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아파트?
이 책의 원제는 <나는 실버아파트에 산다>이다. ‘실버아파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실버아파트’는 흔히 실버타운이라 일컬어지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이다. 노인복지주택은 임대형과 분양형으로 구분되는데 임대형의 경우 입지와 제공되는 서비스의 내용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나 통상 보증금과 월 생활비(관리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반면, 분양형은 사고 팔 수 있는 내 집이면서 각종 생활편의 서비스들이 제공된다.(정부는 2015년 이후 금지했던 분양형 복지주택을 2025년부터 다시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저자의 표현에 따라 실버아파트로 쓴다.)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대학병원을 끼고 있는 대규모 분양형 실버아파트이다. 대학병원으로 연결된 전용 통로에 아파트 입주민을 위한 특별 접수창구까지 마련된 곳. 내 손으로 밥을 해먹지 않아도 되고 휠체어가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으며 위급 상황 시 도와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와 직원들이 있는 곳.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며 매일 산책할 수 있는 등산로가 있는 곳. 노년 거주시설에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의료·건강서비스를, 노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미·여가활동을 꼽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이 있을까.
저자가 실버아파트에 오게 된 과정은 좀 독특하다. 은퇴 후 전원주택에 사는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3년간 노력했으나 이사 날짜에 맞추어 급히 계약한 집이 안전에 문제가 있는 집이었던 탓에 본의 아니게 짧은 전원주택 생활을 접고 예산에 맞추어 마련한 집이 실버아파트였던 것.
80대가 거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버아파트에서 60대 초반의 저자는 방황한다. 나이듦과 질병과 배우자와의 사별 등을 겪고 있는 실버들의 모습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나름의 루틴과 속도로 유쾌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변의 실버들에게 감동하기도 하지만 거기까지. 저자는 실버아파트의 특유한 공기와 온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성인다.
“노인들이 많아서 싫다는 건데……. 여보시오, 여긴 실버아파트 아닌가.”
남편은 나를 실버포비아라고 했다. 우리 또한 노인이고, 실버아파트의 주인들과는 단지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같은 그룹이라며 확인 사살을 하곤 했다.(80)
결국 그는 6개월 만에 그곳을 떠날 결심을 한다.
노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가 적응하지 못했던 건 자신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다른 실버들에 비해 ‘너무 젊다‘는 인식 때문이다. ‘너무 젊다’는 ‘그들과 나는 다르다’로 보이기도 한다. 중장년과 노년 사이에도 이러한 구별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은 아닐까. 인류학자 정진웅은 <반연령주의적 문화 실천으로서의 노년연구>(보건사회연구, Vol 34)에서 “노년에 대한 모든 담론은 특정한 노년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일종의 ’색안경’이며, 우리는 그 색안경이 채색해 보여주는 노년의 이미지에 기초해 노년을 인식하고 노년의 삶에 개입한다”고 했다. “노년의 타자성이 심화된 연령주의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우선적인 범주로 개인에게 강요된다. 노년의 경우 나이라는 특성은 개별적 주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인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요인들에 우선하는 특성으로 인식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이라는 존재를 가능 한한 멀리 두고서 자신과 다른 존재로 분리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2년 8개월 만에 나타난 세입자에게 아파트를 넘기고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곳을 떠난다고 노년이라는 미래와 현재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네 생각이고~”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은 주변 인물들이 아니라 남들이다. 그는 무임승차에 가담함으로써 지하철의 누적 적자를 늘리는 데 일조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료 지하철카드를 발급받게 된 날 공식 노인이 되었고 어색한 무임승차를 시작한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처음 자리를 양보 받은 날 충격에 휩싸인다. 당사자가 자각하는 노년과 밖에서 바라보는 노년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노인이라서?’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노인으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가 맞지 않는 모양새였다. 청바지에 워커를 신었고 검정색 후드 티셔츠에 소위 항공점퍼라고 하는 겉옷을 걸쳤다. 아들이 쓰던 검정색 야구 모자를 썼고 심지어 마스크도 했으니 내 얼굴에서 보이는 곳이라고는 눈뿐이었다.
머리카락도 아직 흰머리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석연찮은 상태에서 남자가 내리길 기다렸다. 왠지 그가 내려야 자리를 양보 받았던 증거가 사라질 것 같았다. 아, 사람 들이 왜 증거 인멸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166)
초보노인의 선행학습이 남긴 교훈
57년생 김순옥의 초보노인 경험담 속 풍경은 흐릿하고 멀게 느껴졌던 나의 미래, 우리의 노년을 확대경으로 좀 더 선명하게 들여다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속에는 노인이라는 범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다양한 모양들로 이루어진 개인들이 살고 있다. 또한 노인들만 모여 살면 이상하지 않을까 싶었던 실버타운은 ‘거대한 노인정’같지만은 않았다. 식당에서 밥먹다 졸아도 누가 면박주지 않는 곳, 천천히 움직여도 되는 곳, 기타를 치지 않아도 되는 기타 동호회가 있고, 농사지은 나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다정한 이웃이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특정한 나이에 들어선다고 갑자기 노인이라는 종으로 돌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연령중심주의에 입각한 정책이나 서비스들은 그런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연령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노년을 바라보기 위해 김순옥작가와 같은 초보노인들의 역할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다.
“인생이 별거야? 내가 세계 구석구석을 다 다녀 봤는데 어디가 제일 좋았냐 하면 말 통하는 친구들하고 다닌 데였어. 난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이 좋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그나마 건강할 때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는 게 최고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최고야. 그게 누구든”(56)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향기는 여느 세상과 비슷하나 한없이 조용하고 담담한 곳. 왈칵 울음을 터뜨릴 만큼 서러운 일도, 울화통을 건드릴 만큼 화나는 일도, 이치를 따져 가며 목청을 높일 일도, 견딜 수 없이 기쁘거나 슬픈 일도 모두 숙성되는 이곳.”(114)
“우리가 노인인 걸 우리만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니 각자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노인이 홀대받는 시대이기 때문에 노인이 되어 가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168)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재능대로, 자신의 기질대로 열심히 삶을 견뎌 내는 중이었다.”(195)
1. 요양원이 아닌 집(아파트 포함)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
2. 아직 나는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젊은 노인들
* 이 책은 제 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작으로, 아래 브런치북 링크에서도 일부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