데 동의하는 경향도 한몫을 했다. 그때에 비해 신자유주의가 심화되고 자기 책임의 논리가 강화된 현재라면 개호보험이 제정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았다. 1945년 이후에 태어날 세대들은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은 독립적인 성향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돌봄에서도 당사자로써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세대다. 현재 일본 정부가 개호보험의 본인 부담률을 10%에서 20%로 올리려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해서,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정부에 항의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정부를 향한 분노를 분출하는 중이라고 했다.
3. 『돌봄의 사회학』 출간이후
지즈코 선생의 책에서는 실명 비판을 기본으로 한다. 『돌봄의 사회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지즈코 선생은 비판할 가치가 있는 논의가 있을 때, 실명으로 비판한 후 자신의 책을 그쪽에 보낸다고 했다. 자신을 비판하면서 책을 보내지 않는 사람은 왜 그럴까 궁금하단다. 비판은 비판받는 쪽에 들리게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토론이나 논쟁에 강한 자신으로서는 비판받는 일이 딱히 힘들지 않다. 최근 돌봄 윤리를 강조하는 남성 연구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설교하기 전에 직접 돌봄에 나서보라고 요구한다.
개호보험이 시행된 후 25년간 돌봄 노동에서 여성 노동의 가격은 오히려 하락했다. 돌봄 노동의 가격은 왜 이렇게 싼가? 돌봄 노동이 이전에 집안에서 했던 여성들의 무상 노동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측면에서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 점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요양보호사 3명이 싼 가격으로 책정된 돌봄 노동가격과 관련 국가에 배상 소송을 했는데 3심에서 패소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돌봄에 투입된 시간에 비해 책정된 비용이 얼마나 싼지를 증명하는 성과는 있었다. 돌봄 노동에도 간호사 정도의 임금체계가 도입된다면 많은 인력이 유입될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보수 체계를 정비하는 방법이 아니라 값싼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돌봄 노동력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 또한 선생의 분노를 부추긴다.

4. 당사자 주권과 관련
지즈코 선생은 당사자 주권과 관련한 질문에서 돌봄을 받는 당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이상적인 돌봄은 당사자가 원하는 돌봄으로 그 돌봄에 보편적 돌봄은 없다. 치매인 경우도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다.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 돌봄을 받는 상황의 당사자의 표정이나 태도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현재 제안되고 있는 A.I 나 로봇의 돌봄은 반대한다고 했다.
5. 시민사회의 돌봄
『돌봄의 사회학』에는 돌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으로 ‘복지다원사회론’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국가(官), 시장(民), 시민사회(協), 가족(私) 네 영역(관⸱민⸱협⸱사)이 함께 돌봄의 주체가 되는 사회다. 지즈코 선생은 개호보험이 시행되면서 특히 시민사회영역에 기대가 컸다. 시민들이 주체가 된 협동조합과 비영리법인들이 돌봄 사업에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협 부분의 활동이 축소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 대신 민간이 돌봄 사업에 대거 진출하는 변화가 있었다. 민간에서는 개호보험에서 높은 수가로 책정된 신체지원 쪽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협 부분은 수가가 낮은 생활지원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즈코 선생은 이와 관련 신체지원과 생활지원을 통합하여 수가를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아무래도 상호부조를 더 강조하는 협 부분의 경영원리보다는 사생활을 보호받으면서 원하는 돌봄 서비스를 받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6.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다
지즈코 선생은 개호보험이 시행된 후 25년 동안 현장 연구를 통해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죽음에 가까울수록 24시간 돌봄이 필요치 않다. 현재 일본은 장기 돌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임종이 가까운 고령자의 경우 하루에 최고 5회에 걸쳐 돌봄 제공자들이 차례로 방문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며 혼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죽음은 고독사가 아니라 홀로사이다. 지즈코 선생은 관찰자의 자격으로 소규모 그룹이 서로 상호부조하면서 돌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이런 그룹의 경우 신참자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누군가는 혼자 남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은 국가가 주도하는 공적 돌봄의 체계를 통해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 실천하는 페미니스트
돌봄 사회를 향한 노력과 실천과제에 대한 포럼의 말미에 조한선생이 합류해서 코멘트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조한 선생은 집에 혼자 죽을 수 있는 돌봄 사회를 강조하는 지즈코 선생의 주장을 들으며 그런 사회야 말로 국가가 고도로 관리하는 사회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돌봄과 관련해 두 분의 주장이 나뉘는 부분(이 내용은 전날 난감모임1회 후기에 잘 나와 있음)을 잘 드러내기도 했고, 생각을 해보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포럼 내내 지즈코 선생의 활약은 당당하고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자가 약자를 존중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정의는 내내 기억에 남았다. 개인사 부분에서는 『산기슭에서, 나 홀로』에서 나왔던 돌봄 이후의 후일담도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을 이어오던 인연으로 산기슭에서도 이웃으로 지내던 사이였다. 이 분이 2016년 집안에서 넘어지면서 돌봄이 필요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향년 96세의 고령 남성, 돌봄 3년차의 이야기가 짧게 기록되어 있었다. 개호보험의 절차를 통해 집에서도 충분히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과정을 통해 돌봄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이론을 실천했다는 내용이었다.
포럼에서는 그 남성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족이 있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법 때문에 결국 혼인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15시간 기혼이었다가 미망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법을 바꿀 수는 없으니 혼인신고를 감행해 그 친구를 마지막까지 돌본 페미니스트의 활약이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핫한 페미니스트로 추앙받으며 엄청나게 책이 팔리는 저자가 되어, 그 인세로 일본에 ‘우에노 재단’을 만들어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후배들을 지원하는 일도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숙고하고 문제화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온 연륜에서 풍기는 여유로 인해 선생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감응을 일으키는 순간을 만들었다. 저자의 책을 읽고 궁구하는 세미나와 연결되어 배움이 더 풍성해졌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