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홀로 집에서 죽을 수 있습니까?
2015년에 출간된 이 책은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독신의 오후』 와 함께 ‘싱글 시리즈’ 3부작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혼자 사는 전문직여성으로 자식도 손자도 없다. 이 책을 출간할 당시는 68세였다. 그러니 이 책은 당사자의 시선으로 집에서 홀로 죽을 수 있을지를 탐색한 결과물이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는 다양한 이유 중에 초고령화 사회도 있다. 이혼이나 비혼과 함께 사별로 혼자 살게 된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는 고령의 노인들이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돕는 다양한 간병시설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도 혼자서 잘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려면 어떤 인프라가 조성되어야 할까? 저자는 그동안 살아온 집에서 홀로 죽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노인 간병과 관련한 제도와 실제 간병 시설 등의 현장을 취재했다.
2.집에서 홀로 죽지 못하는 이유
집에서 홀로 죽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확고한 의사가 있고, 지역에 이용 가능한 의료·간호·간병자원이 있고, 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자기부담 능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일본에는 가정 의료가 부활해서 병원에서 죽는다는 상식을 깨고, 가정에서 임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리고 있다. 각종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 노인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은 여러 저항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저항은 가족의 반대다. 가까이 있는 가족보다 멀리 있는 친척들이 죽음에 임박해 있는 노인을 방치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노화의 종착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119를 부르게 되는 경우다. 둘째는 의료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집으로, 그것도 가족이 없는 집으로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의료전문직이다. “의사는 생명을 구할 소임이 있고 죽음은 의료의 패배”라고 믿으면서 사명감이 강한 의사일수록 더욱 저항감이 크다. 집에서 간병과 관련한 케어를 하던 케어 매니저도 저항 세력이다. 임종은 케어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본분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하는 경우다.
이러한 저항 세력에 보태 도시의 노인 간병 시설은 부족하고, 지방은 남아도는 불균형한 상황이나, 연금이나 저금의 여윳돈을 자신을 위해 쓰기를 망설이는 노인들의 경향도 방해 요인이다. 저자는 이러한 방해 요인을 인식하고 자기 소유의 집에서 자신이 가진 재산을 쓴다는 마음을 먹게 되면 홀로 죽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3.집에서 홀로 죽는 현장- 홈 호스피스의 경우
‘홈 호스피스’ 는 노인의 그룹 리빙에 임종케어가 동반되는 사업을 말한다.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들어가는 호스피스가 아니라 주거지로 선택해 마지막까지 간병을 받는 ‘마지막 거처’이다.” 저자는 ‘카아상노에’ 라는 홈 호스피스 사업을 하고 있는 이치하라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간병이 필요해진 노인이 간병시설에 들어가면서 비어있는 집”에서 착안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노인을 돌보는 조건으로 단층집을 빌리고, 방을 다섯 개로 나눠 공동 주거 형태로 빌려주었다. 홈 호스피스는 다다미 생활에 익숙한 노인들이 기존의 생활공간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04년에 처음 시작한 사업은 2015년 취재 당시, 세 개의 지점을 열며 확장세에 있다고 했다. 주변 지역의 단골 의사와 방문간호까지 연결해서 간병의 다른 조건까지 갖춘 사업이다.
다섯 명을 넘지 않는 규정을 두고 노인 한명 한명에게 케어 매니저를 두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 업체는, 어떤 경우에도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노인이 방 하나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랫동안 그곳에 살아온 노인의 이력으로 이웃의 네트워크까지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러한 노인 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함께 거주하면서 임종까지 책임져 주는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4.집에서 임종하기를 바란다면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일본 현장에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고령의 노인들을 간병하는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머지않아 다가올 변화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집으로 왕진을 오는 의사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집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의중을 파악해보면 중병이 아니라면 대부분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을 것이다. 당장 나의 어머니의 경우도 정신이 있는 동안은 혼자 내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령의 노인 간병과 관련해 어떤 제도들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간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얼마 전 EBS 다큐 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2부 집에서 죽겠습니다> 편에서 저자 우에노 치즈코가 나왔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재택사’를 주장한 선두주자로,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이와 관련한 강의를 계속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본 정부가 간병보험료를 올리겠다는 방침에 반대하는 집회에도 참석해서 당사자로써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책이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집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다는 확신은 점점 더 깊어진 듯했다. 노년으로서의 자기 고민을 탐구하고 세상과 연결해서 해결하려는 그 의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동시에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람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병원도 이제 병동에만 머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의료서비스의 배달이 필요해졌다. 병원에서 주치의였던 의사가 집에서 와준다면, 병원에 입원해도 지역의 주치의가 자유롭게 찾아준다면 환자로서는 얼마나 안심이 될까.(126쪽)
가정임종의 조건은 ‘본인의 확고한 의사’ 이상으로 본인의 ‘자기해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무슨 뜻일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해방이란 때가 오면 자신을 남에게 내주고 남의 손에 맡기는 힘을 말한단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돌보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뜻대로 하고 싶다, 남에 신세 지고 싶지 않다고 고집스럽게 ‘자립’을 바라기보단 무력한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타인에게 맡기는 일도 하나의 능력이다. 이것을 ‘해방’이라 표현한 건 그때까지 살아온 방식에 대한 고집이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는 누구나 한없이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자기해방은 자신의 무력함을 받아들이는 지혜이다. (234쪽)
이치하라씨(홈 호스피스 창업자) 입소자의 과거 이야기를 모두 들어둔다고 한다. 단순히 봉사하는 마음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든 그가 살아온 역사가 있다. 그 이야기를 존중하고 한 인간으로서 마주하는 것이 이치하라 씨의 신조라고 한다. (172쪽)
태어나고 죽는 일은 자신의 의지를 뛰어넘는다. 그것을 컨트롤하려는 마음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손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일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나를 비롯해 가족이 있는 사람도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은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종교가가 아닌 사회학자로서 저세상을 구원으로 여길게 아니라 이 세상의 일은 이 세상에서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 내가 품고 있는 실천적인 의지이다. (301쪽)
1)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고민이 시작될 때
2) 비혼으로 살면서 죽음을 생각할 때
3) 부모님의 간병과 관련한 이슈가 본격화 될 때
4) 사회학자가 보는 초고령사회의 죽음에 대한 탐구 자료를 원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