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통한 존엄사가 가능하다
『단식 존엄사』는 대만에서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성 희귀병을 진단받은 어머니가 83살 때 ‘단식 존엄사’를 결단하자 재활학과 의사인 딸 비류잉이 어머니가 임종할 때까지 옆에서 함께하며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소뇌실조증’은 운동을 조절하는 소뇌가 점차 기능을 상실해 균형 감각이 떨어져 잘 넘어지고 말기에는 걷지 못하고 침상 생활을 하게 되며 팔다리가 굳어져서 비위관을 삽입해야 한다. 유전병인 이 병은 부모 중 한 사람이 걸리면 자녀가 2분의 1 확률로 걸리는데, 이미 저자의 삼촌과 사촌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는 60대에 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고 다행히 자녀들에게는 유전되지 않았다.
저자의 어머니는 권위적인 남편과 함께 희생적인 삶을 살았지만 강인한 성격으로 자신의 죽음을 결단한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안락사나 존엄사가 합법적이지 않고 유명한 방송인이 스위스로 가서 존엄사를 한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내가 살아있는 의미가 없어지면 떠날 수 있게 도와줘.”라고 여러 번 강조했고 사전연명의료서에 서명하고 건강보험에도 등록해두었다.
평소 요가를 열심히 하고 마음도 강건했던 저자의 어머니는 소뇌실조증 확진을 받은 후에도 변함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중풍에 걸린 남편을 보살피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가족들과 외국 여행도 다닌다. 확진 후 20년 정도 지나 몸 상태가 나빠지자 외국인 간병인의 도움을 받게 되고 83살이 되자 몸을 뒤집지 못하고 음식을 먹다가 사레가 들리는 등 증상이 악화됐다. 어머니는 ‘단식 존엄사’를 결단하고, 그 시기까지 자신이 정한다. 그동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어머니를 충분히 이해하는 삼남매와 가족들은 어머니의 뜻을 존중한다.
저자는 단식을 시작한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21일간의 단식 방법과 그날그날의 상태를 기록하고,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기록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생전 장례식’을 치른다. 손주가 할머니를 인터뷰하여 자신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게 하고, 그동안의 사진들을 모아 영상을 만들어 함께 보면서 행복했던 추억을 공유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나 남편에게 남아있던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가족들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 존경, 감사, 미안함 등의 마음을 표현한다. 멀리 사는 손주나 증손주들도 찾아와 이별을 하고 어머니는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당부도 한다.
“아주 만족스럽다! 난 훌훌 떠날 테니 울지 말거라.”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질문
저자는 어머니의 삶과 단식존엄사의 과정 뿐 만아니라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과 가족들의 관계, 의료계나 의사의 역할과 한계, 간병과 돌봄,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장례식문화, 대만의 존엄사 입법 역사 등을 함께 쓰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어머니가 병환에 적극적으로 맞서며 보여준 낙관적인 의지, 죽음을 흔쾌히 마주한 용기와 지혜, 단신 존엄사의 과정과 가족의 응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단식 존엄사는 어찌하지 못하던 와중에 찾아낸 방법으로, 존엄사 입법이 시급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득하지만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사명으로 나는 미약한 힘을 발휘해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다.”(229쪽)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대만 내에서 존엄사 입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안락사나 의료조력 사망이 합법화되지 않은 국가는 아직도 많다. 우리나라는 존엄사와 관련된 법안이 2022년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처리되지 못하고 회기가 끝나 2024년에 폐기되었다. 존엄사가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저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낯선 이야기만은 아니다.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로 거의 10년 가까이 더 살아야 하는 현 시점에서 존엄사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병원에서 사망 직전에 하는 심폐소생술, 기도삽관, 강심제 투여 같은 것들에 대해 의사들도 가혹한 ‘사망 세트 형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196쪽). 코로 관을 연결해 영양을 공급하고, 도뇨관으로 소변을 빼내고, 기도 삽관을 하며 연명하다가 전기충격기에 갈비뼈가 부러진 채 임종하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의료진들은 스스로 ‘의료사’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사망은 의사로서의 실패’ 라거나 ‘환자를 구하는 소명의식’ 혹은 ‘법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마지막 가는 환자에게 형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카무라 진이치의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신유희 옮김, 위즈덤스타일, 2012)는 책을 많이 인용하며 대만과 일본이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내낸 치매와 파킨슨증으로 팔다리가 점점 굳어가고 이제 음식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하는 엄마를 생각했다. 머지않아 인공영양공급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텐데… 엄마의 증상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대만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 범위가 훨씬 좁다. 앞으로 닥쳐올 멀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엄마를 고통에 빠트리지 않고 조금이나마 편안한 상태로 잘 보내드릴 수 있을까.
구시대 여인인 어머니가 신시대적 사고로 자신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결정했기 때문에 21일간 가족들이 따뜻하게 동행할 수 있었다. 아쉬움과 이별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일은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 잘 지내기 위함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누구도 가로막히지 않기 위해서이다.(162쪽)
우리로서는 어머니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마지막 레슨을 해주신 것 같았다. 죽음은 이처럼 평온할 수 있기에 미지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그래서 살아 있는 시간을 소중히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 없이 용감하게 죽음을 마주하게끔 했다.(163쪽)
‘좋은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 섬네일에 뜬 사진은 이 책의 주인공인 비류잉의 어머니가 증손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