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아버지는 왜 불편한가
‘할머니는 착한데 할아버지는 틀딱이 되는 이유.’
트렌드를 연구하는 유튜브 채널1)에 올라온 한 영상의 제목이다. 이 문장은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젊은 세대가 노년 남성에게 갖는 이미지를 축약한다. 우리는 흔히 할머니를 정겹고, 수다스럽고, 돌보는 존재로,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고 말이 통하지 않으며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인물로 일반화한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지하철과 같은 공간에서 할아버지들의 튀는 행동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곤 한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임산부를 보고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거나,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언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 말이다.
‘노인 혐오’라는 용어는 온라인 게시판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도 할머니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두드러진다. ‘아 진짜 노인 혐오 걸리겠어요.’ 라는 어느 토론 게시판에 달린 댓글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베댓(베스트댓글)은 다음과 같다.
“그 시대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매너, 에티켓, 준법의식 희박한 건 맞는데 할머니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남한테 뭐라고 지랄은 잘 안하는데 할아버지들은 툭하면 화내고 호통치고 지랄해서 진짜 개빡침. 모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반말하면서 호통 치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지 원”
사회학자 김찬호는 노인들이 화를 내는 이유2)를, 두려움에서 파생된 외로움과 수치심이 분노로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노인들의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고 관계망이나 가족과의 유대관계가 점점 약화되는데서 오는 외로움, 젊음이 숭배되는 문화 속에서 자기비하 감정이 쌓이며 생기는 수치심, 이 두 가지의 감정이 특히 남성 노인들에게 ‘화’를 분출시키는 촉매다. 분노를 폭발시킨 후 이어지는 관심이 그들로 하여금 외로움을 보상받고, 수치심을 숨길 수 있는 방어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두려움’, ‘외로움’, ‘수치심’이다. 노인 남성이 느끼는 이 감정들은 그들이 주입받았던 사회 규범적 남성성이 ‘은퇴’라는 생애 주기적 사건을 통과한 후 생겨난다. 그들에게 남성성이란 물리적으로 강해야 하며, 위계질서 안에서 권위적이고, 가족을 책임지는 능력으로 증명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퇴를 통해 사회적 규범 속 역할과 정체성은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그 결과 무위와 우울감에 시달리며 고립되거나, 반대로 과도한 훈계와 통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전자의 경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지만 고독사에 내몰리기 쉽고, 후자는 ‘틀딱’이나 ‘꼰대’로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된다.
2. 은퇴 이후, 그들의 두 가지 모습
보부아르는 남자들에게 은퇴 후 ‘새로운 신분’의 의미는 여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다고 봤다. 그녀는 남자들의 은퇴란 “활동하는 개인의 범주에서 갑자기 비활동적인 개인의 범주로 떨어져 늙은이로 분류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은퇴란 곧 과거와의 단절이며, 휴식이나 여가 같은 장점도 있지만 궁핍과 자격 박탈이라는 심각한 단점도 가진 이 새로운 신분에 적응해야 한다.”3)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년 남성들에게 과거와의 단절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에서 확인하곤 한다. 배드민턴장에서 만나는 회원들을 성별로 구분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호칭이다. 물론 남녀 모두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할머니’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 금기이다. 여성 회원들이 나이순으로 언니, 친구, 동생이 되는 것과 달리 노년 남성들은 서로를 다양한 직함으로 부른다. ‘회장님’, ‘감사님’, ‘교수님’, ‘원장님’, ‘대표님’ 등 그것이 현직인가 전직인가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운동복을 입고 있을 때조차 그냥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정체성을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욕구는 ‘권위적이고 꼰대같은 불편한 할아버지’의 탄생으로 실현된다.
필립 로스의 자전적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에 등장하는 아버지 허먼 로스는 권위와 허세를 포기하지 못하는 은퇴 남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잘나가는 보험회사의 지점장이었던 그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친구의 철물점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자원봉사에도 참여했지만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아내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보스’가 되어 아내의 일상에 개입하고 군림한다. 그 결과 필립 로스의 어머니는 일흔여섯의 나이에 아들에게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허먼 로스는 새로운 관계에 도전하는 대신, 기존 관계를 폭압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마지막 보스로서의 역할마저 실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편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가정에서 제왕적 가장 노릇마저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경우 남성은 더욱 취약해진다. 그것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고독사 통계4)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한국인의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다. 연령대별 자살자수 통계에 의하면 40~70대 구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남성 인구(115.8)가 여성 인구(29.6)보다 월등히 많다. 고독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3 성별 연령별 고독사 현황에서 5,60대 남성의 고독사 비율이 53.9%로 절반을 넘는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은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재취업이나 창업 실패 후 겪게 되는 사회적 고립감이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토 역시 자살을 고민하는 무기력한 은퇴 남성이다. 그는 매일 집 주변을 돌며 주차, 분리수거, 소음 등을 체크하고 누군가에게 지적질하는 것을 일삼는 꼰대다. 삶의 중심이었던 아내와 사별 후 더욱 무료해진 오토에게 어느 날 날아온 해고통지는 그를 완전히 붕괴시킨다. 성실한 엔지니어였던 그는 빈곤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지만 관계 맺기에서는 무력했다. 오랜 친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삶 속에서 할 일마저 없어지자 그는 신변을 정리하고 자살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이 두 가지 유형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모두 우리시대의 남성 규범에 얽매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관계보다는 역할에, 감정보다는 기능에, 의존보다는 자립을 중요시하도록 훈련된 남성성의 문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이 질문이 중요하다. “나는 아직 쓸모가 있는가?”
3. 내리막을 내려오는 기술
일본의 사회학자 스기타 슌스케는 노년기 남성이 행복해지려면 능력주의와 남성다움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래야 소소한 일이나 쓸모없어 보이는 관계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역시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男おひとりさま道(2009)』 을 통해 남자들이 두려움 없이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혼자가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 잘 살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조언한다.
그녀는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리막을 내려오는 기술’이라고 부른다. 내리막길은 내가 지녔던 능력과 재능을 점차 잃어가는 과정이다. 어제 가능했던 일이 오늘 불가능해지고, 오늘 가능했던 일이 내일은 불가능해진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기술’의 첫 번째는, ‘약점 드러내기’이다. 이 말은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에 있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생활공동체 베델하우스의 표어에서 따왔다. 약점이란 나쁜 점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점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면 된다. 스키다 슌스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에는 스미코구라시라는 캐릭터가 소개되어 있다. 이 캐릭터들은 구석에 숨는 것을 좋아하며 각자 고민이나 어려움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북극에서 태어났지만 추위를 잘 타는 시로쿠마(흰 곰), 날씬한 몸매를 원하지만 부끄럼을 잘 타는 네코(고양이), 과거의 기억을 잃고 자아에 대해 고민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녹색 펭귄, 인간에게 쫒기다 엄마와 헤어진 후 잡히지 않으려고 도마뱀인척 하는 공룡 토카게.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예민함과 약자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오순도순 살아간다. 그곳은 경쟁, 인정, 생산성, 능력주의 대신 존재만으로 서로를 긍정하는 공동체이다. 그들은 각자의 결핍이나 손상이 없는 상태를 꿈꾸긴 하나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곧 그들의 캐릭터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두 번 째는 ‘정년의 인정’이다. 정년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역할이 ‘종료되었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것은 흔히 ‘상실’이나 ‘쓸모없어짐’으로 잘못 이해되곤 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라무와 미키오의 책5)을 인용해 고용정년, 일정년, 인생정년을 소개한다. 고용정년이란 타인이 정한 정년이다. 반면 일정년이란 각자가 스스로 정한 정년이다. 고용정년 이후 제2의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어떤 일을 할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마지막 인생정년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여기에 가족정년을 추가하는데 그 안에는 부부정년과 부모노릇정년이 포함된다. 부부정년을 거론하는 이유는 앞서 허먼 로스의 사례에서 본 것과 같이 남편의 은퇴(고용정년)가 부부관계에 위기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용정년을 맞이한 노년 남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 일상생활 활동)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싱글력’이다. 결혼한 경우에도 사별이나 이혼으로 혼자가 될 수 있기에 혼자 사는 능력은 싱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우에노 지즈코는 이런 노년의 자립을 ‘홀로 버티는 능력’이 아니라 싱글력이라고 부른다. 싱글력이란 외롭지 않게 혼자 사는 능력이며, 도움을 거부하지 않고 필요할 때 의존할 수 있는 관계망을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남성들을 위해 ‘남자 홀로 나이듦의 10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그녀는 평소 여성들이 경험한 ‘싱글 남성들 이런 점이 싫다’, ‘이런 점 때문에 안 된다’를 기반으로 했다고 밝혔다.
당신이 만약 노년을 준비하는 남성이라면 여기에 무엇을 추가하겠는가.
1) 의식주의 자립 2) 건강관리는 본인 책임 3) 술, 도박, 약물에 빠지는 것은 금물 4)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지 말 것 5)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6) 사람과의 만남에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 것 7) 이성 친구들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말 것 8) 다른 세대 친구를 사귈 것 9) 자산과 수입관리는 확실하게 10) 여차할 때를 대비해 안전망을 준비해 둘 것
2절에서 살펴본 은퇴 남성들의 두 가지의 형상은 그간 우리사회에서 요구한 남성성인 ‘강인함’, ‘능력(쓸모)’, ‘자립심’의 상실에 기반 한다. 하지만 노년은 그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기다. 남성들이 다가올 노년을 위해 준비하고 발명해 내야 하는 것은 관계망 안에서 자신만의 싱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노인인구 1천만 시대인 초고령사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남성 노인의 탄생을 희망한다. 나는 그 새로운 인류를 다정한 할아버지라 부르고 싶다.
1)생활변화관측소(https://www.youtube.com/@LifeChange_Observatory)
2)김찬호, ‘화 내는 노인들, 왜 그럴까’, <노년 인권 어떻게 볼 것인가>, 국가인권위원회, 2023
3)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 박혜영 옮김, 책세상, 366쪽
4)보건복지부,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5)가와무라 미키오 『50세부터 정년준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