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사>, 필립 아리에스, 동문선
일요일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
필립 아리에스(1914~1984)는 1960년에 낸 <아동의 탄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아카데미에 몸담은 전문 연구자가 아니었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하고 교수 시험에 두 차례 낙방한 아리에스는 교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 ‘열대농업연구소’에서 일했다. 대신 그는 밤과 주말에는 독립 연구자로 연구활동에 몰두하며 심성사의 고전이 될 대작을 발표한 ‘일요일의 역사가’가 되었다.
<아동의 탄생>을 펴낸 다음 아리에스의 연구주제는 죽음의 역사로 옮겨갔다. 그는 무려 15년간 파리는 물론 유럽 전역의 국립 도서관과 성당을 돌며 유언장, 전례서, 묘비명, 초상화, 조각 등의 자료를 베끼고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을 읽고 분류하고 분석하면서 중세부터 현대까지 1000년 이상의 긴 시기 동안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탐구했고, 그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숙고했다.
1974년 아리에스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초청을 받아 서구인의 죽음의 역사에 대한 네 번의 연속강의를 하게 된다. 이 강의를 통해 그는 죽음의 역사의 흐름을 종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연구를 마무리하기에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1975년에 <서구 죽음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우리말 제목 <죽음의 역사>)라는 소책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도 전에 그 결론부터 세상에 내놓는”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1970년대 초 프랑스에서 노년과 죽음에 대한 담론이 폭발한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진행 속도가 빨랐다. 당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가족 해체와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 추문으로 제기되었으며, 노인을 수용하는 시설의 비참함이 폭로되었다. 보부아르는 <노년>(1970)을 통해 현대사회는 노인을 쓰레기처럼 취급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노년의 존엄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의료화된 죽음, 소외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워지고, 존엄사와 호스피스에 대한 여론도 들끓어 올랐다. 일상적으로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죽음이 사회적 여론의 중심에 놓이는 역설적 현상이 등장한 것이다. “일반 서적들과 정기 간행물들, 그리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들이 죽음을 다투어 다루기 시작했다.”
1969년 미국에서 출간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임종의 5단계를 심리적 과정으로 분석한 <죽음과 죽어감>이 바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호스피스 운동이 시작되었다. 또 에드가 모랭의 <인간과 죽음>이 1970년에 재출간되면서 인류학적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1975년 낙태 합법화 이후 존엄사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역사를 연구해 온 아리에스는 “즉각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유혹을 억제할 수 없었다.” 결국 <에세이>는 당시 시대적 화두에 대한 일요일의 역사가 아리에스의 참전이고 응답이었다.

친숙한 죽음
아리에스의 연구는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0년이 넘는 시간을 다룬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죽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아리에스가 채택한 방법은 사회적 감수성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방대한 자료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럽 곳곳의 성당을 찾아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고, 고문서 자료실에 보관된 유언장을 분류하며 묘지의 비문을 베끼고, 그림으로 남겨진 도상과 문학작품을 살폈다. 이 작업의 결과 그는 중세 천년을 거치는 동안 서구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시대별로 구분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행해진 네 차례의 강의는 바로 그 구분을 따른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친숙한 죽음을 다루었다. 친숙한 죽음이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중세 무훈시나 중세 소설들에 등장하는 기사들이 바로 그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예감하고, 무심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중세인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부활의 날을 기다리는 휴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후 육신이나 무덤은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리에스는 중세의 친숙한 죽음에 대한 자신의 논거를 보충하기 위해 근현대의 문학작품도 인용한다. 톨스토이의 <세 죽음>, 솔제니친의 <암병동>과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죽음에 대한 수용적이고 체념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그는 현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는 전혀 다른 감수성에 주목한다.
자신의 죽음
그러나 중세 후반이 되면 친숙한 죽음이라는 집단적 감수성 안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의식이 자라나는 미묘한 변화가 포착된다. 11세기~12세기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죽음은 인생의 결산이고,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가 결정되는 일이니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탁발수도회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개인이 부상하는 시대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아리에스가 주목하는 것은 묘지의 변화와 유언장이다. 이제 교회 내의 공동묘혈에 가까웠던 묘지가 아니라 개인의 묘지와 비문에 대한 관심이 나타났고 유언장에서도 자신의 구원을 위한 종교적 자선 등이 중시되었다. 아리에스는 이 시기에 부유하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개인의 고유한 자아를 인식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아리에스는 이렇게 중세에 자라난 자의식이 15세기 이후 현세적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으로 나타나는 것을 호이징가를 빌려 ‘가을의 결실’이라고 본다.
타인의 죽음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중세적 태도로부터의 단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변화가 나타난다. 죽음을 찬양하고 극화하면서 에로틱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베르니니의 조각작품 ‘성녀 테레사‘와 바로크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들 수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연결하는 모티프가 등장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에로틱한 이미지는 인간과 죽음 사이의 1천년에 걸친 친밀성의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낭만적이고 수사학적인 죽음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타인의 죽음’에 주목하는 태도였다. 아리에스는 ‘타인의 죽음’이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중요한 것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감정과 애정에 기초를 둔 가족애의 출현이 있다고 보았다. 근대 이전에는 가족이란 주인에게 종속된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부권과 소유, 가족과 유산은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에 애정으로 가득찬 부르주아적 가족 감정이 나타나 일상의 삶을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아동의 탄생이 그러했듯이 초상의 슬픔이 이 시기에 부각되었다. 이제 초상과 장례는 종교적 공동체적 의식의 성격을 탈각하고 유족은 기절하거나 식음을 전폐하며 슬픔을 드러내고, 조문은 유족을 위로하는 의식으로 변화했다. 이와 함께 묘지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져서 이전에 없었던 묘지 숭배와 묘지 순례라는 새로운 감수성이 탄생했다.
중세초기 사람들은 성인 근처에 묻히기를 바랬고, 그 간절한 바람은 교회의 영지 안에 설치된 공동묘혈로 구현되었다. 그러나 개인의식이 싹트고, 가족애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누구의 무덤인가가 중요해졌다. 게다가 이 시기 부상한 위생담론은 공동묘혈을 전염병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프랑스의 경우 18세기 말이 되면 묘지에 대한 법률이 공표된다. 앙시앵레짐 하에서 시작된 이러한 제도화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이어졌다. 교회를 벗어난 묘지는 도시계획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추억에 대한 숭배는 묘지의 공원화로 이어졌다.

관광지가 된 파리의 카타콤(18세기에 파리의 공중묘혈의 해골을 한 곳에 모았다)
금지된 죽음
아리에스를 통해 우리는 죽음이 단지 개체의 생물학적 죽음만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디서 죽는가, 어디에 묻히는가, 어떻게 장례를 치르고 애도하는가, 심지어 사체와 묘지에 대한 태도까지, 죽음과 관련된 우리의 관점이나 태도의 변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심성(망딸리떼), 즉 집단적 무의식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엘리아스는 그 자신 이러한 죽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아리에스의 모친은 1964년에 사망했고 부친은 1971년에 사망했다. 그 7년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고향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하고 상주를 위로하는 애도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는 달랐다. 그때와 같은 사람인 그 노인들이 상을 당한 사람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엘리아스는 7년 사이에 죽음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행동양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극히 현대적 현상이다. ‘타인의 죽음’의 시대까지만 해도 죽어가는 자는 자신의 죽음의 주인이었다. 죽어가는 자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았고, 죽어가는 자로서 명령하고 지배했다. 그는 죽어가는 과정의 주인이었다. 죽은 후 사람들은 경의를 표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큰 변화가 나타났다.
하나는 죽어가는 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미성년자처럼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그에게 진실을 감추는 것이 그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급사가 가장 두려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죽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죽는 것이 더 행복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환자의 경우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도 가족도 아니고 의료진이다. 죽음은 이제 기술적 현상이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초상의 슬픔에 대한 거부이다. 고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유족에게 고인의 죽음을 환기시키는 위로의 말도 금기시된다. 아이들은 죽음의 과정을 몰라야 하고 유족은 장례를 마치면 일상의 중단없이 대인관계와 일, 여가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아리에스는 상실에 대한 공적 표현이 금지됨으로써 슬픔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병적 상태가 심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대적 죽음의 심성을 아리에스는 ‘금지된 죽음’이라 명명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현대적 역설이 등장한다. 그것은 전문적인 장의업자가 등장함으로써 죽음이 상업과 이윤의 대상이 되고, 죽음을 팔기 위해 죽음을 친숙한 것으로 만드는 역설이다.

평장묘
침묵을 넘어
아리에스는 당시 죽음에 대한 담론이 폭발하던 시기의 긴급한 응답으로 <에세이>를 펴내고 몇 년뒤 1,000페이지가 넘는 박사논문 <죽음 앞의 인간>(1977)을 발표했다. 아리에스의 연구는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죽어가는가’라고 묻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부아르의 <노년>이 불행한 노년에 대한 침묵을 일깨운 것처럼 아리에스의 죽음 연구는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의식적 침묵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자의 고통과 고독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죽음에 대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태도는 오랜 시간 형성되어온 심성의 역사 속에 자리한 것임을 발견했다.
아리에스의 주장은 이후 이 문제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있다. 엘리아스는 <죽어가는 자의 고독>(1984)에서 중세의 친숙한 죽음에 대한 아리에스의 논의가 낭만적이라고 비판하며 아리에스가 참고한 문학작품들이 주로 기사나 지식층의 심성을 드러낸 것이어서 보통 사람들의 심성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현대인보다 중세인들은 훨씬 더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갑작스런 죽음의 공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푸코의 생명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의 ‘위생담론’이나 현대의 ‘금지된 죽음’은 단지 시대적인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권력의 작동방식의 변화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실증적 역사연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리에스의 자료분석은 객관적, 실증적이기보다 주관적, 감성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리에스의 연구가 죽음에 대한 태도 이면에 사회적 무의식이 작동하며, 우리가 흔히 개인의 감정의 문제로 취급하는 상실의 슬픔, 애도 역시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표현의 형식이 있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죽음과 관련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죽음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던 1970년대의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겨울,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뒤, 온갖 미디어가 늙음, 질병, 죽음, 존엄사, 안락사, 호스피스, 요양원에 대한 글과 말과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를 읽으며, 우리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넓고 깊게 생각해 볼 적절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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