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건강수명을 고려하면 보통 66세부터 83세까지,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약해지면서 고혈압, 당뇨, 뇌졸중, 폐렴 또는 낙상에 의한 골절로 병원신세를 진다. 이러한 병이나 장애로 자립이 어려워지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한다. 요양시설에서 지내다 보면 폐렴, 요로감염, 갑작스런 뇌경색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요양시설에서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시키고 병원에서는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사망하는 노인이 더 많다. 또한 회복되더라도 이전보다 더 쇠약해진 상태로 요양시설로 돌아간 노인들은 발열, 호흡곤란, 의식저하 등의 이유로 종합병원 응급실을 다시 찾는다. 결국 이렇게 요양시설과 종합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을 떠돌다가 그 쳇바퀴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박중철의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2022, 199쪽)에서 말하는 우리나라의 최빈도 죽음의 현장이다. 우리나라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70%(2023년 기준)라고 한다(외상환자 제외).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생애 말기 돌봄의 질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생애 말기 돌봄의 질은 곧 존엄한 삶의 마무리와 직결된다.
생애 마지막 돌봄, 호스피스
내가 호스피스를 경험하게 된 것은 7년 전 시어머니의 암투병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소변에 피가 보이는 증상으로 동네 비뇨기과를 찾았는데 의사가 큰 병원에서의 진료를 권했다. 신장암이었다. 발병 후 힘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고 요양을 위해 지방으로 이사도 하셨다. 기존 항암치료에 한방요법도 해보고 대체요법도 알아봤지만 차도는 없었다. 1년새에 병세는 점점 나빠졌고 암이 전이되면서 심한 통증에 시달리셨다. 지인의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통증관리를 받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호스피스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그때 남편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요양병원도 아닌 호스피스로 모신다는 것은 곧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당시에도 호스피스는 죽음의 장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시립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호스피스 입실 전, 담당 수간호사가 가족들을 모아놓고 호스피스 의료와 보호자의 주의사항 대해 설명해 주었던 순간이다. 어머니에게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건네라는 것, 싸우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가족들의 감정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까지 귀가 열려있으니 돌아가시더라도 너무 크게 울거나 슬퍼하지 말고 어머니가 잘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당부와 함께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 수간호사는 전문적이면서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어서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문 기간은 2주 정도였다. 가족들은 순번을 정해 어머니를 지켰다. 그리고 어머니가 떠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임종실로 이동했다. ‘햇살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곳에서 어머니는 친척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 처음에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던 남편은 어머니의 임종을 조용히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나와 도움을 준 지인에게 고마워했다.
2016년 12월 방영된 KBS스페셜<서진아 엄마는>에서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은 후 2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김정화씨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어 마음고생을 많았던 정화씨는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의연했지만 서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를 힘들게 했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일곱 살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보는 것과 초등학교 생활을 돌봐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 안타깝게도 암이 악화되어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주치의로부터 여생이 3개월 남짓이라는 말을 듣고 정화씨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2016년부터 시범운영된 가정형 호스피스를 선택했다. 종합병원의 암센터가 아닌 호스피스병원에서 가정형 호스피스 상담을 받은 후 정기적인 의료진의 방문을 통해 통증관리와 심리적 돌봄을 받았다. 그가 집에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은 16일밖에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시간은 소중했다. 직접 아이를 씻기고 등하원시킬수는 없어도 아이와 스킨십을 할 수 있었고 함께 동화책을 읽으며 웃을 수 있었다. 정화씨는 ‘일상 속에 머물며 식구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임종기에 다다랐을 때, 집을 떠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3일간의 임종기를 거쳐 숨을 거두었다. 역시 가족들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들이었다.
입원형, 가정형에 이어 2017년부터는 자문형 호스피스 사업이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군(말기 암 외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에 속한 환자가 일반 병동 입원이나 통원으로 기존 주치의 진료를 받으면서 완화의료팀의 돌봄을 같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암치료를 위해 입원 중이었던 환자에게 항암치료가 더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환자의 고통만을 가중시키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선택할 수 있다. 원내의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완화의료팀은 주치의와의 협업을 유지하며 환자와 환자가족을 위한 돌봄 계획을 수립한다. 여기에는 통증이나 신체적인 증상 완화는 물론 음악/미술 치유요법, 임종관리 환자가족의 돌봄 교육도 포함된다. 자문형 호스피스 서비스는 타병원으로 전원이 아닌 기존에 진료를 받던 병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 의료전에 대한 신뢰가 장점으로 꼽힌다. 자문형 호스피스를 받다가 상태가 더 나빠지면 입원형이나 가정형 호스피스로 전환이 가능하다.
자료 : 2023 국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례보고서
필요성은 느끼지만, 아직 정착되지 못한 호스피스
호스피스(hospice)라는 용어는 hospital, hostel, hotel 등과 같은 라틴어의 어원에서 유래했다. 어원은 hospes(손님) 또는 hospitum(손님 접대,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으로 호스피스는 원래 중세 유럽에서 여행 순례자에게 숙박을 제공했던 작은 교회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런 여행자가 병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는 경우, 그대로 그 곳에서 치료 및 간호를 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수용시설 전반을 호스피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는 1965년 호주의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온 수녀들이 만든 가정 호스피스 갈바리 의원이 그 효시이다. 시작은 호스피스 종주국인 영국에 비해서도 늦지 않았으나 발전과정은 전후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 때문에 매우 더딘 편이었다. 일부 의사들에 의해 연구모임으로 진행되다가 1988년 강남성모병원에 14개의 병상을 갖춘 최초의 호스피스병동이 설립되었다. 호스피스·완화의료체계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2018년에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부터이다. 이 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중단결정 등 그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해 치료로 더 이상의 회복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고,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는 질환의 경우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입원형, 가정형, 자문형 호스피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소아청소년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은 106개(요양병원 포함), 가정형 39개, 자문형 42개소이다. 병상수로 따지면 1800개 정도로 호스피스 이용률은 약 25% 정도에 머문다. 매년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 네 명중 한 명만 호스피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영국의 95%, 미국과 대만의 50~6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자료 : 2023 국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례보고서
이 호스피스의 이용률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스피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2023 국가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호스피스의 역할에 대해 ‘통증 및 정신적 완화’나 ‘환자 및 보호자의 삶의 질 개선’보다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위한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 호스피스를 생각하면 죽음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호스피스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 또한 호스피스를 이용할 때 건강보험적용이 되는지를 모른다. 건강보험 적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64%로 아직 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현실이다. 두 번째는 호스피스 기관수 통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기관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입원 병동은 주로 종교단체 의료재단이나 공공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의 암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상급 종합병원에서는 대부분 호스피스병동을 두고 있지 않다. 고가의 장비와 약물을 사용하는 치료의 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경쟁하지만, 돌봄에 더 무게가 실리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대신 자문형 호스피스를 시범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입원형 호스피스병원으로 전원해야 하는 말기 상황에서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 때문에 입소를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환자들도 많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이 쓴 책 <천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비슷한 나이의 중년 여성이 A와 B가 위암에 걸려 암 수술을 했다. 두 사람은 항암치료 중 서로를 알게 되었다. 둘 다 완치된 줄 알았으나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전이되어 비슷한 시기에 말기 암 환자가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여기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A는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에서 통증을 조절한 후 가족여행을 떠나는 등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반면 B는 끝까지 적극적 치료를 하다가 임종 단계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누구에게도 이별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 번이 넘는 죽음을 맞닥뜨린 김여환은 만약 B나 그의 가족들이 호스피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그녀의 마지막은 덜 힘겨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편안하게 삶을 끝내는 환자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자신이 암에 걸렸고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알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죽음의 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4년 4월에 발표된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안)에는 2028년까지 호스피스 이용률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대상 질환도 확대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 보이는 내용은 이것이다. ‘노년기뿐 아니라 학령기, 성인기, 중장년기 등 연령별 교육과정 개설·확산을 통해 생애말기 자기결정 등에 대해 미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죽음은 불확실하면서 당연한 것이다. 의료기술은 불확실성을 이용해 불필요한 기대를 만들기도 한다. 기대를 접고 당연함을 받아들여야 할 때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존엄하게, 평화롭게,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죽음과 말기 돌봄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 역시 다시 다짐해 본다. 좋은 시체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죽음이 먼저다.
죽음의 맨 얼굴을 평화롭다. 다만 통증 때문에 죽음이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왜곡되었을 뿐이다.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김여환,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