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ENING
안녕하세요, 나이듦연구소 소장 문탁(이희경)입니다.
지난 3월, 새롭게 <킨즈>를 개편하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더 짧고 가독성 있는 기사’였습니다. 편집장인 제 역할 역시 주로 빨간펜으로 분량을 줄이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번 호만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가계부 앱에 투영된 빈곤의 풍경도,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고령자에게 절박한 ‘생활동반자법’ 이야기도, 나이 든 여성의 몸을 다룬 공연 후기도 하나같이 놓칠 수 없는 시의성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해 님의 “나이 든 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기사가 흥미로웠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막공을 서둘러 보러 갈 정도였으니까요. 문득 새로운 꿈이 생깁니다. 우리 연구소에서도 ‘노년 몸 연구소’나 ‘노년 연극단’ 같은 걸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요. 언젠가 짜잔— 하고 멋진 소식을 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지난 3월, 새롭게 <킨즈>를 개편하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더 짧고 가독성 있는 기사’였습니다. 편집장인 제 역할 역시 주로 빨간펜으로 분량을 줄이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번 호만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가계부 앱에 투영된 빈곤의 풍경도,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고령자에게 절박한 ‘생활동반자법’ 이야기도, 나이 든 여성의 몸을 다룬 공연 후기도 하나같이 놓칠 수 없는 시의성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해 님의 “나이 든 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기사가 흥미로웠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막공을 서둘러 보러 갈 정도였으니까요. 문득 새로운 꿈이 생깁니다. 우리 연구소에서도 ‘노년 몸 연구소’나 ‘노년 연극단’ 같은 걸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요. 언젠가 짜잔— 하고 멋진 소식을 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KINZ SCENE

by 윤경(2026.05.30)
지난 5월16일, <나이듦연구소>에서는 기린님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애도가 있는 작은 추모식>을 열었습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고인의 기억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슬픔을 지탱하는 ‘애도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림은 고인의 마지막 길에 꽃상여와 꼭두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린 것입니다. 꼭두는 저승길의 안내자이자 슬픔을 달래주는 벗입니다.
📮 THIS MONTH
1. 가계부에 기록되는 노년의 빈곤

자료: 연합뉴스, 청림출판
안녕하세요, 기린입니다.
일본의 가계부 앱 ‘자임(Zaim)’을 이용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물건을 사고 받은 영수증을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사용 내역이 자동으로 기록되는 편리함 덕분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한 언론이 소개한 자임 이용 사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쿄의 임대주택에서 홀로 사는 78세 여성은 기초연금과 파트타임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갑니다. 월세와 약값을 내고 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1,000엔(약 9,000원) 남짓입니다. 그는 마트와 편의점에서 100~200엔짜리 할인 도시락과 두부를 사고, 영수증을 자임 앱에 기록합니다. 그러다 누적 식비가 한도를 넘었다는 경고 알림이 뜨면 다음 연금이 나올 때까지 무료 급식소를 찾아갑니다. 몸이라도 아프면 식비를 줄여 병원비를 마련해야 합니다. 가계부 앱에 기록되는 것은 소비 내역이 아니라 생존의 계산입니다.
후지타 다카노리는 2017년에 이미 <2020 하류노인이 온다>를 통해 버블경제 붕괴 이후 비정규직 확대와 기업 복지 축소 속에서 노후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고령층이 빈곤으로 추락하는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당시에는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읽혔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후기고령자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후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직면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현실은 결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고,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속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입니다. 저 역시 국민연금을 내고 있지만 예상 수령액은 60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기초연금을 더한다 해도 질병이나 물가 상승 같은 변수가 겹치면 삶은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껴 쓰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절약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들이 존재합니다. 노후 빈곤은 개인의 소비 습관이나 노력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절약이 아니라, 안전하게 늙어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입니다. 최근에는 기초연금을 단순히 소득 하위 70% 기준으로 지급하기보다 실제 취약성을 더 세밀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의료와 돌봄, 주거 인프라,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망이 함께 뒷받침되지 않으면 노후의 삶은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초고령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재난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느린 재난’입니다. 가계부 앱에 찍힌 숫자들은 단순한 소비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노인이 병원비와 식비 사이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노후 빈곤을 개인의 절약 문제로만 남겨둔다면, 언젠가 우리 역시 같은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생존을 계산하게 될지 모릅니다.
2.생활동반자법, 초고령사회의 필수템

사진: 동아일보
안녕하세요 도레미입니다. 여러분은 몇 인 가구로 사시나요? 저는 아들과 함께 2인 가구로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분가하면 저도 요즘 대세(?)인 1인 가구가 되겠지요. 40대까지는 ‘혼자 사는 게 편하지’ 싶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내 몸의 변화를 느끼고 부모님의 노쇠를 지켜보며, 누구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늙어 아프게 될 때, 한창 자기 일에 바쁠 아들이 달려와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6.1%가 1인 가구입니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37.8%가 1인 가구인데, 그 비중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같이 사는 가족이 돌보는 구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 연구보고서 <1인 고령자 가구의 자발적 상호 돌봄 제도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 초고령사회 맥락에서 살펴본 「생활동반자법(안)」>에 따르면 현재 중고령층 1인 가구의 87.6%가 향후에도 1인 가구 생활을 유지하길 희망한다고 합니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지만 돌봄에 대한 불안도 함께 안고 있다는 점에서, 저의 걱정과도 일치하네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요?
전주의 비혼 여성 1인 가구 공동체인 ‘비비(비혼들의 비행)‘처럼 거주지 근처에서 생활·주거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챙기는 ‘자발적 상호돌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런 비혈연 관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한 외국 사례도 참고할 만합니다. 프랑스는 시민연대계약(PACS)으로, 독일은 등록생활동반자제도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가족돌봄휴가 제도에서 ‘지정된 가족(designated person)’ 개념을 도입해 비혈연 관계까지 돌봄 권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돌봄의 안정성을 강화해, ‘살던 동네에서 늙어가는(Aging in Place)’ 가능성을 넓혀줍니다.
한국에서도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꾸준히 시도됐지만 ‘동성결혼 승인’ 프레임에 갇혀 번번이 좌초됐습니다. 이에 보고서에서는 장기적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되, 당장 필요한 의료법, 남녀고용평등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주택임대차보호법, 장사법 등을 먼저 개정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물론 개별법도 시급히 바꿔가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의 돌봄 공백은 이미 크게 변한 가족구조를 담지 못하는 낡은 법체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법안을 둘러싼 프레임 싸움은 한가해 보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의 주체를 혈연 가족 너머로 확장하기 위한 기본법입니다. 더 미룰 이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3.나이 든 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사진:모두예술극장
안녕하세요, 서해입니다.
“오른팔부터 위로 길게 빼주고 왼손을 틈 사이에 끼워 넣은 다음에 오른팔을 반대쪽으로 가로질러 넘기고, 몸통을 옆으로 밀고 어깨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떨궈보자….”
스코틀랜드에서 온 84세의 퍼포머, 크리스틴 타인(Christine Thynne)은 사다리 위에 설치한 널빤지 위에서 누웠다 일어나며, 이때 필요한 자세와 동작 하나하나를 나직한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던 일들—중심을 옮기고, 무게를 버티고, 균형을 회복하는 일—을 만약 의식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면 이렇듯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80대 무용가가 던진 ‘나이든 몸’에 대한 질문(공연, <메카니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나이듦 대중지성> 세미나에서 안드레아 칼라일(Andrea Carlisle)의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를 읽을 때였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그 삶만큼이나 다양한 나이듦과 노년의 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연스레 80대 여성의 몸을 직접 보고 싶어졌습니다.
운동처럼 집안일하고, 플라스틱 물통과 운반용 팰릿만으로 뗏목도 척척 만들어 탈 줄 아는 크리스틴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 상영된 후, 60분간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무용도 연극도 아닌, 이야기와 춤, 랩과 정교한 동작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크리스틴만의 독창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녀의 몸짓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했고, 느리지만 자유로웠으며, 때로 반복되면서도 고유의 리듬감이 있어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하이라이트였죠. 시소 모양을 본뜬 긴 널빤지 한쪽 끝에는 물통이 놓이고, 반대편에는 크리스틴이 누워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 쪽의 무게가 더 무거워서 물통들이 공중에 떠 있습니다. 맨 끝에 놓인 빈 물통에 물이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균형이 조금씩 바뀝니다. 크리스틴의 몸이 아주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해 마침내 시소의 수평이 맞춰지는 순간, 극장 안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죠.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수평이 아니라 세계와 다시 조율되는 ‘어떤 몸의 위대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늙어감을 가늠하는 객관적인 수치나 기준이 있을까요? 크리스틴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세계와 균형을 맞추는 자신만의 눈금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노인 여성’+‘만화’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올림머리에 지팡이를 든 할머니들이 잔뜩 등장하는 구글 검색 결과에 실망한 작가 칼라일은 이렇게 묻습니다. “나이 든 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질문이 오늘날 특히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코로나19가 요양원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많은 이들이 미디어가 박제해 둔 고정관념과 왜곡된 이미지로 노년의 삶을 바라보았기에, 그들의 죽음을 쉽게 외면한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발견해야 하는 것은 무대 위 특별한 한 명의 크리스틴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묵묵히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노년의 진짜 몸들입니다.
📌 EDITOR’s PICK

▶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 정회옥 / 한겨레출판 /2026
나이는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쉽고 유용한 기준이다. 그래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흔히 사용되지만 때로 해악, 불이익, 부당함을 초래하고 세대 간 결속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즉 상대의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혹은 같아서’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행위가 ‘연령차별주의’다. 이것이 문제는 사회가 연령을 기준으로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판단하여 기회와 자원을 배제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어쩌다 연령차별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그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그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돌봄이 건네는 말들- 방문 진료 의사의 노인, 돌봄, 존엄을 둘러싼 기록 / 전영웅 / 파지트/ 2026
제주에서 진찰 가방과 여러 의료 용품들을 메고 방문 진료를 다니는 의사가 있다. 그는 요양원과 가정에서 여러 노인들과 취약계층을 마주하며, 진료실이 아닌 삶의 자리에서 그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탁상행정으로는 알 수 없는 돌봄의 실상을 기록하며, 의사와 환자의 수직적 관계에서 스스로 내려와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미래를 마주하게 하는 기록이다.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 나이토 이즈미(지음), 위지영(옮김) / 마음의숲 / 2026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차가운 기계음 가득한 병원 침대 대신, 익숙한 내 방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를 느끼며 떠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임종 직전까지 평소처럼 일상을 지켜내며 “나다운 마침표”를 찍은 사람들의 뜨거운 기록이다. 병원이라는 차가운 공간이 아닌, 익숙한 냄새와 온기가 남아있는 나의 집에서 말이다. 30여 년간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온 나이토 이즈미는 말한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없는 ‘오늘의 연속’이어야한다고.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 박혜윤, 신성준, 최은경 / 아몬드 / 2026
암 병동에서 중증 질환 환자를 주로 만나는 정신과 전문의, 말기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을 연구해온 신장내과 전문의, 의료윤리와 역사를 오래 가르쳐온 의료인문학 교수. 서로 다른 자리에서 죽음을 마주해온 세 사람이 함께, 말기 돌봄 공백 사회에서 새로운 죽음의 방식이 나와 우리 공동체에 남길 영향력에 관해 절박하고 진지하게 탐구했다.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에 갇히지 않고 개념 정리부터 한국의 말기 돌봄 현실, 자기결정권의 이면, 해외 실제 사례까지 조력임종에 관한 모든 것을 전방위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