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일깨운 장례의 의미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부고를 받고 조문을 가는 일이 익숙해졌다. 물론 누구의 죽음이냐에 따른 온도차는 있지만 내 몸은 기계적으로 할 일을 생각한다. 누구와 언제 조문을 갈지, 부의금은 얼마를 할지를 말이다. 부의금은 통상 상주와 나의 친밀도에 의해 결정되고 조문의 목적은 상주를 보러 가는 것이다. 원래 조문(弔問)에는 조상(弔喪)과 문상(喪問)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조상(弔喪)은 죽은 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은 이에게 인사하는 것이고 문상(問喪)은 상을 당한 상주를 위문하는 것이다. 예법에 의하면 고인을 아는 사람들은 조상과 문상을 겸하되 고인을 모르는 경우 문상만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조문객이 두 가지를 다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문상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장례식은 살아있는 자들의 의례이고, 이런 이유로 장례식장에서 가장 흔한 광경은 상주의 접객이다.
예전에는 달랐다. 유교적 전통에 의한 관혼상제 중에서 특히 혼인과 상례는 전통적으로 집안일을 넘어선 공동체의 일이었다. 혼례에서는 부모가 혼주의 역할을, 상례에서는 고인의 자녀가 상주 역할을 맡지만 이웃과 지인들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참여하는 상부상조의 개념이 강했다. 반면 지금은 상부상조라기보다는 서로 주고받는 교환관계에 가깝다. 혼례나 상례를 치르는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품앗이의 개념만 남았을 뿐, 상부상조의 의미는 쇠퇴했다. 행사를 치른 후 남은 방명록은 곧 내가 앞으로 챙겨야할 경조사 목록이 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결혼식에 엄마 친구가 왜 와?’라며 결혼식의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신세대들이 결혼식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기존의 절차나 격식을 타파하고 가족과 지인 중심으로 치르는 작은 결혼식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에 비해 상례는 아직도 유교 전통의 벽이 높은 편이다. 작은 결혼식은 합리적이라고 평가되나 작은 장례식은 초라하다고 여겨진다. 이렇듯 견고했던 우리 장례문화의 고정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집합금지 명령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가 제한되면서부터이다.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선화장·후장례를 비롯해 무빈소장, 1일장, 2일장, 그리고 조문객이 없는 가족중심의 장례가 치러졌다. 이것은 모두 기존의 상식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혹은 기피되었던 형식의 장례식들이다. 장례식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조의금을 무통장 입금함으로써 금기를 깼다. 또한 장례식에 참여한다고 해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환경에서의 조문은 짧고 간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적어도 장례식장의 유족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접객으로 인한 피곤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뿐더러 가족들과 고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공간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코로나를 통과한 이후에도 장례를 치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문객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2021년 3월 한겨레신문은 몇몇 단체(공공의창, 웰다잉시민운동, 한국엠바밍)와 ‘코로나19 이후 장례 변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장례의식에 있어서 가장 긍정적인 변화로 ‘가족장 등 새로운 장례문화의 확산’(37.9%)과 ‘식사 등 불필요한 문상문화 축소’(27.1%)를 꼽았고 그 다음으로는 ‘검소한 장례문화 확산’(18.3%)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3일장을 해야 하는지, 조문을 위한 빈소는 꼭 차려져야 하는지, 접객 중심의 장례식장 문화를 벗어난 다른 추모의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것 말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새로운 장례식의 발견
고인에게 초점을 맞추거나 고인의 뜻에 따라 진행되는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미 앞서간 사례들을 통해 조금 더 구체화 해보자.
1.
2021년 12월 소셜미디어 X(당시 트위터)에서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랑이 포스팅한 언니의 장례식 현장은 떠들썩하고 이례적이었다. 그는 평소 언니가 좋아했던 물건들로 제단을 장식했고 언니의 평소 성격을 기억하며 슬프지 않은 장례식을 기획했다. 이랑의 장례식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받았다. 여성이지만 상주가 되었고(상복도 남성의 것을 착용),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빈소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2013년 세상을 떠난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의 장례식장 빈소에서도 그의 유언에 따라 흥겨운 댄스배틀이 열렸다.) 가부장적 틀을 깨고 새로운 장례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의미를 담은 그의 행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출처 : 이랑의 X(구 트위터)
2.
<종의 기원> 시리즈1)를 집필하고 <분해의 철학>, <중동태의 세계> 등을 번역한 독립연구자 박성관 선생의 장례식은 매우 소박했다. 그는 설암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으나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하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공부에 전념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아내와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시신은 병원에 기증하고 빈소는 마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여 그의 부고는 지난 3월초 무빈소 장례 후 지인들에게 전송되었다. 모바일 부고장을 통해 연결된 온라인 추모공간이 빈소를 대신했다. 지금까지 무빈소 장례식은 무연고자의 장례식과 거의 같은 의미였다. 박성관 선생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포기한 사람들의 어쩔 수없는 결론이었던 간소한 장례식이 누구에게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3.
영화 <필라델피아(1993)>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의 추모식을 담고 있다. 주인공 베켓(톰 헹크스 분)은 유능한 변호사였다. 그런데 그가 동성애자이자 에이즈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전과는 너무 다른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시선 속에서 악의적 해고를 당한다. 그는 그 부당함을 맞서 힘겨운 법정 싸움을 하게 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판결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부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 Streets of Philadelphia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추모식이 진행된다. 발병 후 수척한 모습과는 상반된 귀엽고, 사랑스럽고, 행복했던 베켓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된다.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베켓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를 기억한다. 그 자리에는 어떠한 관점으로도 왜곡되지 않은 온전하고 고유한 베켓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4.
추모가 있는 장례식은 이제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채비(https://chaebi.life/)는 기존 장례서비스와는 별개로 고인과 유가족을 위한 추모식을 진행한다. 충무로의 공간 채비에 마련된 추모식장에서 묵념을 시작으로 고인의 생애사가 소개되고 지인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가족 대표가 추모의 편지를 읽는다.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시된 유품과 고인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통해 그의 삶을 추억한다. 고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메모리얼 포스트에 적는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울고 웃기도 한다. 헌화로 추모식을 마무리하기까지 가족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똑같은 추모식은 없다. 정해진 형식이 아닌 유가족의 희망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이다. 채비는 접객중심의 장례식이 아닌 고인의 추모와 애도에 집중하는 작은 장례식을 추구한다. 홍보의 한계로 아직 많이 알려지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장례식에 대해 유가족을 위로하는 의미보다 고인을 애도하는 의미가 더 크다2)고 여긴다는 점은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다시, Remember You
나에게 가장 최근 장례식은 뇌출혈 후 한 달 여간 지방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장례였다. 시아버지는 생애 마지막을 지방 소도시에서 보내셨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장례를 서울의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른 이유는 순전히 자식들의 손님을 편히 받고자하는 의도였다. 당신의 친구분들이 두어 분 다녀가시긴 했지만 예상대로 조문객들의 대부분은 딸 부부와 아들 부부의 손님이었다. 실제로 시아버지와 매일 파크골프를 치고, 문화센터를 함께 다니면서 밥친구이자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가까운 분들은 참석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자식들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모여 각자 밀린 이야기들과 근황토크를 하는 시간이었을 뿐 제대로 된 애도가 빠진 장례식이었다. 만약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다시 기획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추모의 시간을 만들 것인가, 채비서비스를 따라 시뮬레이션해 본다.
공간 채비 | 출처 : 채비(한겨레두레협동조합)
장소는 그분의 친구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한다. 유품으로는 평소 좋아하시던 붓글씨용 문방사우, 파크골프채, 탁구채, 풍수지리책, 늘 쓰시던 중절모자 그리고 새로 사드렸으나 거의 신어보지 못하셨던 미끄럼방지 신발 등을 준비한다. 평소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좋아하셨으니 배경음악으로는 미스 트롯2 수상자들의 노래 메들리를 틀어본다. 초대할 사람들은 당신의 형님과 형수님, 자식 3남매 내외와 손주들, 조카들, 학교 동창들, 지방으로 이사 후 사귄 친구분들까지 대략 30명 정도일 것 같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큰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쓴 추도문을 읽는다. 친구 대표가 마음을 전하는 글을 읽는다. 자식들과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다. 특히 관계가 불편했던 큰며느리는 그간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을 풀어낸다. 시아버지의 사진들로 만든 동영상을 플레이한다. 작은 키가 평생 콤플렉스였지만 그 몸에 깃든 긍정적 에너지는 누구보다 컸던 분. 그분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홀로 되신 후 친구들과 자유롭게 지내시던 마지막 몇 년이 아니었나 싶다.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다. 못 다한 말이나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말들은 메모로 남긴다(이 메모들은 관에 넣어 드릴 예정이다). 행사를 마무리한 후 시아버지가 쓰신 붓글씨 습작들을 하나씩 포장해서 선물로 나누어드린다.
나와 시아버지가 함께 한 시간이 짧아 기획에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애도의 시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고인의 물건을 통해 그의 삶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 미처 하지 못한 기쁨의 말, 사랑의 말, 미안함의 말을 남김으로써 마음의 부채감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나 작품들을 감상하며 어떤 장면들을 기억의 회로에 다시 저장할 수 있다는 것. (온라인)추모 공간에 남겨진 지인들의 마지막 인사를 마음속에 새기며 상실감을 넘어선 관계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진정한 애도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정직하게 잘 표현하는 것”이며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니까. 4년째 채비 추모식을 맡고 있는 담당자들의 말이다.
1)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그린비(2010), <종의 기원 : 모든 생물의 자유를 선언하다>, 너머학교(2012), <다윈에게 직접 듣는 종의 기원 이야기>, 나무를 심는 사람들(2018)
2)장례 관련 여론조사, 2023년 7월, 리얼미터, 장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해 고인을 애도하는 의미(64.6%), 유가족을 애도하는 의미(23.8%), 유교적 전통에 따른 도리(8.3%)순으로 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