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포럼 제목은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이지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제 경험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면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는 5년째 엄마와 돌봄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9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던 엄마는 5년 전에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현재 90세인 엄마는 3년 전에 파킨슨병, 2년 전에 루이소체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빠가 하나 있었지만 사고로 30년 전에 돌아가시고 엄마에게 자식은 저 하나입니다.
누가 어디서 돌볼 것인가
저는 오빠가 돌아가신 이후 일찌감치 부모님 돌봄은 제 몫이라고 생각했고 15년 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지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두 분을 집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셨고,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도 4년을 혼자 지내시다가 겨우 집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다가 집에서 죽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공감하지만 그걸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엄마가 집으로 안 오시려고 해서 잠시 제가 엄마 집에 가서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즘에 저는 그때 엄마가 엄마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많이 고민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요양원은 생각하기도 싫어하기 때문에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저는 책임감과 함께 엄마를 잘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돌봄 관계에서의 감정적 문제
처음에는 엄마랑 함께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엄마를 잘 돌보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나름 잘 해왔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러나 관계라는 것은 절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어서 딸네 집에 왔고, 사실 돌봄을 받을 준비가 거의 안 되어 있었지만, 저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잘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엄마에게 좋은 거’라는 제 판단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갈증을 달래주겠다면서 물은 제가 마시는 격이랄까요.
저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쿨하고 세련된 관계를 맺어오던 모녀관계인지라 감정적 소통은 특히나 어려웠습니다. 엄마 마음이 어떤지 엄마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속내를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같이 살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더욱 낯설어졌습니다. 제가 알던 엄마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매일매일 낯선 모습의 엄마가 보였습니다. 인지 장애가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이 때 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우울인지 죄책감인지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그동안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무척 당황했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치매가 끝은 아니니까』의 저자는 이런 감정적 격발은 자신을 보살펴달라고 요구하는 건강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돌봄, 동기화, 자유』에서는 ‘돌봄을 받는 나, 돌보는 나, 두 사람의 나가 한 가지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돌봄 관계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돌본다는 것, 돌봄을 받는다는 것, 그 사이의 감정적 문제는 어떻게 돌봐야하는 걸까요?
경도인지장애의 함정
치매는 병인가? 노화현상인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된 이유는 음식과 화학물질들의 폐해와 관련이 있는, 중추신경계의 장기적인 염증’으로 ‘병 증상의 정도를 경미, 중증도, 중증초기, 중증후기 인지 장애의 단계로 나누’기도 하고(『우리 앞의 치매』) ‘질병 이라기보다는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도 합니다.(『돌봄, 동기화, 자유』) ‘자기 존재의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가을에 활엽수가 잎사귀를 떨구듯 기억을 떨쳐 낼 뿐인 것을 우리가 치매다, 노망이다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똥꽃』). 자신이 치매인이 되어 치매에 관한 책을 쓴 저자들은 모두 치매에도 초기, 중기, 말기가 있다고 하며, 치매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이든 사람이 모두 치매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단순히 노화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질병으로만 생각해버리면 질병만 보이고 사람은 안보이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에 이것도 좀 걸립니다. 꼭 둘 중 하나로 결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어쨌건 치매에 대해 저는 잘 몰랐습니다. 엄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경도인지장애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87세였으니까 나이 들어 있을 수 있는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시간에 대한 불안증, 판단력 장애로 인한 불안감과 집착, 의심과 불신, 이런 증상들이 나타날 때도 검사 결과는 ‘경도 인지 장애’였습니다. 오히려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배변 실수가 잦아지고, 말수가 적어지고 무표정해지고, 씻기 싫어하는 등 파킨슨병 증상들이 심해졌을 때 인지검사 결과 점수가 많이 낮아졌습니다. 파킨슨병과 그에 따른 치매라는 진단이 내려졌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엄마는 나빠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습니다. 연세가 있으니 노화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는 전혀 달랐어요. 병세는 나날이 나쁜 쪽으로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에 저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루이소체치매와 그로 인한 파킨슨증이라고 했습니다. 뭐 파킨슨병으로 인한 치매나 치매로 인한 파킨슨증이나 별다른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요. 아, 정말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구나. 이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목욕을 싫어하는 것도 치매 증상 중의 하나인데 그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인지기능 장애가 있을 수 있더라고요. 치매인의 심신 기능 장애, 생활 습관, 주거 환경에 따라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다 달라질 수 있고, 따라서 치매 양상은 일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거죠.
집에서 돌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엄마는 식탁에 앉아 스스로 식사하고, 혼자 화장실에 가서 배변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와상환자가 되는데 까지 3개월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결국 엄마가 거동을 못하게 되니까 정말 당혹스러웠습니다. 이제 정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한 문제들이었죠. 엄마를 잘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감은 이제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파킨슨병인지 치매인지 헷갈리던 시점에 이미 혼자 움직이는 건 힘들었기 때문에 장기요양보험등급 신청을 했고 3등급을 받아 재가방문서비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요양보호사 방문 돌봄과 전동침대, 욕창방지매트 등의 복지용구 서비스 같은 것들이죠. 문제는 24시간 돌봐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힘들다는 거였어요. 먼 친척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기회만 되면 그만두고 싶은 그 분을 잡아두느라 사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했어요.
엄마가 와상환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욕창이 생겼습니다. 또 새로운 국면이었죠. 그나마 방문 진료와 방문간호서비스를 알게 되어 의사에게 욕창치료방법을 배우고 나중에는 간호사에게 욕창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매일매일 해야 하는 욕창치료(드레싱)는 집에서 돌보는 사람이 해야 했고, 그 일은 제가 담당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엄마는 근육경직이 점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펴지 못했고 손가락도 점점 굽혀지고 잘 안 펴지기 시작했어요.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죠. 그때는 몰랐지만 특히나 연하장애를 늦추기 위한 재활치료가 꼭 필요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의 방문 진료와 처치는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했어요. 집에서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제게는 어려운 의학적 문제들, 확신의 부족, 선택지와 가능성이 적거나 없다는 느낌. 이런 것들이 저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하루가 고행이었어요. 무기력하고 허탈하고, 그러면서도 헛된 희망은 버리지 못하는 상황… 그저 그때그때 나타나는 문제에 부딪쳐서 해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고작이었죠. 이제 좀 담대해져야 했습니다. 가족회의 끝에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했어요.
시설이냐 집이냐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엄마는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연하장애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집에서 돌보지 못하는 제 마음의 짐을 좀 덜어주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일찍 병원 치료를 받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재활치료를 받기는 하지만 근육경직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한번 사과가 목에 걸리는 일이 있긴 했지만 아직 연하장애가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식사를 잘 하셔서 입원한지 1년 만에 몸무게가 5kg 이상 늘었어요.
저희 식구들은 일주일에 1~2회 엄마를 면회합니다. 부드러운 과일을 잘게 잘라서 먹여드리는데 엄마가 잘 드시면 안심하고 입을 잘 안 벌리시면 걱정합니다. 얼굴표정이 무표정하면 마음이 무겁고 환하게 웃으시면 제 마음도 웃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바깥 산책을 하며 손주가 떠드는 소리에 웃는 엄마 모습을 보며 위안을 받고 돌아옵니다.
얼마 전에는 간병인들이 요즘 식사 때 입을 잘 안 벌리시는데 아무래도 삼키는 게 좀 힘드신 것 같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상담을 했는데, 아직은 드시는데 크게 문제는 없고 몸무게도 계속 늘고 있어서 지켜보는 중이라면서, 수치상으로는 연하장애가 있다고 봐야한다는 애매한 답변을 하네요. 제가 가져간 과일은 잘 드시는 편이라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은 콧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해야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의사도 이에 대해 입원할 때부터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민해 두어야 한다고요.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좀 더 미뤄두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늘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네요.
이와 연결되기도 하는데, 좀 더 깊은 제 고민은 엄마를 계속 병원에서 지내게 해야 하는지 집으로 모셔 와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와상환자로 지내는 엄마가 그곳에서 간병인들의 돌봄을 받으며 먹고 배설하고 재활치료 받으며 지내는 삶이 어떤 삶인지 고민되기 때문입니다. 원인 모를 열이 나면 빠른 대응으로 열을 내리고, 몸무게가 늘고, 몸의 경직이 조금은 늦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일까요?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엄마를 존중하는 돌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주1.‘치매’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게 좋겠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치매를 ‘뇌인지저하증’으로 바꾸자는 치매관리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이전 국회에서도 명칭 변경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치매(癡呆)가 ‘어리석다’는 뜻의 한자로 되어 있어 한자문화권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대만에서는 2001년부터 ‘실지증’으로 쓰고 있고 일본에서는 ‘인지증’, 중국과 홍콩에서는 ‘뇌퇴화증’으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치매를 인지증이나 (뇌)인지저하증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이 용어가 치매 전체를 정의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인지증은 치매의 일부 증상일 뿐)이기도 하고 경제적인 이유가 엮여있기도 합니다.
주2.치매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치매 환자의 약 6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해마의 장애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치매이고,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으로 그 부분의 뇌기능이 나빠져 생기는 치매로 최근에는 뇌혈관 장애 예방과 치료가 진전됨에 따라 줄어들고 있습니다. 루이소체형 치매는 뇌의 신경세포 내부에 루이소체라 불리는 둥근 모양의 물질이 나타나며 후두엽의 혈류가 저하되는데 환각 증상과 파킨슨증이 특징적입니다. 그리고 전두측두형 치매는 뇌의 전두엽이나 측두엽의 위축이 원인이 되어 발병하는데 65세 이하의 초로기 치매 환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