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섹스 잠 섹스 밥 섹스 잠 섹스
“2023년 마지막 날을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섹스 잠 섹스 밥 섹스 잠 섹스로 지내다, 파트너를 보내 놓고 잠과 밥을 마쳤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없는 것으로…ㅎ”
올 1월1일 페이스북에서 이 포스팅을 읽는 순간, 와우! 라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놀라움(아니 이런 이야기를 여기에다 쓰다니!), 그리고 바로 부러움(체력 좋다, 애인도 있구나!). 댓글들도 장난 아니었는데, 자기는 “밥 약 잠 밥 약 잠”으로 보냈는데 누구 염장 지르고 있냐는 통박, 왜 1년 치를 마지막 날에 한꺼번에 하느냐, 평소에 좀 꾸준히 하라는 농담까지, 잠시나마 유쾌, 상쾌, 통쾌한 에너지가 최현숙 선생님의 그 짧은 포스팅 주변으로 몽실몽실 퍼졌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25년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으로, 모든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2008년 총선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더구나 나는 진보정당의 원조 격인 민중당(1990~1992) 여성위원회 출신 아니었던가? 당연히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를 거쳐 진보신당 성소수자 위원회에 몸담고 있다가 총선에 출마한 52세 최현숙이 반가왔다. 하지만 선거 이후 나는 그녀를 잊었다. 지리멸렬했던 진보신당도 함께 잊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뜻밖에도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공부의 여정에서였다. 나는 2019년경부터 닥치는 대로 나이듦, 치매, 죽음, 돌봄, 애도 등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어나갔는데, 그녀는 이미 그때 노인 생애사와 관련된 구술 서적을 세 권이나 낸 작가였다.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냐?>(2013), <할배의 탄생>(2016), <할매의 탄생>(2019)) 특히 나는 그녀가 자기 어머니의 늙음과 죽음에 대해 기록한 <작별일기>(2019)가 좋았다. 나는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주변에 선물했다. 그런데 작가 최현숙이 바로 예전 진보신당의 그 최현숙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고 보니 그녀는 2008년 선거를 기점으로 진보정당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탈당, 노인요양보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진보정당 운동을 하다가 전업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수없이 많지만, 요양보호사로 변신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교수나 판사, 변호사, 사업가 혹은 다른 사회 운동가 같은 전문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홈리스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가난, 늙음, 죽음에 대해 글을 쓴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와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했다. 그리고 가끔 페북에서 그녀의 소식을 듣는다. 덕분에 나는 나이듦과 죽음이라는 주제에서 ‘계급’을 까먹지 않고 있다.
2.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내 길을 만들어 갔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칼 같은 글쓰기”로 유명한 아니 에르노는,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그의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노벨상위원회)으로 자신을 해부한다. 게이와 노동자계급의 근원적인 수치심을 써 내려간 디디에 에리봉의 자전적 에세이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비판적인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의 전범이다.
최현숙의 이 책,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도 아니 에르노나 디디에 에리봉의 맥을 잇는다. 그녀는 67년간 스스로에게도 해명할 수 없어서 기억 속에 봉인해 놓았던 도벽과 냄새의 수치스러운 경험을 이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벌건 대낮에 꺼내놓는다. 그리고 해부도를 든 외과 의사처럼, 그것들을 찢고 헤집고 꺼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초등학교 시절, 시장에서 일수놀이를 하는 어머니 대신 일수를 걷으러 다니면서 시작된 소소한 ‘삥땅’. 그런데 그 작은 일탈은 어쩌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발각되서 망신살이 하늘에 뻗칠 때까지 멈추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 ‘도벽’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용돈이 필요할 때마다 벌어진 ‘돈 버는 억척 어머니’와 ‘돈 못 버는 양반 아버지’와의 갈등. 공책을 사게 돈을 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선선히 돈을 준 적이 없었다. “니 아빠한테 달라고 해” 그러면 예외 없이 “뭐야? 니 엄마한테 달라고 해, 아침부터 여편네가”라며 아버지의 분노가 폭발했다. 딸의 삥땅을 눈치채고 ‘도둑년’이라 가차 없이 불렀지만 그래도 계속 심부름을 시켰던 어머니의 이중성, 점점 알아가는 돈맛과 도둑질 전후의 긴장과 쾌감, 무엇보다 지속적인 아버지의 가정폭력. 그 모든 것이 그녀를 도둑질 ‘중독’으로 몰아갔다. 그녀는 이제 자기 부모의 한계와 오류를 이해하고 수긍하지만, 그녀의 도벽이 부모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춘기부터 시작된 액취증. 한여름까지 두꺼운 외투를 벗지 않고 버텼어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자기 몸의 불쾌한 냄새, 친구들은 자신을 피했고, 인상을 썼고, 심지어 킁킁거렸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 “자괴감과 수치심과 모멸감의 무저갱”!! 그러나 액취증을 물려 준 아버지는 땀샘 제거 수술을 해달라는 딸에게 “여자가 몸에 칼을 대면 안 된다”라며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스물셋이나 되어서야 그녀는 겨우 아버지의 허락하에 땀샘 제거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아버지의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결혼한다. 그녀의 삶의 동력, 그것의 근원은 수치심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었다.
25년간의 결혼생활, 아들 둘, 그러나 2004년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남편과 이혼, 그 전후 과정에서 큰아들과의 절연 (이 이야기는 전혀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형제자매와의 절연, 이제 그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누구와도 가족을 꾸릴 생각이 없다. 결혼과 가족은 어린 새끼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터전이기도 하지만, 그 폐쇄성 때문에 무시로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곳이기도 하다. 부를 대물림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최현숙은 “그 징그러운 궁지의 막강함에 진저리를 치며” 가족 밖으로 기어이 탈출하였다.
3. 늙어가는 몸과 협상하기
그녀의 책 2부는 늙어가는 몸에 관한 이야기이다. 1부의 냉정함과 달리 2부는 빵빵 터지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우선 방광 트러블. 저자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혈압약과 함께 찬물을 열 모금 마시고, 그다음 커피를 많이 마시고, 이후 녹차를 많이 마시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자동차가 없는 그녀는 강의하러 갈 때 지하철을 이용하고, 길치이기 때문에 아주 일찌감치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이동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돌발상황이 발생하고 동선이 꼬였다. 허둥지둥 경로를 바꿔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적절한 때 미리 소변을 봐야 하는데 놓친 것이다. 결국 중간에 내려 “계단을 오르내리고 임시 출입구의 벨을 눌러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더 황당한 사건은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겼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똥이 마려웠다.” 강의 날은 식사 루틴이 깨지게 마련이어서 언제 어디서 똥이 마려울지 사실 모른다. (이걸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의 먹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소변과 대변을 조절한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은 상황도 많다. 너무 허기가 지면 평소와 달리 아무것이라도 먹어야 하고, 또 관계자들과의 강의 이후 회식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도 중간에 내려, 계단을 내려가, 임시 출입구를 통과해서, 화장실을 찾아, 똥을 쌌다. 그 사이 내내 그녀는 불안해하며 항문을 힘을 주어야 했다.
거의 외출하지 않는 어머니는 불가피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면, 나가기 전 꼭 소변을 보신다. 그리고 보행 보조기를 끌고 현관으로 가는데, 현관 앞에 가서는 한 번 더 오줌을 누겠다고 다시 변기 쪽으로 가신다. 소변을 본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이건 방광의 물리적 작용이라기보다는, 여러 번의 실수 혹은 실수 직전까지의 경험 때문에 오는 소변 강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최근에 여러 번 소변 강박을 느끼기도 했다. 방광은 가장 먼저 늙는 장기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빨. “여성주의와 반자본주의 관점과 64세의 나잇살 덕에, 정상성에서 상당히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벌어진 앞니가 거슬린다. 남들에게 감출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강의할 때 신경이 좀 쓰이고, 가장 신경 쓰이는 때는 언론, 미디어, SNS에 대문니가 벌어진 얼굴 사진이 나오는 경우다.”
나는 그녀가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어느 해 겨울 문탁에서 김장하던 날, 켜켜무를 베어 먹다가 앞니가 나간 후, 나는 가짜 앞니를 끼고(나는 앞니 임플란트를 할 수 있는 잇몸 상태가 아니다. ㅠㅠ) 아래위 부정교합을 해결하기 위해 앞니 두 개를 갈아서 토끼 이빨처럼 짧게 만들었는데, 그 이후 나는 웃을 때마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신경이 쓰이고, 얼굴 사진에 짧고 변색해가는 내 앞니가 도드라지게 나올까봐 걱정한다. 나도 저자처럼 “남들이 찍어 올리는 내 얼굴 사진을 보며 가장 먼저 대문니에 눈이 갔다가 후딱 그 쪼잔함을 수습해 버리기는 하지만, 내가 올리거나 보내는 사진에는 결코 벌어진 대문니가 보이는 사진을 고르지 않는다. 내 몸과 남의 시선 간 각축에서 아직 분열적이다.”
자신의 늙어가는 몸에 대해 저자는 끊임없이 협상 중이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피지기(知彼知己)! 객관적으로 그녀의 몸은 67세, 장애 없음, 경제적 하위층, 작가 겸 강사, 순발력과 집중력 저하, 독거 상태에 있다. 주관적으로 몸과 관련하여 그녀의 목표는 생존이나 건강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삶’이다. 생각하고 읽고 쓰고 활동하기 위한 부위들, 뇌, 눈, 손, 허리가 폐, 간, 치아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늙는다는 것은 포기할 것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더 많은 자유를 얻는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다가 때가 되면 ‘자유죽음’을 결단하면 그뿐일 것이다.
67세, 그녀 최현숙, 용기 있고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그녀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더 늙어갈까? 아마 나는 계속 그녀를 훔쳐보고 부러워하고 따라 하려고 노력할 것 같다. 나이듦의 모델이 거의 없는 우리 사회에서 말 그대로 선배 여성 시민이 탄생했다.
-나는 도둑년이었다
“나는 도둑년 이었다… 어쨌든 더 미루지 않고..내 삶의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만큼의 추적과 해명을 하고자 한다. 해명의 상대는 우선 나 자신이며, 해명의 목적은 그 시절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현재에 닿은 나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내 도벽을 이야기할 때 함께 불려 나오곤 하는 타인들도 개인적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로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사과, 용서, 화해 등의 단어는 너무 애매해서,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필요라면 나와 관련자들의 아픔과 시행착오의 기록이 읽는 이들에게 다양한 쓸모가 되는 것이고, 그러길 바란다.”(p17)
-나는 냄새나는 사람이다
“겨드랑이 냄새는 열세 살 이후 내내,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된 독한 통증이자 콤플렉스였고, 아주 힘들게 마침내 내 태도의 향방이 되었다.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나기는커녕 냄새가 나는 나, 냄새의 내력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나의 향방이다. 위가 아닌 아래로, 상승이 아닌 추락으로, 냄새나는 존재들에게로, 나를 이끈다. 아름다움이니 고상함이니 풍요로움이 아닌 더럽고 냄새나고 불온한 존재와 상황 속으로 가게 한다.
64세에 무작정 마음이 설렘, ‘냄새’로 왈가왈부 되는 노숙인들과 함께하기로 정하고 그들이 사는 곳 가까이 이주했다. 무작정한 설렘은 내 몸과 생애 내력이 나를 부르는 신호다. 67세인 지금도 ‘냄새’라는 단어를 이물감 없이 듣거나 발음하지 못하며 늘 우선 멈춘다. 나는 냄새 나는 사람이다.” (p51)
-나는 운전을 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
“나는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말고는 어떤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자동차 관련 보험도 없다. 경제적 가난의 문제 이전에 신자유주의사회에 대한 내 입장과 태도의 문제다” (180)
-하지 못하는 단계를 지나면 하지 않는 자유로운 단계가 온다
“경제, 문화적 아비투스이자 습이 연출하는 몸은, 도달하거나 놓치지 않고 싶은 각종 ‘다움’에 관한 욕망의 장이다. 돈 많은 노인에게는 더욱, 몸은 타인의 시선과 벌이는 각개전투 속에서 속 시끄러운 갈등과 분열의 장이지만….가난한 노인들은 몸에서 벌어지는 각개전투가 간단하고 신속하다. 시작은 ‘돈이 없어 하지 못함’이더라도 포기를 지나 ‘하지 못함’을 수긍하고 나면, ‘하지 않음’을 거쳐 ‘쓰잘데없음’을 깨닫는 경지에 일찌감치 도달한다. 포기했으니 덜 분열적이고, 그러니 먼저 자유에 도달한다. 부자 노인이 될 리 없는 나는 내 늙어 죽어감의 과정에서 그 각축에 드는 시간과 감정과 돈으로 미리 가장 좋은 것을 사놓은 느낌이다. ‘나다운 삶과 죽음’ 말이다. 가난한 노인들의 간단하고 신속한 마음과 몸의 정리를 ‘비참’이나 ‘처량함’을 붙여 동정하는 시선에 반대한다.” (p205)
-요양보호사가 된다고요? 언니 사기치지 마세요
““언니, 사기 치지 마셔! 하하하.” 2008년 말 내가 요양보호사라는 돌봄노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진보신당 게시판에 쓰자, 친한 당원들이 달았던 댓글의 분위기는 대개 저랬다…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한 10년 가까이, ‘돌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붙들고 헷갈리며 살았다.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업무의 궁극적 목표가 고독사와 자살 예방이라고 한다면,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청소해 주고 나들이에 동행하는 일 등 소위 식모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똥걸레를 빠는 노동을 자임했지만, ‘똥걸레나 빠는 여자’로 취급하는 노인과 가족과 국가와 국민들에 맞서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독한 나조차 때론 오밤중에 벌떡 일어나 혼자 통곡을 했다. 통곡 덕인지 독함 덕인지, 요구되는 돌봄 노동을 하면서…친해진 가난한 노인들과 구술생애사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 작업을 통해 노인과 나와 세상을 새롭게 만났고, 빈곤 노인을 넘어 더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생애 기록을 세상에 내놓고 있으며, 경험과 해석과 재해석을 강의하면서 밥을 벌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 임금노동은 2016년 12월 말로 끝냈다.” (p220)
-섹스, 그 꿀맛!
“생애를 돌이켜보면 내가 상대가 있는 섹스의 즐거움에 탐닉했던 시절은 치열한 삶의 휴지기 혹은 과도기였고, 탐닉의 이유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기회가 온 김에 이번에는 한바탕 쾌락을 즐겨보자는 작정에서였다. 말하자면 섹스의 쾌락은 내게 문득 즐기는 ‘몸의 꿀맛’이다.” (249)
-나는 자유죽음을 택할 것이다
“나는 이제 육십일곱이다. 백 세 시대라고 하니 아직 죽음보다는 삶 쪽에 가능성이 높은 하루들이지만, 언제 죽음이 와도 놀라울 것 없는 나이다. 몸의 능력이 떨어지며 일의 가짓수를 줄이니, 일상이 더 단촐해졌다….
평소 내 죽음에 대한 작심은, 몸과 정신 능력의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 죽음을 집어들겠다는 것이다. ‘어느 지점’에 대한 기준은 ‘자존 능력’과 ‘사회적 쓸모’다. 물론 자존에는 타인의 도움도 어느 정도는 포함된다…육십이 넘으면서는 구체적 방법이나 장소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인들을 위해 시신이 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거라면 죽음 자체는 명확히 알리되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찾을 시도조차 할 여지가 없는 방법이겠지만, 그런 방법은 아직 못 찾았다…단 한 번으로 단호하게 끝내야 한다.” (p280)
1.자기 서사가 지독한 자기 해부, 뼈와 살을 발라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싶은 사람들
2.자전적 이야기와 사회 비판이론을 훌륭하게 결합한 아니 에르노 혹은 디디에 에리봉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
3. 지난날의 어떤 기억, 그 ‘수치심’을 다시 해석하고 이해하고 싶은 분들
4. 소변이 점점 자주 마려워 장거리 여행이 꺼려지게 된 분들
5. 나이든 사람들의 섹스에 대해 말하고 싶은 분들
6. 자유죽음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