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 김정대 지음, 바오출판사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
김정대 신부는 영화 <친구(2001)>와 <써니(2011)>의 비교를 통해 남자들의 친구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지적한다. <써니>에서 칠공주로 나오는 각 인물들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때문에 학창시절 뿐 아니라 훗날 다시 만났을 때에도 각자의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대방에게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해갈 수 있었다. 반면 <친구>에서 보여지는 우정은 이미 설정된 ‘친구관계’라는 역할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며, 다름이 만들어 낸 서열 속에서 친구관계는 더욱 기능적으로 정형화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남자들은 서로 가깝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취약함이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반도체 회사의 엔지니어였던 그는 노조의 파업 때 회사로부터 구사대 역할을 강요받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에 따르지 않았다. 이 일로 인사위원회로부터 강도 높은 징계가 내려지면서 회사를 그만 두고 2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노동운동을 하는 사제가 되었다. 김정대 신부는 다소 과격하고 과장되게 느껴지는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노동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을 동반했는데, 위기 상황에서 남성들은 더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거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 학문적 성찰의 시작이었습니다.” 쌍용차 사태로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것을 보았기에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물론 삶의 환경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는 어렵지만 기륭전자의 투쟁 현장에서 여성들은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상상력으로 싸움을 이어갔다는 점이 그에겐 인상적이었다.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늙어가면 고립된 삶 속에서 우울감과 외로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다. 남자가 10만 명당 38.3명으로 여자의 16.5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남성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그 비율이 증가하는데 2023년 기준, 우리나라 50대 남성의 자살률은 10만 명 당 47.5명, 70대 남성의 자살률은 63.9명, 80세 이상 남성의 경우 115.8명으로 집계됐다. 노인 자살에 대한 원인은 물론 복합적일 수 있으나 우울, 외로움, 고립감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무엇이 한국의 남자 노인들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김정대 신부는 그 원인을 한국의 사회문화적 전통과 경직성, 권위주의 등에서 찾기도 하지만 남자들의 중요한 문제로 ‘친밀함‘이라는 감정의 결여를 꼽는다.
남성들이여, 성인영성을 기르자
그는 이 책의 기획의도를 여성성이 강한 시대에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라고 밝혔다. 여기서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는 구태의연한 남성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남성성 만들기를 의미한다. 한국남자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의해 어떻게 한국남자가 만들어지는지 설명한다. 유교문화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남자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권위주의는 높은 지위와 인정에만 관심을 가질 뿐 내적 성찰이 부족한 남자를 만들었다. 사회적 지위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착각하는 남자들이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 중년기에 ’나다움‘을 찾아야 하며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한 성인영성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인영성을 기르기 위해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관계의 상호성, 경계에 대한 존중과 친밀함, 그리고 감정의 중요성이다.
상호성(Mutuality)의 어원은 ’변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mutare)에서 파생되었고 선의의 교환 그리고 친밀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상호성 안에는 사람들 간의 동등함, 함께 추구하는 가치, 신뢰, 존중, 보살핌과 같은 배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화를 통해 성숙해진다. 저자는 상호성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변화한다고 말한다.
경계(boundaries)에 대한 존중과 친밀함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권위를 내세워 경계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의 경계가 존중되어야 상대방도 자신을 개방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서로의 친밀감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친밀함의 속성은 공감, 개방성, 취약함, 그리고 조건없는 사랑으로 성숙한 영성의 핵심이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감정.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은 내적 자신과 연결될 수 없고 타인과도 공감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권위주의 문화 아래서는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를 무의식적으로 억눌러버리는대신 상대적으로 만만한 아내와 자녀에게 폭력적으로 투사되는 경향이 있다.외향적이고 지능이 높고 적응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호하는 성취지향적 문화에 길들여진 남자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관계 보다는 목표의 성취였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서툴고 주변사람들과의 친밀함도 결여되어있다고 지적한다. 영적인 삶을 추구하려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분노의 감정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변화를 위한 실천적 과제 – 요리하는 남자가 되자
사회적 페르소나에 갇혀 ’나다움‘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타인과 친밀감을 쌓지 못하는 남자들을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 그는 의식성찰, 스토리텔링, 즉흥극, 요리교실, 목공교실을 제안한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천은 요리교실이다.
그는 우리 사회기 삶을 생존이라고 가르쳤을 뿐 삶의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고 짊어지는 것을 삶의 가치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그래서 삶에 기념이 없고 슬픔을 만져주는 위로도 없으며 인간적인 나눔이 없다는 것이다. 음식 나눔이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음식나눔은 손님을 환대하는 좋은 수단이고 서로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가 요리교실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음식을 만들려는 마음이며, 참가자들이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타인의 반응과 자신의 마음에 올라오는 느낌을 알아채기 위한 관심과 예민함이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감정을 아는 능력, 감성을 키울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기꺼이 음식을 만들려는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에게 ’요리‘는 일종의 자립의 기술로 이해되었다. 그 기술을 자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향해 사용하는 것이나리 생각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김정대 신부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인천에서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노동자를 위한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부평과 주안공단, 남동공단에서 퇴근하는 중년 노동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오다가다 들르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베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가 요리교실을 강조하는 데에는 그러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진 : 한겨레신문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도 환대의 마음으로 요리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 준 사람들이 있다. 한명은 현재 나와 함께 세미나를 하고 있는 60대 남성이다. 그는 한달에 한번 정도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한다고 했다.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표정에서 이미 행복감이 느껴졌다. 또 한명은 나의 시아버지이다. 시누이가 근처에서 홀로 사시는 양가의 아버지들을 위해 문화센터의 요리교실에 등록시켜 드렸다. 서로 말벗도 하시면서 요리의 즐거움도 배워보시라는 의도였는데, 나의 시아버지(P)에게는 매우 성공적인 이벤트였으나 그녀의 시아버지(K)에겐 그러하지 못했다. P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동네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요리를 배워 당신으 친구들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즐거워했다. 하지만 K는 평소 집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주변에 친구들이 별로 없는 성격이었다. 요리교실에서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중간에 그만두고 말았다. K에게는 친구를 만드는 일이 먼저였던 것 같다.
심리학자 서은국은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느끼는 빈도가 중요한데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환대의 마음까지 더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에 이미 환대가 녹아있고, 그 반응을 살피는 과정에서 감정의 섬세함이 길러진다. 환대, 친밀함, 우정의 식사, 이 보다 더 좋은 솔루션이 또 있을까. 요리하는 할아버지의 탄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