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 후 메모했던 내용이다. 엄마는 건강에도 별 문제가 없어보였고 이제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확실하게 마음먹은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아침이면 마당에 나가 화초들 상태를 살피고 온실에 가서 물을 주고, 상추 같은 쌈 채소 씨를 뿌려 가꾸면서 시간을 많이 보내셨다. 집에 들락거리는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셔서 고양이 밥 주는 일을 부탁했더니 매일 일삼아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고, 한참 동안 새끼 고양이들 노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셨다. 집 안에 계실 때는 줄곧 TV를 보셨는데, 엄마가 보는 TV프로는 늘 뉴스였다. 정치인들 행태를 보며 욕(!)도 하시고,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다. 평소 뉴스를 잘 안보는 나는 엄마를 통해 뉴스를 전해 듣곤 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배달되는 <공무원연금> 소식지를 꼼꼼히 읽으셨다.
파킨슨병 약을 드시고는 있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엄마는 혼자 계실 때도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 하셨다. 매일 아침 혈압을 재고 혈압이 조금만 높아도 약을 드셨다. 하루만 화장실에 못가도 변비약을 드시고 건강보조식품도 이것저것 챙겨 드셨다. 약을 너무 쉽게 드시는 것 같아 한마디씩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믿을만한 의사를 주치의로 정해 두 달 간격으로 엄마를 모시고 내과에 다녔다. 기본적인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엄마가 걱정하시는 것에 대해 상담했다. 의사는 엄마가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다고 했고 건강염려증 엄마를 잘 안심시켜주었다. 다행히 엄마는 그 의사를 믿었다.
시간에 대한 엄마의 불안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일 병원에 가는 날이라고 얘기하면 엄마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기다렸다. 예약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보니 엄마의 뇌는 이때부터 이미 문제가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예정된 약속에 대해 미리 얘기하지 않고 닥쳐서 말씀드리는 방법을 배웠다.
다른 사소한 일들이, 그러나 엄마의 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나랑 같이 나가서 렌지후드 청소용 세제를 사오시고도 그 세제를 왜 사왔는지 잊어버리셨고, 엄마네 집 우편함에서 가져온 광고용 명함을 보고 진지하게 전화를 걸으셨다.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세금 낼 일이 있거나 가스검침원이 다녀갔다는 문자를 받으면 바로 처리해야 하는데 하지 못해서 심하게 불안해 하셨고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계속 집착했다.
걱정이 전혀 안된 건 아니지만 나는 엄마가 당신 집을 떠나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0년도 더 전에 주식 산걸 기억하고 또 타이밍에 맞춰 팔 줄도 아는데 무슨 걱정? 이런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보건소와 병원에서 한 인지 검사결과가 경도인지장애로 특별히 문제될 건 없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보건소에서 준 색칠스크랩북을 밀쳐놓았다. ‘왜 나한테 이런 걸 하라는 거야?’ 이런 표정으로.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 엄마네 집에 있던 <간호학사전>을 가져 오신 엄마. <동의보감>만큼 두꺼운 책이다. 파킨슨병 부분이 접혀져 있었다. 엄마는 스스로 자신의 병에 대해 공부할 생각을 할 만큼 괜찮은 상태였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의심
엄마는 자신만의 경제관념이 확실하다. 내가 벌지 않은 돈은 내 돈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비싸도 사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은 공짜도 싫다. 내야 할 세금이나 공과금은 절대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빚은 10원도 있어서는 안 된다. 딸이라도 줄 돈은 주고 받을 돈은 받는다. 돈은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 이런 생각이라 돈 욕심도 별로 없고 돈에 매여 살지도 않는다. 내가 본 엄마는 그렇다. 정년퇴직 하고 나서 엄마가 지갑을 딱 닫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수입이 없으니 안 쓰겠다는 거였을 뿐이었다.
언젠가 엄마랑 물건을 사러 갔는데, 가게 주인과 엄마가 서로 흥정을 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기분나빠하며 “됐어요. 물건은 당신 거고 돈은 내거니까” 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물건 값을 너무 많이 깎아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많이 깎아주면 좋지, 왜? 당신이 생각한 적정한 가격이 있었는데 너무 많이 깎아주니까 물건의 가치가 떨어져보여서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런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고 얼마 지난 후부터 자꾸 가방을 열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걸 보게 되었다. 가방에는 통장이 몇 개 들어있었고 현금 약간과 신분증, 도장이 든 지갑이 있었다. 엄마는 이 가방을 장소를 바꿔가며 숨기곤 했다. 어느 날은 미국 삼촌이 보낸 전신환(미국에 사는 삼촌이 일 년에 몇 번씩 전신환으로 달러를 보낸다. 통장으로 보내시라 해도 삼촌도 노인인지라 계속 전신환을 고집해서 은행에 가서 바꿔야 하는데 해주는 은행이 별로 없다.)을 내가 가져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셔서 정말 내가 보관하고 있는지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 전신환은 엄마 옷장 속에서 찾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눈까지 흘기며 이렇게 말한다. “가져갔으면 가져갔다고 해.”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좀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까지 안 주무시고 소파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엄마가 입을 삐쭉거리면서 말했다. “너 내 신분증 갖고 어디 가서 뭐하고 온 거냐?” 그날 엄마는 나에게 배달된 외화통장 안내서를 당신이 뜯어보았고(당시 환율이 너무 떨어져서 아마 관련 안내서를 보냈던 것), 내가 당신 외화통장을 건드렸다고 오해했다. 나는 왜 딸을 못 믿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엄마의 인지장애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많이 언짢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했고 엄마는 알아들었다. “엄마 나한테 안 미안해요?” 미적거리던 엄마, 눈길을 피하며 “쪼끔 미안하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엄마, 큰 소리로 화내서 미안해요.” 엄마나 나나 감정 표현 못하는 건 정말 못 말린다. 신분증은 다음 날 동사무소에 가서 다시 만들었고 잃어버린 신분증은 한참 지나서 엄마가 꽁꽁 숨겨둔 지갑 안에서 다시 찾았다.
그래도 엄마는 나랑 같이 은행을 다니면서 자신의 통장을 스스로 관리했다. 통장을 정리하고 현금을 찾고 전신환을 바꿔서 외화통장에 넣고. 그리고 거의 매일 통장을 꺼내서 한 번씩 살펴보곤 했다.
돈 욕심도 별로 없는 엄마가 왜 이렇게 돈에 집착할까? 실로 나는 혼란스러웠다. 의심과 불신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고, 그들에게는 이것이 결코 사실무근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엄마는 치매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무기력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되어갈 때 쯤 엄마는 자주 몸이 많이 붓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래도 화장실 혼자 다니시고 식탁에 앉아 식사도 혼자 하실 수 있는 정도라 약간 나빠지는 정도라고 생각했고 많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가 마당에 나가 있는 시간이 줄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곧바로 밖으로 나가 화초들을 살피고 물도 주고 하시던 분이 “엄마 화초에 물 안 주세요?” 하면 그제서야 나가서 물을 주셨다. 물을 주고 나서 호스에 연결된 수도꼭지 잠그는 걸 잊어버려서 하루 종일 물이 넘친 적도 있다. 고양이 밥 주는 것도 시들해졌다. “엄마 고양이들 왔는데?” 해도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바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손주가 사온 200피스짜리 퍼즐은 처음에 재미있어하며 하나 완성했는데, 그 다음 퍼즐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TV가 켜져 있었지만 잘 안보셨고 <공무원 연금>이 배달되어도 뜯어보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매사에 무관심해 보였다. 꽤나 깔끔 떨던 사람이 씻는 것도 싫어하고, 얼굴 표정도 화난 사람처럼 무표정해졌다. 원래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말 수도 많이 줄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렇게 저렇게 물어봐도 별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파킨슨병의 증상은 주로 몸에 문제가 생긴다. 손이 떨리고 운동이 느려지고 근육이 강직된다. 운동이 느려지는 증상에는 걸음이나 손동작이 느려지는 것 뿐 만아니라 말이 느려지고 얼굴표정이 없어지는 것도 포함된다. 자세도 구부정해지고 종종 걸음으로 걷는다. 어느새 엄마에게 파킨슨병 증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2개월에 한번 씩 정기적으로 신경과에 다녔고 그때마다 엄마의 증상을 의사에게 이야기 했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그냥 파킨슨 증상으로 당연하게 여겼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몸이 붓는 것에 대해서만 혹시 신장이 안 좋아진 건지 모른다고 해서 검사해보았는데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의 의심증세가 심하게 나타났을 때도, 그리고 상당히 무기력해졌을 때도 인지검사결과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엄마, 나 겁나요
파킨슨병 증상에는 운동 기능과 관련된 것 외에 비운동성 증상도 동반된다. 비운동성 증상에는 자율신경계 증상(기립성 저혈압, 소변장애, 성기능 장애), 위장관 장애(침 흘림, 삼킴 장애, 변비), 인지기능 장애(경도 인지 장애, 치매), 우울, 불안, 충동 조절 장애, 정신과적 증상(환각, 망상), 수면 장애, 통증, 피로, 후각 장애 등이 있다고 한다.
엄마는 가끔 변비가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고, 무표정하고 무기력해진 엄마가 우울증인가 싶어 의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아주 적은 양의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었다. 가끔 ‘딴 정신’일 때가 있었지만 인지검사 결과는 여전히 문제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도 있고 파킨슨병도 있으니 서서히 나빠질 거라 예상은 했지만 갑자기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 약봉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필요에 따라 스스로 넣고 빼고까지 하면서 약을 드시던 분이 며칠 째 약을 안 드셨던 것이다. 그동안 잘 챙겨 드시는 줄 알고 무심했던 나는 당장 약상자를 사서 요일별로 약을 챙겨 넣어 주방 식탁으로 옮겨 놓고, 신경 써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을 챙겼다.
게다가 엄마의 배변실수가 잦아졌다. 몸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빨리 움직일 수 없어서 그러려니 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수면장애도 나타났다. 어느 날은 낮 시간도 내내 주무시고, 또 다른 날은 밤에도 잠을 못 주무셨다. 가끔이지만 맥락 없는 말을 하시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를 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한 달 남은 병원 예약을 당겨서 진료를 받으러 갔다. 그동안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의사는 똑부러진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뇌 MRI를 다시 한 번 찍어보자고 했다. 결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의사의 답변이었다. 그런데 인지검사 결과는 나빠졌다. 참 이상도 하다. 인지상태가 안 좋았을 때는 검사결과가 별 이상이 없더니만 몸 상태가 안 좋아지니 인지검사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
의사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된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별다른 조처도 하지 않고 처방도 바꾸지 않았다. 분명히 병세는 깊어져 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나는 다른 병원을 예약했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달 이후에나 진료가 가능했다.
의사는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은 해주었다. 나는 바로 의사소견서를 받아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했고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집을 방문하여 현장조사를 했다. 등급판정위원회가 열렸고 요양 등급이 나왔다. 3등급.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공단 지사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장기요양 인정서, 이용 계획서, 요양보호센터와 복지용품 안내 자료 등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가등급이 좋은 요양보호센터 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골라 바로 찾아갔다. 당장 필요한 환자용 침대와 보호용구 몇 가지를 신청했다.
엄마 때문에 힘들었던 감정도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름 잘 지내고 있었는데, 두세 달 사이에 갑자기 엄마의 몸에 급격한 변화가 왔다. 괜찮겠지 하며 긴가민가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파킨슨병이 이렇게 빨리 진행된다고? 나는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좀 더 세심하게 엄마를 살피고 그때그때 확실하게 판단하고 대처했어야 했는데 무엇을 놓친 것일까? 엄마를 돌보겠다고 모셔와 놓고 이런 상황을 만든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고 속상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두려웠다. 엄마를 돌본다는 사실로 인한 확실한 긴장감이 나를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