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발성 알츠하이머
영화는 앨리스의 50번째 생일축하 장면으로 시작한다. 뉴욕에 사는 그녀는 컬럼비아대학 언어학 교수다. 남편도 같은 대학 의대 교수, 큰 딸은 법대를 나왔고 아들은 의대생, 막내딸은 대학에 가지 않고 연극을 한다. 앨리스는 UCLA에서 초청강연을 하는데 중간에 ‘어휘’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조깅을 하는데 자신이 늘 생활하는 대학 캠퍼스가 낯설게 느껴지고 안개에 쌓인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면서 멍해진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요리를 하는데 자신이 늘 만들던 요리의 재료 양을 가늠하지 못하고 레시피를 찾아본다. 이미 인사를 나눈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처음 보는 것처럼 인사를 한다. 신경외과를 찾아간 그녀는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수면제를 먹어보지만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남편을 깨워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자 남편은 말도 안돼! 라는 반응. 내가 느낀다. 뇌가 죽어가는 느낌, 내 일부가 사라진 느낌. 내가 평생 이룬 것들이 전부 다 사라질 거라고 그녀는 울면서 소리친다.
앨리스의 알츠하이머는 가족성으로 밝혀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았고 자식들에게도 유전된다. 유전자를 물려받을 가능성은 반반이지만 유전자를 받았다면 발병율은 100퍼센트!
로스쿨을 나온 큰 딸은 마침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갖기로 결정한 직후였다. 앨리스는 많이 미안하다. 사실 자신의 잘못도 아니지만…
조발성 알츠하이머, 특히 가족성 알츠하이머는 진행속도가 빠르다. 앨리스는 ‘교수님이 방향을 잃은 듯하다’는 강의 평가를 받고 강의도 그만두게 된다. 약속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이제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렵다. 차라리 암이면 좋겠다는 앨리스.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잖아. 이런 비참한 기분은 안 들겠지’라며 치매인들이 사는 시설도 방문해본다. 시설 직원은 앨리스가 부모님 때문에 온 줄 알고 이것 저것 설명하면서, 보행보조기를 사용해 천천히 걸어가는 남자를 가리키며 ‘최초로 인공위성을 만든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알츠하이머를 피해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영화는 사이사이 어린 시절 엄마와 언니와 함께 있는 장면을 보는 앨리스를 보여준다. 그동안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엄마와 언니를 회상하는 앨리스. 앨리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퇴화되어가는 것들을 실감나게 포착하는 장면들. 기억을 무차별적으로 빼앗기는 양상을 잘 그려낸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실수를 하고, 연극이 끝나고 만난 딸을 잠시 몰라보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알아보지 못할 수 있지만 감정이 남는 것은 확실하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사라져버려도 감정은 남는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매일 소중한 것을, 감성적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다만 없어지는 게 물건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기억, 나를 만드는 사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까지 잃지는 않기 때문에 텅 비어버린 슬픈 눈 뒤에 사랑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엄마와 딸
앨리스는 휴대폰에 질문을 입력하고 답을 적어둔다. 큰 딸 이름은? 태어난 달은? 잊어버려서 대답을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비디오 녹화를 한다. 그리고 메모해둔다. “어떤 질문에도 답을 못할 상황이 되면 나비폴더를 찾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시간이 오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방법을 일러주는 내용이다. 실제로 앨리스는 혼자 있을 때 우연히 이 영상을 보게 되고 어렵사리 하라는 대로 해보려하지만 간병인이 돌아오는 바람에 약병을 쏟고 자신이 무엇을 하려했는지도 잊어버린다.
나비는 엄마와 연결된다. 앨리스의 목에도 엄마가 준 나비 목걸이가 걸려있다. 바닷가 집에서 엄마를 돌보던 막내딸이 나비목걸이에 대해 묻는다. 어렸을 때 선생님이 나비는 한 달 쯤 밖에 못산다고 해서 속이 상했는데, 엄마가 나비는 멋진 삶을 살아서 괜찮다고 말해주었단다. 아주 아름다운 삶을 산다고. 그래서 앨리스는 엄마의 인생, 언니의 인생, 자신의 인생까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막내딸에게 이야기해준다.
앨리스는 우연히 딸의 일기를 보게 되고 이 때문에 딸과 다툰다. 다음날 딸은 엄마에게 사과하는데 앨리스는 무슨 일로 싸웠는지 이미 잊었다. 딸은 엄마에게 묻는다.
“어떤 기분이에요?”
“글쎄, 매일 똑같진 않아.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지. 좋은 날엔 평범한 사람 연기에 성공하는데 안 좋은 날엔 내가 날 모르겠어. 난 지금껏 항상 내 지적 능력과 언어, 표현에 명확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내 앞에 단어들이 걸려 있는데 잡지도 못하겠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뭘 더 잃게 될지도 모르겠고.”
“많이 힘들겠네요.”
“물어봐줘서 고맙다.”
난 아직 살아있다
앨리스는 알츠하이머협회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3일 걸려 원고를 쓰고 막내딸에게 읽어주자 딸은 좀 더 개인적인, 자신의 느낌을 써보면 어떠냐고 한다. 어떤 기분이고 이 질병이 엄마한테 뭔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앨리스는 똑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지 않기 위해 형광펜으로 줄을 쳐가며 원고를 읽는다.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적어본다.
“전 평생 기억을 쌓아왔습니다. 그것들이 제게 가장 큰 재산이 되었죠…. 제가 평생 쌓아온 기억과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 지옥같은 고통이죠. 점점 더 심해지죠. 우린 바보처럼 무능해지고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죠. 지금 전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기억을 못하는 저 자신을 질책하곤 하지만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순간도 있습니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죠.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사는 것과 상실의 기술을 배우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놓기 싫은 한가지는 오늘 이곳에서의 기억이지만 결국 사라지겠죠. 저도 압니다. 내일 사라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제게 큰 의미입니다. 의사소통에 푹 빠져있던 예전의 제겐 말이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네요.”
<스틸 앨리스>는 책에서 먼저 만났다. 50대 후반에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웬디 미첼이 쓴 『내가 알던 그 사람』이다. 알츠하이머 협회가 웬디에게 <스틸 앨리스> 리뷰를 부탁했고 시사회에도 참석해 앨리스를 연기한 줄리안 무어를 직접 만났다.
줄리안이 묻는다. “제가 제대로 연기했다고 보세요, 웬디?”
“제대로 포착한 한 가지는 눈빛이었어요. 줄리안의 눈은 치매를 앓는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러자 그녀는 그 말을 듣고 행복해서 미소 짓는다.
줄리안이 묻는다. “어떻게 살아가세요?”
“순간을 위해 살아요.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 않지요.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그냥 즐겨요.”
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순간적으로 난 다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알츠하이머가 선물이라도 되는 것 같다. 이 병이 주는 가혹한 가르침에서 누구라도 배울 게 있는 것 같다.
줄리안의 인터뷰. “웬디를 만났죠! 대단한 분이에요! 전에는 1년 계획을 미리 세웠다더군요. 지금은 그러지 않지요. 웬디는 다음 주 계획을 세우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고 현재에 감사해요. 그리고 살아있지요. 어찌 보면 누구나 그게 필요하겠지요. 우리가 가진 것을 꼭 붙드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은 그거 하나니까요.” 치매에게 빼앗기기만 하지 않고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내가 알던 그 사람』 159~160쪽)
치매는 이제 나와 상관없는,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일이 아니다. 치매 이후의 삶,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우리 미래일 수 있다. 기억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 치매인이 되어도 존재양식이 달라진 것일 뿐, 우리는 그렇게 또 살아간다. 무능해지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병이다! 앨리스는 아직 앨리스다!
- 치매에 대해 궁금하신 분
- 나는 치매에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
- 넷플릭스에서 영화 볼 수 있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