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가보다
올해 나이듦연구소에서 연구 주제를 ‘돌봄’으로 정하면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요양원이 궁금해졌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구성에 있는 한 요양원을 알게 되었다. 치매 전담 요양원으로 ‘느린 돌봄’의 철학으로 노인당 보호사 비율을 2.1대 1로 돌봄을 하고 있다는 요양원이었다. 전화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밝혔더니 며칠 후 연락이 와서, 2월부터 매주 화요일 3시-5시까지 요양원에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의 보조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오후 3시 무렵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걸어오시는 분이 다섯, 휠체어로 오시는 분이 일곱에서 여덟 분 정도가 지하 1층 식당으로 모이신다. 걸어오시는 어르신들은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노래도 곧잘 부르고 강사님의 체조도 열심히 따라 하신다. 휄체어를 타고 계신 분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가 간혹 겨우 손뼉을 치는 시늉을 할 때가 있다. 게임 시간에 어떻게든 반응을 끌어내려고 윷을 안기고 풍선을 맡겨도 꼼짝을 안 하면, 강사님과 내가 슬쩍 튕겨주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정말 미세하게라도 손을 내밀고 팔을 들어 올리며 움직이려고 애쓰는 어르신을 보면 뭐라도 거들고 싶어진다. 그렇게 20분을 씨름하다 보면 게임 시간이 끝나고 마무리 체조로 이어진다.
방문을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던 화요일 오후, 요양원의 출입구에서 큰 종이 가방 몇 개를 요양원의 원장님에게 건네고 있는 여성 두 분을 보았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라는 원장님의 권유에 고개를 저었다. 직원분들 나눠 먹으라며 음료까지 한가득 건네고 그들은 서둘러 차를 타고 떠났다. 허둥지둥하는 몸짓으로 떠나는 뒷모습이 뭔가 마음에 남았다. 나를 본 원장님은 어제 입소한 할머니 딸들인데 어머니 입을 옷가지들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엄마를 보면 울 것 같다면서 다음에 엄마 보러 오겠다네요. 아버지를 2년여간 간병하면서 체력이 완전히 소진되었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 어머니는 몇 달에 한 번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수도권에 있는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보러 가서는 매번 눈물바람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싫어서 차 안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주저주저하는 듯 움츠러든 그들의 기운에서 다 잊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무기력이 싫어서 외면 했던 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시는 일이 여전히 난감할 수밖에 없는 자식의 심정이 전해졌다.
요양원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초반에는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 드렸는데 이쁘다고 좋아하셨다. 그러다 공간에 굴러다니는 노래가사집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걸어서 내려오는 다섯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노래 부르기가 반복될수록 리듬을 타고 가사를 음미하는 몸짓이 피어났다. 그 순간에 어르신들이 어떤 기억을 떠올렸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7월에 3주의 휴가를 지나고 다시 요양원에 갔더니, 노래 시간에 어르신 한 분이 유독 반색을 하시며 오랜만이다 어디 갔었냐며 반가워하셨다. 노래 한 곡이 끝나면 다시 오랜만이다를 반복했다. 방금 전 했던 말을 까먹은 어르신, 다른 분들은 멀뚱멀뚱 보신다. 어르신들과 생활하는 요양보호사분들은 이런 일이 일상일 것이다.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
무라세 다카오는 『돌봄, 동기화, 자유』라는 책에서 후쿠오카에 있는 ‘요리아이’라는 노인요양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인지장애가 있는 어르신들과 함께 서로 서로 “감각을 맞추고, 느낌을 교환하면서, 합의하기”를 지속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돌봄에서 동기화에 대해 ‘둘이 함께 지금 여기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예로 잠만 자는 할머니지만 어느 순간 소변을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를 일으켜 소변기에 앉혔을 때, 소변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 ‘동기화’되어서 돌봄자도 방광이 비는 감각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록과 배뇨 간격을 파악해 이뤄지는 의식적인 돌봄보다 몸의 교감에 이끌려서 이뤄지는 무의식적인 돌봄”(같은 책, 115쪽)을 선호한다고 했다. 인지저하증이 있는 어르신을 돌보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러했다.
원래 사람은 밖으로 나가게 마련이다. 의미가 있든 없든 사람은 외출한다. 외출한 곳에서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 역시 사람의 일상이다. 노혼과 인지저하증을 이유로 어르신들을 그 당연함에서 멀리 떨어뜨려도 괜찮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위험성을 당사자가 스스로 떠안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게 무엇일지 계속 모색하고 싶다.(같은 책, 190쪽)
인지저하증으로 더 이상 혼자 일상을 꾸릴 수 없어 요리아이로 온 어르신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에 익은 몸으로 자꾸 집으로 가겠다면서 밖으로 나가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는 어르신이 길을 잃지 않도록 요리아이의 직원이 조금 뒤떨어져서 따라간다. 길을 나서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린다. 하지만 때로는 어르신이 혼자서 나가는 바람에 행방불명이 되어 어르신도 직원들도 서로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스스로 나갈 수 있다는 당연한 일을 위해 요리아이의 출입문을 잠그지 않는 일, 그 자유를 유지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돌봄이 어떻게 가능할까.
돌봄에도 마을이 필요하다
저자는 미쓰코씨가 집으로 가려고 나서는 길을 따라가면서 주변에 있는 몇몇 곳에 들렀다. 주민회관, 쌀집, 술집 등 요리아이 주변 반경 200미터 이내에 있는 곳이다. 걸어가다가 잠시 쉬자고 들른 곳에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어르신을 소개하며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중개기지를 만들면 만약의 경우 혼자서 나서더라도 알아보고 연락해 줄 수 있는 거점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아이디어를 좀 더 밀고 나가 중계기지를 좀 더 촘촘히 연결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먼저 가족과 논의가 필요했다.
자유와 안전은 서로 밀어내는 자석처럼 사이가 나쁘다. 우리는 반발하는 자기장 속에서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최악의 사태를 아예 없애려는 노력이 아니라 최악의 사태를 품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책, 197)
외출의 자유를 막지 않는 방법이 결과적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방식으로 최악의 사태를 없애는 것이 최선일까. 이러한 격리가 인지저하증을 더 악화시키는 사례도 많이 있다. 저자는 여러 이유를 밝히며 가족을 설득해서 허락을 받고, 마을의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미쓰코씨의 상황을 설명하며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거절하는 집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흔쾌히 협조해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저자는 내처 주민회관에서 인지저하증을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당사자인 미쓰코씨도 참석했다. 공부 모임에서 미쓰코씨는 “노망이 나면 이리저리 싸돌아다녀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면서 ‘노망’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미쓰코씨의 얼굴을 익혔다. 실제로 공부모임이 있은 후 16일이 지나서 미쓰코씨가 요리아이에서 혼자 나가신 일이 일어났다. 직원들이 찾으러 나선 지 15분도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동네 분이 미쓰코씨를 알아보고 다시 요리아이로 모셔 왔다고 했다. 어르신의 자유와 안전 사이에 마을이 연결되니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여러 사람이 함께 돌볼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좋은’ 요양원을 생각하며
나는 저자가 이러한 활동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아니라 개인에게 알리는 것”(같은 책, 200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미쓰코씨가 혼자 걷고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면 요리아이에 연락해 주세요. 꼭 해야 하는 요구가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서 ‘우연히’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높은 윤리관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보다 솔직히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말려들었다.”(같은 책, 205쪽)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미쓰코씨를 발견한 마을 사람도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였다. 저렇게 헤매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큰 일이라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서 미쓰코씨를 요리아이로 데려다 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못 본 척 할 수도 있었던 개인이 그러지 않고 도움을 주는 그 마음이 모여서 결과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줄이게 된다면,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돌봄의 무게도 조금은 나눠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돌봄은 모두의 윤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돌봄, 동기화, 자유』에는 인지저하증이 있는 당사자와 돌봄자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협력이 일어날 때 느끼는 ‘자유’를 위하여 애쓰고 있는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 이 과정은 매번 “이념과 윤리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살아 있는 인간에게 있다는 것”(같은 책, 252쪽)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을 동료들과 공유하면서 집단적으로 돌봄의 감각을 확충하는 시간도 중요했다. 격리나 제한의 방식이 아닌 돌봄, 당사자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기 위해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놓는 동기화의 과정, 그것의 성공과 실패가 제대로 소화될 수 있도록 함께 나누는 자리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 있었다. 내가 일주일에 한번 어르신들과 노래하고 게임을 함께 하는 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는 돌봄의 현장에 저 ‘자유’의 감각을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좋은’ 요양원의 시작은 그 자유를 탐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