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거장 어슐러 르귄의 에세이 모음『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읽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는 르귄을 읽은 적이 없다. 작년에 버틀러, 해러웨이 등을 공부한 친구들로부터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이 여성 SF 작가인 르귄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알 정도로 르귄에 대해, SF에 대해 무지했다.(지금도 그렇다.^^) 내로라하는 여성 철학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작가 르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르귄은 내가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몰랐던 2018년 12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그가 죽기 전인 2017년에 낸 마지막 책이다. 아버지 돌봄 주간에 일산 가는 전철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 빠져들어 환승역을 놓칠 뻔했다. 따뜻한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이 넘치는 르귄의 글을 읽는 동안 조금은 슬픈 마음으로 올해 88세가 된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알츠하이머인 아버지는 “정신이 멍하다. 판단력이 흐려졌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나는 르귄의 글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을 때 숨을 멈추었다.
내가 ’내 지성이 소멸하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게 되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배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나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들이 마찬가지로 내 말을 믿어주면 좋겠다.(294)
80대에도 여전히 빛나는 지성을 가진 르귄도 속절없이 ’스러지는 것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르귄은 늙은 자신에게 ’오, 선생님은 늙지 않으셨어요‘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마치 교황더러 가톨릭교가 아니라고 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 나도 모르게 큭!하고 웃음이 튀어 나왔다.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 법이래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자주 듣는 표현이다. 흔히 쓰는 말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만큼 힘든 법입니다“처럼. 여기에서도 르귄은 경쾌한 펀치를 날린다. ”솔직히 말해 팔십삼년을 사는 일이 그저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웃다가 눈물이 찔끔났다.
우리 아버지는 종종 ’희망도 기대도 없는 지루한 삶, 빨리 죽고 싶다‘고 넋두리하듯 말한다. 그럴 때 어떻게 아버지를 도와야 할지 알지 못하는 나는 “그래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시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편안하지 않다고 하는데 편안하게 생각하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존중이나 성의는 1도 없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가. 그 진실을 깨달은 나에게 르귄은 “노년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 상태이다”라는 촌철살인을 날려준다. 르귄을 읽으며 분명히 알게 되었다. 늙은 사람에게 늙지 않았다고 하는 말은 아무리 선의로 하는 응원이라 할지라도 실제 내용은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일 뿐이라는 것을.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다. 두려움은 현명하기 어렵고 결코 친절할 수 없다. 대체 누굴 위한 격려인가? 진심으로 노인들을 위해서 하는 말인가? 내 노년을 부정하는 말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다. 내 나이를 지우고, 내 삶을… 나를 지운다.(29쪽)
이 책의 제목인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No time to spare)‘는 여가시간에 대한 성찰적인 글에서 따왔다. 르귄은 하버드 대학교가 1951년도 졸업자들에게 보낸 설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골프, 쇼핑, TV, 브릿지 게임, 창의적인 활동(그림그리기, 글쓰기, 사진 찍기) 등 27개의 체크란이 있었다. 르귄은 이 질문과 답지를 보고 생각한다. 자신이 평생 업으로 삼아온 글쓰기를 여가 시간에나 하는 취미에 포함시킨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 또 80줄에 든 노인들에게는 시간이 남아돌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르귄은 자신이 완전하고도 지극히 바쁜 시간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내 시간은 전부 할 일로 바쁘다.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은 삶에 점령되어 있다.”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영화를 보고, 담소를 나누고, 명상을 하고,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고양이가 와서 치대는 그 어떤 시간도 남아도는 시간일 수 없다. 완전히 자유롭지만 또한 완전히 바쁜 삶에 대한 예찬이 아닌가! 그러니 “내게는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고 말할 수밖에! 노동과 여가로 시간을 구분하는 통념을 가볍게 뒤집는 전복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통쾌하다.
이 책에는 41편의 글이 실려있다. 글의 소재도 다양하고 주제도 그 폭이 넓은 것에 감탄하며 읽었다. 존 스타인벡에 대한 추억도 좋았는데, 언젠가 『분노의 포도』을 완독해보고 싶어졌다. 판타지 소설이 체제전복적이라는 주장을 읽고나니 그가 쓴 SF를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음양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연결시켜 쓴 글을 읽으면서 ’음양이 이렇게 변주될 수도 있구나, 멋지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책의 부제가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인데, 딱 맞는 부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나이듦에 대한 사색은 아니지만, 그 어느 글도 그의 삶의 지혜와 통찰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나이듦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주의: 이 책에는 간주곡으로 르귄의 고양이 파드의 연대기 일곱편이 실려있다. 사랑스런 파드 연대기를 읽고나면 고양이와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부작용이 있다.
노화에 대한 보상이 있다면 결코 신체적인 기량 측면은 아니다. 때문에 그런 것을 강조하는 문구나 포스터는 나를 아주 성가시게 한다. 나약한 이들을 모욕할뿐더러 요점을 빗나가 있다. 등이 구부정하고 관절염에 걸린 손에 연륜의 더께가 쌓인 얼굴을 한 두 노인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 진지하고 속깊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라면 좋겠다. 문구는 이렇게 써야겠지. ‘노년은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다.’(25)
하지만 그와 같은 장수의 모든 실존적 확장은 힘과 체력의 감소에 위협받고 있다. 기억력에 과부하가 걸려 희미해지는 와중에, 아무리 총명한 지적 대응기제로 잘 보상해본들, 몸의 자잘한 부위에 크고 작은 고장이 나거나 어떤 부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다. 노년의 실존은 그런 손실과 제약에 의해 꾸준히 스러진다. 그렇지 않다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정녕 그런 것을. 그렇다고 수선을 피우거나 두려워해도 부질없다. 아무도 그걸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33)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판타지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 판타지 소설은 “그런 건 없어”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허무주의다. 또한 “그건 이렇게 되어야만 해”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건 공상적 이상주의다. 판타지 소설은 무엇을 개선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허구의 맥락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현실성을 가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는 한편으로 체제전복적인 표현이다. 판타지 소설은 “모든 일이 늘 하던 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떨까?”라고 묻는 데에 그치지 않고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일이 흘러갈 경우 펼쳐질 수 있는 결과를 보여주며, 이로써 뭐든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믿음의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그렇게 상상력과 원리주의가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130)
음의 유토피아라고 하면 용어상의 모순일까?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유토피아는 모두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통제력에 의존하는데 음은 통제하려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은 강력한 힘이다. 그힘은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나로서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내 추측은 이렇다. 우리가 마침내 시작한 ’인류의 지배와 무한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인류의 적응과 장기적 생존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하는 사고의 전환이 바로 양에서 음으로의 전환이다. 그 사고에는 덧없음과 불완전함에 대한 수용도 포함되며 불확실성과 임시변통에 대한 인내도 포함된다. 물과 어둠, 그리고 땅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139)
누구나 사회로부터 억압받은 내면의 아이를 품고 있다는 아이디어, 우리가 ’참된 나‘인 내면의 아이를 길러서 창의성을 발산해야 한다는 믿음은 지혜롭고 사상이 깊은 수많은 현인들이 주장한 직관을 과잉 환원주의적으로 진술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193)
나이듦을 성찰하고 싶은 사람
좋은 글을 읽으며 미소짓고 싶은 사람
르귄을 덕질하는 사람
르귄이 궁금한 사람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
고양이 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