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보였다. 스트레스가 사람의 외모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니, 놀라웠다. 그에게 텃밭을 제안해 보았다. 텃밭 가꾸기로 자식들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있는 찬구녀석 이야기를 하면서…..
몇 개월 뒤, 선배의 모습이 달라졌다. 원형 탈모증이 나아가고 있었다. 주말에 텃밭에 가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결국, 곧 회사를 그만 두고 양평에 살기 위하여 전원주택을 짓고 있다고 내게 귀뜸한다. 물어 보았다. “돈도 안되는데, 텃밭하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그의 대답은 이렇다. 당시에 자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텃밭의 작물들만이 자신을 알아 봐 주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반응하여 준 것은 그곳 작물들뿐이었다는 것이다. 작물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서울 토박이로 손에 흙을 묻힌 적이 없는 그가 삶의 새로운 방식을 찾은 듯하였다. 은퇴하여 아파트를 떠나 시골살이를 하려는 친구들도 조그마한 정원과 텃밭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물론, 목소리 큰 녀석의 말대로, 현실은 내가 상상하는 전원생활과는 다르게 펼쳐 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유행가 가사때문인가? ‘내가 집을 짓는다면,’으로 시작하는 계획서에는 제일 먼저 넓은 잔디밭이 그려진다. 헌데, 이 잔디밭을 가꾸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골프장같이 저 푸른 초원은 잡초제거 약을 뿌리지만, 내 집 마당에 약을 뿌릴 수는 없다. 한 때는 나도 ‘뽑지 말고 뿌려 주라’는 선전에 혹해서 그 제품을 사려고 농약사에 들렸다. “이거 인체에 해롭지는 않죠?” 나이 드신 농약사 주인이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한 마디로 정리한다. “그거 농약이여~~~” 그렇다. 아무리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선전해도 농약은 농약이다.
손님들은 잔디를 보고 집 주인은 잡초를 본다더니, 집사람은 매일 새벽 이른 시간에 한 시간 정도 잔디밭 잡초를 뽑았다. 꼭 명상하듯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잡초는 이른 새벽 땅이 축축해야 잘 뽑힌다. 마른 땅의 잡초는 뿌리가 살아서 다시 자란다. 또 너무 작으면 뿌리까지 제거하기 어렵다. 물을 주어서 잡초를 키워야 뽑을 수 있다. 뽑을 잡초를 키운다니, 아이러니하다. 또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잡초를 뽑는 자세가 허리에 매우 좋지 않는 숙인 자세가 된다. 허리 다치기 딱 좋은 자세이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보기 좋은 잔디 마당을 한 5~6년 가꾸었나? 보기는 참 좋은데, 집사람은 허리가 아파서 병원치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잔디밭은 줄이고 텃밭을 만들었다. 잡초와의 전쟁 끝에 스스로 살아남은 작물을 먹는 방법도 있지만, 결실을 찾기 어렵다. 하여, 이 것도 풀을 뽑으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었다. 비닐하우스를 하거나 멀칭을 하거나 먹는 작물은 죄다 비닐이 키운다더니, 이해가 된다. 텃밭도 줄이고 꽃밭을 만들었다. 하지만 꽃씨보다 먼저 나오는 게 잡초이다. 예쁜 꽃을 보려면 그 놈을 뽑아 주어야 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잡초가 나오기 전에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놈이면 좋겠다 싶었다. 맥문동을 빽빽하게 심었다. 이제 그 곳은 잡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은 잔디밭의 잡초도 뽑지 않고 잔디깎기로 자주 밀어 준다. 잔디는 점점 없어지고 ‘나도 잔디’라고 외치는 작은 잡초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허리가 아프지는 않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여?
분당에 사는 친구 녀석이 우리 집 철쭉을 보며 묻는다. “철쭉.” “에? 이렇게 큰 나무가 철쭉이라고?” 우리 집에는 철쭉이 많다, 경사지에 집을 짓느라 집터와 마당에 단차가 생겼다. 그 단차를 둥글둥글한 강 바위돌로 두르고 바위 틈새에 붉은 색 철쭉을 심었다. 마당 한 쪽에는 하얀 철쭉을 심어서 초봄에 붉은 색 철쭉꽃이 피고, 늦봄에 하얀 색 꽃이 피도록 배치하였다.
도로가에나 아파트 단지에 철쭉이 많다. 그 곳 철쭉들은 꽃이 피고 나면 큰 전지 가위로 윗 부분을 사정없이 자른다. 자른 곳 바로 밑에서 3~5개의 가지가 자라고, 이 가지들에서 내년 봄에 꽃을 피운다. 2~3년만 같은 높이로 계속 잘라주면 빽빽하게 잔가지가 형성되고, 그 위에 꽃이 피우니, 철쭉은 낮은 높이로 빽빽하게 꽃을 피우는 나무 아닌 나무가 된다.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 때문에 자연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가는 철쭉들이 많다. 도로가에 빽빽한 가지 위를 뒤덮은 빨간 철쭉 꽃들을 볼 때마다 그 들의 핏줄을 보는 것같아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 집 철쭉은 죽은 가지만 잘라 주고 그냥 키운다. 키가 쑥쑥 자라서 내 키보다 큰 하얀 철쭉이 있다. 그 놈을 보고 “이 나무가 철쭉이라고?“하고 물은 것이다.


소나무 가지치기는 왜?
봄이 되면 어김없이 마당에 소나무들의 가지를 잘라 주는 전지(剪枝)작업을 한다. 처음에는 전문가의 손을 빌렸다. 이 분들은 나의 시각에서 보면 사정없이 잘라 낸다. 소위 강전정(强剪定)을 한다. 전정된 소나무는 내가 그려 본 소나무의 모습이 아니기 일쑤였다.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가며 공부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자른 지가 몇 해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왜 전지를 해야 하지? 하는 질문이 들었다.
통상 가지치기는 풍성한 과실을 위하여 나무의 생장을 조절하거나 나무의 모양을 예쁘게 하는 조형을 목적으로 실행한다. 소나무 전지는 대부분 조형미를 위한 것인데, 가장 예쁜 소나무 전지는 산 정상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햇볕이 잘 들어오게 하고, 사방팔방으로 바람이 잘 통하게 가지를 잘라 주고 잎을 뽑아 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는 영양이 풍족하지 못하니 잎이 작고, 또 바람이 센 곳이니 가지가 겹쳐 자랄 수 없다. 죽은 가지나 잎은 벌써 날라 갔을 것이다. 헌데, 바람도 없고 영양도 풍부한 가정 집 땅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어떤가? 당연히 잎도 풍성하고 줄기도 자유롭게 쭉쭉 뻗는다. 게다가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게 전지하였으니 해마다 무성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잘 자란 소나무에게서 바위틈 소나무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다니, 인간의 욕심이 소나무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두어 해를 전지하지 않았다.
지난 2월인가 3월 늦은 날에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이 때 오는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습설이다. 무겁다. 작은 소나무 가지의 눈들을 털어 주었지만, 큰 소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전지하지 않아 무성한 가지에 내린 눈의 무게 때문에 가지들이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만히 보니, 무성한 잎에 가려서 햇볕을 보지 못한 죽은 가지들이 여러 가닥 보였다. 두 해 동안 전지하지 않은 결과이다. 우짠다…… 다시 전지가위를 챙겼다.
이제 우리집 소나무는 조형미를 위해서만 가지치기하지 않는다. 녀석이 습설, 고온다습한 날씨 등에 힘들지 않게 정지(整枝)하는 것이 나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조형미에 힘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이든 가능한 원래 산에서 사는 것처럼 녀석을 돌보기로 하였다.
희한하게도 가지치기를 하고 나면 그 전의 나무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지금은 아주 소중하고 아까워 보여 내 품에 꼭꼭 넣어 두려는 욕망, 그것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두려움을 버리면 내게는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일게다. 소나무가 가지를 내어 주며 내게 일깨워 준 일상이다.



가로수 가지치기 유감!
가지치기 얘기가 나온 김에 가로수 가지치기 얘기 좀 하자. 우리네 도시에는 가로수로 플라타너스가 많다. 쑥쑥 잘 자라는 이 녀석은 잎이 커서 그늘도 잘 만들어 줄 뿐만아니라, 그 무성한 잎의 탄소 동화작용으로 다른 나무들보다 오염된 공기를 더 많이 정화시켜준다. 가로수로 선택한 이유이다. 헌데, 녀석이 자라면서 상업건물의 간판들을 가리기 일쑤이다. 나무보다는 간판이 더 중요한 상인들은 지자체에 민원을 넣는다. 매년 예산을 세우기 귀찮아서 일까? 플라타너스 전지는 사정없이 진행된다. 나무는 그 자른 자리를 치유하고 새 잎을, 새 가지를 돋우느라 그 자리가 뭉특 뭉특해진다. 꼭 그의 뼈가, 관절이 들어난 것처럼 보인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가로수 본줄기를 싹뚝 자르는 소위, 두목치기(전지가 아니라 ‘치기’이다)를 한다. 그런데, 이런 가지치기에 익숙해졌는지, 요즘은 아파트 단지 내 가지치기도 이런 곳이 꽤 있다. 난 그런 나무를 볼 때마다 나무가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그런 나무를 내 집(아파트 단지)앞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아니지, 키 작은 철쭉처럼 “가로수는 원래 그래.” 하려나?


언젠가 암스테르담에 간 적이 있다. 그 곳도 가로수로 플라타너스가 많았다. 그 들도 가로수를 전지하는가 보다. 나무를 네모지게 일정한 모양으로 전지하였다. 어떤 나무는 꼭 분재하는 것처럼 묶어 놓았다. 하지만, 우리네 전지처럼 간판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인 나무의 생장을 무시한 그런 전지는 아니었다. 그럴 것이면 아예 심지나 말지…..


누가 보아도 편안한…..
얼마 전에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우리나라 1세대 조경사, ‘정영선’ 할머니를 소개하였다. 그녀는 세계조경협회가 4년마다 주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은 한국인 최초의 조경사이다. 선유도 공원, 여의도 샛강, 경춘선 숲길 등 공적인 공간과 호암 아트홀, 아산병원 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정원을 만든 사람이다. 그녀의 인터뷰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현대그룹으로부터 서울 아산병원 신관 조경 자문을 의뢰받았을 때, 그녀가 내놓은 답을 말할 때이었다.
“환자는 아프니까 울고 싶을 때도 있는데 침대에 앉아 울겠느냐고. 억장이 무너지는 가족은 환자 앞에서 울겠느냐고. 어디 좀 숨어서 한바탕 울고 들어간다든지 표정 관리하고 들어간다든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시달린 의사나 간호사들도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느냐고. 걸을 수 있고 쉴 수 있고, 충분히 많은 나무가 있어서 그늘이 있고 그래야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식물이어야 한다. 이른 봄에 싹이 터서 ‘아, 이제 봄이구나 나도 나아야지’, 늦게까지 예쁘게 단풍이 들어 있어가 ‘아, 여전히 생명이 있구나’, 이렇게 느끼게 하고 싶다.”
그렇게 아산병원 신관 앞에는 환자나 보호자는 눈에 덜 띄면서 울 수 있고, 의료진은 잠시 쉴 수 있고, 병마에 싸우는 환자들은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생명력 강한 식물로 구성한 정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평창 집과 고기동 집, 두 군데를 관리(!)하느라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꽃 심고 나무 가꾸고 텃밭을 돌보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든다. 하지만 뻣뻣해지는 근육은 풀리면 그만이다. 내가 나무와 꽃들과 했던 이야기는 마당 곳곳에 남아있어 마음은 너무나 평온해진다. 그 들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정 할머니처럼 지형, 식물의 습성과 식생, 색깔, 환경, 역사성, 전통, 이용하는 사람, 공간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시심(詩心)으로 정원을 가꾸지는 못한다. 가능한 인위적인 냄새를 피우지 않고 마치 나무와 꽃과 풀이 원래 그곳에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볼 뿐이다.
누구든지 내 마당에서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