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2026, 병오년엔 불 끄며 삽시다
에디터 이희경
1. 2025년에는 뜨거웠구나!
2025년은 어떤 해였나? 일단 계엄 이야기는 너무 크기 때문에 패스. 그다음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우선 의성 산불. 아직도 후포에 사는 후배 어머니 조문하러 다녀오는 길에 목격했던, 끝도 없이 이어지던 불타버린 나무와 새까맣게 변한 산의 풍경이 선연하다. 그리고 2024년에 이어 역시 너무 더웠던 여름. 펄펄 끓었다. 강릉의 가뭄도 있었다. 한 도시가 유례없는 가뭄으로 재난 사태가 선포되고 제한 급수가 실시되고 시민들은 빨래와 샤워조차 마음대로 못 한다는 소식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난 여기서 물을 이렇게나 펑펑 쓰는데, 우리가 같은 한국에서 사는 거 맞아?
그리고 부동산 대신 주식으로 부자를 만들어주겠다는 대통령이 등장한 이래, 청년도 노동자도 주부도 직장인도 모두 주식, 코인에 ‘몰빵’했다. 그야말로 “장이 활활 탔다.” 아, 쿠팡 사태도 있다. SKT에 이어 쿠팡에서 2025년 6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약 3,370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다는데, 무엇보다 ‘3,370만’이라는 숫자가 정말 놀라웠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인구가 약 4,300만 명이니 거의 80%가 쿠팡으로 무엇인가를 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구 기준으로 따지면 거의 모든 집에서 쿠팡을 사용한다. AI 이슈도 뜨거웠다. 내 유튜브에는 “5년 후엔 이런 인간은 살아남지 못합니다”는 식의 동영상이 끝도 한도 없이 뜬다. (솔직히 한, 두 번 보기도 했다)
연말쯤엔 저속노화 이데올로기를 책, 방송, 유튜브, 제품, 광고 등으로 가열차게 밀어붙이며 승승장구하던 저속노화 선생님의 드라마틱한 몰락이 있었다. (물론 여기서 사실적 판단이나 법적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상적 과로에 내몰리는 연예인들의 ‘주사 이모’ 사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대전 모 유명 빵집의 ‘딸기 시루 오픈런’ 사태까지, 2025년에는 기후도 인간도 기술도 뜨겁고 빠르게 멈추지 않고 불타오른 해였다.
2. 나라고 예외는 아니야
이 ‘불타오르는’ 세태에서 사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우선 쿠팡. 나는 2024년까지는 쿠팡을 이름만 알았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1년 전 이사를 하면서 우연히 쿠팡을 사용하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우선 식품부터 화장품, 문구까지 없는 게 없었다. 둘째, 아침에 주문하면 심지어 저녁에 집 앞에 도착했다. 그동안은 장보기는 동네 창고형 유기농 매장에서, 문구는 동네 ‘드림*포’에서, 공구나 가드닝 소품 등은 동네 ‘다*소’에서 구입했다. 운동도 할 겸 주로 걸어 다녔다. 그런데 “빠른, 빠른” 원스톱 쇼핑에 맛을 들여보니, “이건 정말 위험하다”라는 처음의 신호는 뭉개지고, 그 자리를 “이건 정말 편리하다”라는 중독에 가까운 감정이 차지해 버렸다. 대가는? 양심의 가책, 운동 부족, 체중 증가였다.
다음 AI. 3년 전에 챗GPT가 처음 등장하고 공동체에서 이 이슈로 함께 공부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소위 “세종대왕이 맥북을 던진 사건에 대해 알려줘”라고 알려진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 문제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AI를 놀려먹는, 그래서 그 애가 얼마나 바보인가를 증명하는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했다. 이후 난 그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올해 신유물론 페미니스트이자 양자물리학자인 캐런 바라드를 공부하면서 챗GPT를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번역본에 문제를 느낄 때마다 그 부분만 복사하여 챗GPT에 번역을 시켜보니 너무 잘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깜짝 놀랐다. 물론 몇 가지 번역어가 적절치 않았지만, “앞으로 ‘representation’은 ‘재현’으로, ‘agential cut’은 ‘행위적 절단’으로 번역해 줘”라는 식으로 피드백을 주며 프롬프팅을 했더니, AI가 이를 맥락에 반영하여 다음부터는 더 유려한 번역을 내놓았다. 결국 몇 달 뒤, 나는 챗GPT를 유료 결제했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조교”로 쓸지 (조한혜정), “도구이자 파트너, 스승”으로 삼을지 (김봉석 문화평론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누가 ‘제미나이’가 낫다고 하면 흔들리고, 누가 ‘퍼플렉시티’가 야무지다고 하면 또 흔들린다. AI 앞에서는 ‘흔들리는 갈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역시 올해, 자주, 아침엔 ‘오쏘몰이윤’, 점심엔 쌍화탕, 저녁엔 갈근탕을 ‘주사 이모’ 대신 삼아 끝도 없이 쏟아지는 과업을 쉼 없이 처리하면서 몸을 불살랐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3. 병오년엔 두 번에 한번은 참아보자
부처님의 초기설법 가운데 ‘불타오름 경’(쌍윳따니까야 35:28)이 있다.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도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그 설법에서, 부처님은 “일체는 불타고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왜일까. 다시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의해 모든 것이 불타는 것이고 인간은 그 불에 휩싸여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오래전에 부처님은 요즘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불금’의 ‘불’, 즉 “불타오른다”는 그 말이, 열정으로 위장된 탐욕, 성장이라 부르는 과열, 속도를 미덕으로 만드는 습관의 다른 이름이라고 간파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청정한 수행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해탈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026년은 또 하필, 병오년이다. 하늘의 병화(丙火)와 땅의 오화(午火)가 만나는 해라, 불(火)이 겹친다. 본래 명리학에서 불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생명의 중심을 잡고 내면을 비추는 고요한 임금의 불이 ‘군화(君火)’라면, 그 명을 받아 실제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역동적인 재상의 불이 바로 ‘상화(相火)’다. 군화가 흔들림 없는 생명의 빛이라면, 상화는 뜨겁게 타오르는 생존의 열기다. 오화는 대표적인 상화다. 위로 솟구치고, 가볍고, 경거망동하기 쉬운 불이다. 눈앞의 자극에 쉽게 발화하고, 한 번 붙으면 주변까지 태운다. 너무 빨리 달아오르고, 너무 쉽게 지쳐버리는 오화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인간의 세속적 삶이 애초부터 불타고 있으며, 근대에 들어 성장 이데올로기와 하이테크놀로지 때문에 더 불타는 데다가, 올해는 명리상 더더욱 불타오르는 운세라면, 정말 모두 타 죽을지도 모르는 것 아닐까? 그래서 2026년 양생의 화두는 ‘불 끄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완전히 끄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부처님 수준의 청정수행이 누구나 다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소심하게 제안하는 양생의 팁은 두 번에 한 번, 세 번에 한 번쯤이라도 불을 꺼보자는 것이다. 뭘 사고 싶을 때, 뭘 보고 싶을 때. 뭘 하고 싶을 때, 어딘가를 가고 싶을 때, 잠시 참아보는 연습, 그 욕망의 불을 잠시 식히는 연습. 한 번쯤, 내 안의 불이 숨을 고르도록 두면서 최소한의 온기만 남겨두는 연습. 올해는 모두 그걸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해피 뉴이어! 새해엔 양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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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빈곤 1위’의 현주소, 동자동 노인들은 어디로 증발했나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 OECD 1위. 노인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층.”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건조한 숫자 뒤에서 실제 이 가난한 노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노인 빈곤의 민낯을 가장 잘 알려주는 곳 중의 하나가 소위 동자동 쪽방촌이다.
서울역 건너편, 화려한 빌딩 숲 뒤에 가려진 동자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시간이 고인 공간’이다. 그리고 2015년 철거 당시를 기준으로 볼 때 이곳 거주민의 71.7%는 60대 이상의 고령층이다. 하지만 주민의 약 70%가 노숙 경험이 있는 현실에서 볼 때, 평균 거주 기간이 10년을 상회할 정도로 동자동에 머물렀다는 것은, 그나마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유일한 ‘집’이었다는 뜻이다.
동자동의 일명 ‘노란집’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곳은 2024년 김건희가 방문해 도배 봉사를 하며 홍보 사진을 찍었던 건물인데, 사실 10년 전 주민 45명을 한꺼번에 길거리로 내몰았던 ‘강제퇴거’의 현장이었다.

사진 :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이 2015년 강제퇴거당한 주민 45명의 경로를 10년간 추적한 결과를 보면 강제퇴거 주민의 절반 이상(55.5%)이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생존 신호의 단절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노인 빈곤의 종착역인 동자동에서 노인들은 여전히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154조 원의 치매 머니를 걱정하고 AI 돌봄 로봇을 논하는 시대라지만, 서울 한복판 쪽방촌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 아침 내 방문을 두드려줄 단 한 사람의 기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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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안 보이면 문은 열어봐… 아무도 모르는 죽음이 두렵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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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봄 노동
▶할머니가 사라지면 누가 할아버지를 돌볼까? (경향신문)
-한국은 고령의 아내가 남편을 홀로 돌보는 ‘성별 불평등’과 ‘독박 돌봄’이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연구자 장숙랑 교수는 이를 ‘자연적 노예’ 상태에 비유하며, 가족에게만 전가된 돌봄 노동이 결국 여성의 사회 참여를 저해하고 (여성 배우자 없는) 노년의 삶을 시설로 내몰고 있다고 경고한다.

자료:경향신문
-돌봄과 관련하여 AI 기기 보급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 데이터의 통합’이다. 가족, 이웃, 의료진이 건강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돌보는 사람이 겪는 막막함과 노동 강도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망의 확장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이웃’의 범위를 넓히고, 공공이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때 지속가능한 돌봄 사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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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비는 낮아져도 ‘간병인’은 사라지는 역설 (조선일보)
-간병비 급여화로 환자 부담은 줄지만, 정작 현장에선 3교대 인력을 구할 길이 없는 ‘간병 절벽’에 직면했다. (2028년 11만 명 부족 예상)
-그간 한국 간병시장을 지탱해온 중국 동포들마저 고령화와 업무 기피로 현장을 떠나고 있다.
-외국 인력 수입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다. 자격증을 따고도 열악한 처우 때문에 현장을 떠난 200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돌아올 수 있게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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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년차 베테랑 요양보호사입니다 (일다)
“나는 8년 차 베테랑 요양보호사이다.” 치매 어르신의 욕설과 도둑 취급을 웃으며 넘길 만큼 단단해졌지만, 경력과 상관없이 시급은 늘 제자리이고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내일부터 오지 마”라는 한마디에 즉시 실업자가 되는 극도의 고용 불안이다. 돌보던 분이 입원하거나 마음을 바꾸면 예고 없이 일터를 잃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 채 다음 매칭을 기다린다. ‘아줌마’라 불리며 무시당할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일상과 생명에 온기를 불어넣는 필수 노동자라는 자부심으로 현장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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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한겨레)
연명의료중단과 관련하여 정부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말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돈으로 생명의 시간을 흥정할 것이 아니라, 치료를 멈춘 뒤에도 고통 없이 머물 수 있는 호스피스 등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써야 한다.
■ 지역통합돌봄
▶시설 수용을 넘어 ‘존엄한 자립’으로: WHO의 경고 (한겨레)
-한국은 요양병원 병상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치료가 필요 없는데도 갈 곳이 없어 입원하는 ‘사회적 입원’이 만연해 있다. 장효범 WHO 전문관은 시설 수용을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 여기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고착되는 상황을 우려하며, 노인을 사회적 ‘부담’이 아닌 ‘권리를 가진 구성원’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장효범 WHO 전문관,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WHO가 제안하는 대안은 시설 중심의 고비용 구조에서 벗어나, 노인이 살던 곳에서 자립적 일상을 유지하는 ‘탈시설’과 ‘통합돌봄’이다. 단순히 시간을 늘리는 방문요양을 넘어 이동 지원, 주치의 제도, 다학제 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노인과 돌봄 제공자의 목소리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때, 비로소 효율성이 아닌 ‘존엄’ 중심의 돌봄 체계가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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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통합돌봄법에 관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라포르시안)
-국민의 84%는 노후에 시설이 아닌 ‘살던 집’에서 머물기를 희망하지만, 정작 그 제도적 기반이 될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에 대해서는 54%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공공 돌봄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돌봄이 필요한 가구의 62%는 여전히 가족이 직접 간병을 책임지고 있다.
-국민의 92%는 돌봄 정책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며, 83%는 차기 지방선거에서 ‘돌봄 정책 추진 의지’를 후보 선택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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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으로 간 대학병원 교수, 지속가능할까? (경향신문)
-응급의학 권위자 임경수 교수(68)가 정읍 고부보건지소에 부임한 후, 월 5건이던 진료가 296건으로 60배 늘었고,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포기했던 고령의 주민들이 동네 보건지소에서 ‘대학병원급’ 1차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임소장처럼 4억 연봉 대신 4,300만 원의 보수와 옥탑방을 택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현실에서 시니어 의사 채용률은 수요 대비 24%에 불과하다.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경제적 유인과 연금 제도 개선 등 정책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 ‘탈시설 존엄 돌봄’이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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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개의 나이듦
▶돌봄의 대상을 혈연 밖으로 확장할 때 우리 모두의 노후가 더 안전해진다
-네덜란드와 대만 등 인권 선진국에서도 성소수자 노인들은 돌봄 시설에 들어갈 때 정체성을 숨기며 다시 고립되는 ‘벽장’으로 돌아간다. 혈연 중심의 기존 복지 체계는 이들의 ‘선택된 가족’을 인정하지 않아 고령 성소수자들을 빈곤과 외로움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동성혼 법제화는 사회복지 기관들이 ‘성소수자 수급자’의 존재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핑크 패스키(성소수자 친화 인증)’처럼 입소 서류 양식을 바꾸는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대만에서는 법제화 직후 장기요양 기관들이 성소수자 단체를 초청해 ‘성소수자 커플 서비스’ 교육을 자청하는 등 실질적인 인프라 개선이 뒤따랐다. 이는 동성혼이 단순히 결혼할 권리를 넘어 사회 전체의 돌봄 안전망을 보완하는 ‘노인 복지 정책’임을 보여준다.
🔗무지개노인도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위한 노력(일다)
■풍속도
▶노인들은 어디에서 일상을 보낼까? (오마이뉴스)
-도심 속 소외 상업 공간은 회전율을 위해 ‘노시니어존’을 내걸고, 대표적 쉼터인 탑골공원마저 오락 행위가 금지되면서 노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들에게 카페는 문턱이 높고, 결국 노인 95%가 하루 평균 4시간 가까이 TV만 시청하며 정적인 휴식으로 시간을 때우는 실정이다.
-노인이 직접 바리스타로 일하는 ‘노노카페’처럼, 노인을 단순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 세우는 시도가 필요하다. 2050년 노인 인구 40% 시대를 앞두고, 복지관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가 노인이 일상적으로 머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고령 사회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AI 사랑방’의 독특한 사례 (동아일보)
-병원도 돌봄 시설도 부족한 포천 관인면에 ‘AI 사랑방’이 문을 연 후 1년 만에 3,000명이 다녀갔다. 고령자들은 스마트 테이블로 게임을 하고 교육용 키오스크를 배우며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
-이밖에도 경기도는 ‘AI 돌봄망’을 다양하게 확대하고 있다.
🖇️ 기타
▶치매 발병 전 스스로 후견인 지정, 한국 229명 vs 일본 12만명(동아일보)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 이용자가 일본은 12만 명에 달하지만, 한국은 고작 229명뿐이다. 복잡한 서류와 수백만 원의 비용 탓이다.

자료: 동아일보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일본처럼 지자체가 후견인 지정을 ‘원스톱’ 지원하고, 소액 자산가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신탁’ 도입이 필요하다. 재산 보호와 돌봄을 연계하고, 금융 시스템이 치매 노인의 자산을 실시간으로 보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족의 짐을 덜고 환자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에디터스 픽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 디디에 에리봉(지음) 이상봉(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
평생 노동계급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따라가며, 노년과 돌봄, 취약한 몸, 공공 요양과 죽음의 문제를 사유한다. 개인적 회고에서 출발해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적 궤적, ‘노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집단과 대변의 정치로 논의를 확장한다. 계급과 젠더, 나이 듦이 교차하는 지점을 통해 사회 구조가 개인의 정신과 신체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보여준다.

▶어떤 죽음의 방식- 사랑과 상실의 고고학/ 세라 탈로(지음), 정지인(옮김) / 복복서가 /2025
죽음과 매장을 연구해온 고고학자 세라 탈로가 동료이자 배우자의 스스로 택한 죽음을 통과하며 기록한 회고록이다. 진행성 신경질환으로 점차 자신을 잃어가던 마크를 돌보던 시간, 그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하고자 기억의 지층을 더듬는 과정이 학문적 통찰과 맞물려 깊은 울림을 남긴다. 2023 영국 왕립 인류학회 공공 인류학상을 수상하며 죽음·상실·사랑을 성찰하는 새로운 방식의 회고록으로 주목받았다.

▶ 굿바이 준 / 케이트 윈슬렛 감독 / 케이트 윗슬렌 헬렌 미렌 주연 / 미국 / 넷플릭스 /2025년
케이트 윈슬렛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2025년 작품으로, 가족과 죽음, 화해를 다룬 드라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어머니인 준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그녀의 성인 자녀 네 명과 아버지가 병원에 모인다. 오랜 시간 서로 소원했던 형제자매들은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워진 현실 앞에서 각자의 감정, 미해결된 갈등, 그리고 복잡한 가족 관계를 마주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사건으로 삼지만, 그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관계의 균열과 회복, 그리고 이별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흐름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