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경이면 어김없이 깬다. 엄마 방으로 건너가 살그머니 침대 온기를 살핀다. 곤히 잠든 엄마의 미세한 호흡을 가만히 지켜본다. 잠자다가 죽는 것도 복이라는 말을 흔하게 듣지만, 그 상황을 마주하는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엄마 코 고는 소리를 듣고서야 안도한다. 웅크린 채로 뒤척뒤척 배회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서두른다. 엄마에게 두유 한 잔과 풀빵을 데워 주고 좌변기를 씻어놓고 식사를 챙긴다.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엄마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닦고 로션을 바르고 손톱을 깎고 속옷과 겉옷을 갈아입힌다. 양치는 잘하면서 머리감기와 목욕하기를 싫어하는 터라 이 방편을 쓴 지 오래되었다. 그 사이 언니는 집안일을 챙기며 커피를 내리고 구운 계란을 챙기고 자동차 히터를 미리 켜놓는다.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하고 8시에 집을 나선다.
공기는 싸늘하지만 바람이 세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내 종합병원까지는 넉넉잡아 50여분이면 도착하지만 엄마에게는 하염없이 멀고 먼 거리. 1942년생 엄마는 지난해 6월말 동네 골목에서 넘어져 ‘12번 척추압박골절’ 진단을 받고 이십여 일 동안 입원생활을 했었다. 이후로 이곳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내과, 신경과, 신경외과 진료를 받고 있고 오늘은 이비인후과 진료도 받을 예정이지만 미리 말하진 않는다.
신경과에서 인지기능 검사가 예약되어 있다. 몇 해 전 동네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받던 도중 짜증을 내며 나온 적이 있던 터라 이번에는 무사히 잘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다. 읍사무소에 제출하기 위해 진단서가 필요하고 진단서를 받기 위해선 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그나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든다.) 며칠 전부터 말하고 있지만 엄마는 언제나 처음 듣는 사람처럼 묻기를 반복한다. 꼬박꼬박 대답하다 훅!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무한 반복. 주변에서 ‘그냥 예~예~’ 대답해 버리라고 비법인 양 알려주는 말은 얄밉고 어르고 달래다 끝내 걸려 넘어지는 내 꼴은 한심하다.
담당 의사가 보호자용 NPI 체크리스트를 건네주며 밖에서 대기하라고 알려준다. “엄마, 묻는 말에만 잘 대답하면 돼! 그러면 빨리 끝날 거야.” 눈을 맞추는데 불쑥 “어디 가지 마!” 떨리는 엄마 목소리. 나만 아는 간절한 눈빛과 목소리와 표정이 있다. 공포에 떠는 아이를 보는 느낌.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대기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내 얼굴은 이상하게 구겨져서는 부지불식간에 주르륵 눈물이 터져버린다. “나, 왜 이래?” 언니가 말없이 다독여준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비인후과로 향한다. 평상시 TV 볼륨을 너무 크게 틀어놓거나 가까이에서 불러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전화벨 소리를 자주 놓치고 통화도 힘들어지고 있다. 한쪽 귀에서 나온 보말똥 만한 귀지에 놀란다. 다른 쪽 귀지는 너무 굳어있다고 에펙신이용액을 처방받아 나온다. 내일도 다시 병원행이다.
신경과 의사와의 면담 시간. 최근 엄마는 자신이 아직도 물일(해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 어느 아침엔 물에 담가둔 소라를 가져와야 한대서 부둣가까지 확인하러 갔던 일. 급기야 혼자 손수레를 끌고 가서 (남의) 테왁과 뽕똘을 가져온 일. 하지만 오리발은 찾지 못하자 누가 훔쳐갔다고 생각해 이웃 해녀 삼춘 집을 몇 번이나 찾아가며 오리발에 집착하는 일. 불쑥 이모할머니 며느리와 사위가 건넌방에서 자고 있다며 어찌하면 좋을지 속 끓이던 일. (지갑에 현금이 많은데도) 자꾸만 돈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연 등을 공유한다. 망상과 환각 증세가 빈번해지고 있다. 그보다 더 우려되는 건 근력이 약해진 몸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터라 또다시 골절 위험이 커지는 사정이다.
11시 20분, 뇌 MRI 촬영을 위해 다시 대기하는 사이,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사발면과 만두, 두유로 허기를 달랜다.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담는 것 같다. 대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다신 병원에 오지 않겠다는 엄마의 짜증 옆에서 ‘이건 증상이다. 이건 증상이다.’ 속으로 읊조리다 관세음보살까지 찾는다. 검사 결과는 ‘대뇌 소혈관 질환’ ‘뇌 위축이 심함’ ‘치매 초기 상태’ 진단이다. 병원 생활 이후 엄마의 인지 상태는 차츰차츰 좋지 않은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약국에서 처방 약을 받고 집으로 향한다. 자동차 뒷좌석에 노곤하게 누운 엄마가 애틋해지는 심정은 또 뭐람. 엄마를 집에 모셔놓고 서둘러 읍사무소로 간다. 올해의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고 다른 몇 가지 일을 마저 처리하고 바닷가 앞에 앉은 시간은 오후 4시. 이제야 겨우, 잠시, 쉰다. 활짝 날개를 펼치고 나는 갈매기들을 오래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섬과 하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해변 가까이 떠밀려온 쓰레기들은 더럽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쉼’과 ‘여유’는, ‘평정심’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오후 5시, 엄마 저녁 식사와 약을 챙긴다. 매번 밥 먹기 싫다는 말로 시작해 약 때문에 먹는다며 잘 드신다. 후식은 언제나 대봉감. ‘잠자기’와 ‘감’과 ‘풀빵’은 질리지 않는다는 엄마. 식사 후에는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고 로션을 발라준다. 밤 9시 무렵 온몸을 주무르며 조상님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엄마를 응원한다. 귀에 용액을 넣어주고 물컵을 채우고 전기장판 온도를 확인하고 진통제 한 알을 준비해 놓는다. 하루를 삼 일처럼 산 것 같기도, 삼일을 하루처럼 흘려보낸 것 같기도 한 기분이다.
이틀째
이비인후과에 가는 아침. 새벽 3시 무렵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용액을 넣는다. 엄마는 나갈 채비를 마치고는 금새 마음이 바뀌어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어제 병원 일정이 고되었다고 짐작하면서도 미룰 수는 없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병원을 가냐는, 고집 센 엄마를 상대할 때마다 내 안에서 거칠고 모진 괴물이 튀어나온다. 미뤄야 할까? 미룰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설득도 선택도 징글맞을 때면 언제나 한강 작가의 시를 떠올린다. 나도 지금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허깨비와 클린치하고 있다고. 엄마도 나도 언니도 제각각 얻어맞은 기분으로 출발한다.
이비인후과 의사 앞에서 아차! 한다. 분명 어제 왼쪽 귀지를 파냈다고 생각해 오른쪽 귀에다 용액을 넣었는데 그 반대였던 거다. 이런 헛똑똑이 같으니!! 내 실수여서 민망해진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예약을 잡기엔 시간도 거리도 엄마 기분도 영 아니어서 어쩌나 싶은데 다행히 의사가 도구를 써서 빼내준다. ‘이런 거면 어제는 왜 도구를 쓰지 않았는지’ 묻고 싶지만 헛똑똑이는 입을 열 수가 없다. 청력검사를 하고 ‘가는 귀가 먹었다’는 진단과 보청기 사용을 권유받는다. 이번은 귀지 파내기만으로도 성공적이랄밖에.
내친김에 치과 진료실로 향한다. 입냄새가 심해지고 치아 사이에 이물질이 자주 끼는 상태다. 관리해야만 한다. 큰딸을 이길 수 없어(엄마의 표현이다.) 분이 풀리지 않은 엄마를 짐짓 모른 척한다. 치아 엑스레이를 찍을 때는 무서워하는 엄마가 움직일까 봐 아래서 양발을 꽉 붙든다. 아랫니 세 개가 흔들리는 상태이고 ‘치주염’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는다. 미루고 미루던 스케일링을 받으면서도 자꾸만 움직이고 그만하겠다고 보채는 엄마를 간호사들이 겨우 달래며 마무리한다. 다음 예약을 잡고 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멀다. 말이 없는 세 사람. 푸른 멍든 사람들끼리 각자 터지는 속울음.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나도 삐뚤어질테다! 하는 심정이 되어서는 엄마에게 말을 걸지 않고 시선을 피하고 기색을 모른 척하며 괜히 모질어지는 마음. 그러면서 차라리 속이나 편하면… 젠장. 보호자인 나는 매일 흔들린다. 뒤척이는 자책과 자학, 불면의 형벌 속에서 끙끙거리며.

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라졌다.
-한강, ‘그때'<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 지성사, 2013)






달리님의 k장녀 돌봄 말하기 글 연재를 응원합니다,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는 이야기로 시작된 첫 글에서부터 달리님이 마주하고 있는 ‘허깨비’가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만…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을 꺼내놓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