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걷기 모임이 있었다. 연회원인 한 친구가 오랜만에 걷기에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함께 걷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는 최근 어머니 일상의 변화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현관의 비밀번호 끝자리 숫자를 헷갈려서 몇 번이나 다시 누른다고 했다. 예전에는 요리하는 걸 참 좋아하셨는데 요즘에는 그것도 힘들다고 안 하고 싶어 하신단다. 반찬은 자신이 하면 되는데, 해 놓은 것도 잘 안 드셔서 속상하다고 했다. 인지 검사를 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자신은 어머니의 총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확실히 알겠단다. 8월에 있었던 나이듦연구소 ‘치매포럼’에서 들었던 다른 분들의 사례를 전달하면서 여러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변화를 경험하는 자신의 감정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8월의 리뷰 책으로 지역 사회에서 공공 돌봄이 가능한 커뮤니티 케어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 정비가 필요한가를 다룬 내용을 쓰려고 했다. 그 와중에 친구의 이여기를 들으니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제도 정비만으로, 돌봄에서 겪는 저마다의 사정이 다 호전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더구나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국정 과제에서 돌봄과 관련된 내용은 너무 두루뭉술 구체적인 실천 내용이 너무 부족했다. 뭐 다른 게 없을까 검색을 하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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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제도 제안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라는 책은 “현재 대한민국의 돌봄 현실에 대한 실체와 그 구조적 원인 그리고 진정한 커뮤니티 케어 체계의 구축 방안을 등을 논리적으로 밝혀낸 최조의 대중서”(같은 책, 7쪽)라고 자부했다. 목차를 보면, 지금 돌봄 풍경의 실제를 밝히고, 누가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의 가능성, 현재 상태의 돌봄에 이를 수밖에 없는 현상을 분석하고, 공공 돌봄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제도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커뮤니티 케어는 “돌봄이 필요한 주민 누구나 낯선 공간의 ‘시설’이 아닌 익숙한 주거 공간, 즉 ‘집’에 살면서 건강하고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서비스들을 받을 수 있는 것”(같은 책, 6쪽)을 의미한다. 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 의료체계는 물론 중앙 정부 부서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까지 재조정해야 한다. 민간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돌봄 체계를 공공으로 전환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돌봄과 직결되는 보건⸱의료 체계의 대수술도 제안 되었다. 지역 사회에서 일차 의료 기관이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들자. 방문 진료를 할 경우 지급되는 방문 수가를 현실화하자. 현재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건강생활지원센터를 활용해서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통합적으로 구축하자.
이 책에서 제안하는 제도를 제대로 마련된다면 지역에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일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전환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재원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이 부분의 세부 지침이 없다는 비판이 여러 번 있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의료개혁과 관련한 수많은 갈등을 떠올려보면, 어느 하나도 수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공공 돌봄 체계를 마련하여 진정한 커뮤니티 케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 마련을 요구하는 이러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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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감으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돌봄 에세이
현재 일본을 이해하는 키워드의 하나가 ‘2025년 문제’라고 한다. 1947년~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전원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층으로 진입하는 해가 2025년이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사회보험 부담 증가 및 경제를 지탱할 노동력 부족 문제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수명이 다하느냐, 돈이 다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일본에서 2022년에 출간된 에세이집이다. 저자 코가지 사라는 1958년 생으로 출판사 근무 이력과 이후 직접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2019년 9월부터 잡지에 부모님을 돌보는 생활을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어서 출판했다. 제목에서도 ‘2025년의 문제’와 관련해서 부모를 돌보는 자식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도쿄에서 생활하다가 2019년부터 고향인 치바현으로 U턴 이주하여 92세 된 아버지와 90세 된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웃에 사는 후기 고령자가 된 이모부와 이모까지 총 4명을 돌보기에 이르렀다. 네 분은 모두 치매 증상이 점점 더 진행되어 일상생활에서 여러 곤란을 겪고 있지만 저자의 돌봄으로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이모부의 경우는 넘어지면서 골절이 심해져 요양원으로 들어가셨고, 이모는 집에서 혼자 생활 중이다.
에세이에는 치매의 초기 증상과 타고난 기질 등이 겹치면서 스스로 생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네 분의 일상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자식의 돌봄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함에도 조금이라도 개입을 하려고 하면 “얹혀 사는 주제에!” 라고 큰소리치는 어머니 때문에 분노가 치솟는 자신을 도닥이는 순간이 헤아릴 수 없다. 쇼핑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사오고 또 사와서 냉장고가 미어터져 나간다.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이모네 집안의 묵은 물건들, 먹고 싶다고 요구하는 음식들, 사다 드려도 거의 먹지 않으면서. 한 달에 12번 넘겨 다녀야 하는 병원순례, 귀가 먹어서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대화도 안 된다. 노인들을 상대로 소액 사기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 사람은 친절해서 좋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부모님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고집을 내세우면 감당이 불감당이다. 이런 분들을 네 명이나 감당하면서 겪은 사건 사고는 끝이 없다.
저자는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이러한 돌봄에 대해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개호보험의 제도를 이용하면서 만나는 케어 매니저와도 의논한다고 했다. 한 번은 자신의 고충을 털어 놓았더니 담당자가 “돌봄으로 고생한 사람은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가 절실하게 와 닿았다는 고백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현실에서 돌봄의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결국은 요양원에 가셔야 될 때가 왔는데 부모님의 저축이나 연금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는가. 그런 현실적인 고민이 부모님이 정신을 놓고 저지르는 사고를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정말 웃을 수도 울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저자의 에세이 출간 후 3년이 지난 현재, ‘2025년의 문제’ 속에 지금껏 살았던 집에서 서서히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부모님을 돌보고 있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손에 잡히는 듯 했던 책이었다.
3. 돌봄에도 상황적 지식이 필요하다
해러웨이가 제안한 ‘상황적 지식’은 “총체화도 아니고 상대주의적 진리 주장도 아닌, 하나의 구체적 상황에 처한 오염된 몸으로 위치 지어질 수 있는 지식”(『애프터 해러웨이』 (김애령 지음/ 봄날의 박씨) 97쪽)을 가리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개념이 떠올랐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100세 시대 운운하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돌봄 생활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돌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코가지 사라의 에세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다양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늙으신 부모님 수명이 다하는 게 먼저인지, 돌보는 쪽의 기력이 다하는 게 먼저인지, 아니면 저축한 돈이 바닥을 드러내는 게 먼저인지.”(책, 256쪽) 두려움을 안고 사는 노인 돌봄 보호자의 심정이었다.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을 때 이제는 친구가 안심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친구가 부모님의 치매 발병이후의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을 알고 있는데, 상심이 크겠다는 위로는 가식적인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돌봄을 받는 이와 돌봄을 하는 이 모두가 각각 ‘당사자’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겠다. 그 목소리에서 자식 된 도리나 부모의 자격 등을 퉁쳐서 운운하는 어법은 계속해서 질문되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진리는 없다. 그저 저마다의 상황에서 자신이 몸으로 직접 겪어내서 얻게 되는 지식을 토대로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돌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산 세대가 없는 시대를 맞아서 복지 제도 마련이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의 상황을 나누고 그 속에서 가능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자신이 처해 있는 돌봄의 상황을 나누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관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도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돌봄에도 ‘상황적 지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