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돌 지난 손주 하빈이 녀석이 내가 연습하는 기타 소리에 반응한다. 여느 아이처럼 달라 들어서 손으로 기타를 탕탕 내리치지 않고, 한 줄 한 줄을 튕겨보며 그 소리를 듣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녀석에게 들려 줄 좋은 기타 곡이 없을까? 이흥렬의 곡 ‘섬집 아기’를 골랐다. 우리에게는 가사가 주는 서정적인 느낌이 있고, 말을 모르는 녀석에게는 기타 선율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이다. 나중에 커서 가사를 알게 되었을 때, 이 노래에 겹쳐서 할아버지 기타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슬쩍 넣어서 말이다.
악보를 구해서 운지를 찾아서 손가락을 벌려 보니, 아뿔싸! 장난이 아니다. 어떤 운지는 도저히 내 손가락으로 소리를 낼 수 없다. 기타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운지를 바꾸니 좀 낫다. 그래도 소리가 맛깔스럽게 나지 않는다. 다음 마디 첫 음을 튕기기 전에, 이번 마디 끝의 음을 최대한 길게 눌렀다가 떼어 주어서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기법인 레가토(Legato)가 잘 안 된다. 멜로디가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되는 레가토가 살아야 이 곡의 참 맛이 나는데, 실수 없이 다음 음으로 재빨리 손가락을 옮겨야 해서 어려움이 배가된다.

좀 연습하고 나면,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팔꿈치와 근육이 욱신거린다. 손목까지 파스를 붙인다. 급기야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받는 때 쓰는 ‘파라핀 용해기’를 구입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나와 비슷한 연배인 기타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뭐지? 자세히 보니 운지방법이 다르다. 나는 프렛(기타 지판에 음을 구분해주기 위해 박아 놓은 얇은 금속판)과 프렛 사이 중간에서 운지를 하는데, 선생님은 프렛에 최대한 붙여서 운지 한다. 찍찍거리는 버징(buzzing)소리가 나지 않으려면 나는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어야 하는데, 고수는 살짝 손가락을 올려놓기만 해도 된다. 처음부터 잘못 된 것이다. 하기야 처음 기타를 잡았을 때 노래 부르기 위해서 코드부터 잡는 통기타 방식으로 배웠지, 한 음 한 음 정확한 소리를 내는 데 집중하는 클래식 기타 연주방식으로 연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른손 탄현법도 다르다.
‘마술피리’
내가 기타를 처음 가진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은행에 취직하여 서울로 올라간 큰 형님이 입학 선물로 세고비아 기타를 들고 내려왔다. 기쁨보다 먼저 얼떨떨하였다. 일찍 아버지를 잃은 탓에, 가장 노릇을 한다며 우리 동생들에게 항상 엄격했던 형님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일게다. 전주 하숙집에서는 조용히 지내고, 고향집에 내려와야 유행하던 7080 노래를 통기타와 함께 목청껏 불러 재낄 수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 간 새내기 시절부터 교정은 최루탄으로 뿌해지는 날이 많았다. 강의실로 때로는 도서관으로 최루탄을 피해 다녔는데, 그 날은 그 쪽 부분에 전경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와 ~ 하는 소리에 정신없이 튀어서 들어 간 곳이 하필 학생회관이었다. 그 쪽은 사복 형사들이 이미 들어와 있는 곳이어서 가면 안되는 곳이다. 허겁지겁 2층으로 뛰어 올라 갔다. 어디든 들어가야 했다. 데모와 관계없는 곳을 찾았다. 음악 감상실! 옳거니!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문을 열었다. 순간, 앞이 깜깜했다. 작은 조명이 내 눈을 밝히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문 바로 옆의 맨 구석자리(소파였던 듯)를 잡았다. 눈길을 문 앞에 고정하고 비스듬히 누웠다. 오래 전부터 음악을 듣고 있는 듯이…… 어지럽게 복도로 뛰어 다니는 구둣발 소리가 몇 차례 들리고 나서는 조용해졌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아주 맑은 기타 소리였다. 어? 기타에서 이렇게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고? 사운드를 갖춘 음향기기로 처음 듣는 그 기타 소리는 시골 촌놈의 뇌 속으로 소리가 지나가는 듯 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를 ‘페르난도 소르’라는 작곡가가 편곡한 클래식 기타곡, ‘Magic Flute’이었다. 구둣발로부터 나를 구해준 마술같은 피리소리이었다.
‘전설’
상경한 나는 석관동 형님집에 살았다. 여기 저기 연탄공장들이 많았던 그 동네는 검은 돌가루를 뒤집어 쓴 듯 항상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다행인 것은 그 동네에 친하게 지내던 동창 녀석이 살았다. 녀석도 광주에서 올라 와 약국을 하는 형님 집에서 대학을 다녔다. 세상 돌아가는 꼴에 분개하고 또 형님 집에 얹혀사는 비애?를 막걸리 잔에 함께 마시기도 하면서 무언가 통하는 게 많은 친구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제 막 이성에 눈뜨고 사귀는 때라 서로가 그 감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던 친구였다. 녀석의 고민은 연상이면서 다리에 장애를 가진 여성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반대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여성은 신림동에서 음악실을 운영하였다. 녀석을 만나려면 그 곳으로 가면 된다. 내가 들어가면 신청도 안했는데, 그 분이 항상 틀어 주는 곡이 있다. 호주 출신 John Williams 가 연주하는 Isaac Albeniz의 ‘Asturias (전설)’라는 곡이다. 음악실 홀에 가득히 퍼지며 떠다니는 소리를 보기도 하고, 내 인생의 전설을 그리면서 녀석을 기다린다. 결국, 녀석은 집안의 반대를 피해서 미국 유학길을 선택하였고, 그곳에서 이 여성과 결혼하였다는 소식을 내게 전하고는 연락이 끊겼다.
유투브에서 John Williams 가 이 곡을 연주하면서 찍은 영상을 보았다. 오래된 성당같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그의 기타 소리가 사면의 웅장한 돌에 부딪히며 반향되는 소리를 만들어 더욱 ‘전설’적인 느낌을 주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연주를…..아니, 먼저 저런 공간에서 기타 소리를 듣고 싶은 소망을 나의 버킷리스에 한줄 덧붙였다. 몇 년 전 아내와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그 리스트에 달성 줄을 그었다. 포르투 여행의 마지막 날, 운 좋게도 12세기에 지어진 ‘포르투 대성당‘에서 기타 공연이 있었다. 스무 명 남짓 한 관중, 난 그 연주자 바로 앞에서 예배당에 가득한 그의 기타 소리를 들었다. 아주 섬세한 Harmonics 소리와 함께.
한 걸음씩
연주해보고 싶은 나의 버킷리스트인 ‘마술피리’의 별칭은 ‘주제에 의한 4개의 변주곡’이다. 서주가 끝나면 주제 멜로디가 나오고, 이 멜로디가 3번 변주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메인 주제가 다시 연주되고 끝이 난다.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아주 나이든 ‘안드레스 세고비아’의 연주 영상을 보았다. 그가 94세에 운명하였으니 아마 8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나의 가슴을 뛰게 하였던 그 ‘마술피리’ 연주가 아니었다. 음은 뚝뚝 끊어지고, 연주 속도도 일정치 않았다. 그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지리산에 오른 적이 있다. 연애 중이던 나와 지금의 내 아내, 아내 오빠와 부인, 그렇게 넷이서 갔다. 원래 사촌인 친구 한 놈이 더 오기로 했는데, 구례 화엄사에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서 가져간 녀석의 짐을 풀어서 나누니, 한 사람당 족히 40kg 이상의 배낭이 꾸려졌다. 지금은 산에서 노숙이 금지되어 산장예약이 필수이지만 당시에는 계곡근처에 텐트를 치고 산행하였다. 당시에 텐트는 모두 쇠파이프로 구성되었고 음식은 죄다 통조림 깡통이었다. 또 찌개에 꼭 감자를 넣어야만 하나? 그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꾸려진 완전군장보다도 더 무거운 듯하다. 첫 날, 노고단 정상을 목표로 올랐다. 삭신이 노골 노골해진다고 해서 ‘노고단’이라고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얼마나 남았는지를 자꾸 묻는 내게 아내의 오빠가 말한다. “목표를 자꾸 생각하면 더 힘들어. 그냥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해서 걷다 보면 끝날 거야”
인생에 목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면 그게 인생이지. 요즘 나는 클래식 기타를 다시 연습하고 있다. 조금만 연습해도 관절이 뻑뻑해지고 손목이 아프다. 급할 때에는 파라핀으로 관절을 부드럽게 해주는 기기에 손을 담근다. 오래된 연주습관을 고치는 것은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 생에서는 연주하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듣는 것으로 만족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나보다 가장 젊다는 것을 안다. 목표를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연습하다보면 되지 않을까? 목표를 꼭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어?
은퇴 후, 4년째이다. 하루하루를 무언가 모를 허탈함에, 또 누구에겐가 향하는지 모를 분노에 나를 달래면서 지내던 날이었다. 이제는 은퇴한 날을 세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약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탁에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한 덕분에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지난날을 반추할 수 있었고, 이제 그 글들은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마술피리’와 ‘전설’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 두 분 선생님, 요요샘과 문탁샘 앞에서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상상을 해본다.

이번 글을 끝으로 나의 은퇴생활 글쓰기 연재를 마친다. 어설픈 글들을 읽어 주며, 만나면 재미있다고 말해 주고 또 댓글로 인사해 주는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린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