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과 답답함이 최고기온만큼이나 매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에어컨 없이는 못 살겠고, 서울에 와 집값을 보면 아득해진다는 지방 청년의 하소연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다. 노력하면 된다는 능력주의의 주문은 강력하지만, 출발선부터 기울어진 경쟁에서 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기대도 접은 지 오래고, 다른 전망도 안 보인다. 자책과 원한, 혐오와 냉소,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시대를 떠도는 가장 흔한 정동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에 본 <남태령>과 <가능주의자>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숨통을 조금 틔워주었다.
<남태령>은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2024년 12월21일 정오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다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 막힌 농민들과 그 소식을 듣고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고개로 모여든 청년들의 28시간을 기록한 영화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시대 여성 청년들이 움직이는 방식, ‘내향인 깃발’의 기수 같은 사람이었다. 록 페스티벌에서 쓰던 깃발을 들고나온 그는,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시공간의 공동체성을 광장으로 옮겨왔다. 직장 생활로 밥벌이하고, 일상에서는 조용히 숨죽이는 내향인이지만, 동갑내기였던 가수 설리의 죽음에 분노하고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심폐소생술을 배운다. 삶의 균열과 상처를 그저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한 돌봄과 연대의 행동으로 바꿔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내향인뿐 아니라 농민들에게 핫팩과 따뜻한 음료를 챙겨 건네고, ‘행운을 주는 검은 고양이 연합’처럼 좋아하는 캐릭터가 담긴 엉뚱한 깃발을 펄럭이는, 영화 속 청년들의 유쾌하고 선명한 에너지에 매료되면서, 나 역시 엑스 계정을 파고 싶어졌다.
<가능주의자>는 2011년부터 2024년까지 13년에 걸쳐, 돌고래 해방부터 개 식용 종식까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외면받던 동물권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실천해왔던 젊은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이들 대부분은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 전후에 페미니즘과 동물권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이들의 성취뿐 아니라 내부의 피로와 심리적 소진, 운동의 부침까지 기록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웃음이 났던 것은 의제나 다섯 사람의 서사가 아니라 오히려 단체들의 이름이었다. ‘비건먼지’ ‘유인원’ ‘삼사이워크’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 ‘핫핑크돌핀스’…. 감독이 속한 비건먼지의 뜻을 몰라 함께 간 후배에게 물었더니, “비건이 뭔지 알려주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이름에는 먼지만큼 작아보여도 먼지만큼 잘 뭉치고 더 커질 수 있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유인원(You In One)은 동물 연구자들의 연구 공간이자 카페이고, 삼사이워크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스튜디오다.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은 제주 한화우주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평화·환경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다.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아내고, 알고 나면 유쾌해지는 이름들이 동물·생태·기후·평화의 새로운 사회를 퀼트처럼 엮고 있었다.
이날 나는 팔레스타인 평화 활동가 해초가 사회를 본 GV에도 참여했다. 상업영화의 넉넉한 GV와 달리 시간은 부족했고 마이크와 앰프가 열악해 소리도 잘 안 들렸다. 하지만 모두 숨죽여 들었고, 조심스레 손을 들어 질문했다. 부족함이 만들어낸 이상한 밀도가 거기 있었다
두 작품 속 여성 청년들은 세상이 좋아질 거라 말하지도, 절망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루쉰처럼 희망이 허망하다고 말하면서 절망도 그러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희덕 시인은 <가능주의자>에서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삶의 가능성을 쓴다고 했다. 청년들은 SNS와 덕질로 관계를 발견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현장을 연결하며 함께 몰입하고 함께 버티는 법을 익힌다. 그렇게 그들은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무엇도 꿈꾸기 어려운 시대 가당치도 않게 ‘가능주의자’가 되어간다.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절망의 심연을 건너는 나의 가능주의를 궁리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