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중순, 엄마는 장기요양등급(5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병원 퇴원 이후 신청했지만 ‘급성기’ 상태라고 기각 판정을 받고 6개월 뒤 다시 신청한 결과다. 안도했다. 보호자 대상 설명회에 갔을 때 참석자 연령대가 내 나이 또래부터 60대, 70대 어르신들이 많아서 내심 놀랐다. 노노(老老) 간병.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내가 어느새 여기까지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이 잠시 얼떨떨했다. 그들의 낯빛에서 나와 다르지 않은 긴장감과 피로감, 간절함이 오롯이 겹쳐보이고. 그래서였을까, 어쩌다 눈이 마주친 어른에게 옅은 미소를 보내게 되는 건. 아픈 이의 옆을 지키는 모르는 이 사람들이 내 동료구나 싶은 이상한 친밀감은 또 뭐람. 뜬금없이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는 노래 가사는 왜 떠오르는 것인지.

5등급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가운데 주 4회 2시간 방문요양과 월 2회 방문목욕을 택했다. 주간보호센타 이용을 여러모로 나아 보였지만 경로당에도 나가지 않는 터라 애써 권하지 않았다. 엄마는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을 너무 힘들어한다. 이유인즉 자신은 말주변도 없고 할 말도 없고 무엇보다 남들 험담을 듣는 게 싫다는 거다.
조용하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허리를 다친 이후론 근력이 떨어져 걷는 것도 쉽지 않고 지금은 바닥에 앉으면 혼자 일어서지 못하는 정도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 잠자기를 좋아한다. 잠이 많을수록 인지에는 좋지 않대서 두려움도 커진다. ‘아무 생각 없이 자는 게 제일 좋다’는 심정 안쪽을 헤아리긴 여전히 쉽지 않다. 아…‘헤아린다’는 말은 얼마나 막막한 방편인지! 무기력 증세인가? 우울증인가? 노인성 질환의 증상들은 너무 다양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매번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2시간 방문 요양은 인지 활동과 신체활동을 병행하고 낮잠 시간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그동안 책방 일을 하면서도 전전긍긍 달려가야 하는 (책방과 집은 걸어서 5분 이내 거리다.) 나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게다가 씻기 싫어하는 엄마와 매번 실랑이하며 무거운 몸을 겨우겨우 들어 올리는 일이 (중년의 내 허리도 골다공증이 진행 중이고.) 고역이었는데 이 부분이 순조롭게 해결되어 다행이랄밖에. 목욕을 하고 난 후에 엄마가 “아이고! 온몸이 시원하다. 나는 때는 많이 안 나오더라.” 말할 때는 좀 귀엽기까지 했다.

방문요양보호사가 찾아오고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 몸을 맡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현관 앞에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붙여놓은 태그를 보여준다. “엄마, 일본에서 일할 때 출퇴근 카드 찍었었지. 이 사람들도 나라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이라서 여기에 출퇴근 시간을 찍는 거야. 그러니까 자꾸 빨리 가라고 하지 마. 노인들이 편안하게 지내도록 관리하는 거라”고 알려준다. “오! 나라가 겅해줘사주게!(그렇게 해줘야지!)” 맞장구칠 때는 또 총기가 또렷하다. 그러게…나라가 더 잘해야 할 텐데.
아무튼 이렇게나마 사회시스템의 도움을 받게 되어 숨 한번 돌리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내가 건초염(방아쇠 수지 증후군)으로 병원을 드나드는 사정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더 심해진 상태로. 책방은 북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설거지가 기본인 데다 한때 아홉 식구가 살았던 단독주택은 안채와 바깥채, 텃밭과 마당까지 꽤 넓어서 계절 따라 이런저런 집안일이 만만찮다. 엊그제는 텃밭에서 봄동 배추와 무를 엄청나게 뽑아 씻고 데치고 소분해서 냉동하고 이웃에게 나눠주고도 남는 무를 말려둬야 한 대서 며칠째 무말랭이를 만드는 중이다. 아무리 부지런히 치워도 어디선가 ‘할 일’이 마구 튀어나오고, 티도 안 나는 집안일! 그중에서도 주방일은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다. (건초염도 같이 웁니다.)

“엄마, 깨끗하게 살면 좋잖아! 제발 치우고 버리면서 살자고!!” “늙은 사람 살림살이가 다 그렇지.” 당신의 질서대로 자리 잡은 살림살이를 건드리는 걸 질색해서 이런저런 갈등이 참 많았다. 도대체 왜 저러나! 답답하고 이 어마어마한 짐들이 나중에 다 내가 치워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아득해질 뿐이다.
매 순간 엄마는 나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랄밖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신변을 정리정돈하는 일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날마다 각오를 다지게 된다. 강박적으로 정리정돈에 집착하게 된다. 간절하게 찾게 된다. 정갈하고 단정하고 고요한 자기만의 방을. 나만의 19호실을.
아, 어머님이 5등급을 받으셨군요. 저희 아버지는 인지지원등급 받은 다음에 5등급을 받으셨고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고 있어요. 처음엔 가기 싫어하셨는데.. 어느덧 3년이 넘어가니 요즘은 ‘집에 있는 것보다 센터가는 게 훨 낫다’고 하신답니다.^^ 센터 가시고 싶게 하려고 센터와 합동작전을 이것저것 세우기도 했지요.ㅎ 근데 등급받은 뒤 보호자 설명회 같은 것이 있다는 건 샘 글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왜 보호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은 없는 것일까, 늘 아쉬워했는데 말이에요.
건초염으로 고생하신다니.. 걱정입니다. 집안일도 서점 일도 몸 아껴가며 하시면서 얼른 나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속마음을 알기는 참 쉽지 않지요. ㅎ 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엄마를 보면서 저의 미래를 본답니다. 우리 모두 그럴 것 같아요.
스스로를 돌보는 것, 돌봄을 받을 준비, 이런 것들도 중요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일은 좀 몸을 봐가며… 그냥 좀 덜 치우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이런 주의로 살고 있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