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마을주간에 다녀오다.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6월 27일~28일) 안양예술공원에서는 ‘수상한 마을’ 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 전시회, 공유회, 간담회, 북토크 등의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김중업 미술관 특별전시관 2층에서는 양일간 문탁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중에서 제가 소개해드릴 내용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을 공동체의 기쁨과 슬픔’- 돌봄, 자활, 인문학으로 살펴보는 지금의 공동체라는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입니다. 자누리샘의 사회로 전국 다섯 개 공동체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문탁네트워크(이희경)-경기도 용인 수지
수천개의 공부가 수천개의 삶으로 창안되는 곳
시작은 용인의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였습니다.
문탁샘은 한 지붕 세 가족 문탁네트워크, 파지사유, 인문약방으로 구성된 홈페이지를 보여주시며 전 시간 발표자였던 조형근 선생님 식으로 표현한다면 문탁은 용인 카센터 골목에 위치한 공유지라고 소개하셨어요.
공부가 다른 밥이 될 수 있을까를 화두로 시작했고, 나이를 먹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그러면서 화두도 바뀌게 되었는데 그것에 따라 자연 표류하는 공부가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라는 말씀을 들으니까
비로소 문탁네트워크가 ‘수천개의 공부가 수천개의 삶으로 창안되는 곳’이 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기본적으로 공부가 기반이 되지만 반국가적, 반화폐적 삶을 고민하는 공동체로서의 실험과 행동들도 소개해 주셨는데요,
양생실험실에서 만든 일리치약국을 비롯해
돈을 섞어 만든 경제적 공유지인 마을 공동지갑 무진장,
자누리, 월든, 담쟁이, 찬마니,… 분해의 정원과 같은 마을 작업장과 그곳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 복,
교육사업(기숙사, 악어떼, …)
특히 밀양 송전탑 투쟁을 비롯해 전장연, 장애인 활동가들과의 주기적인 연대는 우리가 자족적 공동체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라고 하셨죠.
앞으로도 공부와 우정과 밥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남을 수 있는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말씀으로 마무리.
노루목향기(이혜옥)-경기 여주
성공한 할머니들의 함께 돌보며 살기
경기도 여주의 3인 3색 여주의 노인 여성 공동체에 살고 계신 이혜옥님의 발표는 호탕함 그 자체였습니다.
우선, 세 분이 어떻게 만나 살게 되셨는지 경기도여성비전센터와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소개해주셨습니다.
공동체 노루목향기 인터뷰
https://youtu.be/SE3ztrIbRbM?si=NeZJPprXQKV9R1mB
자신은 죽이 잘 맞아 같이 살게 된 케이스라고 운을 떼신 후
어떻게 세명의 60대 여성 공동체가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는지에, 당연히 결코 쉽지 않았을 여정을 마치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셨어요.
우연히 난타를 시작했고 동네사람들과 풍물패로 연결되었는데
재봉반, 자수, 어르신들을 위한 컵타, 김치, 떡, 아이들과 함게 그림수업, 시낭송회, 작은음악회 등등을 집 마당에서 함께 하면서 마을이 마당으로 들어오고 마당이 마을로 확장된 것이지요. 이처럼 이주민으로서 선주민과의 관계를 극복하고 집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린 것이 7년간 낯선 곳에서 친구와 함께 삶을 영위할 수 있게된 비결인 것 같습니다.
세 분 중의 한 분인 심재식님이 이미 ‘성공한 할머니’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렇게 매스컴을 타고 유명해지시다 보니 자신들과 같은 삶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이혜옥님은
전원생활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시골생활은 풀과의 전쟁이기도 하고, 특히 해가 진 이후의 삶, 밤문화가 없다는 점은 반드시 미리 숙고해 보고 와야 하는 중요한 점이라고도 짚어주셨어요.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서도
살아온 문화, 관점이 다른 것에 대해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어떤 것들은 절대 못고친다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 또한 함께 사는 지혜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일단 살아보고 견딜만하면 사는 것”이라는 말씀은 너무 단순하면서도 또 명확하게 들립니다.
현재 나이(70세)를 감안하면 향후 10년정도는 왕성한 활동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80이후의 노후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해요.
그냥 닥치면 그때 생각해보는 것으로. ^^ 그때까지는 그냥 사는 거.
살롱드마고(이유진)- 전라 남원시 산내면
퉁치지 않고 맞서기, 농촌 페미니즘
2014년 창립, 마고라는 이름은 지리산의 여신이름 ‘마고’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요.
이유진님은 농촌에서 너무 당연시되었던 가부장적 사고와 행동과 성폭력의 현실에 맞서 진행했던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에 대해 소개해 주셨습니다.
살롱드마고는 예술과 창작의 장 ‘문화기획달’을 기반으로 협동조합 운영, 책방, 디자인사업, 교육사업 등을 수행 중인데 남원에서의 첫 작업은 ‘지글스(지리산에서 글쓰는 여자들)’라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20 여 명의 글쓰는 여성들이 모여 4년 동안 계간지 16권을 완간하였습니다.
그런데 완간 후에 잡지를 만들면서 느낀 점, 마을에서 겪은 부당한 일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캠페인을 시작하자마자 마을에서 이에 대한 좋지 않은 뒷담화들이 오갔고 회원들은 이 경험을 기록하고 발표하고 공유하게 됩니다.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가 그것입니다. 활자화의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처음에는 뒤에서 수근거리고 욕하던 사람들(남자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기존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성의 노동으로 치부했던 마을의 행사에 자발적으로 남성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도 하고, 남성들을 위한 페미니즘 교육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에요.
또한 남원에서 아직도 매년 개최되는 춘향선발대회를 모니터링을 하고 쓴 컬럼이 기사화되면서 엄청난 악플이 달리며 의도치 않게 바이럴마케팅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2018 농촌 게릴라 걸스 전시회에서 만든 두장의 포스터(아래 사진 참조)는 1천장을 찍어 전국의 공동체에 배포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 일화는 모든 참석자들에게 박수와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 포스터는 아직도 어딘가의 냉장고에 붙어 있어, 컵 씻기 행동을 독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탁샘이 포스터 남았는지 물어보셨지만 품절이라고요. ㅋㅋ)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시골에서,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마지막으로 강조해 주신 ‘과감함’과 ‘과감함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덕분이었던 것 같네요.
‘퉁치지 말자’캠페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참고해주세요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
내용소개:
https://m.blog.naver.com/innominata/220785744749
자료집(만화포함) :
https://m.blog.naver.com/himawarib/221373876732
사회복지법인 윙(최정은) – 서울 영등포구
정신이 능동이면 신체도 능동이다
세번째 시간은 사회복지법인 윙의 최정은대표님의 여성의 존엄한 삶과 자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윙은 한국전쟁 후 최대표의 할머니이신 백수남원장이 모자원으로 시작해 현재는 소외된 여성, 폭력피해여성을 위한 자활을 목표로 3대째 이어오고 있는 특별한 기관입니다.
2005년부터 원장을 맡게 된 최정은대표는 복지시설에서 통상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교정적이고 계몽적인 체제를 탈피해 피해여성들에게 ‘내면의 힘’을 길러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수유너머와 함께 인문학 아카데미를 운영했고 10년간 일주일에 한번씩은 등산을 갔다고 합니다. 스피노자의 ‘정신이 능동이면 신체도 능동’이라는 심신평행론을 따라 신체를 먼저 능동적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에서였다고 해요. 이렇게 요가와 등산과 운동을 하면서 신체의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어야 자활지원센터가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최대표는 또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실험들, 자립을 위한 주거환경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고 독립형 그룹홈에 이어 셰어하우스까지 운영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 수도 없이 밥상을 차릴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혼자 잘 살 수 있어야 여럿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밥을 함께 먹으며 알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현재 소셜다이닝 비덕살롱을 통해 함께 식사를 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주셨어요.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서로의 삶을 가꾸어 가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대표의 목표라고 합니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밖으로 나갈 것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어 사람들을 맞이하는 방식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비비(비혼들의 비행), 김난이- 전라 전주시
개인의 독립된 삶을 존중받고, 문제는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생활공동체
마지막으로 비혼여성들의 공동체 비비의 김난이 이사장의 발표입니다.
1인가구이면서 비혼여성들의 모임으로 시작해 이제 노년의 함께 돌봄을 고민하며 진행중인 여러 실험과 실천적 행동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2003년 비혼을 선언한 6명의 여성들이 함께 살면서 시작한 비비는 처음에는 공동체에 대해 고민했었고 1년내내 공동체와 관련된 책을 읽기도 했다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아픈 몸이나 나이듦에 대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돌보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문탁과 비슷하죠?
2016년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공간비비도 탄생했는데요. 이 공간은 여러 공부와 실험의 장이 되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공공임대 아파트에서 비혼여성가구의 비율이 주민의 2%가 넘었을 때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규칙, 회비, 의무가 없는 모임이라고 해요. 정보, 연대, 응급,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공유하는데 목적이 있고요. 서로 돌봄, 보상없는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인의 독립된 삶은 존중하고 문제는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생활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또한 비혼담론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공부와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비혼여성아카데미를 만들어, 심리, 정서적 독립을 비롯한 주거독립의 문제를 고민했고
비혼여성들의 독박돌봄에 대한 고민했고
페미야학 1년과정 진행 중이며
독립생활을 위한 기술을 공부했고(소방안전관리자와 같은)
비혼여성 정책제안서(예를 들면 1인가구 공공주택의 면적 상향 조정 건의)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각자 부모 돌봄 이후 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부터 <중노년 1인가구 주거공동체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생활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해외사례도 둘러보고, 전문가도 만나보면서 공동체 주택을 구상중입니다. 주택이라는 것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넘어선 신뢰와 돌봄이 오가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비비만의 공동체 주택을 짓기 위한 부지 확보 노력중입니다.
현재는 언니네트워크와 함께 대안장례식을 고민하며 장례식과 관련된 공부중이라고 하니 나이듦연구소에서도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탐방을 해서 좀 더 자세한 말씀을 들어봐야겠습니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spacebb2010&tab=1
다섯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공통적으로 공부, 밥, 몸, 돌봄, 경계와 같은 단어들이 남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 아닌가 싶네요.
‘컵 하나도 제대로 안 씻으면서 공동체는 무슨!’
이 뿐 아니라 이틀간 진행된 프로그램 중에서 문탁에서 준비한 내용들이 워낙 알찬 것들이라 모두 재미있었는데, 홍보의 부족 때문인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기획해 주신 겸목샘과 인문약방 여러분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