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에서 보낸 해외여행 광고 문자를 보여 준다. 미술사학자와 함께 떠나는 13일간의 이탈리아 ‘美味 미술여행’이다. 구미가 당긴다. 은퇴 기념 가족파티에서 처의 사촌동생이 내게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미술이야기』라는 책인데,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총 6권의 강의식 미술 관련 이야기책이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학생시절,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일까?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볼 줄도 몰랐다. 하기야 그 긴긴 학창시절 동안 그림에 대하여 제대로 공부해 본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 지도 모른다. 볼줄 모르니 내게 미술관은 아주 따분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만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라….. 오래된 트라우마(?)를 깨는 도전의 기회일 수도, 책에서 본 것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일정이 8월말에서 9월초에 걸려있다. 덥지 않을까? 나의 우려에, 이곳 프레시안에서 주관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십여 년 전에 실크로드 대장정을 여러 번에 나누어서 다녀온 아내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고 떠나면 된다고 ‘선언’한다. 이 정도면 토 달지 말고 그냥 따라 나서는 게 상책이다.
가볍게 훌쩍 떠나지 못하는 나이
긴 시간 먼 곳으로의 여행이니 준비물을 단단히 챙긴다. 베이지색 큰 가방도 하나 장만했다. 안내 물에 적힌 준비물이외에도 매일 갈아입을 옷, 날씨 변화에 따른 적절한 옷가지, 이것저것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 가기 위해서이다. 평소와는 거꾸로 아내는 유비무환!을 외치고 나는 과유불급!을 외친다. 젊어서 가는 해외여행 때보다 확실히 걱정이 많아졌다. 가장 표시 나는 것은 약상자이다. 젊었을 때에는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될까봐 소화제, 아무데서나 물을 먹어서 배탈날까봐 지사제, 뛰어다니다가 까졌을 때 발라 줄 ㅇㅇ카솔 정도일 텐데, 이 번 약상자는 한 보따리이다.
항상 먹는 당뇨약, 고지혈증약, 갑상선약에 비타민제 같은 건강보조제. 몇 주 전에 코로나처럼 앓았을 때 먹고 남은 몸살약, 혹시 감기 들지 모르니 ㅇ콜A 몇 병. 이것은 꼭 가져가야한다고 제안 받은 공진단, 벌레 물린 곳에 최고 명약인 자누리표 자운고, 그리고 너무 너무 피곤하면 생길 지도 모르는 ㅇㅇ염 약을 내과에 가서 특별히 조제해서 챙겼다. 아! 무릎이 아플지 모르니 다양한 모양의 파스도 준비했다.
몇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 관련하여 우스갯소리가 있다. 삼국의 여행자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중국인들은 금세 표시가 난다. 성조 있는 목소리로 무지하게 시끄럽다. 반면에 일본사람들은 가이드의 깃발아래 조용히 줄지어 따라 다닌다. 한국사람들은? 어떤 여행지에서도 등산복을 입는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변했다. 모두 각양각색의 그 날의 일기예보를 체크한 듯 편하고 개성 있는 복장들이다.
나의 개인적인 해외여행은 은퇴 후에 몇 번 있었고, 대부분은 출장 목적의 여행이어서 나는 항상 비즈니스 캐주얼로 입고 다녔다. 공항에서나 비행기 안에서도 그렇게 입어야 마음이 편했다. 이번에는 과감히 바꾸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반바지에 팔뚝이 다 나오는 티를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공항을 돌아다는 젊은 친구들처럼 해보지는 못해도, 반바지에 티를 입었다. 의아한 듯이 아내가 쳐다보며 청바지를 권했지만 No! 나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주 편했다. 이런 기분이구만.
그런데, 한 30분쯤 지났을까? 어째 좀 추운 것 같다. 상공에서 날아다니는 비행기 안의 공기는 원래부터 찬 곳인 줄은 알지만 이렇게 추웠나 싶다. 특히 무릎이 시렵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무릎 관절이 뻣뻣해진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안 추워요?” “괜찮은데요?” 결국 승무원에게 추가 담요를 신청해서 반바지를 둘둘 말아 주니 살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안 해본 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지혜가 필요한가 보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친구 장인의 문상을 다녀왔다. 92세 이었는데, 일주일 전에만 해도 운동 삼아 하루에 만보정도를 걸으셨던 분이었다. 어찌해서 코로나에 걸리셨고 병원에서 완치하였다고 병실을 옮기자마자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노인들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
여행 중에는 가까운 지인 어머님의 부고를 받았다. 집안에서의 낙상사고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가볼 수도 없는 상황인데, 안타까웠다. 퍼뜩,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 생각이 났다. 여행 다녀와서 또 뵙겠다고 말씀드려도 항상 똑같은 무표정한 모습을 보고 왔던 터이다. ‘무슨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너무 멀리 나왔나?’ 싶다. 그래도 이곳은 이탈리아이니 한국행 비행기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편안한 마음을 만든다.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이번 여행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중부 로마까지의 미술여행이다. 시대적으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그림과 조각,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것이다. 일정이 계속될수록 나의 관심은 죽음에 관련된 예술에 모아진다. 장모님과 이모님들, 또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모두 연로하셔서 노인 돌봄이 종종 우리들의 화제가 되는 나이여서 그런지 모른다. 실제로 르네상스 그림과 조각에는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주제로 엮인 것이 많기도 하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가지는 종교적인 메시지가 커서 그럴 것인데, 그 예술품들 속에서 나는 인간의 죽음과 슬픔, 그리고 가능하면 ‘나의 죽음’을 찾아보기로 한다.
관념적인 죽음
부활을 상정하였기 때문일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옆구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지만 얼굴모습은 평안(?)하다. 신성한 신의 아들이니 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예수 죽음의 슬픔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바티칸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아도 느낌이 확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축 늘어진 팔뚝에서 오는 무중력 상태의 몸, 발등의 못 자국, 핏줄까지 세세히 표현하기는 했지만, 본인은 물론이고 어머니인 마리아의 표정이 내 느낌으로는 평안해 보인다. 사실 ‘피에타’라는 단어가 번역하기 복잡한 단어란다. 라틴어 ‘Pietas’에서 유래했는데, 친족에 대한 사랑, 가문에 대한 의무감, 신에 대한 경외감, 타인에 대한 동정심 등을 포괄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정서를 표현하려고 하였으니, 무언가 예수의 죽음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에서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죽음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중년의 미켈란젤로가 만들고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있는 ‘반디니 피에타’에서 예수의 얼굴은 자세히 표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구도에 눈길이 간다. 마리아가 지탱하지 않으면 힘없이 무너질 것같은 반쯤 틀어진 예수의 자세에서 고통과 죽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성인(聖人)이기 전에 인간적인 예수의 죽음을 본다.

오히려 완성되지 않아서 더욱 인간적인 죽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보았다. 미켈란젤로가 말년에 죽기 전까지 작업하면서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밀라노에 있는 ‘론다니니 피에타’이다. 조각상을 보면서 87년 6월 연세대 교문앞에서 최루탄 파편에 맞아 피흘리며 쓰러지는 이한열이 오버랩된다. 그래서 일까? 뭉뚱그려져있는 예수나 마리아의 얼굴에서 오히려 슬픔이 느껴진다. 상세하지 않는데, 느낄 수 있다니……
그러고 보면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죽음, 내가 보지 않은 타인의 죽음을 느껴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관념적인 것일 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죽음
볼로냐를 업무상 두 번 방문한 경험이 있다. 유럽지역의 뷰티전시회가 열리는 지역이다. 그 동안 박물관과 큰 성당, 대학 내 자연사 박물관등은 가 보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시내 골목길에 있는 교회당에서 전공자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작품을 보았다.(가이드인 ㅇ교수는 볼로내 대학 석/박사이다) 아주 작은 예배당인 산타 마리아 델라 비타 교회에 있는, 그것도 재단 옆 작은 공간에 있는 예수 죽음에 관한 작품은 내게 ‘아! 이럴수가!’하는 감탄을 주었다.

흙으로 빚고 구워 만드는 테라코타 방식의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이라는 조각이다. 이곳 볼로냐 출신의 니콜로 델 아르카 (1463~1485)의 작품이다. 십자가에서 내려 반듯이 누운 예수를 보는 주변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그들의 슬픔이 줄줄 흘러내린다. 가운데 남자는 사도 요한이다. 울음을 참으려고 일그러뜨린 얼굴이지만, 그것을 뚫고 나오는 울음소리를 막으려고 손으로 입을 짓누르고 있다. 맨 오른쪽 막달라 마리아는 누워있는 시신을 금방이라도 덮치려는 듯이 달려드는 모습 그대로 옷자락과 표정이 그려져 있다. 그 옆의 여성은 글로바의 마리아이다. 그녀는 “이건 아니야!”라고 부정하며 외치는 모습이다. 맨 왼쪽의 여성은 살로메이다. 그녀는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한 여성이다.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현실이 아니다”라고 오열한다. 가운데 요셉의 왼쪽이 마리아이다. 모든 여성들이 입으로 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녀는 가슴을 쥐어짠다. 어머니이니 아니 그렇겠는가!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이 전해온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는 다르게 가까운 사람들이 겪는 슬픔, 당신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작품 전체를 내게 말해주는 뜻밖의 인물이 있다. 맨 왼쪽에 있는 니코데무스이다. 그는 무심히 앞을 본다. 누군가는 차분히 장례를 치러야 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 사람일 것 같다. 그의 시선은 예수가 아니라, 몸을 돌려 작품을 보는 나를 본다. 마치, ‘예수의 죽음이 네게는 뭐지?’하고 묻는 듯하다. 뜨끔했다. 서둘러 바닥에 누운 예수를 보았다.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하고 손을 합장하고 다리는 약간 벌어진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 그가 아니었으면 예수 주변의 인물들에 온통 시선을 뺏겼을 나를 발견한다.
정작 죽은 사람 예수보다 그 주변의 인물들에 집중하다니, 기분이 묘했다. 죽은 사람 예수의 시각에서 표현한 작품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있을 수가 없겠지. 그것참, 묘하다. 누구나 반드시 죽을 텐데, 또 그것을 알고 있는데, 살아생전에 그것을 경험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죽음은 항상 타인, 당신의 죽음만이 그려지는가 보다.
나의 죽음
피렌체의 도미니크 수도회가 세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는 원근법의 시초인 그림이 있다. 마사초(1401~1428)가 그린 ‘성 삼위일체’라는 커다란 벽화 그림이다. 전면의 밝은 빛을 받는 예수가 튀어 나와 보이는, 3D 화면을 보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성부의 뒤로 보이는 돔형의 천장의 깊이는 실제로 환산하면 17미터 정도의 깊이가 된단다. 그것을 평면에 구현한 것이니 회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난 이 그림의 원근법도 놀랍지만, 그 아래 뼈만 남은 시신을 그려 넣은 마사초의 생각에 눈길이 갔다. 그 무덤 벽에는 라틴어로 ‘나도 한때 당신이었고 당신도 또한 내가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 그 위에 그려진 성부와 성자, 성신을 믿으라는 것인데, 나는 작가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을 타자화하여 표현한 윗 그림에 덧붙여서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려고 추가한 그림으로 보였다. 나의 죽음은 상상할 수 없으니 그 사실만을 글로 쓸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사실 언어로도 나의 죽음을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추모
수많은 성당의 지하에는 기념비적인 사람들이 묻혀 있다. 한 사람 혹은 한 가문을 위한 성당을 지어서 자신들의 무덤이 성당의 찬송가 소리에 항상 묻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별도로 공부하여 알지 못하면 그들의 무덤 위를 밟으며 그냥 지나친다. 유명한 화가들은 군상 그림에서 자신을 슬쩍 그려 넣어서, 또 조각가들은 주인공외 주변인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조각하여 자기를 남기기도 한다. 후대가 알아 달라는 것인데, 그로써 자신의 죽음을 표현한 행위로도 보였다.
피렌체 대성당 옆에 작은 광장에는 후대가 추모하는 멋진 동상이 있다. 브루넬스키(1377~ 1446) 동상이다. 그는 중세부터 짓기 시작하였으나 돔 지붕을 만들지 못해서 뚜껑이 열린 채로 있는 대성당(두오모)의 돔을 지은 사람이다. 지름이 45미터나 되는 피렌체의 상징인 두오모 돔은 당시 기술로는 45미터짜리 설침목(비계)를 만들 수 없어서 비워 둔 상태이었다. 1400년대에 들어와서 당시 40세이었던(지금으로는 은퇴나이) 브루넬스키가 로마의 판테온을 연구하여 적게 잡아도 2만5천 톤이나 되는 지붕을 돔 형태로 건축하는데 성공한다. 근대에 가장 훌륭한 건축교재라고 평가되고 있다.
37도의 뜨거운 햇볕을 가리면서 대성당 건물을 빙 둘러 그의 건축을 보면서 그늘을 찾았다. 대성당 옆 작은 광장에 까페가 보인다. 출입구 양쪽에 두 사람의 동상이 있다. 한 사람은 이 대성당을 설계한 아르놀디 디 캄피오 조각상이고, 한 사람은 돔을 설계하고 지은 브루넬스키이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은 자기가 만든 돔을 향한다. 평생의 역작을 죽어서도 항상 바라보는 영광을 주어 그를 기억하는 피렌체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브루넬스키의 시각에서 본 두오모의 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손잡고 여행
이 번 여행은 내게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은퇴 후,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엔데믹으로 전환된 뒤에는, 장모님도 모시고 손주랑 4대가 함께 사느라고 긴 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둘 만의 시간을 살게 된 이후의 처음 만난 긴 해외여행이다. 또 10여 년 전에 두어 번의 이탈리아 여행 경험이 있는 나는, 꼭 나의 아내와 그 감동을 함께 하리라고 마음먹은 곳이 여러 곳 있었다. 물론 나의 감동을 똑같이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장소를 둘러보고도 “어때?“하고 물을 수가 없었다.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감상할 수도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저 이동하기 바빴다. 아쉽지만 100% 만족하는 여행이 어디 있으랴.
아내는 손잡고 걷기를 좋아한다. 처녀 때부터 그랬다. 때로는 남사스럽기도 하지만,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손을 주는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나도 손을 내민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덥다.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 살겠지만 37도의 땡볕에선 손을 잡고 다니기가 쪼매 거시기하다. 우리 여행 그룹의 8할은 여성분들이다. ‘이 분들이 왠지……’ 뒤통수가 가렵다. 결국 한 분이 묻는다. “두분은 절대 싸우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게 손잡고 다니니……) “아뇨, 자주 싸워요. 제가 항상 지지만요. 하하”. 덥기도 하지만 보는 눈들을 생각해서 손바닥을 빼고 슬쩍 손가락만 걸쳐서 잡는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손가락이 뻣뻣해서 접을 수가 없다.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겨우 풀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참!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잠시 잊고 있었지만 산 날보다 죽는 날이 가까운 나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득, 난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 수 없다. 또 몰라도 상관은 없다. 죽은 뒤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그 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감출 수 없다. 그럴려면 정신 멀쩡하고 신체 생생할 때에, 눈치 보며 아끼지 말고 손을 내밀어야 할까 보다.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에게 말이다. 또 꼭 여행을 가야만 그럴 일도 아니다.
사는 게 다 여행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