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성수로 갑니다.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이라는 지점을 네비에 찍습니다. 모두 쳐다보면서 “이게 뭔 말이야?”라면서 웃습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와우, 멋진 곳이더군요. 게다가 포럼이 열리는 곳은 8층 스카이라운지였습니다.
2. 오늘의 큐시트는 이렇습니다. 이런 거 우리 처음 만들어봤어요^^
3. 간식을 세팅합니다. 어디 가나 우리는 간식에 진심인 사람들입니다.
4. 속속 신청자분들이 도착하십니다.
큐알을 찍고 즉석 프린터에서 출력된 이름표를 부착하신 후 (이런 신문물, 우리는 처음 봤습니다. ㅋㅋ) 저희가 마련한 김밥으로 야외에서 식사를 하십니다. 뷰 맛집이 따로 없습니다.
5. 와, 노쇼를 걱정했는데 많이 오셨습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돌봄 경험이 있는 분과 없는 분 골고루입니다. 남성분들도 여럿 오셨습니다.
6. 6시 반에 사회자 (나이듦연구소 소장)가 오프닝 멘트를 합니다
7. 이어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박연옥 선생님이 키노트 발제를 하십니다.
한국 사회 소설 속에서 딸들이 어떻게 그려지는가? 모녀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또 딸들에게 맡겨진 돌봄의 문제를 딸들은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가? 흥미진진했습니다.
8. 이제 조별 라운드 테이블이 시작됩니다.
진지한 1조
1) K 장녀는 어쩌다 돌봄의 주체가 되었을까?
– 한국 사회에서 딸이 부모 돌봄을 하는 주체가 된 것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 며느리에서 딸로 돌봄 주체가 바뀌었지만 여성이 돌봄의 주체라는 현살은 바뀌지 않았다. 딸들에게 돌봄을 강요하는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압박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돌봄은 친밀감이 높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 친밀감이 높은 사람(가족)이 시댁에서 친정으로 바뀐 것이 아닐까? 그러나 딸로 옮겨오면서 과거에 비해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보다 평등한 것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다.
– (시댁 원가족과 같이 사는 경우) 시누이는 경도인지장애인 시어머니와 자주 갈등상황을 만든다. 딸과 며느리는 돌봄에서도 대처 방식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
– 아들(남성)보다 딸(여성)이 돌봄 주체가 되는 데는 사회에 공고히 뿌리내린 성벌 분업의 영향이 크다. 세심하게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살피는 능력을 갖도록 키워져 왔다.
– 그러나 이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보아야 할까? 여성들이 돌봄력, 역량을 갖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측면이 있다.
– 돌봄력을 여성의 특징이나 강점으로 보는 것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유교의 영향이 강한 한국의 특별한 상황이라고 봄.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아들이 돌봄주체인 경우도 많았다는 경험담.
– 또 맞벌이를 하는 경우 비용을 분담하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돌봄을 맡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시됨.
2) 돌봄의 상황, 돌봄의 기쁨과 슬픔(돌봄의 사회적 대안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주로 의견 표명)
– 돌봄 주체들이 얼마나 돌봄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안 되어 있다. 통계청(?)에 서 실시하는 국민 시간사용 조사표에 최근 돌봄 시간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가사노동, 육아 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세분화 되어 있는 반면 노인(부모)돌봄에 관해서는 세부항목이 없다. 이것은 노인 돌봄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돌봄 주체들이 돌봄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고 시간배분을 하고 있는가를 알려면 좀 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 정책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 가족돌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 영역에 대한 구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한 구별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 어머니를 돌보면서 이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돌봄의 기쁨이 있다. 이런 측면도 중요하다.
3) 우리가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어떤 돌봄을 원하는가(주로 20, 30대가 적극적으로 의견 표명)
– 자녀가 나를 돌보지 않았으면 한다. 자녀가 돌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려면 가족을 넘어서는 돌봄 공동체가 필요하다.
– 나는 동생 돌봄을 위해 비혼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에서 같이 늙어가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 제주 선흘마을의 경우 할머니들의 우정의 세계가 있다. 돌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는 것 같다. 마을에서의 공동체적 관계는 돌봄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 자식이 돌보지 않는 노후를 생각하면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 돌봄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다. 돌봄이 의무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생명존중이라는 이유로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사람을 계속 살려두는 방식이 옳을까? 의사조력 사망과 같은 이야기도 제도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기는 어렵다.
유쾌한 2조
1. 자신들은 자기도 모르게 K장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비혼장녀는 자연스럽게 돌봄을 전담하고 있었고 발제를 들으며 ‘이거 내 이야기네’라고 깨닫게 되었다. 몇 년동안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일을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여기 나오는 것도 힘들만큼 번아웃된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돌봄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감당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동생들을 못믿었던 면도 있다. 혹은 동생들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우연한 기회에 잠시 분가하면서 동생들이 돌보게 되어 걱정도 되고 잔소리도 했는데 동생들이 알아서 잘 하더라. 과도한 책임감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곧 돌봄이 내 몫이 될 것 같은데, 그동안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효녀 역할로 가스라이팅 당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좀 가볍게 생각해야 더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피해의식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직업이라 돌봄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2. 20년 전만 해도 며느리가 하던 것이 이제는 딸이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자기 엄마는 자기가 돌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부모가 며느리는 부담스러워하는 측면도 있고 딸을 편하게 여긴다.
-딸 중심으로 생활하는 신모계사회에서 육아 등에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엄마가 돌봄을 받아야 할 때가 되면 딸이 당연히 해야한다는 마음이 있다. 정서적 친밀감과 함께 도움에 대한 보답이라는 면도 작용하는데 이것이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는 지속된 여성노동력 착취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가족관계 내에서 파워가 이동하고 있는 것과 연관되지 않을까? 교육받은 여성들이 생각과 능력면에서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며느리도 자신의 부모를 돌보아야하지 않겠는가.
-전통적인 역할분담이 해체되고 새로운 프레임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것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돌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것 같다. 아직도 집에서 여성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회와 남자들의 생각이 있다.
3. 손녀가 조부모를 돌본 경험에서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30대 기혼여성은 조부모님을 돌본 경험이 힘들기는 했지만(특히 임식기간동안) 돌아가신 후에 후회는 없어서 마음이 가볍다고 한다. 내가 돌봄이 필요할 때 남편이 해줄까? 남편이 그럴 경우 아이를 키우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는 왜 시설을 거부하셨는지 궁금하다.
젊은 세대는 시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더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4.초등학교때부터 돌봄교육,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동네에 믿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방문진료 등 재택의료서비스가 가능하고 임종기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알아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의사가 아니어도 간호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가 현실이다. 요양병원 전전하는 것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개인에게 맡겨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협동조합마을이 좋은 것 같다. 여러 동아리(기체조, 합창, 요리 등)에서 어르신들이 활동하고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짓고 관계를 만들어 생활하신다. 젊은 사람들도 막걸리 동아리 같은데서 같이 하기도 한다. 딸, 며느리에 의존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육아휴직처럼 돌봄휴직도 가능해야 한다
왁자지껄 3조
1.K장녀-발제와 관련소감
-발제에도 나왔듯이 장녀들에게 돌봄이 집중되는 현실은 여전하다. 집에서 장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것에 의심은 없다. 남동생과 13년 차이나기 때문에 부모님의 상태를 계속 관심있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울증이 와서 상태가 심각해져서 약물치료까지 받았다. 현재는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어머니를 보살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풀타임으로 복귀하면 어머니 상태는 다시 나빠질 것이다. 나의 커리어와 돌봄사이에 고민이 된다.
-외동딸이라서 차선이 없다. 하지만 외동아들은 돌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60대 이후 남성도 돌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0대 대학원생인데 돌봄 관련 연구 중이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는 당부를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자라서 은연중에 당연히 내가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주입되어 있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장녀들은 그렇게 교육받았다고 한다. 문화적으로 대물림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2.돌봄의 기쁨과 슬픔
-돌봄에 대해 돈 이야기를 솔직히 할 때가 되었다. 70대 아버지가 90대 어머니(자신에게는 할머니)돌보느라 은퇴 자금을 거의 다 썼다.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보면서 간병인 24시간 쓰는데 거의 다 들어갔다. 최근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아버지 돌봄이 나에게 주어질 상황인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시니어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60대 분들이 노인 일자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그만 두는 경우를 들어보면 90대 부모님 돌봄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노-노 케어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20대다. 내가 집에서 시간 이용이 자유로우니 조부모님에게 일이 생기면 나에게 전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도 아니어서 의무감으로 해야할 때 고민이 된다.
3. 나의 노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머니가 고향에서 혼자 사시는데 친구분 네 분과 거의 매일 만나면서 지내신다. 어머니와 친구분들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이다. 그 확장으로 나도 나이 들면 가까운 사람들과 모여 사는 방법을 생각한다.
-까칠한 성격상 사람들과 모여서 살기 어렵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만 된다.
-결혼의 방식이 아니어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20대다. 그래서 사람들과 모여서 요리를 함께 해 먹는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모여서 오이 소박이를 만들었고, 만두, 송편도 시도해 봤다. 이렇게 1000명 정도를 가볍게 아는 관계를 조직하면 나이 들어서도 연결되어 살 수 있지 않을까.
-80대가 넘으면 병원에 가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4. 돌봄과 관련 정책 등의 아이디어
-소규모로 공동체를 꾸려보고 싶은 지원자를 대상으로 토지든 건물이든 지원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육아 휴직처럼 돌봄 휴가제를 정해서 최장 1년까지도 유급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돌봄도 노동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위한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청년주택처럼 노인주택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9. 여기서 잠깐, 우리가 준비한 퀴즈 한번, 모두 풀어보실래요?
아래 만화에서 오른쪽 맨 아래 지워진 부분, 엄마는 속으로 뭐라고 말을 했을까요?
10. 준비된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었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포럼에 참여하셔서 귀한 경험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태윤, <내게 기대요> ,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에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