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부터 방문하는 요양보호사는 시작하기 전, 읍내 장기요양기관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왔다. 사회복지사가 우리가 원하는 요일과 시간대에 맞춤한 분이라며 소개하는데 첫 대면이어서 그런지 신경 써서 곱게 차려입고 오신 티가 났다. 웃으며 대화하면서도 서로가 조심스러웠다. 보호자인 내 입장에서는 낯선 사람이 정기적으로 집안을 드나드는 일이 처음이라 긴장되고 한편으론 낯가림 심한 엄마와 잘 지낼 수 있을지 호감을 가늠해야 했다. 엄마의 선생님을 면접하는 기분이 좀 묘했다. 오랫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고 현재도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집 몇 군데를 담당하며 식사와 청소 지원 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와 같은 한림초등학교 졸업생이란걸 알게 되었는데 곧바로 엄마가 당신은 31회 졸업생이라고 또렷하게 말한다. 그분이 자신은 “아…저는 41회? 아니 42횐가?” 몇 회 졸업생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살짝 당황하고 나도 그 학교 졸업생이지만 몇 회인지는 몰라서 “엄마 짱!! 엄지를 치켜들며 같이 웃는다. 여간해선 잘 웃지도 않고 늘 어지럽다며 울상인 엄마 표정이 환해질 때면 뭐랍시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순간에는 기억을 잃어가고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의 비애며 두려움도 그럭저럭 대수롭지 않게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개교 100주년이 넘은 학교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의 기억을 듣는다.

“우리 어머니가 중학교도 보내주마! 갈 때까지 가보라! 하는데도 무사산디(왜 그런지) 친구들이 없으니까 학교 다니기 싫더라고. 그 시절엔 여자들은 학교 안 보내는 집이 허다했주게(많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물질을 배우고 언니들을 따라 강원도 갈남이라는 곳까지 이삼 년 출가 물질을 다녔다고 했다. 갈남과 이웃한 장오 마을까지 시장을 보러 갔다는 옛날이야기가 신기해서 검색하다 놀랐다. 강원도 삼척 갈남리, 장호항이 있는 장호리가 나오는 거였다.
“와아! 엄마, 이렇게 멀리까지 어떻게 갔어?”
“어떵도 가!(어떻게 가긴!) 부산까지 배 타고, 다시 버스 타고… 가다가 차가 끊겨서 여관에서 자곡 했져.(자기도 했다.)”
60여 년이 넘는 세월을 해녀로 살아온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매번 대단하고 애달픈 감정으로 울컥한다. 이 마음이 지친 나를 거듭거듭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랄 밖에는. 여하튼 엄마와 제주말로 소통이 되고 서로 공감대가 넉넉한 연배여서 너무 다행이었다.
지금은 4월 말, 두 달 동안 왕래하며 서로 정중하게 문자와 통화를 하며 엄마의 사정을 공유하고 신뢰가 쌓여가고 있다. 중간중간 엄마가 “왜 그 사람이 자꾸 오냐? 오지 말라고 해라.” 짜증이 여러 번 있었는데 요양보호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는 이유였다. 그 시간 동안 낮잠을 즐기지 못하는 속내도 보이지만 어찌어찌 달래면서 이어가는 중이다.

그나저나 나 역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솔깃해지는 요즘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엄마를 직접 돌보면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가족요양제도’에 대해 알게 되어서다. 덧붙여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도 못지않아서다. 코로나19 이후 관광으로 먹고 사는 제주의 체감 경기는 더없이 우울하고 책방의 수입은 갈수록 바닥을 치는 사정이다. 게다가 지금은 중동발 고유가 사태로 지독한 ‘자영업 한파’의 나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과 ‘도대체 내가 잘하는 게 뭐지?’ 하는 자괴감, 지금이라도 사회복지사든 요양보호사든 생활지원사든 더 늦기 전에 뭔가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만 부풀어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급하는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하고 읍내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에 문의를 해보기도 했다. 오전 9시부터 4시까지 총 240시간의 교육과 80시간의 현장실습까지 더해 총320시간(총50일)을 써야 한단다. 거기에다 ‘국민내일배움카드’ 환급 조건이 꽤 까다로워서 헛웃음만 나온다. 과연 나는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게 될까? 내가 나에게 묻는다. ^^;;
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문밖을 살피는 자영업자로 버티고 견디는 날들이 어느새 10년! 중년의 책장수가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중 하나는 시(詩) 필사. 그저께는 좋아하는 시들을 골라 쓰다 보니 무려 15편. 음료 5잔을 팔고 마감하던 토요일이었다.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울라브 하우게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넓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 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