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다(Mother Care)』는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린 틸먼이 11년간 자신의 어머니를 돌본 경험을 사실적으로 쓴 책이다.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책의 맨 앞장에는 “돌봄 제공자들에게, 그 일을 유급으로 하는 사람, 무급으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라고 쓰여 있고, 그 다음 장에는 “운명은 순순히 따르는 이에게는 길을 안내하고, 순순히 따르지 않는 이는 억지로 끌고 간다.”라는 인용문이 쓰여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글들이 마음에 확 와 닿는다.
어머니에 대한 딸의 의무,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딸, 결국에는 맞이하게 되는 죽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양가감정. 어머니를 돌보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틸먼은 나이 듦과 병듦, 필수 노동으로서의 돌봄, 그리고 그 끝에 놓인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작가답게 냉철하게 보여준다. 또 불법이민자를 간병인으로 고용하면서 돌아보게 된 윤리적 문제, 노인환자를 대하는 의료시스템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이 책을 처음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의무
틸먼의 어머니는 86세에 무슨 병인지 모르는 병을 앓기 시작했는데 어머니의 MRI를 본 의사 네 명 중 세 명이 다른 해석을 내놓아 틸먼을 당황하게 했다. 틸먼은 ‘지각은 성향’이라며 의사들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추측’하는 한, ‘한 의사의 전문성은 불가침의 영역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기대하는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이게 참 어렵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환자의 대변인이 증상을 함부로 진단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이상 행동 등 문제나 증거를 시간 순서대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석은 덧붙이지 말고. 의사들은 가족이 전달하는 의견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는 새겨들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틸먼의 어머니는 간병인과 함께 자신의 아파트에 살고 틸먼과 두 언니는 가까이 살면서 어머니 돌봄에 동참하고 있다. 처음에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되었던 틸먼의 어머니는 정상뇌압수두증이었다. 대표적인 증상은 요실금, 치매, 보행이상이다. 션트수술도 여러 번 하고(고장 날 때마다 교정술) 점점 나이 들어가는 어머니는 발작, 환각, 감염, 심장이상(10년 전 판막 이식수술 받음), 폐렴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병원에 입원 퇴원을 반복했다. 세 자매는 어머니 돌봄과 관련하여 모든 일을 의논하고 결정하며 서로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돌본다. 자매마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어머니와의 관계가 달랐고 어머니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다 달랐지만 어머니를 위해 협력했고, 서로 ‘감정, 애착, 거리감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아주 의식적으로 조심했다고’ 썼다.
틸먼의 어머니는 운 좋게도 간병인 한 사람이 10년간 바뀌지 않고 보살폈다. 어머니와 가장 가까이 사는 틸먼은 간병인과 함께 어머니를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돌본다. 간병인이 많은 도움이 되지만 그 간병인과 맞추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틸먼이 챙겨야 할 일들이다. 모두 간병인의 필요와 선호에 맞춰 그때그때 규칙을 만들어간다. 가족의 일원이면서 가족이 아닌 간병인과의 관계도 참 쉽지 않다.
사랑
틸먼은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가 싫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내 어머니였고 자신은 어머니에게 시간을 내줘야 했다. 시간만이 아니다. 자신의 정서 건강을 희생해야 했다. 어머니가 병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과 의사를 만나기 시작한 틸먼. 어머니로 인해 사는 방식을 바꿔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좋은 딸, 좋은 동생이 되어야한다는 ‘내면의 압력과 외부의 압력’에 굴복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딸에게도 경쟁심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너보다 더 뛰어난 작가가 되었을거야.”라고 말하는 어머니. 틸먼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쓴다. ‘어머니는 내게 엄청난 경쟁심을 느꼈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말이 내가 아는 현실을 확인해주었지만, 어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경쟁의식과 내게 그걸 알리고 싶은 욕구, 그 무엇보다도 내게 그걸 알리고 싶은 욕구에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프고 틸먼이 돌보는 동안 ‘어머니는 변했’고 틸먼도 어머니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더 잘 웃었고, 틸먼에게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을 기른 그 어머니가 아니게 되었다. 어머니는 대체로 순했고 자신을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틸먼은 ‘나는 이따금 내가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고 상상했다. 그런 환상은 내가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자신이 그리워한 것,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좋은 엄마 또는 충분히 좋은 엄마였다고 썼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맛보는 것이 그리웠다고.
죽음
어머니에게 폐렴이 생겼고 응급실로 이송되면서 죽음의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젊은 의사들은 폐렴을 치료하고 싶어 했지만 틸먼은 어머니가 고통 받지 않기를 원했다. 운 좋게 한 노인정신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가정 호스피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더 좋은 임종, 더 존엄한 임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함으로써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정서적, 심리적 무게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고 한다. 아티반, 모르핀, 아트로핀은 죽어가는 사람의 비상약품이다. 아티반은 삼킴 기능이 멈추었을 때 입안에 고인 침을 마르게 한다. 호스피스 간호사의 도움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어머니가 죽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뭔가를 물을 수도 없었다는 틸먼. 어머니가 느린 속도로 해체되는 것을 붕 뜬 채로 멈춰서 관찰했다.
‘임종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미친 짓처럼 느껴진다. 죽음은 언제나 뜻밖의 사건이다. 예상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 그리고 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건은 여전히 불가피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또한 당신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난다.’
틸먼은 엄청나게 많이 울었는데 자신이 어머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어울리지 않았다면서 죽음은 자신을 겁에 질리게 했고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했다. 경외감으로 가득한, 그래서 끔찍한 절묘함에 붙들려 있었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틸먼은 부고를 쓰고, 의사들과 아파트 관리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유대인인 틸먼은 유대교 장례문화와 게일족 장례문화에 따른 장례식을 했다. 술, 와인, 음식을 준비하고 이틀 동안 저녁 6시 이후에 친구들과 동료들의 방문을 받았다. 사람들은 꽃을 가져왔다. 추도사는 생략했고 화장을 하고 유골은 언니가 가져갔다. 얼마 지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는 타일을 제작해 톰킨스 스퀘어 파크에 깔아서, 찾아가서 부모님을 떠올릴 장소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아버지는 바다수장을 해주는 장례식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바다를 좋아했기 때문에. 화장 전에 장례식을 올릴 수 있도록 시신을 방부처리 했고, 작별인사만 하는 송별식을 한 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식구들이 뼛조각과 뼛가루를 한줌 씩 쥐고서 배 밖으로 던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달 넘게 아버지의 셔츠를 입고 잤고, 아버지에 대한 애도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부가 자신의 심장 바로 위에 박혀 있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신체적인 감각이었다.
틸먼은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거나 어머니를 애도하지 않았다. 안도감에 마비되었고 피로로 녹초가 되었으며 환희가 아니라 현기증을 느꼈다. ‘11년이라는 짐, 어머니라는 짐이 떠났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죽었다.’ 어머니의 뇌는 뇌의 노화를 연구하는 병원에 기증했고 부검보고서를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두달 동안 어머니의 아파트를 정리하지 못했다. 자매들끼리 물건을 나누는 일은 수월했지만 강제퇴거 명령을 받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파트를 붙들고 있었다.
‘우리는 놓아주어야 했다. 아파트만이 아니라 그 아파트가 상징하는 것, 그곳에서의 어머니의 삶, 그곳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했던 20년이라는 시간을.’
틸먼은 11년 동안의 돌봄에 대해 ‘좌절의 연속’이었고, ‘배움의 과정’이었으며 ‘깨달음의 시간, 일종의 병적인 깨달음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미칠 것 같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들이었고,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때로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온화한 감정이 들었고, 때로는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는 틸먼에 대해 나는 온전히 공감하면서 ‘이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말에 위로 받았다.
틸먼은 어머니를 돌보면서 장애인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통증을 느끼는 사람에 대해 민감해졌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도 달라졌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호스피스 케어에 대해 조사하기도 했다.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싶었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에 틸먼은 이렇게 쓴다.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이 글을 썼음에도 나는 여전히 짐작만 할 뿐이다. 왜 어머니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에게도 영혼이 암흑에 빠진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떤 연유로 그랬는지도. 어머니에게 물어봤더라면 좋았을텐데. 스스로에 대해, 소피 메릴 틸먼(어머니 이름)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부모가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가족은 놀랍고 당혹스럽고 지속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에 휩쓸린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이런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삶에 관한 사실들의 크기와 깊이와 영향력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어려운 의학적 문제들, 확신의 부족, 선택지와 가능성이 적거나 없다는 느낌. 무거운 장애물이 당신을 약하게 만든다. 실제로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오로지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담대하게.”
“노인 환자는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의사, 간호사, 병원으로부터 최선의 서비스를 받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반드시 저돌적으로 나가야 한다.”
“어머니는 간병인에게 의지했다.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더 많이 의지할수록 나는 더 행복해졌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를 얻었다.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멀어지면서 나는 어머니의 것이 아닌 공기를 마셨다. 그것이 곧 자유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임종 과정은 기본적으로 괭이밥의 이파리가 밤에 닫히는 것과도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발가락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움켜쥐듯이. 그 과정은 출산 과정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시선을 돌리는 행위, 못 본 척하기가 내 관심을 끈다. 그런 행동은 필연적인 것을 무시하는 방법이다. 이제 내 의지와는 달리 필연적인 것을 보게 된 나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을 보게 된 나는 그런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연기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그래서 더 주목한다. 다시 말해, 나는 지각하게 되었다.”
틸먼이 추천하고 있습니다.
돌봄 제공자들에게
그 일을 유급으로 하는 사람
무급으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리고 죽음에 관심있는 분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